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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18화 (21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8)

드리블은 두 개의 검을 수평으로 만든 채 좌우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그러자 앞부분에 있던 몬스터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드리블은 락의 삼대기사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건 시그탑과 브렌드에 비교한 상대적인 평가일 뿐.

드리블 스스로의 무력은 숙련된 포스 유저다.

이런 소형 마물 따위는 무구만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단숨에 몬스터들의 앞 열을 무너트린 드리블은 곧바로 검면으로 팔뚝을 훑어 내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녹색 액체를 거둬 내기 위해서였다.

“하앗!”

그리고 곧바로 다가오는 2열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시간을 벌고 나자 뒤에서 군사들이 그제야 대열을 수습했다.

‘야단났구나!’

대열을 수습했지만, 드리블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몬스터들 넘어 새로운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숫자가 지금 싸우고 있는 몬스터들의 규모와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더 늦기 전에!’

몸을 빼내야 했다. 싸우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스물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거 가볍게 왔다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빠져나가려면 자신이 직접 적의 기세를 죽이고 시간을 벌어야 할 터.

드리블은 몰려오는 몬스터를 보면서 검병을 움켜잡으며 생각했다.

‘그냥 시그탑이나 브렌드에게 맡겼어야 했는데. 괜히 안 하던 짓을 하니 이렇게 되는 거지.’

예전에는 분명 자신도 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서로 절차탁마를 해 온 관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처리하는 영역이 달라지고, 락이 거대화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무인으로서의 열정은 남아 있긴 했으나, 행정 업무를 봐야 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악착같이 수련하여 포스 유저를 만들었지만, 시그탑과 브렌드와의 격차는 이미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나도 기사라고, 무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인가?

락에서 출발한 원정대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토벌대를 꾸려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드리블이 그렇게 비장미를 물씬 풍길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새롭게 증원된 몬스터 무리 사이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케케케케케.

꽤 먼 거리였지만 놈들의 비명이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계속되는 폭음은 몬스터들의 비명을 덮어 버렸고.

“마법사! 마법사님이시다!”

“에르자일 님이시야! 우린 살았다!”

병사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치솟았고, 그 덕분인지 빠르게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갔다.

“우아아아아!”

병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고, 그런 그들을 향해 에르자일이 나무 높이까지 몸을 띄운 채 다가왔다.

홀로 이백에 가까운 몬스터들을 단숨에 처리한 마법사.

‘비행 마법까지 저리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가.’

드리블이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그녀는 그의 앞에 착지했다.

“드리블 경, 괜찮으세요?”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매지스터.”

“당연한 일이었는걸요.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에르자일은 그리 대답하고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이 지역에 이런 놈들이 개미 떼만큼 많아요. 철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소영주께서도 같이 오신 겁니까?”

“네. 예상보다 몬스터들의 규모가 커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찰을 겸해 먼저 왔고요.”

“호위 없이 위험합니다, 매지스터.”

“다행히 원거리형 몬스터들은 아니니까요.”

편안한 표정의 에르자일을 보며 드리블은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게 고위 마법사란 존재지.’

고위 마법사의 무서움은 바로 이런 전투에서 더 빛을 발한다. 몬스터 입장에서는 그녀를 견제할 수단이 없으니, 지금 숫자보다 수배가 더 많더라도 필패일 터.

“그래도 언제 다른 놈들이 나올지 모릅니다. 보중하셔야지요.”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다 드리블 경 덕분이지요.”

“하하하. 너무 옛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도 제가 뭘 도움을 드린 것도 없는데.”

“옆에서 이것저것 알려 주신 분이니까요.”

드리블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일단 정리를 하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매지스터께서는 같이 움직이실 건가요?”

“너무 많이 날아와서 힘이 들기도 하네요. 어차피 원정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며칠 동안 드리블 경과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천군만군을 얻은 것 같습니다.”

드리블은 후퇴와 수비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어 안심하며 철수를 준비했다.

* * *

“대체 어디서 흘러들어 온 것인지…….”

에듀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턱 끝을 긁었다. 그러고는 로라스를 보며 물었다.

“이 정도면 어디선가 게이트가 열렸다고 봐야겠지?”

“우리 와카디아 지역은 아닙니다. 외부입니다.”

“하늘 산맥과 메타린 평야의 게이트 쪽 몬스터들은 우리가 대부분 정리하지 않았느냐? 다른 외부 지역은…….”

순간 에듀의 표정이 굳었다.

이 상황에서 와카디아 지역의 외부라 표현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두 군데.

동북부 이민족의 영지. 그리고!

“에렌이 그냥 두고 봤을 리 없다.”

에듀의 음정이 높아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하지만 로라스는 에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게이트 출현 이후로 할아버지가 에렌을 비우셨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에렌의 정규병들은 제국의 최고. 그리고 독립부대만 해도 열 개가 넘어간다. 그들 모두 최정예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고.”

에듀의 부정에도 로라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아무리 거함이라도, 키를 잡은 선장의 실수 한 번에 그 배는 침몰할 수 있는 법. 무능한 지휘관에게 최정예 병력이 무슨 소용이던가.’

로라스의 추측은 이랬다.

와카디아와 에렌을 연결하는 지역 사이에 게이트가 생겼고, 그게 아직도 처리가 안 됐다는 것.

‘정보가 너무 없어!’

게이트 안에서 보낸 1년의 공백.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알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다.

로라스는 에듀를 보며 말했다.

“저도 심각하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염두에는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선 그걸 처리해야겠군.”

“가 보면 확실해질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또 분주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에듀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분주할 것도 없다. 일단 우리 영지부터 정리하고 나중을 생각하자꾸나.”

“네, 아버님.”

그렇게 두 부자가 원정대의 방향을 잡고 나서야 회의가 끝났다.

로라스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설사 게이트가 있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시간이 아쉽군.’

정말 게이트가 생겼다면 핵을 파괴하면 될 일. 다만 내정에 힘쓰고자 마음먹었는데 여기에 시간을 뺏기는 것이 아까울 뿐이었다.

‘아닌가?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생각해 보니 그랬다.

현재 와카디아는 제국에서도 가장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영지.

아직 사람이 살기 가장 좋은 곳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가장 잘 살 수 있는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자리는 많고, 세금은 그 어떤 곳보다 적다.

사람이 부족한 곳이라 오히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그게 와카디아이고 락이다.

‘다른 곳도 상당한 혼란이 있을 터. 마물들이 늘어나면 반드시 피난민도 늘어나고,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지역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이 마물들의 소란은 어쩌면 영지를 번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

그러다 로라스는 번뜩 깨닫는 게 있었다.

확장은 충분했고, 내정에 신경 쓴다고 했는데 또 이득을 취하려고 뭔가 계획을 세우려 한 것이다.

‘반노환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거였나?’

게다가 영지는 발전할지 모르지만, 마물 때문에 고통당할 사람을 간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었을지도.’

여하간 앞으로 갈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사람이 우선이다. 그건 잊지 말자.’

로라스는 그리 우선순위를 정했다.

* * *

흔들리는 촛불을 멍하게 쳐다보던 츠어질.

그러다 두 눈을 깜빡이던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하는 거지?’

츠어질은 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와카디아에서 쌓아 올렸던 교단의 세가 모래성 무너지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신도들도 어느새 해피랜드의 예배당이 아닌 에펠리온의 예배당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멍하니 이곳에 처박혀서 뭘 하고 있느냔 말이다.

‘아델리나!’

그러다 대륙에 가장 많은 신도들을 보유한 에펠리온의 교황이라고는 믿기 힘든 나이, 외모를 지닌 그녀를 떠 올리는 순간 그의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부르르르르르.

그리고 다시 몸을 떨었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깨닫는 순간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설마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인형술사인가?’

그리고 그 위기감이 합리적인 의심까지 번지는 순간.

“……!”

츠어질은 자신에게 걸린 저주? 주술? 흑마법? 인형술? 그게 뭐가 됐든 속박을 깨트릴 수 있었다.

‘아…… 이게…….’

그리고 극심한 공포심이 몰려들었다.

평생 사람들을 말 잘 듣는 인형으로 만들어 왔던 삶.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그런 삶을 경험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육십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버려진 던전에서 얻은 우연한 수정.

그 수정은 흑마법으로 구분된 인형술을 자신에게 전수했고,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은 바뀌었다.

기득권자들에게 조종당하다가, 조종하는 자로.

그동안 자신과 같은 능력자를 보지 못했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데.

‘있었다! 있었던 거야! 바로 그녀가!’

이해되었다.

그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실제로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어찌 에펠리온의 교황이 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자신이 그녀를 인형으로 만들어 에펠리온 교단을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그녀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먹힐 뻔했지!’

츠어질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다른 능력은 모르나 인형술 또는 그에 준하는 능력은 자신보다 한 수, 어쩌면 두 수 위.

‘정보가 얼마나 빠져나갔을까?’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지식은 그녀의 지식이 되었을 것이다.

와카디아 이외의 지역에서 해피랜드의 세력, 재물을 모아 둔 위치까지.

‘설마…… 칠 인의 좌까지 알았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여기서 쌓은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아쉽지만.’

츠어질은 똑똑한 사람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

탈출해야 했다.

아델리나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와 대항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는 것과 다름없다.

오히려 상황을 자각하여 인형 노릇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찾는 건, 그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안 이후다.’

그리고 그렇게 복수를 할 때, 빼앗긴 것의 수백 배의 이자를 돌려받을 것이다.

에펠리온 교단으로 말이다.

‘이만한 프로젝트면 칠 인의 좌, 다른 사람들도 협조할 터.’

이 탐스러운 먹잇감을 놓칠 사람들이 아니다.

“후우우우!”

츠어질은 길게 호흡을 내며 공포심을 가라앉혔다.

일단은 탈출이 우선이다.

츠어질은 움직였다.

…….

그가 사라진 공간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움직였습니다.”

에펠리온의 성기사단장 온스의 말에 아델리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능력은 출중해. 깨어나려면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놓아준 게 잘한 걸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이야기의 끝을 알려면 풀어 줘야죠.”

아델리나는 온스를 보며 명령했다.

“추적하세요.”

“그러다 정말 잡히면…….”

“능력으로 보아 그렇게 되진 않을 겁니다. 전력으로 잡으려 해야 의심하지 않을 터.”

“네, 알겠습니다.”

온스가 나가고, 아델리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쓸모가 많은 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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