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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86화 (18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86)

휘이잉!

카벨로의 지팡이가 움직임을 멈출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압축되었고.

퍼어엉! 퍼어어엉!

그를 상대로 하는 아델리나의 하얀손은 움직일 때 마다 압축된 공간이 터져 나갔다.

마법을 적중시키려는 자와 그것을 미리 와해하려는 자.

자신의 손을 갖다 대려는 자와 그것을 허용치 않으려는 자.

두 사람의 싸움을 표현한다면 딱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벨로는 쉽사리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아델리나를 보며 생각했다.

‘체술만 익힌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신성력보다는 포스가 앞서고 있는 것 같다. 내 착각인가?’

착각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전투 경험 중 성직자도 상당 숫자가 있었다. 당연히 신성력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성녀가 주로 쓰는 힘은 신성력이 아닌 포스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의 포스반면 아델리나는 카벨로의 강력한 대항에 진기를 더 끌어 올리고 있었다.

‘역시 쉽지는 않다는 건가?’

강하다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근접전에서 이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마법 사용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이게 가능할 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나마 위력은 약했기에 균형을 유지하며 몰아붙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쉴 새 없이 싸웠다.

‘그래도 내가 이긴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했다.

카벨로 입장에서 아델리나는 잘 버티고 있으나, 막고, 파훼하는 것에 급급하니 피해가 누적되고 있을 거라 여겼다. 시간만 좀 끌면 곧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터.

아델리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접전에 능숙하다고 하나, 마나를 사용하는 자다.

순수한 체력이라면 자신이 앞설 터.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빈틈에 손을 날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퍼어어어엉! 퍼어엉!

계속되는 폭음은 주변 사람들이 듣기에 충분했다.

“암살자다!”

“신전에 암살자가 침입했다!”

“성녀님! 성녀님을 보호해!”

근처에 성기사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병사들까지 창을 쥐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아델리나는 말 그대로 성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손상이 간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젠장!’

사람이 몰려오는 소리에 카벨로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리 소란이 일어난 이상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기에는 글렀다.

퍼어어어엉!

“운이 좋구나! 계집!”

카벨로는 강력한 풍압으로 아델리나를 떨어트려 놓으며 하는 말에, 아델리나는 눈을 치켜뜨며 받아쳤다.

“누가 할 말인지 모르겠구나. 제법 발악이란 걸 할 줄 아네. 진즉 알았다면 빠르게 목을 쳤을 텐데.”

“입은 잘 놀리는구나.”

“꼭꼭 잘 숨어 다녀. 다음에 보면 그런 막대기 휘두를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다시 보면 넌 내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은 카벨로는 물론이고, 난전으로 그를 상대하고 있던 아델리나에게도 부담.

결국, 둘은 그렇게 싸움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카벨로는 벗었던 후드를 찾아 눌러썼다. 그러고는 마법사라고는 믿기지 않은 움직임으로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런 카벨로를 보며 아델리나는 생각했다.

‘일단 소수공부터 완성시켜야지. 신성 마법의 재미에 빠져 약간 등한시했다고 저런 놈 하나 잡지 못하다니…….’

분명 예상했고 방심하지 않았음에도 잡지 못했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귀찮겠구나!’

아델리나는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우아아아아!”

임프리아 성을 함락시킨 제국의 병사들은 크게 함성을 질렀다.

위기 따위는 없었다.

초전의 그 엄청난 마법 트랩 때문에 나름대로 신중하게 진군한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임프리아의 군대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었으며, 지휘관이라는 것들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결국 파락호와 비슷한 무리 아니던가!’

차라리 일개 기사가 지휘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항복한다. 하지만 짐에 대한 예우는 갖추라.”

포로로 잡힌 주제에 제 할 말은 다 하는 임프리아의 왕 슈카를 보며, 로라스는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왕께서는 전쟁에서는 보이지 않으시더니, 안에서는 기백이 넘치시오?”

“짐이 미리 대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하의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고생해야 했을 것이다.”

“정말 그리 생각하시오?”

“당연하지. 짐이 가지고 있는 것들만 풀어도 세상이 떠들썩해질 테니까.”

항복한 작은 나라의 왕일 뿐이나, 저런 당당한 태도가 계속되니 흥미가 일었다.

‘감춰 둔 재산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되니 더더욱 관심이 갔다.

사실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렌이 계획을 세울 때, 전쟁의 승리 후 얻을 전리품까지 포함시켰다. 하지만 함락해 놓고 보니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무구들은 고철이나 다름없었고, 말들도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그 마법 트랩을 설치했으니 아마 국고도 텅텅 비어 있을 터.’

조사 중이나 크게 기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왕이 저리 말하니 새로운 기대란 게 생겼다.

어차피 제국으로 데려갈 때까지는 건강도 관리해 줘야 할 터.

“까미유.”

“네. 백작님.”

까미유가 가까이 다가오며 하는 대답에 로라스는 말했다.

“잘 모셔라. 불편한 것 없이.”

“알겠습니다.”

로라스는 다시 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리고 잘 감시해라. 특히 메리어트 쪽 사람이 접근 못 하게 하고. 전공 때문에 어떻게든 비빌 구석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공은 용감하게 싸운 자들에 돌릴 것이다. 무능한 지휘관은 쳐 내야 하지 않겠어?”

까미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결의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꼭꼭 숨겨 두겠습니다. 누가 뭐라 하면 백작님의 명령이라 하겠습니다.”

까미유는 전투 능력도 훌륭했지만, 이런 눈치가 좋았다. 남의 기세를 이용하면서도 기분 나쁘게 하는 법이 없다. 처신을 잘한다고 할까?

로라스는 까미유의 어깨를 쓸어 주고는 말했다.

“오늘은 더 이상 보고받지 않겠다. 자잘한 건 까메유하고 잘 처리해 보도록. 승전 처리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일 테니.”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까미유를 보내고는 로라스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굳은 표정의 번천이 있었다.

“왜 그렇게 굳어 있나?”

“아닙니다.”

번천이 급히 대답하자, 로라스는 혹시 번천이 섭섭해하는 것 같아 물었다.

“저들 형제에게 모든 일을 맡겨서 그래?”

“그럴 리가요. 현명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네 밑에서 일할지도 모르는데.”

“네? 제 밑에서요?”

“계속 함께 갈 인재다. 그렇다고 너랑 동급으로 둘 수는 없잖아.”

“아…… 그건…….”

“네가 나를 따른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런 너와 비슷한 급으로 쓸 수는 없다.”

“주군…….”

“이상한가?”

번천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는 신분과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주군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락에서 병사들부터 기사들까지 신망받지는 못했을 터.

병사들과 함께 땀 흘리던 게 엊그제 일만 같은 번천이었다.

그런 번천을 보며 로라스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구애받지 않는 게 좋지만, 일정 수준에 올라서면 반드시 그래야 해.”

“…….”

“모두가 같을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권리가 같을 수 없기에 의무도 같을 수 없는 것이고.”

……!

“네가 날 오래 따랐으니 솔직히 편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주어진 책임은 무거울 거야. 그게 자신 없으면 내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 번천.”

번천은 자신이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군. 부족하다 싶으면 내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로라스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야지, 넌 내 두 번째 기사…….”

“첫 번째입니다.”

“그거 테라가…….”

“기사 서임을 받을 때 테라와 토니 님과 함께였습니다. 제가 두 번째가 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로라스 입장에서는 엉뚱한 반발 같을지 모르나, 번천은 진지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임시였습니다. 이제 백작님이 되셨으니 정식으로 임명해 주실 수 있으시니.”

강렬한 눈빛에 로라스는 급히 말했다.

“내가 그런 것을 결정하기는 곤란하거든, 정식 서임은 너희끼리 결판을 내고 이야기해.”

“제가 될 겁니다. 첫 번째는.”

“네 편은 못 들어 준다. 물론 테라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충분합니다.”

번천은 굳건한 얼굴로 대답하는 걸 보며 로라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마법사는 보이지 않는군.”

“그게 제일 이상했습니다.”

“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도망친 건지도 모르겠군.”

번천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놈은 보통 용병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놈입니다.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놈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마…….”

번천은 로라스를 보며 말했다.

“주군을 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현재 상황에서 놈이 자존심을 세울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요.”

“그럼 편하지.”

로라스가 편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아는 번천이 입을 열었다.

“놈은 제 몫이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볼 필요 없다. 난 내 사람의 것을 건드리지 않아.”

“주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손으로 끝내고 싶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번천의 말에 로라스는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번천, 복수에 내 도움을 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 지금 무슨 결투해?”

“…….”

“원수라고. 여기서 공정 찾고 싶어?”

“그건 아닙니다.”

“번천, 너는 네 시간을 내게 받쳤다. 네가 가진 배경. 너의 주인까지 너의 힘이 되는 거야.”

번천은 고개를 숙였다.

“왜? 놈이 네게 그런 짓을 할 때는 공평했나? 서로 간의 배움이 같았고 가진 것이 같았나?”

로라스는 대답 못 하고 고개만 숙이는 번천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우둔한 녀석.’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둔하다.

나설 때,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객사하기 딱 좋은 유형이다.

옛날 락 시절에는 이런 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있었고, 그를 도와줄 수많은 사람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락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그는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사전에 단속해야지.’

로라스는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번천을 약간이라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맡겨야 하지?’

제일 처음 생각나는 사람은 한사람이었다.

‘오리시암…….’

번천의 자존심은 상하겠지만, 그 밑에 두면 조금이라도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라스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제대로 안 하지?”

“저녁 없다.”

“처먹고 싶으면 움직여!”

“억울해? 억울하면 강해져!”

“밤에 몰래 오는 것도 환영한다. 하지만 시도해서 실패하면 목 날아가는 거 알지?”

모두가 이를 꽉 물고 있는 가운데 한 사내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저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그러면서 조직이랍시고 일반인들에게는 거들먹거리지? 너희 중 아무나 우리 산채에 왔으면 막내보다 못할 거야. 빌어먹을 새끼들.”

오리시암.

로라스의 명령에 와카디아 지역의 흑사회 조직을 체계화시키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왜 저래?”

“몰라!”

짧은 휴식 동안 사내들은 오리시암의 기분이 왜 저렇게 좋지 않은지 파악하려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답을 아는 이는 없었다.

‘어떤 새끼가 내 욕을 하는 거야! 아침부터 귀가 간지러워 뒤지겠네. 고함이라도 쳐야 좀 시원해지니…….’

반면 오리시암은 그러거나 말거나 귀 후비는 데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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