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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99화 (19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99)

내공으로 그의 기로를 훑는 감각이 이상했던지, 토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토니 경?”

“아, 네.”

“힘들지 않으십니까, 무법지대는.”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천성이 그런 놈들도 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그 상황까지 몰린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조금 걱정했습니다. 흉악한 놈들도 있어서 통제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주군께서 염려하시는 게 뭔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침은 가지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 이해가 되더군요.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거칠기로 따지면야 락의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토니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부인. 그것도 통솔자로 온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이들이 많다고 했다.

“기선 제압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구분은 합니다. 키워 줘야 할 놈. 일단 짓누르고 봐야 할 놈.”

삶의 연륜인지, 타고난 능력인지, 토니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고 했다. 그리고 전자는 용돈까지 줘 가면서 잘한다, 잘한다 키워 줬고, 후자는 가차 없이 무시하고, 트집을 잡아서 괴롭혔다고 했다.

“처음에는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능력 없는 놈들이라고 해도 충성심 강한 놈을 고르는 게 중요하지요.”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니가 사람을 관리하는 건 나름 체계가 있었고, 심리적으로 치밀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기어오르는 놈들이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응징해야 합니다. 바로 내팽개치고, 처음에 대들었다가 고통 받는 놈들을 끌어 올립니다.”

경쟁보다는 당근과 채찍만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토니의 인사법은 나름 들을 만했다.

“오리시암은 어떻습니까? 잘 협조하던가요?”

“그놈이 인물이긴 합니다. 뭔 눈치가 그리 빠른지. 제가 세운 기준에 속하지 않은 사람 중에 속하지요.”

“그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내버려 둬야지요. 제 능력 밖의 인물은 그냥 둬야, 최소한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요.”

“오리시암이 협조는 잘합니까?”

토니는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때는 이걸 어찌할지, 고민까지 될 정도로 비협조적이라 이걸 한번 뒤집어엎을까 생각하면 또 간, 쓸개를 내줄 정도로 협조적입니다.”

“…….”

“사람 기분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할까요?”

토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무조건 협조도 하지 않고, 반대로 무조건 비협조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나타내는 성격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오리시암은 눈치가 빠른 사내다. 큰 소리 안내면서도 자신의 이득은 취할 줄 안다. 선을 잘 지킬 줄 알기에 뭐라 할 수도 없는 미묘한 관계를 잘 형성하고, 잘도 유지하는 것이다.

“파트너로 좋다, 안 좋다로 따지면 어떻습니까?”

“좋은 쪽에 가깝지요. 그건 확실합니다.”

“그러면 됐지요. 그가 완전히 우리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토니 경이 잘 이끌어 주세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주군.”

“네, 말씀하십시오.”

“계속 이쪽 일로만 쓰실 생각이신지.”

“무슨 뜻이십니까?”

“오리시암, 능력이 있습니다. 외부로 돌리지 마시고, 곁에 두시면서 쓰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뜻밖의 제안에 기다렸고, 토니는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이쪽에 두면 걱정할 것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법지대의 체계는 이미 확립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능력만 되면 이끌어 가는 것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

“옛날에야 이 지역에 수많은 조직이 난립하여, 서로 견제하는 것만으로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안정화되었지요. 처음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들 중 능력 있는 자들은 슬슬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차례라는 겁니다.”

“초심을 잃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말해도 무방하지요. 나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시스템이 정립되니 없어도 되는 거지요. 오리시암이 특히 그렇습니다.”

“으음…….”

“능력이 있다는 건 주군도 인정한 사실. 하지만 그에게 큰일은 맡기지 않으시고 계시지요.”

“산적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악하지 않습니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일 뿐.”

오리시암이 개인주의자라는 토니의 말에 반박했다.

“이기주의자가 아니고요?”

“그리 보일 뿐입니다. 찬찬히 생각하시면 오리시암이 먼저 누군가를 해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수동적인 인물이란 말이지요.”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군요.”

“기회를 주십시오.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토니 경이 그리 말씀하시니 신중하게 고민은 해 보겠습니다.”

“현재 군 체계가 너무 번잡스러운 건 아시지요? 특히 주군의 사병들까지 합하면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락의 정규병과는 별개의 지휘 체계를 가지고 있는 독립부대가 많았다.

에렌의 고스트는 완전히 떼 놓고 보더라도, 토니와 오리시암이 이끌고 있는 부대. 그리고 용병이었던 엔케이가 이끌고 있는 용병대, 오크 일족인 샤이한과 연계 때문에 하늘산맥에 주둔 중인 독립부대.

‘어디 그뿐인가?’

각 영지의 독립적인 삽여들과 시그탑이 이끌고 있는 기사단. 이번에 에렌에서 온 새로운 무관들과 사병들까지.

총지휘관이 아버님인 건 변함이 없지만, 그런 각 부대 간의 통합 작전 중에는 지휘 체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토니는 계속 말했다.

“저야 이제 이쪽 무법지대 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락에 있던 녀석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제는 얼굴 익히기도 바쁘다더군요.”

“잘 지적하셨습니다. 숫자도 많아지고 정예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안정감은 없지요.”

“그리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하지만 이미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근 시일 내로 아버님과 상의하여 군 체계를 정립할 겁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오리시암은 따로 만나 보지요.”

“네, 주군.”

그렇게 토니와의 만남은 만족스러웠다.

‘하긴 좀 정신 사나울 정도로 중구난방이었지.’

이번 만남으로 내가 놓친 걸 깨달았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걸 말이다.

‘하나하나 확실히 해야겠지.’

급하다고, 그리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죄다 손을 댔지만, 확실히 마무리한 게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으음. 일단은 군 체계부터 잡아야 할까? 토벌 체계도 다시 정리하고.’

아버지와 우선순위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왔을 때였다.

“공자님.”

그리고 그렇게 돌아왔을 때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먼저 처리해야 할 일 중 가장 첫 번째 일을 말이다.

“알아 왔나?”

“네, 공자님.”

쥬시스가 그리 대답하며 보고를 시작했다.

가장 첫 번째 일.

그건 감히 어머니의 생명을 노리는 암살자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 * *

그간 모든 일에 여유를 부리긴 했다.

만석지기가 자신의 창고에 쥐 몇 마리가 식량을 축내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하지만 그 쥐 몇 마리가 치명적인 전염병을 가졌다는 걸 알면 문제가 달라진다.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동원한 것 같은데.”

“전문적이 아니다라…… 만약 너였다면?”

“…….”

그녀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요약하면 전문적인 놈이 아니라서, 테라와 에르자일이 어렵지 않게 호위가 가능했다는 것인데.

뒤에서, 은밀하게 일을 꾸미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받았으면 돌려줘야, 다시는 헛짓거리 못하지.’

베스타인이라는 핏줄. 특히 할아버지 때문에 계속 주저했지만…….

“쥬시스.”

“네, 공자님.”

“관련된 자들!”

쥬시스가 순간 움츠려 들었다.

“모두 죽여!”

“모두…… 말입니까?”

“모두! 가능하나?”

“어려울 건 없지만…… 그쪽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매우 시끄러워질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이쪽이 노출될 확률이, 아니 반드시 노출됩니다.”

“상관없어. 뒤에 벌어질 일은 내가 감당한다.”

덤비면 죽일 것이다.

노선을 확실히 보여 줌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할 생각이다. 내가 다시 에렌으로 가는 일이 있어도 말이다.

“고스트에 이야기해 두겠다. 필요한 게 있으면 그쪽에 이야기하면 될 거다.”

“네…… 공자님.”

“이 일이 끝나면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 대가로 모자란가?”

“아닙니다. 하지만…….”

쥬시스는 겁먹은 표정으로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해.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으니.”

“성녀님께서…… 저를 놓아주실까요?”

순간 아델리나가 어떻게 쥬시스를 제압해 놨는지 궁금해졌다. 도망쳐 사라지면 끝일 터인데, 걱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네 목숨은 내 것이다. 내가 말해 두지.”

쥬시스는 무슨 말을 하려 하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죽을 상 하지 마. 약속한 건 지킬 것이고, 그에 따라 널 보호도 할 테니.”

그제야 좀 표정을 푸는 그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사라졌다.

‘하나씩.’

그렇게 정리해 나갈 것이다.

* * *

“성녀님!”

테라는 급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누가 봐도 적대적인 분위기의 무인들.

게다가 알게 모르게 흘리는 포스가 그들이 상당한 고수라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 무인이 서른이 넘는데 이쪽은 자신과 성기사 넷뿐이다.

사전에 듣기는 했다.

에펠리온 총단이 있는 이 지역은 아군보다 적이 많다고 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리 대놓고 움직일 줄은.’

그리고 이리 노골적으로 무력행사를 할 줄은 몰랐다.

‘교황이 오늘내일한다더니, 다급해진 것인가?’

아델리나를 총애하여,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교황이 있다면 이리 노골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터.

테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마음을 다 잡았다.

주군이 자신에게 아델리나의 호위를 명령했다는 건 그녀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증거. 목숨을 걸고 그것을 실행할 뿐이었다.

“가급적 생포해!”

적들이 달려왔다.

자신은 둘째 치고, 그녀를 호위하는 성기사들이 대단한 능력자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적들도 만만한 자들이 아니기에 고전을 예상했다.

“하앗!”

테라는 기다리지 않았다. 포스를 단숨에 씌우며 오기 전에 먼저 달려들었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아이언 센터의 기대주라 불리고, 많은 가문에 주목을 받았던 테라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기에는, 자신의 주변에는 대단한 무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또 주군인 로라스는 어떤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름 경쟁자라 생각한 번천이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다는 걸 안다. 그런 그도 주군의 십초지적도 되지 못하는데 하물며 자신이야.

그런 주군에게 일대일로 집중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무인으로서 큰 행운.

오늘 그 성과를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테라는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적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지만.

“크아악!”

자신의 실력은 그들을 훨씬 상회했다.

적들의 숫자가 훨씬 많기에 자잘한 상처는 입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위기를 넘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다.

“…….”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적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성기사들의 공격이 아니었다.

‘뭐지?’

자신의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적 하나가 다가오기 전에, 그냥 바닥으로 꼬꾸라지자 테라는 고개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평온한 표정의 성녀.

아닐 것이다.

손을 대기만 해도 흩날려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의 성녀다. 게다가 손만 좀 들고 있을 뿐 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테라는 정말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에르자일 님도……’

비슷한 느낌의 에르자일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마물을 처리하는 걸 봐 왔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앞을 보셔야지요, 테라 님.”

그런 그녀가 자신을 보며 미소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자, 테라는 정신을 차렸다.

‘일단 적부터!’

테라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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