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84)
“용병 마법사! 용병 마법사는 왜 아직인 거야?”
임프리아의 왕, 슈카는 연신 소리쳤다.
“지금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확실하다면서! 모두 전멸시켜 다시는 감히 침략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
“찾아! 찾아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해.”
슈카는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나라의 명운을 건 승부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왕국은 제국의 공격을 버텨 낼 힘이 없었다. 아니 제국뿐 아니라 주변 그 어떠한 나라와도 그렇다.
‘미친 황제는 대체 뭔 생각으로!’
왕국의 국력이 약하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국가 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매해 제국과 주변 나라의 실세들에게 은밀히 뇌물을 줬다.
힘이 워낙 약한 데다, 나라에 특별한 특산품도 없다. 그 정도만으로도 자신의 왕국은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제국의 선전포고를 받고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에펠리온 교단은 뭔 억하심정이 있는지 성전을 선포했다.
억울했다.
자신의 왕국이 국외 범죄자들의 도피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세금 대부분이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게다가 세력 있는 자들도 술, 도박, 여자를 찾아 은밀하게 왕국에 출입해 오지 않았던가.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찾은 게 켄트라미우스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용병단, 용병 길드 연합에 등록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용병단이다.
의뢰 성공률 100퍼센트에 가까운, 이기는 싸움만 한다는 용병단.
당연히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최소 의뢰 비용만 천금에 이르렀다.
설마설마하면서 의뢰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다. 초전만큼은 필승으로 적을 전멸시켜주겠다는 것.
압도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외교전을 펼치라는 조언과 함께 말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왕좌를 버리고 도망칠지, 아니면 승부를 걸어야 할지.
선택은 후자였다.
파산을 각오하고 수만금을 지불했다.
‘그런데 지금 이 결과는 뭐냔 말이다!’
보고받은 바로는 그들이 설치한 트랩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약속한 필승은 손쉬울 듯 보였다고 했다.
보였었다…… 참으로 가치 없는 말이다.
적 지휘관의 기적 같은 위력.
말도 안 되는 천재지변 같은 일이라 했다.
그게 무슨 변명이냔 말이다. 실패는 실패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제국의 군대는 점점 진격해 왔다. 사흘 후면 이곳에 도착한다고 했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같이 대책을 세워 줄 사람이 없다.
‘용병 따위를 믿은 내가 잘못인가?’
용병 연합 길드에 등록되어 정식으로 계약했다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받고,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켄트라미우스는 등록되지 않은 용병단.
자신만 완전히 망했다고 봐야 했다.
“찾아! 찾으라고!”
슈카는 신하들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전하!”
그때 신하 하나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찾았느냐?”
“그게…… 이걸 보십시오.”
슈카는 신하가 내미는 서신을 받아, 거칠게 겉봉투를 뜯었다.
―켄트라미우스의 이름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 * *
실수다.
아니, 실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끌 수 없는 불을 질렀는데, 그때 하늘에서 폭우가 내린 꼴이다.
‘실수가 아니라 아쉬운 거지.’
봤으면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전멸일 줄 알았는데 살아남은 자들이 상당수라고 했다. 그것도 미끼로 쓰였던 임프리아 병사들까지 말이다.
‘로라스라…….’
아무래도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름을 들은 적 있다. 마법 학회에서 헤르메스가 발표했던 논문이 있었다.
‘포스가 마나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연구 보고였던가?’
거기서 ‘로라스’라는 이름을 보았다.
워낙 독특한 이론이라 몇 번이나 읽었기 때문에 기억났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헤르메스가 어떤 여자인가?
그 건방진 성격 때문에 인사 한번 나누지 않았지만, 그 실력만큼은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법사다.
그런 여자가 자신이 발표한 연구에 이름을 넣어 준다?
그렇다는 건, 분명히 실력 있는 마법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창을 휘두르는데 마법진이 갈라졌다 했다. 그냥 갈라진 수준이 아니라, 활로를 열었다고?’
이건 포스 마스터라고 봐야 했다.
‘마검사란 말이지? 듀얼 마스터.’
자신의 기준에서 마검사란 겉멋만 잔뜩 든, 하나만 파도 모자란 분야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경지의 놈들이나 하는 모호한 포지션.
대단하다고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켄트라미우스’라는 이름이 무너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마법 트랩이 무효화되었다는 걸, ‘칠 인의 좌’ 중 다른 사람들이 알면 비웃음당할 것이다.
특히, 얼마 전 새롭게 칠 인의 좌 중 하나를 차지한 그 애송이가 알게 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건방진 놈!’
놈은 포스 마스터.
그래서인지 유독 자신을 얕보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 놈에게 두고두고 비웃음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지휘관의 목이라도 따서 안겨 주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카벨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주군!”
번천은 로라스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나? 누가 죽었나?”
“반가우니 그렇지요.”
“반가우면 기뻐해야지. 그리고 전쟁 중에 눈물은 좋지 않아.”
탓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표정만큼은 아니었다.
문제가 없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그를 보니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로라스는 손짓을 하여 그에게 앉으라고 하며 물었다.
“함정에 대해 경고했었다지?”
“네. 오면서 들었습니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그렇게 칭송만 받을 일은 아니었지. 많이 죽은 것도 사실이니까. 함정에 대해 성녀님에게 더 경고했어야지. 그럼 메리어트 남작이 그리 달려들기 전에 손썼을 텐데.”
“네?”
번천은 순간 의아해하며 소리를 냈다.
자신은 아델리나에게 확고하게 경고했었다. 그때 일어나려다가 이틀은 더 누워 있어야 하지 않았는가.
번천이 그런 의문을 말하기 전에, 옆에 있던 아델리나가 먼저 말했다.
“제 실수입니다. 번천 경은 확실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제가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가듯 말한 거니까요.”
“자책까지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그건 예상 밖. 그러한 문제이긴 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번천은 생각했다.
‘아무 문제 없을 거라더니…… 뭔가 전달이 잘못되었던 건가?’
번천은 의문은 들었으나, 아델리나가 의도적으로 로라스에게 별일 아닌 듯, 주의 줬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면서 로라스의 평판이 그리고 명성이 어떤지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델리아는 이미 같은 편이라는 개념이 들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역시 자신이 직접 말해야 했다는 자책감이 약간 들었을 뿐.
“그걸 어찌 알게 되었지?”
로라스가 다시 묻는 말에 번천은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마법 트랩을 설치한 마법사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수’라는 사실도 말이다.
번천의 이야기를 들은 로라스는 잠시 침묵했다.
‘다행이라 봐야겠군.’
번천의 원수가 용병 마법사라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번천에게 대단한 마법사라 들었지만, 당시 번천의 실력을 생각하면 웬만한 마법사들은 다 그리 보였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번천 혼자 그리 찾아 헤매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말대로 대단했다. 그렇게 사용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 수도 있었고.”
“이제 다시 허락을 구하려 합니다. 주군께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놈을 두고 왔습니다. 잡으러 가야 합니다.”
“번천.”
“네.”
“나도 잠시 긴장했을 정도의 강자다. 이길 수 있는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놈이다?”
“그렇습니다. 주군.”
번천의 눈에 불이 일었고, 로라스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네가 처리당하면?”
“팔 하나는 가져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자신 있습니다.”
로라스의 음성이 높아졌다.
“넌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구나, 번천!”
“주군, 이건!”
“네 목숨은 너의 것이 아니야! 나의 것이지!”
“…….”
“그리고 난 널 그딴 쓸데없는 것과 바꿀 생각이 없다. 내가 그걸 뭐에 써먹을까?”
“주군…….”
“영악해져라, 번천.”
“…….”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야지, 왜 질 싸움을 억지로 하려는 거지?”
번천은 고개를 숙였다.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수긍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로라스가 말했다.
“사내의 복수는 십 년도 길지 않다고 했다. 이건 확실히 해낸다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
“네가 죽고 팔 하나 자르면 복수가 이뤄진 것이냐?”
“아닙니다.”
“복수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해라, 번천.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놈을 발밑에 꿇리고, 생살여탈권을 손에 움켜잡아. 그리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 그게 완벽한 복수라는 것이다.”
번천의 고개가 들렸고, 로라스는 다시 말했다.
“내가 그리되도록 할 것이다. 너는 따라만 오면 된다.”
“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 그래야 너답지.”
로라스는 번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놈이 임프리아에 고용된 용병이라면 반드시 다시 부딪치게 될 터. 일단은 때를 보자.”
“네. 주군.”
로라스는 아델리나를 보면서도 말했다.
“성녀님.”
“네. 백작님.”
“당분간 선전은 그만하셨으면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델리나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로라스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신격화되는 것 원치 않습니다. 사람이 맹목적이 되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되고, 놓치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좁아집니다.”
“저는…….”
아델리나가 뭔가 변명하려 했지만, 로라스는 단호했다.
“그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델리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너무 나갔나?’
하긴, 좀 소란스럽긴 했다.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분이다. 조금은 자제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늘까지 도와 그런 광경을 만들어 냈는데, 이걸 제대로 써먹지 못하면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탈락이다.
‘그나저나 용병 마법사라……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겠는데.’
이미 히든아이에게 연락해 둔 상태.
‘흑마법사라고 하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여차하면 내가 직접 나서고.’
아델리나는 이미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가 있었다.
마법사 따위가 로라스 님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분야가 조금 다르다.
‘뭐든 최고이시지만…… 그중 집단전은 견줄 자가 없으시니.’
옛날부터 무림 일통을 꿈꾸던 세력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
하지만 당시 천왕성이 그것을 이뤄 낸 이유는 간단했다.
천왕성주 유역후.
천하제일고수면서도 집단전에서 그 위력은 다른 고수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래서 ‘천하제일고수’라는 명성보다 전신(戰神)의 명성이 앞선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전쟁?
그건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지만, 스승님은 달랐다.
한 명이 따를 때, 백 명이 다를 때 그리고 천명이 따를 때 그 위력은 그 이상의 차이가 났다.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은 물론이고 사형제들 모두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었다.
“정형화되지 않아서 그래요. 사부님은…….”
막내만이 그럴듯한 추측을 하였었을 뿐이다.
‘그러니 적은 예측할 수 없고, 이성보다는 본능이 더 무서운 분이라.’
여하간 전쟁은 문제가 아니다. 이긴다고 했으니 이길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사 같은 저급한 것을 상대할 때는 조금 다르다.
어쩌지는 못하지만, 상당히 귀찮음을 유발할 수가 있다.
‘고민해 봐야겠네.’
그렇게 임프리아 왕성에 하루 거리까지 진격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