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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24화 (22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24)

에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층의 아담한 집.

마을에서 평판 좋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어서인지, 이 집에는 매일 손님이 드나들곤 했다.

부부가 어찌나 사교성이 뛰어난지, 여관업을 권유받을 정도였다.

―하하. 옛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떠돌아다닐 때 만난 친구들이 많아서.

사람 좋아 보이는 새신랑은 그리 말하고 다녔고, 실제로 그래서 마을의 외지인은 더 이상 특별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일이 이상하게 꼬였어.”

마을 사람들에게 새색시, 하지만 아는 이에게는 나이트 플라워라 불리는 쥬시스의 투덜거림.

“이제 다 왔는데.”

에렌에서 쥬시스의 임무는 아주 간단했다.

에듀 백작 부인을 해하려 했던 자들의 전원 암살.

어쌔신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지시했던 자까지 전부 포함이다.

어쌔신들 사이에서 전설 중 하나인 쥬시스였지만, 에렌에서는 기반이 없었다.

그냥 해당인의 집에 들어가서 암살을 하고 돌아온다?

이런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는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특히나 귀족의 암살은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에렌에는 고스트가 있었고, 히든아이가 조직을 구축 중이었기에 쥬시스는 자신이 할 일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그때 관련된 어쌔신들을 모조리 제거했고, 얼마 전 그 어쌔신 길드의 길드장을 암살함으로 뿌리를 뽑았다.

남은 건 암살을 지시한 의뢰인.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그 의뢰인은 예상대로였다.

네라페.

에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이들 중 하나.

로라스의 숙모이며, 에렌의 후계자 중 가장 강력한 세를 지닌 대공자의 부인.

로라스에게 명령을 받을 때 놀랐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설마 그녀마저 제거하라고 할 줄은 몰랐으니까.

여하간 네라페의 제거는 그냥 가서 죽이고 나오면 될 일이 아니었다.

삼엄한 경계에 그녀에게 접근하기도 힘들뿐더러, 접근해도 그녀를 지키는 호위 기사들도 처리해야 했다.

사람을 사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성내 사람을 포섭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하늘을 날고, 포스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가 아닌 이상,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살아 나오려면 말이다.

그런 어쌔신도 있지 않겠냐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영지 기사나 왕실 기사로 살지, 굳이 어쌔신이 될 필요가 있을까?

여하간 쥬시스는 지난한 이 과정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어제 여태 해 왔던 그 과정들을 붕괴시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전부 처음부터 해야 해!”

쥬시스의 목소리엔 짜증을 넘어 분노까지 어렸다.

당연했다. 돈은 둘째 치고 일 년 이상을 준비해 온 것들이 날아갔으니 말이다.

“그 일이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

쥬시스의 남편으로 위장하고 있는 판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카르이샤 백작은…… 로라스가 밀어주던 후계야.”

“응?”

“로라스가 밀어주고 있었다고.”

판드가 다시 한 번 내용을 반복하자, 쥬시스는 미간을 잔득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지금 우리 일하고 상관 있어?”

“있지. 카르이샤 백작이 암살을 당한 이상, 에렌의 모든 판이 바뀔 테니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뭐?”

“로라스가 에렌으로 와야 한다는 거지.”

“백작님이 이쪽으로는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수하와 친구의 차이 때문일까?

판드가 보는 걸 쥬시스는 보지 못했다.

“로라스는 에렌의 권력에 관심이 없지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밀어줄 사람을 정했지. 근데 당사자가 죽었잖아.”

판드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휴! 게다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대공자 디존슨 백작의 세력은 더 커지겠지. 그럼 막을 세력이 사라져. 그리고 그는 로라스를 싫어하지.”

“와카디아가 위험해진다?”

“그냥 있지는 않을 테니까. 로라스가 와야 할 테고. 일단 이 사실부터 전달해야 해. 고스트는 아직 모르지?”

“그쪽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판드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전쟁이 벌어지겠군. 베스타인 공작도 없는 이 상황이라면. 그렇게 될 거야.”

* * *

일곱 개의 의자가 있는 장소.

그곳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얼굴 곳곳에 자글자글한 주름살, 그에 걸맞은 긴 수염,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금빛이 치렁치렁한 장신구가 장식된 옷을 입은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빈자리가 없군요.”

작은 키, 하지만 체구는 지나치게 거대한 사내가 말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 아닙니까? 늘 한두 자리는 빠져 있었는데.”

“잘되지 않았습니까? 오베른 제국의 침략 전쟁으로 할 일도 많은데.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을 협조하여 이득을 취해야지요.”

칠 인의 좌 중 유일한 여자인 템테이션이 입을 열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러고는 동시에 한 사람을 쳐다봤다.

모임은 순서대로 주최자를 정했고, 이번 모임의 주최자는 모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캐슬.

캐슬은 좌중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일단 각자 모아 주신 정보부터 확인했습니다. 제가 정리를 좀 했으니 앞에 놓인 걸 보고 이야기하시지요.”

칠 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몇 장의 종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의 내용. 하지만 사람들은 신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몇 장의 보고서는 그냥 보고서가 아니다.

모인 모두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공유한 보고서다. 사실 이 종이 몇 장이 모임의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잠시 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무리하는군요.”

“멍청한 게 아니라면, 그가 루니 백작의 야심을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멍청해 보이지만 멍청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권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무척 저급한 것뿐이지.”

“제 새끼가 아닌 남의 새끼를 키우는 놈이 아닙니까?”

“그 네 번째 아들을 귀애한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실권을 가진 뭣도 주지 않았어요. 자신의 근위병을 보내 호위까지 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세력 자체를 형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거 아니겠습니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화들.

“그럼 이 무리한 침략은…….”

“루니 백작의 세를 깎아 내려는 속셈일 겁니다.”

“멍청한 방법이군요. 그 한 놈 때문에 전력을 얼마나 깎아 먹는 건지 모르나 봅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는 캐슬이 입을 열었다.

“믿고 있는 구석이 있으니까요. 전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순간 정적이라는 놈이 공간을 장악했다.

“다들 왜 갑자기 조용해지십니까? 베스타인 공작이 그리도 무섭습니까?”

캐슬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셨음에도 그리 조심스럽습니까?”

“조심스러워야지. 아니 두려워해야지. 그는 유일한 초월자야.”

“조심하게, 캐슬좌. 그는 개인으로도 세력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이니.”

사람들의 말에 캐슬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 두려워하면서도 에렌에는 모두 한 발자국 걸치신 겁니까?”

“그거야 해야 하는 부분이니. 그래서 극도로 조심히 진행하고 있다네.”

“일단 약화시켜야 하니까. 그래야 세계를 우리 손에 넣을 수 있어.”

사람들의 말에 캐슬은 웃음을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맞습니다. 장애물은 치워야지요. 그나저나 이상한 게이트와 던전의 출현 때문에 사업에 지장이 많지 않으십니까?”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지.”

“타격은 우리만 받는 게 아니라 더 혼란이야. 전쟁 중에 몬스터들에게까지 신경 써야 하니.”

“단순한 몬스터 수준은 넘었지. 모니모스 왕국은 제국과 전쟁을 하기도 전에 그 몬스터에 부대 절반이 날아갔다고 하더구먼.”

“덕분에 마법사, 용병 들의 몸값이 폭등하고 있지.”

수염 노인이 카벨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켄트라미우스좌는 요새 매우 바쁘시겠습니다.”

켄트라미우스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카벨로는 표정이 굳었다.

부러워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모호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요새 자신과 용병단의 몸값은 그 어느 때보다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몇 개의 용병단을 흡수할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조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몇 년 전 자신을 휘청이게 만든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델리나, 그 건방진 년!’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순간 카벨로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찾으며 입을 열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지요. 상부상조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거 든든합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소수 정예도 좋지만, 세도 필요하다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느덧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다시 회의가 진행되었다.

수염 노인이 계속 말했다.

“황제는 베스타인 공작을 믿고 있겠지만, 이미 물 건너갔어요. 원래 전쟁을 반대했었는데 게이트까지 터졌으니 관심 밖의 일일 겁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도 북부가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고 있을 터. 이러다가 황제가 바뀌는 거 아닙니까?”

칠 인 중 유일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닐 거예요.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뒤집어엎을 수 있을 터. 전대 황제와의 인연 때문에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제국이라는 먹잇감을 어떻게 뜯어먹을지, 그리고 게이트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어찌 극대화시킬지에 대한 논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후 캐슬을 제외한 모두가 떠났다.

“으음!”

그는 나직이 신음을 내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귀찮게.’

게이트와 던전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 모르고 있겠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한가롭게 이렇게 희희덕거리며 이야기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세계란 말이지.’

캐슬은 히죽 웃었다.

* * *

“번천! 번천!”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번천과 첫 번째 창이라 이름 붙은 부대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우아아아아아!”

곧이어 들리는 환호성.

그 속에서 까미유 형제의 이름도 불리고 있었다.

“까미유 님!”

“까메유 님 여기 좀 봐 주세요!”

물론 그들을 부르는 사람들은 번천과는 달랐고 의미도 살짝 달랐지만, 중요한 건 그들도 당당히 어깨를 펼 자격이 있다는 것.

몬스터 잔당 소탕과 이민족의 반란 진압은 정규병이 아닌 대부분 독립부대들이 전투를 수행해 왔다.

로라스가 전략적으로 만든 번천의 퍼스트 스피어. 그리고 까미유, 까메유 형제를 중심으로 한 로스트 칠드런. 마지막으로 엔케이 부대.

이 세 개의 부대는 락의 의도하에 와카디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다녀왔습니다.”

번천을 비롯한 각 부대의 수장들이 에듀에게 보고를 마친 후 로라스에게 몰려왔다.

“모두들 수고 많이 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로라스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뿌려 두었던 씨앗들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그간 정신없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리 보니 새삼 그간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수하들의 전공을 실컷 축하해 주고, 같이 기뻐할 때였다.

“백작님.”

축하 인파 사이에서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서너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낯이 익은 사내. 고스트의 사람 중 하나다.

다시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로라스는 종이를 폈다.

내용을 확인하는 로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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