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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20화 (22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20)

군의 사기가 마냥 좋다고만 여겼었다. 그래서 충격이 컸다.

하지만 대화를 해 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서로 가진 사고의 차이는 시야에서 나온다.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병사들을 정병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이후를 대비하고 싶다.

하지만 병사 입장은 다르다.

별거 아닌 보급품 하나에 열을 내고, 전방보단 후방이 좋은 거고, 전공이고 나발이고 살아 있는 것이 최우선이다.

물론 락의 원주민들은 전투와 죽음에 익숙하여 다른 일반병들과는 좀 다르지만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그도 이제 자신의 병사를 거느린 지휘관.

‘그러고 보니 규모가 커져서 그런지 옛날처럼 소통하는 분위기는 아니겠구나.’

달라지긴 했다.

지금이야 와카디아 지방 자체가 락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옛날 락이 락만이었던 시절. 싸울 수 있는 사내 전부를 모아도 이백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절엔, 싸울 일이 있으면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 공유했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자신들의 영주는 그렇게 확고하게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선봉에 섬으로 자신을 따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규모 자체가 다르다.

에듀 영주는 이백여 명이 아닌 삼천, 와카디아 전역으로 봐서는 일만에 가까운 병력의 수장.

옛 방식대로 이끌 수는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테라는 그리 생각하며 굳었던 표정을 풀고 말했다.

“더 안타까운 일은 생기지 말아야지요. 적은 위험부담으로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입니다.”

“…….”

“영주님도, 소영주님도 이 선택에 괴로워하십니다. 싫지만 해야 하는 일. 이렇게 이해해 주세요.”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 그 두 분만큼 우리를 생각하는 분들이 어디 있다고.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전쟁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전리품도 상당하니 좋은 것만 생각하세요.”

“그래야지. 그나저나 이제 높은 사람 티가 확확 나는데? 이리 말할 줄도 알고.”

“흐흐흐. 그래 봤자 아저씨들에게는 천방지축 테라일 뿐이지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테라는 대화를 끝내고 걸음을 옮겼다.

‘아니라고 해도 모두 많이 지친 거지.’

약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옛날에 비해 많이 감성적으로 변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곧 부대의 사기에 영향을 끼친다.

‘이건 말씀드려야 할 일이다.’

에듀와 로라스 두 사람 모두 영지민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라 하나, 사람들이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역할은 그런 병사들의 진심을 지휘부로 전달하고, 또 반대로 지휘부의 진심을 병사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테라는 그렇게 부대 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 * *

“흐엇!”

율라크는 올해 서른두 살의 중급 지휘관이다.

락이 발전하고 규모에 비해 많은 군을 보유하고 있으나, 아직은 한 개 군단급이 안 된다.

그래서인지 군 체계는 매우 간략했다.

병사 십여 명을 통솔하는 초급 지휘관. 오십여 명을 통솔할 수 있는 중급 지휘관. 그리고 백 명을 통솔하는 고급 지휘관.

대부분의 간부는 여기에 속하고, 기타 몇 명은 그 숫자에 제약이 없다. 예를 들면 시그탑의 기사단이나, 엔케이의 레인저 부대처럼 말이다.

여하간 율라크는 나이에 비해 승진이 매우 빨랐다.

‘사실 과분한 거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위에 과분함을 느꼈다.

고작 오십여 명을 이끄는 지휘관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다른 지휘관들의 실력을 생각하면 분명 자신은 부족함이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적게는 십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을 헌터와 자경대원 등으로 지내며 ‘목숨 서너 번쯤은 잃을 뻔했다!’라는 무용담을 지니고 있는 원주민들.

실제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전투에서 자신은 원주민 지휘관들을 이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겠는가?

다른 지휘관들은 대부분 적게라도 포스를 가지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율라크가 중급 지휘관까지 올라온 건, 남들보다 전략, 전술 이해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의 전투에서는 그의 소대가 승률이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야망이 있는 편이기도 했다.

‘모자란 건 배우고, 노력하고, 나은 건 더 발전시키면 된다. 그래서 난 그들보다 더 빠르게 승진할 것이다.

군인으로서 신분 상승을 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지 않는가!’

군의 전략 전술은 물론이고, 인간의 심리에 대한 공부도 했던 그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가 남이냐는 모호한 개념을 거부했고, 내가 희생해야 전우 여럿이 살아남는다는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다른 소대는 몰라도 자신의 소대는 말이다.

‘한 만큼. 공을 세운 만큼.’

실제로 다른 소대는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지만, 자신의 소대는 전공의 비율에 따라 나누고 있었다.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잘 이해시키는 것이 자신의 능력. 그리고 그걸 잘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고 말이다.

“모두들 단단히 들어.”

율라크는 간부 회의가 끝난 후 소대원들을 집합시키며 말했다.

“내일 최종 결전이다. 지긋지긋한 전투도 이제 끝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율라크는 말을 이었다.

“내일은 그날만 있다는 생각으로?? 싸우는 거야. 원래 마지막 전투가 가장 눈에 잘 뜨이는 법이니. 하지만!”

율라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흥분은 하지 마. 전공보다 중요한 게 목숨이야. 여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소대는 가장 적은 피해를 보고, 가장 많은 전공을 세울 거다. 내 목소리에 집중해. 알았지?”

“네, 대장!”

율라크를 보는 소대원들의 눈에는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가득했다.

처음 율라크의 지휘에 당황한 적도 있다.

원래 전쟁에 전우애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전우를 믿지 못하면 애초에 전투는 불가능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율라크의 지휘 방식은 잘못된 거였다. 그는 이기심을 강요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소대는 다른 소대에 비해 가장 손실률이 적었다. 사망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부상자 역시 극히 적었다.

자신이 맡은 임무만 확실히 해내면 결과가 늘 좋았던 것이다.

솔직히 율라크의 지휘는 좋게 말하면 현명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얌체 같았다. 이게 타 소대에서도 아무 말 못 하는 게, 분명 자신의 소대가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잡는 능력? 한곳을 몰아붙이는 집중력?

율라크는 그렇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지휘관.

“이기지 못하는 장소, 죽을 것 같은 장소로 너희들을 몰아넣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에도 믿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에 만족한 듯 율라크는 말했다.

“푹 자라. 오늘 첫 경계는 내가 직접 설 테니.”

“오오오. 우리 대장 멋지다.”

율라크는 피식하고는 손을 휘저으며 병사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할당된 경계 지역으로 움직였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황야에도 달빛은 환했고, 별무리는 여전히 보기 좋았다.

‘조금만 더!’

중급 지휘관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승진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터. 하지만 이번에 영주님이나 브렌드 경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으면, 시간이 흘러 순탄하게 고급 지휘관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이다.

율라크가 그렇게 자신의 야망을 불태울 때였다.

“율라크.”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급히 군례를 올렸다.

“일대 삼소대 율라크.”

“네가 누군지 안다.”

“영광입니다, 번천 경.”

그렇게 다가온 번천을 보며 율라크는 생각했다.

‘번천 경이 왜?’

번천은 기사 작위를 받은 자.

보기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말을 섞는 건 처음이다.

사실 번천의 부대 내 위치는 애매했다.

부대를 따로 통솔하는 것도 아니며, 소영주의 곁에 붙어 있는 호위 기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군부의 실세 중 하나라는 뜻이다.

락의 삼대기사에서 이제 번천과 테라를 포함한 오대기사라는 말을 더 사용할 정도로 말이다.

“일대 삼소대 율라크!”

“명령을 기다립니다.”

“귀관 이하 부대원들은 퍼스트 스피어 부대에 편입되었다.”

“퍼스트 스피어요?”

괜한 반문이었을까?

자신을 노려보듯 하는 번천을 보며 율라크는 어깨를 움츠렸다.

“앞으로 큰 전투에서 가장 먼저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부대다!”

다행히 화가 났다기보다, 위엄을 주고 싶었나 보다.

엄하지만 감정은 없는 목소리에 율라크는 말했다.

“선봉에 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선봉 부대가 아니다.”

“네?”

“선봉대가 무조건 먼저 타격을 주는 건 아니지 않나?”

알쏭달쏭한 말.

하지만 분위기상 율라크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을라나?’

번천은 그런 율라크를 보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율라크?”

그래도 오리시암의 추천이라면 자신이 알 만한 이름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중급 지휘관인데, 제가 가장 눈여겨보던 자입니다.”

“어떤 자인데?”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오리시암은 할 말을 생각하는 듯 잠시 여운을 주었다가 말했다.

“눈 좋은 사람들. 어디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고, 어디로 가야 적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들 말입니다.”

“당신 같은?”

번천의 물음에 오리시암이 피식하며 말했다.

“다른 종류죠. 전 사람을 파악하지만, 그는 공간을 파악한다고 할까? 여하간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원래 제가 데려오려고 했는데.”

오리시암은 번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번천 경과 한배를 탔으니.”

번천은 오리시암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사람을 파악하는 건 귀재이니까.’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서서 잔뜩 긴장한 율라크를 쳐다봤다.

‘믿음은 좀 안 가지만.’

그때 율라크가 번천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그보다 먼저 들어가도 되겠냐? 넌 여태 단 한 번도 앞에 선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율라크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장님이 계시니까요. 다만 너무 앞장서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좋아. 널 믿기로 했으니 따라야지.”

번천은 기지개를 펴듯 두 팔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안장에서 보기만 해도 눌릴 듯한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렸다.

케케케케케케.

상당한 거리임에도 몬스터들이 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소년의 체격에 머리는 개의 형상을 한 기이한 몬스터들. 놈들이 내는 소리에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을 때였다.

“두려워 말라!”

천둥 같은 번천의 목소리.

“내가 쓸어버릴 것이고, 길을 열 것이다. 그리고 뒤에는 저놈들보다 훨씬 강한 아군이 있다.”

“우아아아아!”

“어차피 이길 전투, 선두에 서서 전공을 챙기는 것뿐이다. 모두 죽지 말라!”

“우아아아아아아아!”

부대원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가자!”

번천의 퍼스트 스피어 부대는, 말 그대로 창이 되어 그대로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우아아아아!”

케케케케케!

마치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쪽이 이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물도 소리를 질러 댔다.

“저 게이트까지 멈추지 않는다!”

번천이 가장 먼저 몬스터 떼에 도착하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거대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

그의 검은 파공음과 더불어 대검만큼이나 거대한 화염이 타오르는 소리가 울렸다.

번천은 포스 마스터이며 마나 유저.

자신의 검에 화염 속성을 부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케케케케케!

그 덕분인지 홀로 몬스터 떼 속으로 들어가도, 감히 그의 곁에 접근하는 몬스터들이 없었다.

번천은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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