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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09화 (20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09)

버틴다.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좋은 상황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말 아닌가?

‘다행인 건 군권은 이쪽이 틀어쥐고 있다는 것인데.’

현재 군 서열은 백작 부인을 제외하면 토니가 가장 앞선다. 오랫동안 고위급 간부들이 없는데도 군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건 오로지 토니의 힘이다.

자신은 열 손가락의 끝 정도.

그나마 토벌전에 로라스가 기사를 만들어 주고, 자신의 지위를 공식화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지위.

‘하지만 행정이 군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군은 최악의 상황을 막아 줄 예방책일 뿐, 각종 이권 싸움에는 문관들과 귀족들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들이 해피랜드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 편에 서서 각종 이권을 챙겨 주는 상황.

‘너무 무신경했어.’

에듀와 로라스는 이 해피랜드에 지나치게 미온적으로 대했다. 메어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종교의 장점을 발휘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빠진 지금 그것의 단점이 엄청나게 부각되고 있다.

‘견제할 세력. 그것들을 견제해야 할 세력이 필요한데.’

그 세력이 없다.

오리시암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타고난 균형 감각, 위기에서의 어찌 해야할 지의 본능적인 감각 등은, 지금 이대로 가다가 에듀와 로라스가 돌아오기 전에 영지가 통째로 해피랜드에 넘어갈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없어. 견제할 세력이 없어!’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라도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옛날의 그가 아니다. 옛날에는 마음대로 활동했겠으나 이제 양지에 나온 상황.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던 오리시암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뭘 이리 고민했지?’

세력이 없고, 만들 수도 없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해피랜드의 세력을 깎아 먹으면 되는 일 아닌가?

오리시암은 목적과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편한 사람이었다.

* * *

“쿨럭쿨럭!”

처음 기겁하는 소리를 냈던 기사 하나가 먹었던 물을 토해 냈다.

“뭐야? 갑자기 쥐라도 난 거야?”

“아냐, 아냐. 갑자기 누가 끌어당겼어!”

기사의 대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수를 향해 소리쳤다.

“나와! 모두 나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던 이들까지 밖으로 나오고, 모두가 뚫어질 듯 호수를 쳐다봤다.

말했다시피 호수는 맑고 맑아,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상황. 그리고 그런 호수에는 물 이외에 어떠한 것도 없었다. 게다가 바닥마저 평면체의 돌을 깔아 놓기라도 한 듯하여, 몬스터로 오해할 수도 없었다.

“쥐 난 거를 지레 겁먹고 몬스터들이 끌어당겼다는 거 아냐?”

“그러게. 물풀이라도 있으면 오해라도 하지. 그냥 돌들이잖아.”

얼마나 집중해서 들여다봤는지 붉게 충혈된 눈의 기사들이 한마디씩 하자, 당사자도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군.”

그 순간 로라스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마물은 아니지만.”

로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공간이야!’

늪지에 모래 가득한 사막 같은 공간, 그러다 이런 호수까지 있는 게이트 안.

그런 게이트에 수중 던전이 있다고 해서 별 신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던전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남들은 호수 곳곳에 집중할 동안 로라스는 시선을 넓게 뒀고, 그냥 인위적인 돌바닥처럼 보이는 곳에서 특이한 점을 찾았다.

‘이곳인가.’

로라스가 발견한 것은 바닥의 패턴이 다른 부분이었다. 그리고 기겁했던 기사도 그 패턴이 다른 바닥의 공간에서 떠다니고 있었고.

찰랑찰랑.

떠 있던 로라스의 주변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파문이 퍼져 나갔다.

‘저거군.’

바닥으로 물이 들어가며 회오리를 형성했다. 원형의 패턴에 헷갈렸지만 분명 바닥에 구멍이 있었고, 그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구멍이 아닌 수중 던전의 입구라고 생각한 이유는…….

로라스는 품에 손을 넣어 오색찬란한 돌조각 하나를 꺼냈다.

이 기묘하게 생긴 돌조각은 오면서 파괴한 핵 중 하나.

‘딱 맞는 것 같지 않아?’

로라스는 기다릴 것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 그 구멍에 돌조각을 끼워 넣었고, 예상대로 돌조각과 구멍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이따구로 생겨 먹은 거였군.’

그리고 구멍에 들어가 비쭉 튀어나온 부분이 마치 태엽 열쇠 손잡이 같지 않은가.

로라스가 생각 없이 그대로 그것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르.

물속에서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파동 소리.

처음에는 또 지진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바닥이 열리면서 생기는 소리.

‘엇!’ 하는 사이 곧바로 로라스는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우어어어!”

바닥이 열림에 호수는 순식간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고.

“나와! 나오라고!”

호수 안에 있던 이와 바깥에 있던 이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주군!”

모두가 호수를 빠져나가려는 것과 반대로 달려드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번천이었다.

그는 수영을 아주 잘한다.

불마법사인 원수를 상대하기 위해 살이 터져 나갈 정도로 물에 있었던 덕분이다.

“주군!”

번천은 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가운데서도 용케 직선으로 중심을 향해 헤엄쳤다.

그렇게 중심에 접근하고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려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르.

바닥은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번천은 그 위에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순 없다.’

번천은 잠수하여 바닥을 주먹으로 만지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닥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숨이 차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누군가 잠수를 하여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번천은 순간 그가 시그탑인 줄 알았다. 그가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 이 소용돌이 중앙에 있을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번천 경!”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생각났다. 시그탑은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번천은 머리카락을 따라 가득 흘러내리는 물을 훔쳤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이가 라이너라는 걸 보며 살짝 놀랐다.

“라이너 경.”

“바닥이 열린 게 맞습니까?”

“저도 그리 봤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속으로 들어가는 라이너.

번천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도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 * *

“거! 참!”

이 상황에서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곳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마치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투명한 뭔가가 물과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이 통로를 분리하고 있었다.

따라 걸었다.

통로는 꽤 길었으며…….

‘어째 점점 넓어지는 것 같은데?’

그것도 거의 시야 바깥으로까지 말이다.

‘이게 대체…….’

그리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보며 기가 찼다.

그건 물고기들이었다. 그것도 눈에 익숙한 물고기. 바닷물고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중 하나인…….

‘웬 고래냐고!’

거대한 덩치로 인해 순간 마물인 줄 알았지만, 그건 거대한 검은 고래.

고래 역시 그 투명한 막 같은 것에 막힌 건지, 아니면 진로를 바꾼 건지, 주변을 빙빙 돌 뿐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바다인 건가?’

기가 막히다.

‘대체 얼마나 심각한 공간 왜곡인 거지?’

락에서 바다를 보려면 족히 서너 달은 달려야 한다.

‘참…… 그래도 보기는 좋으니.’

두 번의 삶에서 이런 광경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니, 사실 상상조차 힘든 일 아닌가?

이렇게 바닷속을 걷는 건 말이다.

상황만 이렇지 않으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봤을 텐데.

속도를 올렸고,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두두두두.

물속임에도 강렬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 때문에 마치 통로까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보았다.

바다 가운데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의 구름 덩이. 강렬한 바람, 빗줄기라 볼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집 몇 개는 가뿐히 집어삼켜도 티가 나지 않을 거대한 용오름.

‘용오름?’

로라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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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츠어질이 이맛살을 찌푸리자 사제는 고개를 더더욱 숙였다.

“추적은?”

“하고 있지만 하늘로 솟은 것처럼 종적이 끊겼습니다.”

“끊긴 위치는?”

“3마을의 유흥 지역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브로커가 있는 거라 보고 조사 중입니다.”

사제의 보고에 츠어질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의문이 많아.”

처음 사제 하나가 도망쳤을 때는 분통을 터트렸다. 놈이 두 달 치에 해당하는 헌금을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두 번째도 그와 비슷한 금액의 헌금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때는 그야말로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각 지역의 신도들을 이용해 경계를 강화했고, 재정 관련 절차들을 강화했었다.

그럼에도 세 번째 도망자가 나왔다.

이쯤 되면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도망을 쳤다는 것 자체에 대해 고민해 봐야 했다.

두 달 치에 해당하는 헌금.

거금은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으로 봤을 때의 거금.

츠어질이나 해피랜드의 고위 사제들에게는 배신까지 할 정도의 금액까지는 아니다.

거기에 와카디아에서 걷히는 세금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었다. 발전하는 만큼 세금도 더 늘어난 것이다.

교세가 더 커지면 한자리씩 차지하여 더 많은 돈을 벌 놈들이, 그 정도의 돈으로 도망을 친다?

‘대체 왜?’

츠어질은 접근 방식을 바꿨다.

수하 사제들이 도망을 친 게 아니라 사라진 것. 실종이다. 어쩌면 이미 땅속 어딘가에 묻혔거나, 불타 하늘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

이거면 왜 그들을 찾지 못하는지 말이 되지 않는가?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군.”

츠어질의 중얼거림에 사제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망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사라진 거야. 도망을 쳤다면 반드시 그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남아 있는 게 없는 걸 보면 분명해.”

“아!”

사제도 그제야 깨달았는지 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감히 누가…….”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우리 사제들을 납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 생각해? 그것도 셋이나?”

사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츠어질의 말처럼 락에서, 와카디아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만한 세력은 한 손에 꼽는다.

첫째는 일단 락의 베론 남작가다.

와카디아에서 에듀와 로라스를 제외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이자 영주.

하지만 베론 남작은 자기네 영지 바깥을 나오는 일이 드물다. 거기도 개발이 한참이고, 몸조심을 하는 건지 에듀가 실종된 이후 외부 활동을 줄였다.

두 번째는 마탑이다.

락의 마탑은 작은 규모이긴 하나 탑주가 에르자일. 그녀 뒤에는 그 헤르메스가 있다.

하지만 여기도 자신들과 척을 질 만한 이유가 없다. 마법사란 연구에 필요한 것만 충분하면 마탑에서 잘 나오질 않는 부류니까.

그나마 락의 마탑은 개척 작업을 돕는 편이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마법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 번째는 군부 그리고 샤이한의 천년나무집 일족이다.

하지만 천년나무집 일족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긴 해피랜드와 어떠한 교류도 없다. 하늘 산맥 자신들의 구역에서 벗어나지도 않는 놈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한 군데를 떠올리며 사제가 입을 열었고, 츠어질도 고개를 끄덕였다.

“군부밖에 없지, 이런 일을 벌일 만한 곳은.”

“그리 조심하지 않았습니까? 예배보다 훈련이 우선이라고까지 신도들에게 알렸습니다.”

“불안했던 게지. 우리 세가 확장되는 것이.”

“토니 경이 그리 기민할까요? 게다가 그는 와카디아 사람이라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특별히 모나게 굴지 않는 이상 상관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게다가 백작 부인 때문에라도 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을 거고요.”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츠어질이 말했다.

“그가 문제가 아니야. 그 밑의 놈이 문제지. 웬만한 일은 토니가 아닌 부관이라는 그놈이 처리한다는 말도 많이 들리긴 했지.”

“부관이라면…… 산적 놈 말입니까?”

“세가 커. 그 밑의 병력은 물론이고 이민족들까지 그가 관리한다 했으니.”

사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가 입을 열었다.

“무력으로 붙어서는 안 됩니다. 소규모 전투라면 모르지만…….”

츠어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사제에게 핀잔을 주었다.

“당연한 말을 뭐 그리 대단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가?”

“죄송합니다.”

츠어질은 이내 사제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생각했다.

‘역시 군권이 문제야.’

토벌대로 많은 수의 병력이 빠졌다 하나,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도 상당했다. 그 숫자가 주는 압박감.

‘따로 쳐야 하는데…….’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그러다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지 않은가?’

츠어질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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