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01화 (20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01)

‘정말 이것도 능력이지.’

오리시암의 이런 모습도 능력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맡긴 일은 완벽하게 처리한 것도 사실이니 능력이라는 것도 과장된 것이 아니고 말이다.

“군 체계가 개편될 거야. 나타족은 물론이고, 네 밑에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락에 편입될 것이다.”

로라스의 말에 오리시암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귀족의 원한을 지었습니다.”

“그건 내가 감당할 일이고. 다만.”

로라스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사적인 이득을 위해 죄를 저지른 놈들은 불가능하다.”

“사적인 이득이라면…….”

“몰라서 묻나? 굳이 구분을 해야 해?”

오리시암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로라스는 확인하듯 말했다.

“그걸 구분해야 하는 건 네 책임이다, 오리시암. 나중에라도 잘못 분류해서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지는 거다.”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너는 뭘 원하지?”

“…….”

“눈치 보지 말고. 욕심 없다는 흰소리도 하지 말고.”

로라스가 그리 말했음에도 오리시암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에, 로라스가 들어주기 힘든 말인가 생각할 즈음 오리시암이 입을 열었다.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응?”

“아니, 귀족이 되고 싶습니다.”

오리시암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무늬만 귀족이 아닌, 제대로 된 작위와 영지를 받고 싶습니다.”

로라는 그 말에 담긴 오리시암의 의지를 느끼며 물었다.

“그것뿐이야?”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아니, 그것뿐이냐고.”

“……네.”

오리시암에게서 보기 힘든 당황한 표정을 보며, 로라스가 말했다.

“무슨 뜸을 그렇게 들여? 난 또 무슨 어디 왕이라도 되고 싶다는 줄 알았네.”

“…….”

“어렵지 않다. 아버님이 와카디아의 대영주시이니 준남작의 작위는 내려 줄 수 있으시고, 영지는…… 사실 우리 가문이 근래 땅 부자잖아.”

“정말이십니까?”

“토벌대가 출발하기 전까지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거야.”

오리시암은 순간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결의까지 보이는 오리시암을 보며 로라스는 피식하며 말했다.

“충성? 그건 네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진심입니다.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지금은 진심일 거야. 지금은 말이지.”

로라스는 그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우리 가문이 지금처럼 굳건할 때는 네 충성을 의심하지 않을 거야. 넌 힘에 민감한 사람이니까.”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충성을 다할 겁니다.”

“그건 나중에 보면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네 진심을 확인할 기회는 없겠지.”

“…….”

“대신 약속은 해 줘야겠어.”

“말씀하십시오.”

“선을 타지 마.”

오리시암은 순간 얼굴이 굳었고, 로라스는 다시 말했다.

“그런 순진한 얼굴 하지 말고. 나도 알고, 너도 알아. 네 정치적인지 본능적인지 모를 그 감각을 말이지.”

“저는 그저 살기 위해…….”

“그러니까! 안전한 울타리에 있을 때 그럴 필요는 없잖아? 널 공식적으로 토니 경 부대의 이인자로 앉힐 거다. 토니 경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해. 그와 힘겨루기를 하지 말고, 그를 보좌하란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거야. 네가 원하는 걸 줬다. 그것을 지키려면 내 말을 명심해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걱정은 안 해. 그게 너에 대한 나의 생각이고, 믿음이다. 잊지 마라.”

오리시암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백작님. 번천 경 말입니다.”

“번천. 그는 왜?”

“제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르지만…… 좀 이상합니다.”

“뭘 말이지?”

“그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한번 불러서 다독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리시암과 번천의 사이는 나쁜 편이 아니다.

나타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번천의 편을 들어 오러후이를 죽인 일 때문인지, 모두가 오리시암을 산적 출신이라고 수군거릴 때도 가깝게 어울렸던 게 번천이었다.

둘이 같이하는 일은 없지만, 사적으로는 나름 친한 편이라는 뜻이다.

그런 둘의 관계를 아는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문제라도 있나?’

자주 보는 관계라 특별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로라스다. 그냥 번천은 번천이라 생각했는데, 오리시암이 이리 말하는 걸 보면 뭔 이유가 있긴 할 터.

“참고하지.”

“감사합니다, 백작님.”

그렇게 오리시암을 떠나보낸 로라스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 로라스는 병영으로 가 토벌전을 위한 개인 훈련을 보려 했다. 하지만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번천부터 만나려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포지션이 애매하긴 하네.’

따로 부대를 이끄는 것도 아니고, 영지 내 공식적인 직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번천이 편하니 데리고 다닐 뿐이었다.

‘혹시 그게 좀 불편했을까?’

의식하니 자신이 너무 무신경했음을 깨달은 로라스였다. 하지만 또 생각하면 불필요한 관심일지도 몰랐다.

번천은 락의 원주민이나 다름없는 신분.

모두가 번천을 환영하고, 좋아했고, 그 역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러 일을 도왔다. 그걸로 충분했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발드가 돌아오면 같이 묶어서 뭐라도 하나 진행해 볼까?’

발드는 쥬시스와 함께 에렌에 있는 상황.

그렇게 로라스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번천을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번천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로라스는 저녁이 다 돼서 그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멀리도 갔네.’

로라스는 말을 몰고 메타린 평야로 향했다.

* * *

행정상 락 제5마을이라 이름 붙인 지역은 메타린 평야에서 제일 가까운 개척 마을이었다.

개간한 땅은 모두 개간한 자에게 소유권을 부여한다는 정책하에 만들어진 마을.

지금이야 활발히 개척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다른 영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정책이고, 마물들은 물론이고 맹수도 종종 출현하는지라 지원자들이 많지가 않았다.

하지만 치안을 위한 병력이 증강되고, 락이 내세운 정책이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한 이주민들은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척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마을까지 세워졌고, 그날 아침도 많은 사람들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뭐지?”

카블이라 불리는 사내는 작년에 락으로 이주하여 개척 마을에 지원한 사내였다.

부인과 세 명의 자식을 거느린 가장인 그는 마을에서 가장 많은 땅을 지닌 이이기도 했다. 근면 성실한 그는 가장 빨리 일어났고, 가장 늦게 개척지를 벗어나는 이.

부자를 꿈꾸던 카블은 아침부터 자신의 야심찬 계획의 걸림돌을 만났다.

말 그대로 걸림돌.

처음에는 파내려 했지만 그 크기가 예상보다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는 쪼개려 했다.

하지만 돌덩어리는 곡괭이질로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 탓에 아침 한나절을 무의미하게 보냈다.

버린 시간 탓이었을까?

오기가 났다. 이 돌덩어리를 반드시 제거하리라는 그런 오기.

곡괭이가 아닌 정과 망치를 빌렸다. 돌에 정을 대고 망치질을 시작했다. 오후 꼬박을 말이다.

“하아!”

카블은 어이가 없었다. 뭔 돌덩어리가 정으로도 깨지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돌부스러기 하나 튀기지 않았다.

여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개척하기에는 카블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오기는 있는 사내였기에 이 마을에서도 가장 많은 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돌을 깨기 위해 작업했다.

무려 사흘이나 작업했음에도 돌은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나!

‘오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그는 주변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일단 이 돌덩어리 크기부터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이레가 지났을 때, 그 공간에는 카블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카블은 인심이 좋았다. 다른 개척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곧잘 도와 해결했기에, 카블의 문제에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몰린 것이다.

그렇게 공사 아닌 공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보름.

돌덩이의 모습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돌덩이가 아니었다. 이건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어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돌덩어리의 무늬를 보면 확실했다.

여하간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개척 대신 돌덩어리 하나에 매달려 있자, 마을의 촌장도 답답한 마음에 락에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보내 주든가, 아니면 마탑의 도움을 바란다고 말이다.

에르자일이 영지에서 환영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마법사를 파견하여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법사들이 도착했다.

마법사들은 현장에 도착하여 돌덩어리를 살폈다.

꽤나 흥미로운 건축물이었지만, 그들은 바빴다.

여러 번 같은 작업을 해 본 것처럼 그들은 익숙하게 마법진을 설치하였고,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진 중앙으로 돌개바람이 형성되고, 흙먼지가 자욱하니 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돌덩어리. 아니 건축물은 커다란 기둥을 가졌고, 붕은 아치형의 돌다리가 올려 있는 형태를 드러냈다.

모두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뒤로 물러낫!”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의 시선을 받는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물러나라고! 그리고 경계령을 내리고 락에 연락해! 게이트가 출현했다고!”

* * *

‘내 위치는 스스로 찾아야 해.’

불안했다.

아니, 불안은 아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불안했다. 불안은 아닌데, 불안했다. 자꾸 조급해지며, 뭔가 해야 하는 압박감이 들었다.

안다.

이건 자신이 부족하여 생겨난 열등감이라는 것.

처음에는 그런 생각은 갖지 않았다. 자신 정도면 어딜 가도 빠지질 않는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인물들은 너무 쟁쟁했다.

자신은 분명 충분한 무력을 지녔지만, 주군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뭐가 됐는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열등감의 시작은 말이다.

―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까?

이런 자신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백작님에게 신뢰 받고, 영지민들도 다 좋아하고. 게다가 포스 유저, 아니 마스터인가요? 여하간 그런 능력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걸 보면, 제 입장에서는 참 한가해 보이십니다.

오리시암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능력의 반만 따라가도.’

자신보다 한참 떨어지는 무력을 지녔지만, 제 영역을 공고히 구축해 나가는 오리시암이 부러웠다.

‘머리 굴리지 말자.’

영리하지 못함은 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위치는 자연스레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다.

이번 일도 그랬다.

5마을에서 이상한 돌덩어리가 있다는 말.

그냥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돌덩어리일지도 모르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냥 돌덩어리면 자신이 부서뜨려 개척민의 일을 도와주면 그뿐. 포스로 자르지 못하는 것은 없으니.

그렇게 마탑의 마법사들과 왔는데 말이다.

모래먼지가 끝나고 드러나는 하나의 건축물.

모두가 신기해하며 접근했을 때, 그는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뭔지 알았다.

게이트.

하지만 게이트는 하늘 산맥에만 나타난다. 이런 평야에 나타날 것이 아니다.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다.

개척을 도와주면서 마법을 실습하는 마법사가 아닌 진짜 마법사, 아니면 주군이 오실 때까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했다.

그래서 소리쳤고, 단순하게 그리 생각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사람들이 경계하며 물러났을 때.

구르르르르르.

건축물이 흔들리며, 돌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