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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56화 (15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56)

로라스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는 게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란스에게 물어본 이유는 간단하다.

내 실력을 잘 알고 있는 발란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의 암살자가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 모른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달자면, 발란스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무시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말이다.

“암살자들이 무서운 건 알려진 게 없어서입니다.”

“그렇긴 하겠지. 뛰어난 암살자라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고, 죽은 이가 암살을 당했는지도 모르게 만들 테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대충 알려진 암살자들은 있는데 그런 놈들은 저희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찾으면 몇몇 아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귀족들이 고용한 놈들은 다를 것이다?”

발란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일단 저희가 알고 있는 그런 암살자들과는 접촉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다른 놈들이 있을 거라는 건 어찌 확신하지?”

“누굴 고용할지는 모르지만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소문은 나지 않았지만 그런 암살자들은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알았다. 염두에 두도록 하지.”

로라스는 그리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암살자들의 실력이 좋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유역후가 있었던 세계의 자객들이란 놈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심심하지는 않을 테니.’

며칠 후면 크라운으로 떠나야 할 터.

약간의 긴장감은 여행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 * *

‘으음. 정보 조직이라…….’

며칠간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성내로 돌아가는 마차에서도 로라스의 고민은 끊기지 않았다.

‘쉽지 않네.’

정보 조직을 만든다는 것.

어려울 거란 건 알고 로라스도 알고 있었다.

유역후 기억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이쪽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하긴 그때는 전부 막내랑 곽아가 다 했으니.’

로라스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천황성 모든 조직은 유역후의 두 제자가 만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없고 유역후 혼자였다면, 천하가 아닌, 성 하나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의 머리가 커진 후, 그 규모는 유역후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여하간 그 탓에 정보 조직을 어찌 구축할지 감이 잘 서지 않았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지.’

필요하다고 막 만들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맡아서 해 줄 사람이 찾을 수 없는 게, 로라스는 아쉬웠다.

조급 필요는 없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문제 아니던가?

‘에렌의 후계자 싸움이다.’

레이스에 참여한 이상 제대로 해야 했다. 물론 큰 욕심은 없었다.

‘내가 넘어간 거지…….’

로라스는 순간 후회가 들었다.

애초에 그 미끼를 덥석 물어서는 안 됐다.

후계자도 아니고 후계 후보.

그걸 해서 내가 뭘 할 것인가?

‘영감탱이. 제대로 속여 넘겼지.’

로라스는 베스타인 공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 아비를 잘 모르는구나. 그 녀석을 내세워서는 안 돼!

로라스가 공작과 부모님의 관계 개선. 그리고 락의 위치를 올려 달라고 요구했을 때.

―자신이 후계 후보라면 내일이라도 락에 내려갈 녀석이야. 하지만 네가 후보에 오른다면?

로라스는 공작이 말한 그 방법은 정말 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네 아비에게 욕심이 생기면 크는 건 금방일 것이다. 내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와의 관계도 나아지겠지.

그게 바로 로라스가 후계 후보가 된 이유였다. 하지만…….

‘벼룩 잡자고 집을 태운 꼴 아니야?’

또 번잡한 일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니지.’

그때 로라스는 어머니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의 앞에서는 자주 미소를 짓는 분이었지만, 그렇게 환한 얼굴은 몇 번 보지 않았다.

‘당신 때문에 아버지의 앞이 막혔다 생각하시는 분이니.’

그 웃는 얼굴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귀찮음을 감수할 수 있는 로라스였다.

여하간 그러기 위해서는 끼어든 레이스에 우승은 아니더라도, 누구도 무시 못 할 존재감은 나타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 조직은 필수였다.

‘확실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고스트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을 모으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가?’

로라스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성에 도착한 후였다.

“주군!”

테라가 자신의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테라. 웬일이냐? 센터에 며칠 있을 거라 했잖아.”

“그러려고 했는데…… 그런데 며칠 동안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테라의 음정은 올라가 있었고, 그 어투가 기이하게 추궁당하는 느낌.

“왜 화가 났는데?”

그래서 묻는 말에 테라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흥분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로라스의 반문에 테라는 억지로 숨을 누르며 말했다.

“어제 주모께서 모욕을 당할 뻔했습니다.”

로라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테라는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디존슨 백작의 저택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에듀 부부가 디존슨의 식사에 초대받아 그의 저택에 방문했다는 것. 우연히 그 소식을 들은 테라가 호위기사 및 시종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같이 참석했다고 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격식 말입니다. 영주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저라도 영주님을 모셔야지요.”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렌의 귀족이라는 자들은 손들이 없는지, 아니면 힘이 없는지, 식사 시간에도 시중을 받았다. 기껏해야 옆에 시립해 있으면서 잔에 술과 물을 따라 주는 것뿐이지만, 이게 나름대로 격 있는 귀족만의 특권이라 여기는 자가 많았다.

에렌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했고, 귀족들의 습성을 잘 아는 테라가 급히 에듀 부부를 따랐다.

“가 보니 영주님과 주모님뿐만 아니라 많은 귀족이 참석한 자리였습니다. 파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게 이십여 쌍 이상의 귀족 부부들이 식사할 때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들…… 죄송합니다. 디존슨 백작부인이…….”

테라는 억눌렀던 감정을 다시 분출시키며 말을 이었다.

“옆에 뻔히 시종이 있음에도 딱 지적하여 이것저것 시키더군요. 특히 물을 따르라 할 때는 검을 뽑을 뻔했습니다.”

로라스는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상황이 어찌 될지 뻔히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에듀 또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고, 부인을 시켜 메어리를 모욕하여 평판을 떨어트리려 했을 것이다.

참으로 유치한 방법이지만, 가장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먹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냥 두고 보실 리 없으셨을 텐데.”

그게 딱 그 직전에 디존슨 백작이 영주님을 따로 불러 밖에 계셨습니다.

“하아!”

로라스는 절로 숨이 토해져 나왔다.

저급한 방법을 참으로 뻔뻔하게 잘한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디존슨과 에듀가 없었다면, 에듀도 누구에게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들의 일이라고 치부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때 테라가 말했다.

“제가 나서고 싶었지만…… 자칫하면 주모의 모습이 더더욱 안 좋아질까 봐…….”

“그래. 네가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자들의 일이다.

테라가 큰소리를 내었다면 꼴이 더 우스워졌을 터.

로라스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돌아오셨어?”

“다행히도 크게 체면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테라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잔에 물을 따라 달라고 했던 디존슨 백작부인의 요구에 침묵이 흘렀다고 했다.

모인 이들도 알고 있었다.

디존슨 백작부인이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을.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메어리는 출신도 변변찮고, 변방의 귀족일 뿐.

아무도 디존슨 백작부인에게 찍히기 싫었을 터. 백작부인을 돕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메어리의 얼굴이 붉어질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누구지? 그 사람이?”

“카르이샤 욘 베스타인 백작님이셨습니다.”

“카르이샤?”

귀에 익숙한 이름의 로라스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 떠오르자 살짝 놀라며 말했다.

“막내 숙부를 말하는 건가?”

“네. 그분이 나서 주셨습니다.”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며, 디존슨 백작부인의 잔은 물론이고 참여한 모든 귀족들의 잔에 물과 술을 채운 사람.

“그분이 그리 나서시니 백작 부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벙긋거리는데 얼마나 통쾌하던지.”

“다른 사람들은?”

“그 후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나중에 돌아오신 영주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럼 지금도 모르고 계시는 건가?”

“네. 주모께서 절대 영주님과 주군께는 말씀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주군에게는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주모의 명령을 어긴 죄를 청합니다.”

테라가 무릎 꿇고 죄를 청하려는 순간 로라스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잡아당겨 반쯤 굽힌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안 좋은 버릇이 들었구나. 내가 이걸로 너를 벌줄 거라 생각했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건 생략하자. 그리고 당연히 내가 알아야 할 일이었다. 잘 말해 줬어.”

테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주군? 여기 사교계에서 디존슨 백작부인의 영향력은 상당히 강합니다. 주군께서 황도에 다녀오실 동안 주모도 여기 계속 머무르셔야 하는데, 그들이 허튼 수작질을 계속할까 봐 걱정됩니다.”

“손써야지. 할아버지가 계셔서 자중할 줄 알았는데, 이런 얕은수로 귀찮게 한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손을 써야지.”

테라는 순간 움찔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순간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살기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테라.”

“네. 주군.”

“너는 어머니 곁에 있는 게 좋겠다.”

“주군! 저는 이번에…….”

“내 호위기사보다 어머니의 호위기사가 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자신의 말을 자르면서 들어오는 로라스의 물음에 테라는 입을 다물었다. 평상시라면 고집이라도 부려 보겠지만, 직전의 대화가 대화인 만큼 뻗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가 곁에 계실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곁에 계시지 못할 경우에는 네가 신경 써 줘야겠다.”

로라스의 말이 생각 이상으로 진지해지는 걸 보며 테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걸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만약을 대비하자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만약이 최악의 경우가 될 수도 있으니 긴장은 하는 게 좋겠다. 페컴 님에게 행사 일정을 미리 알려 달라고 부탁드릴 테니, 스케줄에 맞게 네가 움직여.”

로라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발란스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암살자를 찾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럴 확률이 100퍼센트에 가깝지만, 이렇게 저급한 수단을 쓸 정도로 어리석은 것들이라면 경계는 해야 했다.

가끔 똑똑한 적보다 우둔한 적들이 더 곤란할 때가 바로 이럴 때다.

‘하긴 그런 놈들이니 장자의 위치에, 가장 먼저 레이스에 참여하는 압도적인 유리함을 가지고도 그 모양이겠지만.’

여하간 테라가 있다면 대비책은 될 것이다.

통솔력이나 리더쉽, 그런 게 없어 집단전에서는 잘 싸우는 장수 그 이상의 것을 바라기는 힘들지만, 그만큼 개개인의 전투에서는 뛰어난 게 테라니까.

로라스의 그런 염려가 묻어 나왔는지 테라가 다시 물었다.

“혹시라도 걸리는 게 있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대비하겠습니다.”

“암살자들이 활개를 칠지도 모른다.”

“설마요…… 에렌성 아닙니까?”

“그래서 날 노릴 거라 생각하지만, 만의 하나를 대비하여 이야기해 두는 것뿐이다.”

로라스의 대답에 테라는 결의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죽기 전까지 주모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네가 어찌하지 못할 정도의 자객이라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지지.”

자신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테라는 미소를 지었다.

“쉬어라.”

“네. 주군.”

그렇게 테라를 돌려보낸 후 로라스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랬었단 말이지?’

할아버지를 봐서라도. 그리고 핏줄이라고, 어느 선까지는 참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나오면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다. 디존슨!’

관계 좋지 못한 핏줄은, 적보다 더 위험한 법.

‘그 전에 쳐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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