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1)
먹구름에 달이 가려 한 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밤. 사내는 기어코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대장! 알아냈습니다.”
“그 상처는 어찌 된 거야?”
오리시암이 사내를 반김과 동시에 염려하자 사내는 씩 웃으며 답했다.
“저를 발견한 것 같지만, 손쓰기도 전에 잽싸게 도망쳐 나왔지요. 뒤를 밟은 놈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널 걱정한 거지. 놈들이 따라오든 말든 뭐 어쩔 거야! 아직 뭐 한 게 없는데!”
네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분명 염려한 걸 보았던 사내는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네네. 어련하시려고요. 여하간 알아냈습니다.”
“예상대로냐?”
“네, 맞습니다. 제 수준으로는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놈들 중 둘이 검에 뿌연 기운을 덮는 건 확인했습니다. 숫자는 여덟. 모두 신도들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수하의 보고를 받으며 오리시암은 생각했다.
‘그놈들을 믿고 그리 자신을 미끼로 던진 거란 말이지?’
하긴 최소 포스 유저가 호위로 붙었다면 그리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른 호위 모두 포스유저의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터.
‘좀 무린데.’
락에는 포스 유저라 불릴 만한 자들이 많다.
무슨 대단한 기사가 아니더라도, 군 간부 중에서도 포스 유저들이 상당수 있다. 대부분 로라스로부터 전수받았고, 그 이후 서로 도와 가면 경지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일반인의 눈에 뿌연 기운으로 보일 정도의 포스 유저는 많지 않다.
‘대놓고 떼어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니.’
하지만 오리시암은 오히려 그래서 더 기회라 생각했다.
호위의 실력이 그 정도이니 제 목숨에 대해 안심하고 있을 터.
‘놈들만 떼어 내면 되는 문제 아닌가?’
일곱 살 때부터 못 볼 꼴, 보지 말아야 할 꼴, 다 보면서 그 험악한 세월을 버텨 낸 자신이다.
무인 몇 떼어 놓는 건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제거한다, 사이비 놈을. 놈만 제거하면 다른 놈들은 애들 장난 수준이지.’
오리시암은 그렇게 결정했다.
믿고 있는 놈들이 누군지 알았으니 계획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확히 열흘 동안 그들의 행동반경, 습관 등을 조사하고 확인했다.
그리고 최종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 * *
쿠르르르릉.
하늘이 무너질 듯이 요란하게 나는 천둥소리. 그리고 번개가 쉴 새 없이 번쩍이고.
쏴아아아아아아!
광풍에 빗줄기가 마치 채찍처럼 아프게 느껴지던 밤.
“역시 오리시암 경이셨군요.”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산속 폐가에서 츠어질은 웃으며 말했다.
“꼬리를 잡는 데 꽤나 힘들었습니다. 보기보다, 아니 보이는 것처럼 철두철미하십니다.”
오리시암 역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종교인이 이리 음흉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원래 큰일을 하려면 은밀해야 하는 법.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길. 그래도 꽤나 귀찮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미소를 잃지 않은 표정과는 달리 음기 가득한 기운을 풍기며 하는 츠어질의 말에 오리시암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옛날에는 나만 잘 지내면 됐는데, 이 위치에 있으니 쓰레기 치우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하고 말입니다.”
“입이 거칠어요. 그래도 본 교주는 호의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 주려고 하는데. 자꾸 그리 신경을 긁으면 시체라도 보존하겠습니까?”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나는 당신의 시체조차 남기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순간 오리시암의 주변에 거친 기운이 뿜어져 나왔으나, 츠어질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 사람도 별 부담감은 없겠군요.”
그리고 두 손을 들더니, 손바닥을 마주 쳤다.
짝짝짝.
“…….”
짝짝짝.
츠어질은 연신 박수 소리를 내었으나 천둥소리와 빗소리만 폐가를 가득 채웠을 뿐이었다.
오리시암은 씩 웃으며 물었다.
“혹시 그 박수 소리가 나면 짜자잔 누가 나타나기로 약속된 겁니까?”
“…….”
“그런데 어떡합니까? 그 누구는 이미 땅속에 있을 텐데 말입니다. 원래는 다 태워 버리려 했는데 비가 이리 와서야.”
오리시암이 느긋하게 칼을 뽑아 들며 하는 말에, 츠어질은 박수를 다시 쳤다.
“대단하십니다, 대단해. 역시 그 마저도 눈치챘던 거였습니까?”
“내가 보기보다 완벽주의자라. 한 번에 몽땅 제거하는 데 꽤나 힘들었습니다. 돈도 쓰고 여자도 이용하고, 약까지 사용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요. 타이밍 맞추는 건 또 왜 이리 힘들었는지.”
“아! 다 죽였습니까?”
“당연한…….”
입을 열던 오리시암은 순간 위화감이 올라왔다.
‘뭐지, 이건?’
당황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있다.
그래. 수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있는 교주. 사기꾼이긴 하지만 그만한 카리스마는 있다고 생각해도 이건 너무나도 태연하다.
“이 인적 드문 곳까지 오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다 함정이었다니.”
짝짝짝.
“역시 락의 기사인 오리시암 경답습니다.”
박수를 멈추지 않고, 두려움 따위는 조금도 없는 음성.
‘허세?’
그럴지도 모른다.
저 사이비 놈은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어떻게든 활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다가가서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시체를 맹수나 마물의 밥으로 던져 주면 이 일은 끝난다.
분명 그러면 되는 건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본능.
로라스에게마저도 인정을 받았던 자신의 생존 본능이 그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미칠 정도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한 칼. 한 번만 휘두르면!’
놈의 함정에 빠져 주는 척하면서, 옳다구나 역함정을 팠다. 저놈이나 자신이나 모두 이 무대가 완벽한 살인의 장소라 여겼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 계획만 실행하면 되는 거다.’
오리시암은 그렇게 본능을 무시하려 했다.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은 완벽했으니까.
완벽하다 못해 츠어질이 혹시 숨은 능력자인지 조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포스 유저도, 마나 유저도 아닌, 말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그런 일반인이었다. 그걸 세 번 확인했다.
놈이 갑자기 ‘따라란!’ 하면서 숨긴 힘을 발휘해 자신의 목을 칠 능력자는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이제 다가가서 목을 자르면 된다.
쿠우웅!
오리시암이 본능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 순간, 그 발소리가 천둥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쿠우웅! 쿠우웅!
그리고 그를 곧 사정거리에 두려는 순간.
‘잘못되었다!’
일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어, 본능은 이미 경고조차 보내지 않고 있었다.
‘한 걸음만!’
그 한 걸음만 움직이면 자신의 칼날은 츠어질의 목에 닿는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는 움직이라 명했음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부르르르.
의지와 육체의 상반된 움직임에 오리시암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놀랍군. 산적 출신이라 들었는데.”
츠어질은 그런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포스 유저.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 확실히 과신할 만한 수준이군. 정말 고련이 필요했겠어.”
어느새 말투마저 변한 츠어질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지만 자신을 너무 과신했고, 본 교주를 너무 과소평가했어.”
“이…….”
“본 교주가 말 몇 마디로 해피랜드를 일구어 냈다고 생각했는가? 이 험난한 세상에 주둥이만으로 이런 세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츠어질은 느긋한 표정으로 오리시암의 주변을 걸으며 말을 이었다.
“본 교주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아니면 괜한 공명심을 가진 자가 너 하나였을까?”
“…….”
“본 교주의 계략을 간파하여 역으로 엮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마저 내 계획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오리시암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했다.
‘역의 역이었던 건가?’
츠어질은 말했다.
“본 교주를 대놓고 제거할 수는 없을 테고, 은밀히 제거해야 했겠지. 그래서 날 이런 곳까지 홀로 끌어들였을 테고.”
“…….”
“하지만 말이야, 그건 본 교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하하하하하.”
츠어질은 기세양양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가? 본 교주도 너를 대놓고 제거할 수 없었단 말이다! 그래서 이 장소에서, 이 시간에 혼자인 너를 만나야 했던 거다!”
“이놈!”
오리시암의 분에 찬 외침에 츠어질은 미소를 싹 지웠다.
“제법이었다. 간만에 긴장했더니 재미까지 있었다. 이제 그만 갈 시간이다.”
그러고는 품에서 작은 종 하나를 꺼냈다.
오리시암이 ‘저게 무기가 되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손목이 흔들렸다.
딸랑딸랑.
작지만 또렷한 종소리.
츠어질은 종을 또 한 번 흔들며 말했다.
“하늘까지 날 도와주는구나. 흔적 하나 남지 않을 테니. 가자.”
딸랑딸랑.
오리시암은 그 방울 소리에 자신이 움직였다는 것을 자각했다.
‘뭐…… 뭐냐, 이건!’
당황스러웠다. 분명 자신의 몸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딸랑딸랑. 딸랑딸랑.
자신의 몸이 인형이 된 것처럼, 저 종소리에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법인가?’
아니, 포스와 마나는 없었다. 은밀하게 몇 번이나 확인했던 것이다.
‘설마 신성력?’
사이비 교주에게도 신은 있었던 것인가?
‘귀신이라도 붙었을지도.’
오리시암은 후회 같은 걸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후회되었다.
조금 더 철두철미했어야 했다. 아니, 자신의 본능을 믿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귀신에 쓰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생 본능에 충실했었는데, 오늘 딱 한 번 거부했다가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무정하게 다리는 계속 움직여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낭떠러지가 나타날 것이다.
‘저 사이비 놈이…….’
놈의 의도를 알았다. 손 하나 대지 않고 자신을 저기에 추락시킬 생각이었다.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저놈을 죽이고 낭떠러지 아래로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절벽 아래 급류는 시체를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 줄 터.
‘젠장! 젠장!’
절벽 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서도 오리시암은 포기하지 않았다. 찰나 한 번의 기회라도 생기길 바랐다.
‘잠깐만.’
그렇게 몸부림치던 오리시암은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체는 통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체는 어느 정도 의지에 따르고 있다는 사실.
저 사이비 놈이 자신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죽는 것보다야!’
다리 하나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일반인이라면 알면서도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리시암은 일반인이 아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겨 봤던 사내.
그는 있는 힘껏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허벅지를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대혈이 있다. 잘못 찌르면 떨어지기도 전에 출혈 과다로 죽을 터.
근육이 뭉쳐 있는 곳을 노려보던 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오른쪽 허벅지를 찍었다.
“크아아아아악!”
다리가 통제되지 않으면 고통이라도 없어야지, 다리는 내 것이 아닌데 통증은 자신의 것이었다.
“미친!”
설마 제 다리를 찍을 줄, 예상치 못한 츠어질은 그의 뒤에서 소리를 냈다.
‘산적 찌그레기 따위가!’
포스 유저. 게다가 항마력도 높았다. 원래 자결시키려 했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귀찮지만 그냥 걷게 하여 추락사시키려 한 거였는데.
저렇게 저항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긴, 산적질하던 놈이 저기까지 올라왔다면 인정해 줘야겠지! 그나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손쓸 놈 한둘은 빼 왔어야 했는데.’
자신이 손을 써서 죽이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자신은 포스도 마나도 없다. 흑마법에 속하는 인형술을 극성으로 익혔을 뿐이다.
다리 하나가 병신이 되었다고, 일반인이 포스 유저를 상대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뭔가 큰 생명체면…….’
하지만 이 폭우 치는 밤에 뭐가 있단 말인가.
“흐흐흐흐흐.”
그런 츠어질의 속내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인가? 오리시암이 웃음을 흘렸다.
“오너라, 이 사이비 놈. 내가 죽어도 너는 죽이고 죽을 것이다!”
그렇게 대치가 시작됐을 때다.
“거기 누구냐!”
누군가 두 사람이 있던 곳에 올라오며 소리쳤다.
“테라 경?”
“오리시암?”
올라온 이는 바로 테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