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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12화 (21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2)

“오리시암,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테라의 날카로운 말투.

오리시암과 테라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일단 서로 볼 일이 극히 드문 데다가, 테라는 오리시암을 극히 꺼리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오리시암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테지만, 테라의 부모가 무법지대에서 살해를 당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돌본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오리시암이 안 이후로, 그는 테라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구세주 같은 존재 아닌가.

어리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포스 유저. 그리고 아무리 자신을 싫어한다고 해도 자신을 해할 사람은 아니다.

“테라 경!”

오리시암은 자초지종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려다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쉽게 입을 열 입장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츠어질을 제거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다.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다른 이라면 모를까, 테라에게는 그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오리시암은 굳은 표정의 츠어질을 보며, 무서울 정도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이후 당하는 건 자신이 아닌 그다.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다.

“바보같이 내 칼로 내 다리를 찌르지 않았겠소. 테라 경은?”

“락으로 복귀 중 날씨가 이래서. 여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냥꾼들이 쓰는 집이 있습니다. 잠시 거기서 비를 피하려다가.”

테라는 오리시암과 츠어질이 있었던 그 폐가로 움직이고 있었던 듯했다.

“잘됐군. 나를 도와줄 수 있겠소?”

오리시암이 그리 말하자 놀란 건 츠어질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잘 모르지만 눈치 빠르기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테라를 처음 보는 거지만, 그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다.

‘로라스의 측근이자, 몇 없는 락의 기사 중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도 포스 유저라는 것.

츠어질은 오리시암을 보며 생각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저 젊은 기사가 오리시암을 부를 때, 그리고 지금 저 표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해피랜드의 교주 츠어질이라고 합니다.”

“아, 네.”

테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츠어질을 보며 대답했다.

‘해피랜드?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락에도 교단이 생겼나? 그런데 교주란 자가 왜?’

궁금한 게 많았지만 오리시암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어떻게 넘어졌길래.’

자칫하면 치명상이 되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의문이 들었다.

오리시암이 싫은 건 싫은 거고,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번천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주군에게도 꽤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고.’

테라는 오리시암에게 다가가 지혈 등의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산을 올라오는 이가 있었다.

“테라 경.”

“교황님, 죄송합니다. 사람이 다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이라는 단어에 오리시암 그리고 츠어질마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깊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받은 오리시암과 츠어질은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교황.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수장이 ‘교황’이라 불리는 종교는 하나뿐이다.

에펠리온 교단.

세계의 모든 사람 중 반 이상이 믿고 있는 그 종교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래서 교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웬만한 나라의 왕은 교황이라는 이름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

그래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

이런 장소에, 이런 날씨에, 이런 때에 그런 교황이 있다는 건 말이다.

‘교황이란 건가…….’

그냥 스윽 본 것뿐임에도 가슴이 떨렸다.

마치 간수 앞에…… 아니, 사형 집행자 앞에 선 사형수 같은 그런 떨림.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난 너를 알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그게 거짓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본능이 또 경고하고 있었다.

오리시암이 다친 다리를 끌며, 아델리나에게 다가갔다.

“이리 교황님을 뵙게 되어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리치며 그녀의 신발에 입맞춤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펠리온의 신도였던가?’

마음에 들진 않으나, 오리시암이란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테라는 특히 더 당황했다.

-똑똑한 사람이다. 분명 배울 것도 있을 것이고.

주군이 인정할 만큼의 능력이 있는 자. 그래서인지 그만큼 건방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주인과 노예 수준의 이 퍼포먼스는 말이다.

그때 아델리나가 움직였다. 그녀는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여 오리시암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으윽!”

응급처치는 했다지만, 붕대에 계속 피가 스며들 정도로 중상이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격통에 오리시암이 신음을 냈다.

하지만 아델리나는 상처에 올린 손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상처가 굉장히 심하네요.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 순간 그녀의 손에서 하얀빛이 나기 시작했다.

“에펠리온.”

그 모습에 테라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고.

“으음.”

통증의 신음이 아닌, 뭔가 다른 색의 신음을 내며 오리시암이 눈을 감았다.

숨 서너 번 들이쉴 시간이 지나고, 아델리나가 말했다.

“됐어요.”

그러고는 츠어질을 보며 말했다.

“교주님은 다치신 곳이 없으십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약이 있어 이미 처리했습니다.”

딱딱한 츠어질의 목소리.

츠어질은 아델리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생각했다.

‘에펠리온의 교황이 여기 왜? 아니, 그 전에 교황이 바뀌었나? 나이가 많아 오늘내일할 거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바뀌었다면 내가 진즉 알았을 텐데.’

의문과 함께 욕심이 들었다.

‘정말 에펠리온의 교황이라면…….’

신성력은 포스와 마나와는 다르다.

포스와 마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수련이 있지만, 신성력은 그런 게 없다.

오로지 모시는 신의 총애를 얼마나 많이 받느냐로 신성력의 총량이 달라진다.

물론 총애를 받기 위해 신의 말을 잘 해석하고, 많은 신도들을 끌어들여야 하니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포스와 마나에 비하면 시간이 절대적이진 않다.

‘가능할까?’

하지만 막상 교황이라는 여자가 저리 젊으니 욕심이 났다.

‘저 여자를 내 인형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오리시암을 치료할 때 보니 신성력이 강한 듯했다. 하지만 항마력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신의 인형술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마력.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시도해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물론 제대로 시도하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맛만 보는 수준으로. 제대로 일을 벌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그런 수준.

츠어질이 아델리나의 시선을 마주하며 힘을 줄 때였다.

“재미있는 분이시로군요.”

순간 뜬금없는 말을 하는 아델리나.

“이리 재미있는 분이 락에 계실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즐거워지겠어요. 하하하.”

이제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는 아델리나를, 세 사내는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후우우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말이다.

머리는 맑다 못해 시릴 정도였고, 실내임에도 폐부에 들어찬 공기에 반응하는 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깨달음.

그런 추상적인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일이 년 깔짝대다 ‘난 깨달음을 얻었어!’ 하면서 십수 년 고련한 무인들을 무찌르는 그런 황당한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

유역후가 기억에 있음에도 개천지보를 시간을 들여 개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여하간 그런 깨달음은 고련의 결과, 준비된 강함이라 바꿔 말해야 할 것이고, 난 그걸 얻었다.

사실 얻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원래 가지고 있었으니까.’

로라스와 유역후는 하나다.

뭔 소리냐고?

유역후는 전생(前生)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또 난 로라스이니 현재 생이라 할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전생(轉生)이다.

이제 자아를 혼동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개천지보를 개방할 필요도 없다.

로라스가 유역후고, 유역후가 로라스다.

‘등선인 줄 알았는데 전생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지랄맞다.

게이트 덕분인지, 아니면 게이트 탓인지, 지금 유역후가 로라스로 반노환동 한 것을 깨달았지만.

부모님 얼굴이…… 착한 부부의 얼굴이…….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혼란스러울 것 없다. 의문을 가질 것 없다.

달라질 건 없다.

이미 난 하늘에 대고 로라스로 살기로 맹세를 했다. 전생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지금의 운기행공은 그것을 위한 첫 발자국.

“후우우우.”

커져 가는 진기.

평상시라면 기억의 왜곡, 또는 신체가 받쳐 주지 못할까 봐 여기서 그만두곤 했다.

“후우우우!”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알고 있고, 실제로 그걸 가진 자.

팔보 지세계.

세계를, 아니 나를 알게 된다.

구보 아지아(我知我).

집중하고 집중해서 들어가야 하는 관조(觀照)의 시야가 너무나도 쉽게 펼쳐졌다.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고.

호흡에 살랑거리는 솜털들의 움직임까지 소리가 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진즉 알았다면!’

아니다. 알았다 해도 많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칠보와 팔보 수준에 있었을 때도 행하고자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깨달음은 중요했다.

자신감의 근원이 확고해졌으며,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들 힘이기 때문이다.

내 모든 것의 움직임, 그것이 하나의 감각이 되었을 때 그것은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안의 공간의 모든 것. 하다못해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까지 그 감각 영역 안에 있었다.

나의 중심인 나를 아는 아지아의 세계 아닌가.

내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

오감이라 불리는 영역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세상은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빠르게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오감의 영역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

오감의 영역?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제아무리 빠른 거라도 한없이 느리게 볼 수 있고, 제 아무리 미약한 소리도 듣고자 하면 천둥처럼 크게 들을 수 있다.

그래. 구보의 세계는 이런 것이었다.

절대의 경지.

실제로 유역후 시절, 구보에 이른 후 적수가 없었다.

다만 이 영역은 일반적인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팔보까지 착실하게 이르지 않았다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실제로 유역후는 정신이 붕괴되었고,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니.

후우우욱!

호흡과 함께 진기를 크게 일으켰다.

옛날과는 다른 착실하게 쌓아 온 로라스의 육체로 이 영역을 버티기로 했다.

반노환동의 거친 신체. 착실하게 쌓아 온 내근과 외근. 그리고 내력.

퍼어어어엉!

전신 곳곳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다시 로라스로 살아오면서 쌓였던 탁기가 폭발했고.

퍼어어어엉!

다시 전신의 혈도를 폭발시키기 했다.

이 영역을 버텨 낼 수 있는 신체로 만들기 위한 과정.

반노환동의 영향일까?

아니면 정석적으로 개천지보를 익혀서일까?

유역후 때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엉!

신체는 계속 폭발했고, 그 기운에 공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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