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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13화 (21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3)

많은 시도를 했다.

처음에는 호수 바닥에 집중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한 번 열린 바닥이 두 번 열리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찾고 또 찾았다.

“물을 퍼내자. 그리고 찾아보자.”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자 물을 퍼낼 생각까지 했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 마물의 가죽을 이용해 물통 비슷한 것까지 만들었다.

다행이었다.

그 전에 다시 바닥이 열리지 않았다면 몇 날 며칠을 물을 퍼 댔을 것이다.

“주군!”

물 위로 떠오른 로라스를 보며 번천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그리고 다가가려는 순간, 그의 어깨를 시그탑이 잡았다.

“잠깐.”

“시그탑 님…… 왜?”

“보게.”

번천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 위로 떠오른 로라스가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주군은 앉은 자세 그대로 물 위에 떠올랐다. 말 그대로 떠올랐다.

‘저게 가능한 것인가?’

수면 위에 가부좌를 튼 채로 둥둥 떠 있는 로라스.

“주군.”

번천은 중얼거리며 천천히 로라스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어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광풍이 휘몰아쳤다.

“뭐야!”

“으어어어어!”

갑작스러운 폭음과 광풍.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로라스를 보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번천과 시그탑마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놀랄 것 없다.”

평온한, 아니 뭔가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단 한 사람.

“그대로 있도록. 위협은 되지 않을 터이니.”

라이너는 그리 외치며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었을까?

폭음과 광풍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 로라스가 눈을 떴다.

* * *

풍덩.

눈을 뜨니 쑥 내려가는 감각.

물 위라는 걸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면, 물 밑으로 그대로 가라앉을 뻔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주군!”

가장 먼저 다가온 건 번천이었다.

“주군, 괜찮습니까?”

더듬는 번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멀쩡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눈이 충혈된 것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밑에 공간이 있었다. 다시 열었고. 그뿐이다. 내가 저딴 물에 빠져 죽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냐?”

“그건 아니지만…… 하루나 물속에 계셨습니다. 주군이라도 그럼 죽는 거 아닙니까?”

“사흘도 버틴다.”

“…….”

“원하면 나중에 보여 줄게.”

번천의 어깨를 쓸어 주고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가 놀란 눈이다.

‘놀라게 했군.’

아마 개천지보를 개방하면서 진기가 만들어 낸 풍압에 휘말렸을 터.

“물속에서 뭔가 깨달은 게 있어서 포스가 날뛰었다. 모두 그리 볼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고는 라이너를 봤다.

뭔가 묘한 표정. 굳이 표현을 하자면 오줌 마려운 강아지 같다.

“라이너 백작님.”

“네, 로라스 백작님.”

“길을 찾았습니다. 곧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아아아아!”

라이너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라이너가 다가오며 물었다.

“무엇을 찾으셨습니까?”

“이 길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패턴은 원래 있었던 것이지만 이만큼 설득력 있는 대답도 없다.

‘봤었고, 보인다.’

시선이 절로 호수로 향했다.

수중 던전은 이 게이트의 중심이었으며, 감시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이 게이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모든 길을 외우지 못했지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아니, 낮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사람들이 다 자고 있을 때 번천과 시그탑, 라이너만 불러 이 게이트의 비밀을 알렸다.

“시간 왜곡의 기운이 있지만, 바깥 세계의 게이트가 모두 이 안으로 통합니다.”

모두가 놀란 반응.

당연했다.

바깥 모든 게이트가 이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데, 미친놈이라 오해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어차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 눈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다시 움직였고, 애슬란드의 게이트와 통하는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마다 있는 수많은 동굴 입구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수많은 입구가 같은 대기의 흐름을 보였으나, 그 공간 하나는 다른 어떤 곳보다 더 격렬한 흐름을 보였다.

“확신은 하지만 만의 하나를 위해 여기에서 하루 정도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요. 고난을 같이한 동료였을 뿐.”

그 말에 라이너가 덥석 손을 잡았다. 틀린 말도 아니고, 감동적인 말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로라스 백작님의 말이 맞다면…… 언제든 저의 영지를 방문할 수 있으시겠지요. 꼭 한 번 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용 방법을 몰라 백작님 쪽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라이너의 표정엔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나도 아쉽긴 하다.

여태 상황이 동료로 만들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왜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좋은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면 이 정보를 공유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백작님.”

“조심히. 다시 볼 수 있기를.”

그렇게 라이너 일행을 떠나보내고 약속대로 하루를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원하는 공터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발소리.

그것도 많은 사람이 걷고 있는 소리.

‘혹시?’

발소리는 가까워졌고, 확인할 수 있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날 그렇게 만든 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로라스!”

그 사람은 바로 에르자일이었다.

* * *

겨울 햇살은 눈이 부시는 햇살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가리고, 바깥의 빛에 적응하느라 미간을 찡그려야 했다.

마법으로 만든 빛 그리고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희미한 빛만 있던 공간에 갇혀 있다, 자연스러운 햇살에 사람들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대체 얼마나 갇혀 있었던 것일까?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이런 햇살과 속이 잔뜩 채워질 듯한 청량한 대기에 그동안의 짜증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백작님!”

그런 사람들을 향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백작님, 모습이…….”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이들은 라이너와 그 기사단이 게이트에 진입했을 때, 입구를 지키기 위해 남았던 이들.

“모두가 걱정이 많았습니다. 게이트 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 하셨지만, 일 년 동안 나오질 않으셔서. 이미 본국에서는 제이차 토벌대가 구조에 나서려 했습니다.”

라이너는 놀라며 물었다.

“일 년?”

“네.”

순간 라이너는 로라스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대화는 시간 왜곡에 대해서였고, 바깥세상이 수십 년이 흘렀으면 어쩌냐 하는 걱정 아닌 걱정까지 했었다.

‘일 년이면…….’

체감상 서너 달 정도였는데 정말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니,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수습해야 할 시간.

“모두 잘 버텨 주었고, 수고가 많았다.”

거지 중의 상거지 꼴의 수하들을 보며 라이너는 주변을 살폈다.

“성으로 귀환한 후에 쉬도록 한다.”

지치긴 했지만 집으로 간다는 말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영지로 복귀하며 라이너는 생각했다.

‘나도 이 세계에 너무 적응을 했구나. 그토록 바란 일이 이뤄졌는데 이리 무덤덤한 걸 보면.’

하지만 그게 싫은 건 아니었다. 무덤덤한 것과 달리 가슴속은 충실한 마음이 가득했다.

열망했던 사람을 찾았다.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했다.

이제 준비했던 일을 실행에 옮길 때였다.

* * *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 사제는 울분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벌써 신도들의 삼십 프로 이상이 저희 예배당이 아닌 에펠리온의 예배당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제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락의 기사들이 문제입니다. 특히 테라라고 하는 원주민 출신 기사가 포교 활동을 하는데, 그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그가 또 손을 썼는지, 동부 지역의 토니 경 역시 에펠리온 교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이들이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나이 든 사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을 푸는 게 어떠신지요. 아시다시피 에펠리온 교는 갖은 명분으로 신도들에게 식량과 생활용품 들을 나눠 주고 있습니다. 그 탓에 무신론자들도 예배당에 출입하고 있습니다. 늦기 전에 우리도 대응해야 합니다.”

사제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츠어질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거칠 것 없이 교세를 확장하던 해피랜드의 위기.

사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에펠리온의 교황.

그 존재 자체만으로, 타 영지에서도 일부러 락에 찾아와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성지순례의 일종으로 외국인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했다.

애초에 해피랜드와 대륙 최대 종교인 에펠리온 교는 보름달, 아니 태양과 반딧불의 차이이긴 했다.

하지만 그간 락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해피랜드의 사제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교주님의 은총을 오래 받지 않은 이들. 신도들을 예배당으로 이끌면서, 계속해서 교주님의 은총을 받게 하면 되는 겁니다.”

츠어질의 심복이자 해피랜드 대사제의 말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원론적인 말. 그래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교주의 은총을 받으면 불신은 사라진다.

은총을 받을 때 그 설명할 수 없는 감각. 해탈이라 불려도 충분한 그 경험을 하면 에펠리온이 아니라, 그 할아비가 온다 하더라도 불신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후, 예배당에는 츠어질과 대사제만이 남았다.

“많이들 불안한 모양이야.”

츠어질의 말에 대사제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교주께서 이해하십시오. 아직 어린 사제들 아닙니까. 또한 교의 충심이 있으니 저리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긴. 녀석들과 예배를 본 지도 오래되었지.”

“곧 성기聖器가 들어옵니다. 은혜를 베푸시면 우리 해피랜드는 굳건할 거라 생각됩니다.”

“골드맨스는?”

“이번만 기다려 주겠다 하더군요. 그간의 신용이 있으니까요.”

대사제의 말에 츠어질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일 년에 원금과 같은 이자를 받아먹는 놈들이…… 이놈들에게도 은총을 내려야 하는데.”

“골드맨스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르는 조직 아닙니까?”

“세만 더 확장이 되면……. 여하간 성기와 물품들이 조달되는 데 차질이 없어야 할 거야.”

“네. 거의 다 되었습니다. 늦어도 열흘 후면 들어옵니다.”

“알았네.”

그렇게 대사제가 나간 후에 츠어질은 의자 깊숙이 몸을 젖혔다.

‘그간 너무 순조롭긴 했지.’

맞다. 너무 순조로웠다.

자리를 잡고, 게다가 급작스러운 영주의 실종까지.

덕분에 너무 빨리 세가 확장됐고, 교황의 등장에 너무 많은 신도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로 혼란은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년만 어찌하면…….’

츠어질은 생각하다 최종적으로 에펠리온 교황이 떠올랐다.

그 여자만 자신의 인형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의 정점에 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세를 이용하여 칠 인의 좌, 그놈들도 모두 내 밑으로 둘 수 있다면!’

역사에 자신의 이름은 영원히 기록될 수도 있을 터.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그녀를 인형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 말이다.

‘진작 준비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때마다 묘한 감각에 포기해야 했다.

‘그 웃음이 제일 걸려.’

아델리나는 자신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지었는데, 그게 무척 미묘했다.

세상 순진무구한 그 미소.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보고 있다는 듯한 그 미소가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성기와 필요한 물건들이 준비되면 곰이 연어를 그리하듯, 단숨에 낚아챌 것이다.

‘반드시!’

츠어질은 이후 자신의 것이 될 세계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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