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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79화 (17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79)

“지……독한 놈!”

‘켄트라미우스’라는 뜻을 알 수 없는 용병단의 간부, 롱비엔은 쓰러진 적을 보며 치를 떨었다.

쉬운 임무라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적의 숫자는 고작 하나.

이런 임무에 자신을 보낸 단장이 원망스럽다고까지 생각했을 뿐이다.

‘불구로 만들어도 되니 숨만 붙여 데려와.’

물론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붙긴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지나쳤다.

용병단 서열 5위인 자신과 6위이며 마법사인 란비엣을 동시에 보낸 건 말이다.

“헉헉…….”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면 단장이 맞았다. 아지 단장도 놈을 얕봤다.

롱비엔은 란비엣에게 시선을 던졌다.

“괜찮냐!”

란비엣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용병단 소속으로서, 그리고 함께 싸운 전우로서, 그의 어깨에 심각하게 입은 상처를 보면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마법이 듣지 않아!”

란비엣은 대답 대신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주력은 공격 마법이지만, 응급처치로는 훌륭한 치료 마법을 알기도 했다.

번쩍. 번쩍.

스스로의 어깨에 댄 왼손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봐 왔던 롱비엔은 저게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다.

‘번쩍’이 아니라 ‘버어언쩍’이 돼야 한다. 길게 빛이 나야 하는데 저리되는 걸 보면 마법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관계임에도 같은 동료라서, 아니면 죽을 고비를 넘겨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거 써라!”

롱비엔은 귀한 포션을 란비엣에게 던졌다.

일반적으로 포션이 가진 불투명한 빛의 포션이 아닌, 보랏빛이 은은하게 도는 포션이었다.

란비엣도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사양할 때가 아닌 것을 깨닫고는 포션을 집었다.

“나중에 갚도록 하지.”

그리고는 포션의 마개를 열려는 순간이었다.

“너희…… 누구냐?”

켄트라미우스의 단원은 순간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실력은 제법인 것 같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사내는 느긋하게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죽은 건 아니지?”

“…….”

“그 손에 든 거, 저쪽에 쓰면 확실히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어진 사내의 말에 포션을 쥔 란비엣의 눈빛이 흔들렸다.

‘언제 온 거지?’

전투 직후라 하더라도 장애물 하나 없는 이 공간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여유로운 분위기는 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적인가? 아니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건 정말 필요한 사람이 써야 하지 않겠어?”

손에 든 포션 병이 순식간에 빠져, 그 사내의 손에 들어갔고, 사내는 자신들이 추적해 쓰러트린 놈에게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누구냐!”

롱비엔이 다시 검을 뽑아 들며 소리치는 물음에 사내는 대답했다.

“번천을 이리 만든 놈들이라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눈치는 없네?”

“…….”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사내는 그리 말하며 포션을 번천 곳곳에 뿌렸다. 하지만 움직이는 용병들은 아무도 없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본능을 매우 존중하는 편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육감이 자신들의 목숨을 수없이 살린 경험이 있었기에.

“더 없나?”

상처가 워낙 많아 포션을 금세 써 버린 사내가 물어왔다.

“더 없어? 뒤져서 나오면 죽는 거고, 미리 내놓으면 숨줄은 붙여 둘 텐데.”

순간 용병들의 손이 일제히 자신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움직임을 취하는 동료들을 보며 움찔했다.

“실력 있고, 눈치 없는데. 본능은 있다는 건가? 재미있는 놈들이군. 뭣들 해? 가져와.”

사내들은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러고는 가지고 있던 포션을 사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롱비엔과 란비엣은 기가 막혔다.

지금 이게 무슨 꼴인가?

비록 강적을 상대로 악전을 치른 직후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꼴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수하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자신도 그리고 란비엣 역시 포션을 빼앗기고도 한마디 못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구십니까…….”

결국, 용기 내서 한 거라고는 이리 입을 여는 것뿐.

“나? 로라스.”

순간 용병단원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들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냥 싸우기 전, 한 번 훑어볼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패배할까 봐?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눈으로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는 얼굴을 보았다. 그것도 소식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사람.

번천.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의아했을 뿐이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을 뿐이다.

부상당하여 혼절해 있다는 사실은 그다음이었다. 아니, 그런 상황에 당황해서 순서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번천은, 그만큼 내게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제법 실력이 있는 놈들. 하긴 그러니 번천을 저리 만들 수 있었을 터.

번천이 죽은 상태가 아닌 상황이기에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놈들은 번천을 치료할 때 방해하지 않고, 말도 잘 들었다.

“끄으으음.”

포션의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실력 있는 놈들인 만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번천의 호흡이 안정화되니 안심이 되었고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말한 게 있으니, 죽이지는 않을 거야. 말꼬리를 잡아, 어디 하나 부러트리지도 않을 것이고.”

한 말은 지킨다.

“제 분수를 아는 놈들인 것 같은데 살아 돌아갈 기회는 마땅히 부여해야지. 대신 몇 가지 물음에 대답은 해 줘야겠다. 소속이 어디냐?”

머뭇거린다.

당연한 반응이고, 결정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 주기로 했다. 여태 잘 행동한 것에 대한 상이다.

“그건…….”

그렇다고 오래 기다려 줄 생각은 없는데 말이다. 응급처치는 했으나, 시간을 두면 다시 악화될지 모르니 빨리 아델리나에게 데려가야 했다.

“누가 번천을 이리 만들라 지시했지?”

또 머뭇거린다.

“그 이름?”

잘 행동하다가 마지막에 바보 같은 선택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켄트라미우스 용병단입니다. 임프리아에 고용되었으며, 상부의 명령이라 직접적인 건 알지 못합니다.”

간결하면서도 요구한 건, 다 대답했다. 정말 영리한 녀석들이다.

“알았다. 가라. 그리고 웬만하면 나타지 마. 이런 기회는 흔한 게 아니니.”

주춤거리면서도 물러서는 놈들.

“말 한 마리는 남겨 두고.”

놈들은 끝까지 말을 잘 들었다.

뒤에 남기고 돌아오면서 번천을 봤다.

“찾았냐?”

“찾았겠지? 임프리아가 용병들을 대거 고용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놈도 여기 있었던 거야?

대답 못 하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번천을 홀로 떠나보내는 건 사실 내키지 않았다. 어디서 객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냥 기다리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꼴이다.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게 어딘가?

그 때문에 녀석을 이리 만든 놈들도 살려 보낸 거였다. 살아 있으니까, 일단은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내 생각보다 번천은 내게 중요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을 제외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 중 하나 아닌가.

믿을 만한 이,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귀한데, 번천도 그 귀한 사람 중 하나.

“실력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 조심은 했어야지.”

“얼른 일어나라. 전장의 경험도 쌓아야 할 테니까.”

* * *

“으으으으.”

정신이 제대로 들기도 전에 전신에 스며드는 저릿하면서도, 찢어질 듯한 고통.

“천천히, 숨을 고르고.”

그 와중에 소리가 들렸다.

“내 말에만 집중해요!”

집중하고 말고가 없었다. 고통에 눈은 뜰 수 없었고, 후각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신음을 내뱉기도 바빴다.

멀쩡한 건 듣는 것뿐.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덕분인지 오롯이 그 말만 따를 수 있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가?

전신의 아픔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마침내 눈을 뜰 수가 있었다.

끔뻑끔뻑.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에, 번천은 얼굴에 비해 크지 않은 눈을 그리 움직였다.

“누…….”

입을 여는 순간, 가라앉은 고통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눈앞의 이에게 보여 주기는 싫었다.

“누구십니까?”

그 짧은 물음을 던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결국 신음 없이 묻는 것에 성공했다.

“말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신성력으로 치료는 했지만, 아직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하는 게 좋아요. 빨리 일어나려면 말이지요.”

“…….”

“번천 님이라고 들었어요.”

“…….”

“보니까, 그분의 총애를 매우 많이 받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더 신경 썼어요.”

‘내 이름을 어찌 알고 있지? 그분은 또 누구야? 내가 누구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건데?’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으아아악!”

허리에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번천은 상체를 일으켰다.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미녀를 보며 번천은 소리쳤다.

“누구냐! 넌!”

“갑자기 흥분은 왜? 그보다 괜찮아요?”

“정체를 밝혀라.”

번천의 외침에 그녀는 신기한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사람이 참을 만한 고통은 아닌데. 어떻게 그분의 총애를 샀는지 궁금했는데 대충은 짐작할 만하네요.”

번천은 손을 뻗었다.

자신을 치료해 준 것 같고, 또 여자였지만 지금 어찌 된 상황인지 빨리 알아야 했다.

‘늦지 않아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과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은 육체 때문이었을까?

제법 빠르게 손을 썼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일 뿐. 그리고 그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제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어요.”

“커허허헉!”

어디를 어떻게 건드린 것인가?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완벽한 무기력화가 이런 기분일까? 문제는 빌어먹을 고통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크윽! 크윽!”

처음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참았다.

“로라스.”

……!

“그분의 이름이에요. 당신을 구해 온 것도 그분이고.”

“주군이…… 어떻게…….”

번천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함정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놈들에게 제압당하는 순간 갑자기 주군이 나타나 구출했다는 설명은, 이야기 꾸미길 좋아하는 음유시인도 하지 않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주군의 이름을 어찌 안 거지?’

이름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 자신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건 자신과의 관계를 안다는 뜻.

‘불가능할 것도 없지. 락에 정착한 시간이 오래되었고…… 놈이라면…….’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런 놈이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성실하나 영리하지는 않다고 그분이 말씀하셨는데.”

달콤한 목소리.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따르면 편할 거라는 유혹.

번천이 손가락을 기이하게 하고 그 채로 가슴에 올려, 뭐라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정신계열 마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다.

마법 저항력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푸훗!”

상당한 마법사인가?

“하하하하하!”

하지만 미칠 듯한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마법사였어요? 그 이야기는 제대로 못 들었는데.”

“…….”

“하지만 조심해야지요. 내 치료 마법은 신성 계열. 마나 계열의 치료였으면 지금 주문으로 엄청 고통스러워졌을 거예요.”

마법에 집중하느라 눈을 감고 있던 번천의 눈이 뜨였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에서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미녀.

“철저한 경계. 마음에 들어요. 정신 계열 마법은 늘 위험하지요.”

그리고 번천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마법이 감히 에펠리온 님을 흉내 낼 수는 없지요.”

그녀의 옷깃에, 소매에 새겨진 교단의 문양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천은 문양을 미처 보지 못했고. 그제야 그녀가 마법사가 아닌 성직자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문양을 걸고 이야기할게요. 믿으세요.”

신성력을 쓰는 성직자가 신벌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터.

“주군은 어디 계십니까!”

번천은 외치듯,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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