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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58화 (15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58)

로라스가 돌아간 후 라르자는 의자에 몸을 눕히듯 기댔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로라스는 어리다.

성인이라 하지만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고작 이십 대의 애송이가 로라스다.

하지만 베스타인 공작이 후계 후보로 생각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존중받아야 할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만나 본 결과로는 자신이…… 아니, ‘베스타인 공작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흐음!”

라르자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렸다. 그러고는 턱 위로 손을 올리며 그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씹기 시작했다.

―견제는 중요하지요.

로라스는 분명 자신과 의견이 같았다.

대공자 디존슨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 일단 가장 견고한 성을 무너트려야 기회가 생길 거라는 것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아니 바짝 수그리고 있어야 한다니!’

로라스는 분명 그리 말했다.

―놔두셔야죠. 어떤 방해도 없이 백부가 뜻하는 대로 모든 게 이뤄지도록. 그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이미 할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생각하고 대하시는 게 상책이 아닐까 합니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물었었다.

그렇게 아무 견제를 하지 않으면, 대공자는 더 기고만장할 테고, 주변의 귀족들 역시 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생각하여 그에게 완전히 붙을 것이라고.

―그러면 더 좋지요.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그는 덧붙였다.

―백부는 베스타인 가문의 장자이며, 할아버지의 첫. 번. 째 아들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디존슨이 그런 사람이니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고, 모든 귀족들의 반 수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할아버지에게 첫 번째 아들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다. 모를 수가 없다.

자신도 아들이 셋이나 있는 가장.

모두 자신의 아들들이지만, 큰아들이 제일 믿음직하고,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작이 자신과 같은 일반적인 사람이던가?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관계만도 그리 애틋한 관계는 아니다. 특히 과거에는 에듀 때문에 찬밥 신세 비슷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느냔 말이다.

―더 기다려야 하고, 더 그의 편을 들어 줘야 합니다.

대체 왜?

라르자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판단은 틀릴 수 있어도 공작의 판단이 틀릴 리 없다. 그런 공작이 선택한 사람.

그 탓이었다!

―쌓여야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낮아 무너트려 봤자 별 타격도 없지요.

라르자가 로라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말이다.

‘설마…….’

그러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정말…… 거기까지 본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게 가능한 건가?’

라르자는 순간 서늘함이 가슴 속을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한기는 곧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정말 잘못 판단했는가?’

이번에는 로라스가 우둔해서가 아닌, 너무 현명해서다.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지?’

어쩌면 흉포한 늑대를 쫓아내기 위해, 어린 사자를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늑대는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늑대지만, 사자는…….’

라르자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를 정말 빌었다.

‘카르이샤 공자님의 그릇이라면…….’

그리고 카르이샤가 로라스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 *

‘아니 대체 그를 왜 신경 써야 하냐고?’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앞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 정치의 그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가?’

하긴 생각해 보면 권력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자들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나름대로 현재의 위치에서 목과 어깨에 꽤나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들이지만, 결국 할아버지 관점에 봤을 때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결국, 할아버지의 의중이 제일 중요하니. 디존슨을 견제하려면 할아버지가 하게 만들어야지!’

권력자는 죽는 그 순간까지 권력을 놓지 않는다. 뭐 약간 오버하긴 했지만, 최소한 죽는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놓지 않는다.

아무리 디존슨을 물고 뜯어도 할아버지의 의중이 변하지 않는 한, 그가 결국 후계가 될 것이다.

‘장자 우선이란 게 얼마나 큰 힘인데.’

할아버지가 다른 후보들을 세우긴 했으나, 그건 당신이 권력자로서의 주변의 균형을 생각해서다.

디존슨이 큰 실수를 하지 않고, 장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이 판을 엎기 쉽지 않다.

‘그러니 디존슨을 키워야지. 그래서 디존슨이 할아버지보다 더한 권력을 탐하거나, 도저히 그대로 둘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기 전까지 말이지.’

생각하면 여기의 권력 다툼은, 유역후 세계의 권력 다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거…… 정말 못 알아듣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힌트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못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설마. 그 정도까지 우둔하겠어…….’

뭐. 상관은 없다.

너무 똑똑한 것보다 적당히 우둔한 게 이용하기 편할 테니까. 무엇보다.

‘막내 숙부는 똑똑한 것 같단 말이지.’

아무리 군영의 막사라 하지만, 그 신분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출하다.

소문도 그랬다.

귀족답지 않은 소탈함과 검소함.

에렌에 자택이 있으면서도, 군영에 지냄으로 병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하는 뛰어난 장군.

‘거기에 겸손하여 하위 귀족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라…….’

꽤 거창한, 뭔가 있을 듯한 평판이나, 자세히 뜯어보면 영양가는 없다.

절대 권력에서 힘없는 자들은 별 영향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 이런 신분제 사회에서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런 막내 숙부를 기꺼워하실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막내 숙부를 똑똑하다고 하는 것이다.

‘뛰어난 장군이지만 권력욕이 없다는 것은 군주로서 최고의 인재일 테니.’

물론 그게 연극인지 아닌지는 지금 확인해 봐야 할 테지만 말이다.

“유명한 조카를 오늘에서야 보게 되는구나.”

“로라스입니다. 숙부.”

막사로 들어오는 그의 첫인상은 사내, 군인. 그런 이미지가 가득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풍성한 금발의 머리숱을 지녔지만, 꾸밈없이 짧게 쳤고, 얼굴 전체가 굵은 선을 지닌 사내였다.

“크라운으로 곧 떠난다 들었는데. 바쁘지 않으냐?”

“그러니 그 전에 인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허. 예의 바른 조카구나. 좋구나.”

그와 함께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보자꾸나. 연극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사람인지.’

카르이샤.

나의 막내 숙부를 파악할 시간이다.

* * *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허! 참…….’

몇 번이나 헛웃음 났다.

‘정말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지.’

카르이샤 숙부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권력욕이 없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당연한 거다. 게다가 군을 통솔하는 장군이 권력욕이 아예 없다면 그것 그것대로 문제가 생긴다.

‘밀어줄 사람은 잘 선택했으니.’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무엇보다 숙부를 만난 덕분에, 고민 중이었던 정보 조직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정보 조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많다.

그는 많은 길드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평민들이 주축을 이루는 길드들.

하급 귀족, 평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말은 헛소문은 아니란 뜻이다.

‘이걸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함을 계속 느끼고 있다.

렘이 잘할 것 같으나, 그는 현재 벌이고 있는 일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벅차하고 있고.

‘불법적인 일도 해야 할 텐데…….’

락의 기사들이라면 믿을 수 있으나, 그들에게 지저분해질지도 모르는 일을 시키긴 싫었다.

고스트의 요르크에 맡길 수는 있으나, 복잡한 일이 생길 경우 그 판단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인은 많은데 머리 쓰는 사람들이 없으니…….’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렇다 할 사람이 없는 게 약점이면 약점이 될 것 같다.

‘일단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했으니.’

에렌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해결해야 했다.

준비해 둔 검은 무복으로 갈아입고, 복면을 착용했다.

“후웁!”

우드드드득!

전신에 뼈와 뼈가 부딪치고 맞물리기 시작했다.

축근골(縮筋骨: 뼈와 살을 압축하다)의 수법은 이론으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 행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맞는다면, 내가 그걸 행하는 데 문제는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기분은 썩 좋진 않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잔뜩 껴입은 듯한 느낌. 그리고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후우우우!”

긴 호흡과 함께 사지를 움직였다. 잠깐이라도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

‘귀찮긴 하지만.’

축근골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에렌성은 새벽에도 수시로 경계 병력이 순찰을 한다. 물론 그들에게 걸릴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보통 몸을 부풀릴 수 있는 변장은 할 수 있지만, 축소시킬 수는 없다. 만에 하나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때, 내게 돌아올 의심은 피하기 위함이다.

조심스레 움직였다.

순찰 시간은 잘 알고 있기에 감시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기를 끌어 올려 몸을 가볍게 하여 움직이는 소리를 죽이고, 기척을 없앴다.

그렇게 힘들 게 어디로 이동하냐고?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해야지.’

저급한 방법이지만! 또 테라에게 신신당부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용납할 수가 없다!’

자객이 날 노리는 건 상관없다. 적당한 긴장감은 즐거움이니. 하지만 내 가족, 특히 어머니의 안위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디존슨의 방에 잠입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각방을 쓰나?’

방에는 디존슨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함부로 굴었던 큰어머니도 크게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지만, 굳이 따로 그녀를 찾는 건 좀 그렇고.

‘몸조심해야죠. 큰아버지.’

그의 마혈을 짚었고, 검지로 디존슨의 목을 가로로 그었다.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저급한 방법에는 저급한 방법을 쓸 테니. 머리를 잘 굴려야 할 겝니다.’

그의 목에 옅은 빨간 선이 그어졌다. 며칠 내로 사라질 흔적이지만, 일어나서 그걸 발견하면 기겁할 것이다.

‘그리고 적을 잘 알아야 할 테고 말입니다.’

애초에 권력의 다툼. 후계 싸움 같은 건 안중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 싸움에 끼어들면 반칙이나 다름없다.

다만 내 주변의 사람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갈 게 걱정되어 그 장단을 맞춰 주고 있을 뿐.

‘고약한 양반.’

할아버지도 그걸 알 텐데, 굳이 날 내세우는 것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아버지를…… 나를 후계로 세우려는 건가?’

할아버지 속내를 읽는 게 제일 힘들다.

그러니 이렇게 상황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다.

‘고약한 취미긴 하지만…… 말년에 이리 티격태격하는 재미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내겐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차라리 영지를 개발시키는 일. 사람을 키우는 일이 훨씬 재미있는데 말이다.

‘설마 이 양반이…… 날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무공만 뛰어난 손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뭐, 더 귀찮아지는 것밖에 없겠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잘 자고 있는 디존슨을 쳐다봤다.

‘이 경고가 못 알아들으면, 누가 말려도 죽습니다. 제발 머리라는 것을 잘 굴리길. 똑똑한 참모라도 구하시던가.’

축근골의 영향인지, 아니면 오늘 하도 싸돌아다녀서인지 피곤하다.

내일 크라운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다.

‘너무 놀라지는 마시고.’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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