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7)
지휘관이 사병에게 거래를 한다?
귀족이 평민, 그것도 고아들과 거래를 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그만큼 형제는 마음이 급했다.
로라스가 정식으로 맡긴 임무였다. 반드시 완벽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해내고 싶었다.
효과는 있었다.
다행히 일대일로는 형제들이 그들보다 우위에 있었다. 게다가 전략, 전술에 관해서는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티 나지 않게 따르게 만들었다.
문제는 몸에 골병이 든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전자는 꼭 나왔으며, 서로 뭔 연습을 하는지 날이 갈수록 상대하기가 버거워졌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각오를 가져야 했으니, 멘탈마저 흔들릴 지경이었다.
―너희들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더욱 커질 것이고 그럴수록 내가 무조건 믿는 전투단이 필요하다. 그걸 너희들이 만들어 줬으면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해낸다면 그만한 보상을 받을 거야.
주군은 입에 발린 말이라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만한 보상이라고 했으니, 성공만 한다면 자신들의 가문을 일으키는 건 일도 아닐 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까미유가 입을 열었다.
“사흘 후 우리는 새로운 원정대에 합류한다.”
“…….”
“원정대의 목적은 몬스터 토벌이다. 모두 알다시피 여러 지역에서 몬스터들의 출현이 잦아졌다. 그것들을 토벌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까메유가 말을 받았다.
“여전히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의 잡음도 없이 진행돼야 한다.”
“…….”
“이유는 이번 원정대의 대장이 로라스 백작님. 너희가, 우리가 모시는 주군이시기 때문이다.”
무표정하던 청년들. 자칭 로스트 칠드런이라 이름 붙인 청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까미유가 말했다.
“첫 실전이지?”
까메유가 말을 받았다.
“토벌대에도 참전시키지 않을 정도로 주군께서는 너희들을 아끼셨다. 완성되지 않은 너희들이 다치기라도 하실까 염려하신 거지.”
침묵하던 로스트 칠드런 중 대장 격인 로아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명령에 충실히 따를 것이고, 주군을 위해서라면 사지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조금의 망설임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우린 배에 기름 진 귀족들이 아니다. 그건 너희들도 잘 알 터. 그리고 우린 이미 주군을 따라 전쟁도 경험했다.”
까미유의 말에 로아가 물었다.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언제 명령을 거부한 적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적 없지.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한 부대라고 생각하나?”
까미유 형제는 오늘 어떻게든 그들과의 간격을 좁혀 보리라 마음먹었다.
분명 자신의 부대는 잘 싸울 것이다.
특히 소규모 전투에서는 시그탑의 기사단과도 한번 겨뤄 볼 만한 전력이다. 하지만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여력이 분명 있었다.
로스트 칠드런이 진심으로 자신들을 믿고 따른다면 말이다.
그렇게 까미유 형제와 로스트 칠드런 사이에 미묘한 침묵이 흐를 때였다.
“형편없군.”
냉랭하기 짝이 없는 음성.
“주군.”
형제는 물론이고 로스트 칠드런들도 일제히 소리를 내며 군례를 올렸다.
“너희는 나를 그리 부를 자격이 없다!”
로라스는 싸늘한 표정으로 로스트 칠드런을 봤다.
“너희들이 원해서 이곳에 왔고, 군부에 입부했다.”
“…….”
“어떤 군대의 병사들이 간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가.”
로아가 황급히 대답했다.
“주군, 그런 적 없습니다.”
“너희에게 그렇게 부를 자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했다.”
로아는 물론이고 다른 청년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었다.
“몸만 컸지 치기는 하나도 버리지 못했군.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었다 생각하나? 고스트에서도 교관들에게 이따위로 행동했나?”
“저희는 그런 적이…….”
“내 직접 보고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답할 생각이냐, 로아!”
로아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입을 열지 못했다.
명령 불복종을 하지 않았지만 까미유, 까메유 형제를 지휘관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까미유. 까메유.”
“네, 주군.”
형제가 앞으로 나서며 굳은 자세로 소리쳤다.
“너희들의 통솔 능력을 높게 샀다. 너희는 내게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 봤던 거였군.”
“…….”
“난 너희들을 지휘관으로 임명했지, 보모의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로라스는 다시 로스트 칠드런을 보며 말했다.
“내 너희들의 그 로스트 칠드런이라는 하찮은 이름이 탐탁지 않았는데. 이름 참 지었어. 그 부대명이 딱이야.”
“…….”
“날 믿지 못하는 너희들을 내 그늘에 받아들인 내 잘못이겠지.”
“아닙니다. 어찌 저희가.”
“너희들의 지휘관은 내가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따르지 않았으면 날 믿지 못한 거 아닌가!”
로스트 칠드런은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과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기 시작했다.
“에렌으로 돌아가라. 여기에 너희들의 자리는 없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표정 그리고 싸늘한 음성에 그들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저희…… 저희! 병력입니다.”
주저하면서도 이내 단호하게 외치는 까미유.
“수하의 무능력은 지휘관의 책임.”
이어 까메유가 말을 받았다.
“저희의 책임이니 저희도 지위를 내려놓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되돌아와 저희의 능력을 다시 검증받겠습니다.”
까미유 형제의 발언에 부대원들의 눈빛이 떨렸다. 설마 이렇게 막아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긴장과 함께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참의 침묵을 깨고 로라스가 입을 열었다.
“사흘 후 출발이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선봉에 설 것이며, 지금 한 말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증명하겠습니다.”
까미유 형제가 동시에 대답하고, 로라스는 미련 없이 신형을 돌렸다.
까메유는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우린 이제 한배를 탔다. 그리고 선장은 우리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다시 이야기하자.”
로스트 칠드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날 밤.
“면목 없습니다, 주군.”
까미유 형제는 로라스의 부름에 그에게 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하지만…….
“뭘 그리 정색을 해?”
실망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라스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너희들을 질책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오히려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문제지.”
“주군!”
형제가 동시에 대답하는 걸 보며 로라스는 말했다.
“진작 이야기했어야 했어.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물이 넘었다 하지만, 평생 무관에서 수련만 한 아이들이야. 그걸 감안치 못한 건 내 실수였다.”
“…….”
“미리 내가 그 아이들을 다독여 줬거나, 아니면 너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아닙니다. 지휘관은 저희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단생활을 한 아이들이야. 그들 사이에 계급도 형성되었을 거야. 자네들도 군에 대해서 알지 않나. 병들이 군대는 소위 말하는 군대 밥 많이 먹은 놈이 위라고 생각하는 거.”
로라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뭐,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 어리바리한 신병도 전쟁 서너 번 겪으면 빠릿빠릿해지는 법이니까.”
형제는 당황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런 건 병들 사이에서 통하는 것. 간부들은 아니다. 특히 로라스처럼 계급의 최상위층의 인사가 말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레 또 그것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로라스가 낯설었다.
“말 그대로 치기 어린 아이들이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다만 오늘은 내가 실수했기에 연극까지 하면서 너희를 도왔지만 두 번은 없을 것이다.”
“주군…….”
“이유야 어찌 됐든 분명 지휘관은 너희들이니까. 잘 할 거라 믿는다. 아까 연병장에서 보여 줬던 너희들의 반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형제는 오늘 로라스의 방문이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계획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원하는 걸 보게 되실 겁니다.”
형제들은 큰 소리를 내며 군례를 올렸다. 그런 그들에게 사뭇 비장미까지 본 로라스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디 죽으러 가나? 이번 전투는 실전이면서 훈련일 뿐이다. 그런 비장한 모습은 정말 필요할 때 보이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만 가 봐. 그리고 집사에게 술과 고기를 준비시켜 놨다. 가면서 찾아가고.”
“감사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가. 그냥 먹이고 어울려. 경계심은 많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누구보다 너희들의 사람이 될 아이들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형제를 보낸 후 로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번천 때도 그랬지만, 오리시암이 정말 이런 건 잘 파악하고 있단 말이지.’
사실 그들이 융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쌍둥이 형제들 말입니다. 꽤나 고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리시암이 이리 넌지시 알려 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눈치, 아니 이 정도면 안목이라고 할 만한 능력은 정말 타고난 듯싶다. 원래부터 그런 재능을 높이 샀지만 말이다.
‘당분간은 결속력을 다져야지.’
계속되는 개발, 사업에 락은 정신없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이제는 벌인 일을 조금 더 체계화하고, 맞는 사람들을 찾고, 적응시키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고. 더 이상의 확장은 힘들기만 할 뿐이지.’
락을 키웠던 이유도, 그 누구도 무시 못할 힘을 가지기 위함이었지 않은가?
더 키웠다가는 목적을 벗어난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특히 지금도 은근히 다른 지역에서 견제가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일. 더 크면 시간도 없을 테고. 마물들이나 제어하면서 지내는 거지.’
로라스는 단순히 그리 생각했다. 분명 그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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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캬캬캬캬캬!
“우아아아아!”
족히 삼백은 되어 보일 듯한 몬스터 무리와 백이 채 안 되는 인간들이 한곳에 어울려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드리블은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토벌은 성공적이고, 날뛰던 몬스터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이 줄었다.
그래서였다. 소규모 부대로 산을 오른 것은 말이다.
문제가 없었다. 예상대로 몬스터 무리는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틀 전, 놈들을 만난 후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는 모르지만 몬스터들의 숫자는 상당했던 것이다.
“좌측! 좌측 보강하라!”
드리블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결국 자신이 말을 몰고 나갔다.
캬캬캬캬캬캬!
괴성보다는 괴음에 어울리는 울림을 전하는 놈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이족보행형 몬스터들.
덩치는 열댓 살 먹은 아이와 비슷했고, 힘도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끼이이이이!
“찔러. 다가오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간부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약간 늦었다.
놈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녹색 액체가, 물총에서 물 튀어나오듯 쏘아졌다.
“으악!”
“아아악! 살려 줘!”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를 맞은 병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뒤로 빠져!”
“끌어당겨!”
처음에는 저것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대응법을 알았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액체는 위협적이다. 하지만 사정거리는 지극히 짧아 병사들이 창을 길게 뻗은 것보다 짧다.
“닦아 내!”
그리고 그 액체는 부식성을 가졌지만, 빨리 처치만 하면 화상 자국처럼 흉터만 남을 뿐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크으윽!”
문제는 닿았을 때 그 고통이 불에 타는 듯 심했고, 바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불구가 된다는 것.
“하아앗!”
대열이 허물어져 가는 그 공간에 드리블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