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5)
그 순간 마약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서였는지, 아니면 츠어질의 인형술에 저항해서인지 메어리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아델리나는 쓰러지는 그녀를 붙잡아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츠어질에게 말했다.
“의외야. 좋은 거 배웠어.”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츠어질이 애써 당황함을 숨기며 묻는 말에, 아델리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답했다.
“궁금했어. 분명 마나나 신성력은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는지 말이야.”
“…….”
“마법이 있는 세계라 공부 많이 했거든. 내가 모르는 다른 대법이 있는가 해서.”
“대법?”
“여기서는 마인드 매직이라 해야 하나? 여하간 정신을 조종하는 거 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츠어질이 끝까지 시치미를 떼자, 아델리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그렇게 정색을 하는 연기도 괜찮은데? 이미 넌 걸렸다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아델리나는 은색 도구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마약은 예상했는데, 그런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마인드 매직이 가능한 아티팩트는 처음이야. 원래 그쪽 계열의 마법이 마나 소모가 심한데, 마정석 없이 작동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
“게다가 이런 외부적인 환경을 만드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이런 거에 도움을 받다 보면 기술이 더 발전하지 못해. 나쁜 버릇이란 말이지.”
“영리한 년이군.”
모든 게 발각되었다는 생각에 츠어질이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외부적 연출도 내 인형술에는 아주 중요한 요소. 좀 아는 것같이 흉내는 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 이게 인형술이란 건가? 그건 마법이나 신성력과 다른가? 주술적 요소인 거야?”
마치 자신이 학생인 것처럼 신 나게 질문을 던지는 아델리나를 보며, 츠어질은 미간을 찡그렸다.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 했다.
이미 그녀가 교황에 올랐다는 건 확인했다. 그리고 그리될 수 있었다는 건, 그녀의 신성력은 진짜라는 거다.
‘시간을 끌어야 해.’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 장소에 노출된 지 오래되었다.
마약도 그렇고, 최면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는 상당할 것이다.
‘천방지축 같은 년. 그 자만이 널 파멸로 이끌 것이다.’
이해도 한다. 저 나이에 교황에 올랐다면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가졌을 테니까. 하지만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차라리 참고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에펠리온의 힘만으로도 자신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하간 그런 이유로 츠어질은 선생이 되어 충실하게 그녀의 물음에 답변해 줬다.
“인형술을 아는 이는 많지 않지. 이미 명맥이 끊겼다 생각하니까.”
“오! 그런 거였군. 힘의 근원은?”
“포스와 마나 둘 다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마나에서 갈라져 나온 힘이지만…….”
“아! 흑마법의 일종이군. 맞지? 그래서 명맥이 끊겼다는 것일 테고.”
“위대한 마나를 그리 구분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래,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 흑마나라고.”
“아티팩트는? 마약과 결합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건가?”
계속되는 아델리나의 물음.
츠어질은 천천히 그리고 묻지 않은 부분까지 알려 주며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건 자신이니까. 사실 안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건 늘 있는 법.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오랜 문답이 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델리나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어지럽네. 최면이 깰 땐 말짱했었는데.”
그러고는 가슴 쪽에 손을 넣더니 목걸이 펜던트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마약 때문인가? 독에 관한 아티팩트가 효용이 없는 걸 보면 말이지.”
츠어질은 그제야 아델리나가 왜 저리 자신 있게 나왔는지 알았다.
“어린년이 귀한 걸 가지고 있군. 아티팩트라니. 하지만 내가 쓰는 약은 독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지.”
그는 마약에 취해 흔들리기 시작하는 아델리나를 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항마력은 높이 사 주지. 이리 오랜 시간 버티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었으니. 칭찬해 주마.”
딸랑딸랑.
마지막 남은 아티팩트인 방울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고는 쟁반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제 끝내야지. 먹는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이다.”
아델리나는 뭔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은쟁반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츠어질을 똑바로 보는 순간이었다.
“하나 먹어 보자. 내게도 도움이 될지 알아야 할 것이니.”
“그래. 얼른 먹…… 뭐라?”
케이크를 잡은 하얀 손가락. 그리고 자신의 입을 향하는 하얀 손.
“먹어야지. 너는 그리고 네가 만든 해피랜드는 많은 곳에 쓰일 것이다.”
‘이게 아닌데…….’
츠어질은 분명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하얀 손이 다가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먹어.”
츠어질은 그녀의 한마디에 그녀가 내민 케이크를 먹고, 와인을 마셨다.
“시간을 끌면 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
“나도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대법을 적용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이지.”
그녀의 말을 끝으로 츠어질은 정신을 잃었다.
* * *
‘으음. 인형술이라…… 무림에서 잡스러웠던 것들이 써먹었던 강시술과 비슷한 건가?’
하지만 이내 그 두 가지 사이에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차이를 깨달으며 흥미로워했다.
‘뭐, 그 차이점이나 용법에 관해서는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고. 이제 어떻게 요리를 해야 잘했다는 소릴 들을까?’
아델리나의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고, 바로 예배당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그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메어리를 보며 놀라 달려갔다.
“주모!”
“백작 부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테라 경.”
아델리나의 말에도 테라는 두 눈을 치켜뜬 채 쓰러져 있는 츠어질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 목을 바로 잘랐어야 했는데!”
“그럼 문제가 복잡해져요. 그래도 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자. 재판 없이 그를 죽이면 테라 경이라 해도 곤란해지지 않나요?”
아델리나의 말에 테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모두 맞았기 때문이다.
테라는 메어리의 안전을 확인한 후,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자칫하다가 락에 큰 우환을 키울 뻔했는데 이렇게 처리해 주셔서.”
“테라 경이 절 호위하느라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시간이 얼만데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테라는 다시 한 번 경외심을 느꼈다.
해피랜드.
영지로 돌아온 후 이 종교가 락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뿌려 놨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종교가 포교 활동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주관의 일에 관여하고, 군대에도 따로 예배 시간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오리시암과의 대화가 결정적이었다.
오리시암은 자신에게 있어 탐탁지 않은 자.
숨기는 것이 많아 신뢰할 수 없는 자.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가 최소한 락을 그리고 주군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실제로 홀로 해피랜드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츠어질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을 알려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도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츠어질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막은 건 아델리나였다.
―테라 경은 모른 척하세요.
불안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따른 이유는 하나다.
그녀가 에펠리온 교단에서 어찌 교황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바로 옆에서 봤었기 때문이다.
분명 세가 제일 약했음에도 고작 이 년 만에 모든 후계자들을 복종시켰는지 말이다.
‘그나마 내게 진심을 보여 주셨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이제 락에 돌아왔으니 더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당분간은 제가 맡도록 할게요.”
아델리나의 말에 테라가 답했다.
“그럼 이 예배당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까요?”
“그러면 납치다, 감금이다, 잡음이 나와요. 그냥 백작 부인만 데리고 나가세요. 이후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아델리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고, 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다행이야. 성녀님이 주군에게 호감을 가지고 계시는 게.’
그렇지 않았다면, 또 만의 하나 적이라도 됐다면 어찌 됐을 뻔했는가.
테라는 곧 메어리를 업다시피 하여 예배당을 나갔다.
‘행복하셨겠구나.’
그리고 그런 테라를 보며 아델리나는 미소를 지었다.
골치 아플 거라 여겼다. 그리고 우려도 되었다.
종교는 죽음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심취한 자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칠 광을 붙여, 광신도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게다가 츠어질은 흑마법까지 쓰는 자.
종교에 빠지고, 마법까지 걸린 상태에서 메어리는 끝까지 츠어질의 요구를 거부하고 저항했다. 어쩌면 모정母情이 그래서 위대하다고 불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메어리가 로라스에 대해 품은 모정을 확인한 아델리나는 기뻤다.
―가족? 세상을 다 가졌어도 내가 가지지 못했던 거라 그런지, 가끔 그런 거 가지고 싶었다.
사부는 늘 그랬다.
고아 출신의 사부. 그러다 한 여인에게 정을 줬고, 가족을 이루려는 찰나 그녀가 죽었다.
사부의 성격이 포악해지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진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에게만큼은 천하에 다시없을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게 그런 거야.
사부는 그리 자신들에게 가족 비슷한 거라 종종 말해 왔었다.
‘이 생애에서는 지극히 만족하고 계시지요?’
좋은 부모 그리고 충실한 부하들까지.
여기의 삶은 그분이 그토록 원하던 삶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은 그 구성원의 하나가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깔끔하게 처리해야겠지.’
귀찮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간 단축은 엄청 될 것 같았다.
사이비 놈이 그 실력만큼 수단도 있었는지, 제법 자리를 잘 잡아 뒀다.
이제 자신이 할 건 놈들을 지워 내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아델리나는 고개를 돌려 쓰러진 츠어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 참 쓸모가 많구나. 두고두고 써먹어 줄게.”
* * *
아버지와 농담식으로 내기를 했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자신이 우선이라 했고, 난 내가 우선이라 했다.
그리고 필승을 자신했다.
“로라스!”
“어머니.”
달려오는 어머니를 껴안으며, 아버지에게 승리의 미소를 보여 드렸다.
“섭섭하구려.”
아버지가 옆에서 뭐라 말씀하셨지만, 날 꽉 껴안은 팔에 힘만 더 들어갔을 뿐, 어머니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어머니. 연락할 어떤 방법도 없어서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됐다, 됐어. 네가 이리 무사한 것만으로도 난 다 괜찮다.”
어깨가 축축해져 왔다.
“이리 우시면 제가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어머니.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다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럼 이해하실 거예요.”
일 년 만의 귀환.
시간 왜곡이 크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긴 시간은 분명했다. 특히 어머니는 애간장이 다 녹으셨을 터.
불효스럽지만 이리 우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 로라스는 유역후와는 다른 삶을 움켜쥐었다. 내 축축한 어깨가 그 증거다.
‘결국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거늘.’
환생, 전생, 반노환동 따위를 구분하는 건 이제 완전하게 무의미해졌다.
이 축축해진 어깨와 날 꽉 껴안아 생기는 압력.
“들어가요, 어머니. 날이 차갑습니다.”
나의 인생, 미래의 인생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소영주님! 여기요! 여기.”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영주 관저로 돌아갔다.
축제가 아님에도 축제 분위기가 몇 날 며칠을 이어졌고, 아버님은 굳이 그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오히려 영지의 금고를 열어, 축제에 필요한 소비를 활성화했다. 그리고 동시에 논공행상도 열었다.
체감상으로는 서너 달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일 년짜리 토벌전이었다.
또한 이번에 거둬들인 마정석의 양과 질은 기존 토벌전의 열 배 수준.
재정은 충분했으니 많은 이들에게 상이 돌아갔고,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거의 열흘에 가깝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하받고, 축하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고 많았다!”
“백작님!”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건 오리시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