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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98화 (19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98)

주변, 그것도 흥미가 갈 주제로 이야기를 전환시키면 됩니다.

“술과 고기를 좀 가져왔습니다. 인부들의 사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소영주께서 이리 직접 오셨는데, 술과 고기가 아닌 빵과 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술의 질이 제법 괜찮을 겁니다. 이번에 렌이 제법 괜찮은 물자들을 가져왔거든요. 듣자니 저니블루란 술을 좋아하신다 하여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글썽거리던 눈물이 어디 갔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헨켈러가 말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소영주님.”

“네, 말씀하세요.”

“마지막 작업은 남기라고 하신 이유가?”

“자신들 살 집의 지붕 정도는 자신들이 옮겨야지요. 마지막 마무리는 이곳에 살 사람들이 직접 하게 하십시오.”

헨켈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말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크라운에 있던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좀 특별한…… 좀 특별할 겁니다. 일반적인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요.”

그 정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크라운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들이라 말했다가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거론하기 싫었다.

나름 희망을 안고 온다지만 기본적으로 노예 근성에 쩌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락에 흘러들어 온 사람들은 굉장히 활동적인 이다. 그들이 북부 아무것도 없는 락에 들어왔던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개척한 땅에서 수확한 곡식의 세금은 십 년간 면한다.

락의 방침이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평야를 개간하고 있다. 지금이야 치안이 안정되고, 수많은 편의시설이 생겨 세금 면제 기간이 오 년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하간 욕심이 없고, 활동적이지 않으면 올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노예 생활을 했던 이들은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지시가 있으면 움직이는 사람들. 그마저도 움직이는 ‘척!’할 뿐이다.

‘전쟁을 겪고, 열악한 상황을 참고 여기까지 오는 이들이니 좀 낫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

그들의 거처를 와카다이 곳곳에 마련하기보다는, 이렇게 따로 거주지를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단은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기에, 잘하고 있던 사람들도 회의론에 물들면 곤란하다.

당분간 이들을 여기서 생활하게 하면서 자신의 집, 자신의 물건, 자신의 땅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욕심을 자극시킬 생각이었다.

‘이곳의 책임자는 토니 경이 괜찮겠지.’

노예 생활을 했던 이들을 다룬 경험은 없겠지만, 이곳도 집단.

토니는 그런 집단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 활동적이던 용병들도 노예 생활을 무탈하게 하게 했으니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꽉 차면 볼만할 것 같습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곳도 한결 나아질 테고 말입니다.”

“많이 부족합니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늘 부족한 게 사람이니까요. 물론 예전에 비하면 사건 사고도 많아져 곤란할 때도 있지만, 이런저런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락의 역사의 한복판에 제가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락의 원주민답게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

“사건사고라는 건 뭘 말하는 겁니까?”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까? 시시비비도 많이 생기고, 특히 펍 스트리트 쪽은 늘 사고가 납니다. 대머리가 그나마 관리를 잘해서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유혈 사고도 종종 났을 겁니다.”

대머리란 말에 오리시암이 생각났다. 처리하고 확인할 게 많아 오리시암을 보지 못했다. 말 나온 김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헨켈러에게 말했다.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토니 경이 올 때까지 아저씨가 관리를 해 주셔야 합니다. 게으른 편이니 적절히 속도 조절 잘해 주시고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일꾼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모두 일임할 테니 마음껏 해 보세요.”

염려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헨켈러와 인사를 하고 잠시 고민했다.

‘무법지대도 한번 갔다 와야 하나?’

오리시암은 락의 밤거리와 무법지대를 토니 경과 함께 관리 중이다.

정확히는 호송 사업에 관련된 부분은 토니 경이, 그 외 일은 오리시암이 나눠 하고 있다. 그리고 여태 단 한 번의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믿고 맡길 수가 있으니 관심이 덜 간 건 사실. 하지만 여전히 락의 재정 수입 중 상당 부분을 그들이 벌고 있었다.

‘보기는 봐야겠지. 그간의 노력에 상도 줘야 할 테고.’

상벌은 분명해야 한다.

믿고 맡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건 사람 관리의 기본이 아닌가. 섭섭하지 않게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적으로 줘야 한다.

상이 확실해야 벌을 받을 경우도 명확히 인식하여 약간의 긴장감을 늘 유지할 테니까.

마물 토벌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 봐야 할 듯싶었다.

* * *

락, 정확히는 락 부근에 조성한 새로운 마을에 사람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크라운 노예 출신의 사람들.

숫자가 많고 이동에 제약을 받아, 자신보다 훨씬 먼저 크라운을 출발했지만 이제야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세상에 많이 적응한 것인가?’

사람들의 표정이 전장터에 끌려갔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생기가 생겼다 해야 하나?

분명 도살장 끌려가는 가축들의 표정에서 이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우아!”

“저기가 우리가 살 집인가?”

“그럴 리가 있어? 저런 집을 사려면 돈이 얼만데.”

“아냐, 각자 거처를 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군대는 목소리들.

렌이 다가와 보고했다.

“총 칠백 명. 일차적으로 함께 온 사람들입니다.”

“수고했다. 표정들이 많이 밝아진 것 같은데?”

“오면서 락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한 것만큼 공정하게 가져간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할 수 있다고요.”

“반응이 조금 모호하군.”

“아직 100프로 믿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수입과 세금, 숫자를 보면서 점점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정렬하랏!”

“모두 정렬!”

그때 말을 탄 몇몇 이가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니 미소가 어렸다.

이 행렬을 줄곧 호위했던 까미유, 까메유 형제를 비롯한 젊은 군관들이다.

몰락 귀족 출신들이 대부분인지라 성공에 대한 욕구가 무척이나 강하지만, 단순하게 욕심뿐만이 아니라 능력들도 갖추고 있는 이들.

락에 젊은 인재들의 유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니, 미소가 절로 어릴 수밖에 없다.

“아버님께서 대규모 토벌 전에 회의를 열 거야. 꼭 참석하도록 해.”

“지금 곳곳에 벌인 사업이 많아서…….”

“당신, 여기 재정 담당이기도 해. 말 그대로 벌인 사업이 많으니 정리 한번 해야지. 재정…… 부족하지 않아?”

“걱정하신 것보다는 낫습니다. 안정화된 사업에서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 있고.”

렌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규모 토벌전이면 마정석이 많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전부 락의 금고로 들어올 테고요.”

지금의 토벌전은 옛날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얼마 안 되는 정규병과 자경대가 함께 움직였지만, 이제는 모두 정규병들이다.

토벌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특별 상여금은 지급되겠으나, 대부분의 수입은 영지의 주인인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렌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참석은 하도록 해. 드리블 경이 내정은 잘해 주고는 있으나, 그래도 모든 사업을 공유할 필요는 있으니까.”

“네. 그런데…… 공유라면 에렌 그쪽에서도 들어오는 자금도 공개합니까?”

“그건 좀 두고 보도록 하지. 에렌도 정보 조직을 구축하느라 자금이 많이 필요할 테니. 그건 당분간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그럼 그것을 제외한 보고서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렌과 대화를 하는 사이, 사람과 물자를 실은 마차들이 완전히 마을로 들어왔다.

“한마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군이 데리고 온 이들입니다.”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하하하. 일이 는 건 사실이고, 저들이 락에 도움이 되려면 최소 일 년은 지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확실히 렌이 하는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건 능력 있는 자들의 숙명 같은 거다.

“그냥 명확하게 일한 만큼 가져간다. 이게 락이다. 이것만 주지시키도록 하지.”

연설은 체질에 맞지 않아서 말이다.

* * *

락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규모 물자, 아니면 여객 마차 행렬이 오간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에게는 규모에 따라 호위가 붙는다.

오늘은 백여 명의 호위병들이 락으로 들어왔다.

한 달에 한 번 마정석과 금괴들을 에렌으로 판매하는 데, 그날이 바로 이틀 후였기 때문이다.

“주군!”

그리고 규모가 규모인 만큼 그 호송대의 대장은 토니였고, 기다리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한 기세로 달려왔다.

“토니 경, 정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주군께서는 더 의젓해지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 같은 느낌.

“백작님이 되셨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락의 경사입니다.”

아버지도 그리고 락의 삼대 기사들도 토니에게는 반존대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락의 원주민들의 대표 중 하나인 그는 예전부터 영지의 일에 솔선수범해 온 인물이니까. 그래서 일반적인 군신 관계라 할 수는 없다.

“감사합니다. 이제 현역으로 움직이지 않으셔도 될 텐데, 여전히 직접 움직이십니까?”

“무슨 그리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아직 끄떡없습니다.”

정말 서운하다는 표정을 보며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도 포기하지 않고, 포스에 대한 열정을 가졌던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는 무조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고.

“제게 토니 경은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혹여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늘 걱정되는군요.”

“주군께서 이리 지대한 관심을 주시니……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거 조금도 없습니다. 예전보다 지금이 더 활력이 넘치고 있으니까요.”

토니는 자랑스러워함과 쑥스러운 두 가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드디어 검에 포스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포스를요?”

감탄할 만한 일이다.

토니의 능력은 사람과 어울리는 대인 관계, 거기서 나오는 통솔의 능력이지 무력이 아니다. 마흔 넘어 포스를 배운 탓에 그 진도가 매우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포스를 알지만 포스 유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초에 건강이라도 챙겼으면 했을 뿐.

그런데 무기에 포스를 입힐 수 있으면, 포스 유저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토니 경.”

“모두 주군의 덕분입니다. 처음 포스를 배웠을 때만 해도…… 그저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기뻤는데…….”

감정이 북받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니, 가슴 한편이 시리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거기까지 포스를 발전시켰다면 나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토니 경, 잠시.”

그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누우라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이신지…….”

당황한 토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누워서 천천히 호흡하시면 됩니다. 제가 처음에 가르쳐 드린 방법대로.”

그는 뭔가 예상한 듯 비장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을 아니 웃을 수는 없었다. 그저 앞으로 도움이 되길 바랄 뿐.

호흡을 하는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별건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기로氣路, 그러니까 포스의 길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뿐이니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주군.”

“그냥 편하게요. 대화를 하셔도 됩니다.”

그의 긴장을 풀어 주며 운기를 시작했다.

‘확실히…… 노력을 얼마나 했던 것일까?’

나이 든 육체와 내근. 그럼에도 포스의 소통은 어렵지 않았다. 꾸준하게 하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기로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통제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주군…… 이게…….”

그때 토니의 음성이 심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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