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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63화 (16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63)

뵈었다.

수많은 시간을 그리워했었다.

눈을 감으면 보았고, 꿈에서도 뵈었고, 눈을 뜨는 그 순간에도 그려졌다.

아버지였으며, 오라비였고, 어떨 때는 지켜봐 줘야 할 아이와도 같은 분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자신의 편이라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 전부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자신에게 절대 등을 돌리지 않을 단 한 사람.

그런 분이 실종되었을 때, 하늘은, 세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자신의 삶은 거기서 끝난 줄 알았다.

―방법은 있어요.

다행히 자신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그들과 함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기나긴 시간이었지만, 결국 그를 찾으러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핏줄 같은 이들과 같이 떨어졌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진정 몰랐다.

잘 버텼다.

정말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고, 마침내 힘을 되찾았을 때, 오래 계획했던 일들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 * *

아는 체할까? 말까?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고 할 만한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안면이 있는 관계.

꽤 심각해질 뻔한 고민이었지만, 다행히도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다.

“로라스 공자?”

그녀가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이거…… 뭐라 호칭해야 할 줄 모르겠군요. 나는 에펠리온의 교인이 아니니 성녀님이라고…… 그렇게 칭해 드릴까요?”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시면 됩니다.”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이름을 알려 준 게 확실한데.

‘별수 있나. 몇 년 전 딱 한 번 들은 이름인데.’

또 곤란해하니 그녀는 방긋. 정말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델리나’라고 합니다. 공자.”

“다음에는 잊지 않도록 하지요.”

다시 방긋 웃는 아델리나.

그때도 그랬지만 어째 유역후 기억에 있는 곽아와 쏙 빼닮은 느낌이다.

어렸을 땐 젖살 때문인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에르자일만큼 이쁜걸.’

판드가 홀딱 반한 쥬니스도 눈에 번쩍 뜨일 미모나, 눈앞의 아델리나에 비하면.

‘달빛 아래 반딧불?’

물론 지나친 추억 보정일지도 모른다. 에르자일 때도 곽아부터 생각나지 않았는가.

곽아는 무척 예쁘다. 그래서 이 세계 예쁜 아이들도 다 곽아로 보이는 공식이 머릿속에서 성립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곳은 어찌한 일로?”

“황명을 받고 크라운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

그녀는 살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델리나 님도요?”

“황명은 아니지만, 포교 문제로.”

“아! 그러시군요.”

잠깐의 정적.

그냥 인사를 하고 헤어져야 할지, 아니면 대화를 더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드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

“동행을 해도 되겠습니까?”

어렵게 꺼내는 듯한 그녀의 말에 깨달은 게 있었다.

“혼자입니까? 호위……. 아니 성기사분들은?”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혹시 부담스러우시면…….”

“아닙니다. 어차피 가는 길 어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게다가 아델리나 님은 성직자이시니. 저희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요.”

“일행이 있으십니까?”

“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식사는 하셨습니까? 저는 방금 식사를 했는데.”

“아! 저도 먹었습니다.”

“그럼 같이 움직이시지요. 제 일행도 소개해 드릴 겸.”

“감사합니다.”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답하는 그녀를 보며 미소가 절로.

‘응? 왜 갑자기?’

여하간 마주 답례하며 그녀를 숙소로 안내했다.

* * *

일행도 늘었으니 마차를 구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말은 노련하게 탈 수 있는 데다, 괜히 번잡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다닥. 다닥.

짐말까지 여섯 필의 말이 움직이는데도 말발굽 소리는 기가 막히게 규칙적으로 들렸다.

편안한 느낌에 소리에 호흡을 맞춰지는데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흐흐흐흐.”

판드다.

그리고 그는 하루에도 저렇게 실없는 웃음을 수십 번씩 흘리고 있었다.

“먼지 들어갑니다.”

“그게 뭔 대수라고. 돌덩어리가 들어와도.”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런 장거리 여행에서 동행자가 누구인지는 나름 중요한 법이었고.

“말이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쥬니스의 말에 반사적으로 자신이 타고 있는 말 목을 쓰다듬는 아델리나.

미녀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여인이 둘이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 먹이를 주기 위해 나무 아래로 이동했다. 그리고 해도 중천을 넘긴 지 꽤 되어 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오늘은 제가 당번이지요. 뭐 먹을까요?”

쥬니스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법 쓸모가 있네.’

요리도 요리지만, 말을 타고 가면서 그녀의 입은 쉬지 않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뭐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는 것도 많았다.

용병 생활이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국내의 일뿐만 아니라, 국외의 소식도 많이 알고 있었다. 거기에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전문가라 해도 믿을 정도로 해박했다.

“역시 에렌이 제일 중요하지요. 제국의 움직임을 알려면, 황도 크라운이 아니라, 에렌의 움직임을 알아야 할 정도로.”

“제국이 제일 평화롭지 않나?”

“가장 강력한 나라니까. 하지만 권력이 너무 집중되어 있어요.”

끓고 있는 물에 뭔가를 부지런히 넣으며 입을 여는 쥬니스. 그리고 그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판드의 대화에서처럼 말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황제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지요. 하지만 그의 권위도 에렌, 아니 북부에서는 잘 먹히지 않지요. 하늘 그 위를 장악하고 있는 게 베스타인 공작이니까요.”

“그래도 황제에 비할 바는.”

“국내에서는 황제지만 외국에서는 공작이 우선이에요. 제국 내전 당시 수많은 외국들이 호시탐탐 이쪽을 노렸지만, 결국 공작이 참전하면서 그런 수작은 한 번에 사라졌지요.”

듣고만 있어도 아는 게 늘어난다.

그 진위 여부까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하는 말 자체는 나름 그럴듯했다.

‘저렇게 아는 것도 쉽지 않은데.’

뭐, 저 정도의 실력이 있으니 이쪽으로 접근한 거지만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뻔한 소리이지 않은가.

남자가 여자에게 찝쩍거리는 일들은 술집에서 흔히 일어난다.

방금 이 말에 수긍했는가?

그렇다면 잘못되었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생면부지의 여자에게 말이라도 쉽게 걸 수 있는지를 말이다.

나는 아니지만 다른 놈들은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사람은 거기서 거기라는 거 정말 모르는가?

다른 사람 눈에 예쁘면, 내 눈에도 예쁘고, 내 눈에 못생겼다면 다른 사람 눈에도 못생겼다는 건 절대다수의 사실이다.

맞다. 술집에서 생면부지에 여자에게 성희롱을 하는 놈들은 극소수다.

‘그리고 그때 그놈이, 극소수의 그놈이라 하기에는 너무 순순히 물러났고.’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했다고 봐야 했다.

왜?

미안한 말이지만 판드가 이런 수작을 부려서까지 접근해야 할 사람은 아니고, 목표는 나일 것이다.

왜?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여자와 아이를 조심하라는 건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내려온 진리인 게지.’

쥬니스. 아마도 가명이겠지만 그녀는 내게 접근한 것이다.

왜?

어디선가 났던 방귀 냄새가 사라졌는데. 도둑 제 발 저리듯 찾아온 거 보면 하나뿐이지 않겠는가.

암살자, 자객, 어쌔신.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본질은 하나.

죽이러 온 거다. 나를.

알면서 왜 그냥 뒀냐고?

적절한 긴장감.

내게는 이게 필요했으니까. 게다가 저리 요리도 잘하고 말도 잘하니까.

요리에 독을 풀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래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요리는 꼭 먼저 먹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관찰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게. 그렇게 천천히 각인시키는 거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그렇게 주문 아닌 주문을 걸듯이 말이다.

하지만 독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꾸준히 면역력을 키워 오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몇 년간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면 원치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된다. 매 끼니 빠지지 않는 마물로 만든, 거기에 마나석을 뿌린 요리.

마물이 가지고 있는 독성이 자연스럽게 누적되면서, 그게 몸의 한 요소인 것처럼 그렇게 변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괜히 마물 요리를 먹는 게 아니다. 정력, 독성에 대한 면역력을 한 번에 키우는 거지.

그분이 그 자리까지 올라갈 때까지, 안 먹은 독이 몇 개나 있을까?

뭣보다 독이 몸에 들어오는데 내가 모를 리 없다.

‘판드나 아델리나가 휘말릴지도 모를 위험이 있지만, 그 전에 전조 상황이 있을 것 같으니 말이지.’

“다 됐어요.”

뚝딱뚝딱 빨리 스튜를 만들어 낸 아델리나. 역시 자신이 먼저 접시에 담아 먹기 시작했다.

‘저 실력으로, 이리 대담할 정도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아델리나가 가지고 있는 본신의 실력은 별거 없다.

다른 건 다 숨겨도 포스와 마나의 절대량은 내 눈을 속일 수가 없다. 최소한 나보다 경지가 높지 않다면 말이다.

‘더 높았다면 이리 복잡하게 일을 벌일 필요도 없고.’

여하간 본신의 저 실력으로 나를 잡으러 왔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럼으로 독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 뻔한 술수면 진작 그녀는 여태 살아 있지 못했을 테니.

여하간 나는 이리 동행하면서 그녀가 나를 잡기 위해, 무슨 이벤트를 준비했는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리 괜찮은 음식을 두고 걱정하는 건 아니지.’

이러한 사실들과 별개로 그녀의 요리는 확실히 맛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거야?”

스튜 그릇을 들고 판드가 아까 대화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전쟁이라 하기에는 움베리아 왕국은 가진 힘이 약하지요.”

“그런데 왜?”

“그들은 그냥 명분일 뿐이에요. 제국과 한바탕할 수 있는 나라들이 가지지 못할 명분을 움베리아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무슨 명분?”

“거기까지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이용하려는 것 정도.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 확률이 있다는 것. 내가 아는 건 그 수준이에요.”

그래, 이런 음식. 저런 정보들을 계속 제공할 때까지, 그녀를 지켜만 볼 것이다.

그 가치는 함정이란 걸 알면서 빠져 줄 만한 가치가 내게 있었으니까.

‘역시 정보 조직 하나가 필요해. 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정도의 정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게 또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카르이샤 숙부가 가지고 있는 걸 이용하기로는 했지만. 내 것은 아니니.’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면 진즉 샀을 터. 하지만 정보 조직은 돈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제일 좋은 건 기존의 쓸만한 조직을 잡아먹는 것.

토대가 있다면 돈으로 키우면 되는 문제이니.

‘가만…….’

내가 너무 멀리서 찾고 있다는 걸 생각했다.

연결고리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암살자만큼 그런 쪽에 해박한 사람은 없다.

사냥감과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냥감을 앞에 두고 왜 고민을 했을까.

‘기다려 줘야지.’

피포식자가 포식자에게 이빨을 드러낼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적…… 아니 예쁜 먹잇감과 계속 동행을 했다.

여행은 참으로 편안했다. 그러면서 적당한 긴장감까지 딱 좋다.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점점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기마 무리가 보였다.

“길을 비켜 주죠!”

판드가 급히 말했고, 나는 알려 줬다.

“적이다.”

“적? 저 사람들이?”

“무기 뽑아”

아직 똥인지 장인지 모르는 녀석에게 명확하게 현실을 인지시켜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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