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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91화 (19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91)

에르자일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이 아이에게까지 그리 보였던 건가?’

고작 이틀 만에 말이다.

‘나 에르자일이야.’

여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달 붙어 있었다고 로라스와 자신의 관계를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문제가 아니다.

분명 느꼈다.

‘성녀’라는 신분에 전신에 흐르는 그 요기는 마법이 아니고, 신성력은 더더욱 아닐 터.

설명할 수 없는 그 기운이 에르자일은 마음에 너무 걸렸다.

여하간 그렇게 ‘단장’이라는 걸 하니, 자신감이 좀 붙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왜 자신을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만나서 부딪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응접실로 내려가니 아델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환한 웃음, 상냥한 목소리로 자신을 반기는 그녀를 보며, 에르자일은 솔직히 당황했다.

어젯밤, 로라스가 그리 나가고 더 이상의 대화도 없이 헤어졌는데 말이다.

“앉으세요. 제가 가지고 온 차가 제법 맛이 있답니다.”

에르자일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델리나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내리는 걸 지켜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마치 죽었던 친여동생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

물론 자신은 남자 형제 한 명 없는 외동.

‘요녀 맞아.’

그 사실을 깨달은 에르자일은 화들짝 놀라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은 아니다.’

마법이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다.

7써클의 벽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 어떤 마법사도 자신의 눈만큼은 속일 수 없다.

쪼르르.

찻물이 찻잔에 담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해 봤는데요.”

그리고 들리는 아델리나의 목소리.

“무슨 고민을 말하는 겁니까?”

에르자일의 물음에 아델리나가 대답했다.

“그분의 문제 말입니다. 다음 스텝을 밟아 가야 하지 않겠어요?”

“…….”

“명성은 갖췄으니 이제 실제적인 세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좋은 방법이 있으세요?”

에르자일은 반문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지? 다음 스텝? 명성은 뭐고 실제적인 세는 뭐야?’

어제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자신이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이유는 로라스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에르자일의 침묵이 길어지자 아델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을 보좌하시는 분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말끝마다 그분, 그분 하는 게 귀에 거슬렸다.

자기가 뭐라고 로라스를 그분이라 칭한단 말인가?

“그중에서 제일은 에르자일 님이시고요.”

“…….”

“그래서 에르자일 님과 가장 먼저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그분의 행보에 대해서 계획하신 것이 있으신지.”

……!

에르자일은 뒤통수에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야? 너?’

누군데 이토록 자신을 이렇게 초조하게 그리고 초라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액션을 취한다면 크라운에서 만든 명성이 한참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싶어서요.”

에르자일은 아델리나를 한참 동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거.”

“네?”

“젊은 정복자, 차기 제국의 검,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

에르자일은 지금 신드롬처럼 열광하고 있는 로라스를 칭하는 단어의 조합들을 입 밖으로 내었고.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뜻밖의 적이 적진에 있었던 바람에, 덕분에 연출은 대성공했지만요.”

에르자일은 입을 꽉 다물었다.

고작 임프리아를 상대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관심, 특히 로라스에 관해 모든 것이 부풀려졌다고는 생각했다.

아니, 로라스의 실력은 의심할 것 없이 진짜지만, 고작 임프리아를 상대로 이런 광풍은 이상했다. 하지만…….

‘네가 그걸 만들어 냈다는 거지?’

아델리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정말 잘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로라스는 에렌의 후계 후보 중 하나였지만, 실제로 에렌에 실제적인 영향력은 없다.

락이 있다지만, 아직은 외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로지 베스타인 공작의 비호뿐이었다. 물론 흑사회를 장악하긴 했다.

하지만 후계 싸움에 흑사회는 숨길 존재지, 공개할 존재는 아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임프리아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에펠리온 교단을 중심으로 로라스를 정말 신격화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들었다. 에렌 역시 그 영향 때문인지, 말도 안 되는 존재로 소문이 나 있었다.

실제적인 세를 만들어 내는 게 훨씬 쉬워졌다.

“다행히 에렌에서 그분의 인맥이 상당하더군요. 특히 마탑과 아이언센터의 인맥은 아주 중요해요. 두 마스터가 대놓고 후계자를 지지하지는 않았다지만, 그분의 우호적인 세력이라는 걸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요.”

“혹시…….”

“네. 말씀하세요.”

에르자일은 그녀를 직시하며 물었다.

“모두 계획된 거였나? 앞으로 로라스 행보를 위해서?”

아델리나는 그 무슨 당연한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전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 가면서, 머리 굴릴 필요는 없잖아요.”

“…….”

“일단은 그분을 무조건적으로 믿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요. 일단 그분을 찬양할 사람은 많아요.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락에 유입될 거예요. 그게 시작입니다.”

아델리나는 계속 말했고, 에르자일은 자신이 입을 벌린 채로 그것을 듣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빠져들었다.

“종교 집단 그리고 그분을 신 같은 존재로 부각하는 거죠. 그게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그렇게 세를 불리겠다는 그녀의 계획에 디테일은 없었다. 하지만 듣고 있자면 그런 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아델리나 말처럼 될 것 같은 게 중요했다.

“그래서 최종 목적은?”

아델리나는 다시 한번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황제이지요.”

에르자일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질투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겉모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한 얼굴을 가지고 다 산 늙은이, 노련한 정치인이 할 법한 내용을 입 밖에 꺼내고 있었다.

광신도(狂信徒).

그녀가 만들겠다는 사람들. 이미 그녀는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이 로라스에 대한 영광에 초점이 맞춰 있다는 것이다.

지칭도 그렇다.

자신을 두고도 로라스를 보좌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듯이, 그녀의 중심에는 로라스가 있었다.

그래서였다.

그녀가 자신을 밀어낼 거라는 위기감이 든 이유는 말이다.

‘겁먹었어? 내가? 이 에르자일이?’

평범한 여자라면 위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자일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아델리나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지능?

그녀는 스물 무렵에 ‘매지스터’라는 칭호를 받았고, 서른도 되지 않았음에도 7써클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마법사세상 물정 모른다는 것도 옛말이다.

락에서 수많은 토벌을 겪었고,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았다.

정말 세상 물정 몰랐다면, 아델리나의 말에, 그 계획을 이해 못 했을 것이고.

‘인정해야지.’

에르자일은 아델리나를 연적으로서 인정했고, 그런 그녀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 * *

“참…… 할 일도 없지.”

로라스는 책상 위에 말 그대로 더미를 만든 초대장을 보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 이상이었다.

테라에게도 듣긴 들었지만, 이건 정말 자신이 흡사 괴물이 된 듯한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 덕분인지, 탓인지, 성내에 안면이 있던 자들의 관심이 너무 높아졌다.

그리고 저 초대장들은 외부의 관심이었고 말이다.

서른도 안 되어 황제가 직접 임명한 백작, 베스타인 공작이 점찍은 후계 후보. 에펠리온 교단이 인정한 성기사 등. 굵직굵직한 타이틀이 걸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불편하잖아.’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운신의 폭이 좁아짐을 느낀 로라스였다.

똑똑똑.

로라스가 그렇게 물끄러미 초대장들을 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로라스.”

“아버지.”

에듀는 방으로 들어오다가, 책상 위에 놓인 초대장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너무 유명한 아들을 뒀구나.”

“별 의미는 없지 않겠습니까?”

“의미라…….”

에듀는 편지 더미에 시선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잘난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속 한 번 썩히지 않고, 혼자 알아서 이리 잘 커 버렸다.

가끔 섭섭할 때도 있다.

아비란 원래 그렇지 않나?

아들을 상대로 뭔가 가르쳐 주고 싶고, 자신이 하나의 지침이 되고 싶은 그런 거. 하지만 이 잘난 아들을 상대로 그럴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냐?”

“원하지 않으시잖아요?”

로라스의 반문에 에듀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에 걸렸다.

에렌의 후계자.

절대 가벼운 무게가 아니었다. 하지만 로라스는 원한다면 언제든 얻을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게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말마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자신 때문일 것이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아비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

“내가 원하면?”

물으면서 에듀는 로라스의 눈을 살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에듀를 보며 로라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없는 말씀을 왜 하세요.”

“…….”

“혹시 아버지가 제 앞길을 막고 있다, 뭐…… 그런 생각 하는 건 아니시지요?”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처럼, 속내를 파악한다. 그런 로라스를 보며, 에듀는 다시 한 번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제가 있는 겁니다. 에렌의 후계자보다는 아버지의 그리고 락의 후계자가 제게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는구나.”

“사실이니까요. 모든 게.”

“…….”

“그런데 그 걱정 때문에 오신 거예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었는데 말이다.”

로라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걸 하면 되지요.”

“그럼 일단 그 이야기나 해 보자꾸나. 대체 뭘 어찌한 거냐? 네 엄마 때문에 있던 일을 다 하지 못했을 텐데.”

부자지간에 무엇을 속일까?

로라스는 솔직히 모든 걸 말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이 아델리나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까지.

“종교라…… 양날의 검이지.”

“그만큼 잘 드는 검이기도 하지요.”

로라스는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해 거론했다.

“자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현명한 사람이니 큰 문제는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는 성녀가 왜 그리 널 도우려고 하는 거냐?”

“그게…….”

로라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동맹 관계라 생각했다. 어차피 그녀도 곧 교단의 후계 싸움을 시작해야 할 터.

그때 자신에게 도움이 청할 거라고 생각했고 자신 역시 힘이 되어 주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근래 고민이 들었다.

‘현명하고 강하다!’

다른 후보들이 어떤 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경쟁에 밀릴 것 같지 않았다. 특히 그 특이한 사술의 힘은 매우 막강했다.

웬만한 정력이나 항마력을 갖지 않는 한 버텨 내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여하간 그리 생각했는데 말이다.

‘정말 그런 건가?’

며칠 전 그녀가 에르자일과 기 싸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도 확연치 않았다. 정말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쪽으로 마음이 있는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에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락의 힘을 빌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으음.”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쓰기 나름 아닙니까? 와카디아에 각기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데, 종교가 단합시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그뿐이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긴 하지.”

에듀는 그리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며칠 후 락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에렌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너는?”

“일 몇 개 마무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같이 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영지 사람들도 보고 싶고, 분명 더 발전되었을 영지도 보고 싶다.

‘하지만 마무리는 하고 가야지.’

베스타인 공작도 봐야 하고, 일단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확실하게!’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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