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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53화 (15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53)

‘벌써 팔보라면.’

서른 이전에 구보가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구보면 할아버지와 검을 섞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공이란 상성이 있고, 그 날의 심신의 상태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 비교가 불가능하다.

물론 비교는 해 보려 했다.

무림의 절정이니, 화경이라 불리는 경지가, 이 세계의 마스터라 불리는 무인들과 어느 정도의 격의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보통 무림에서 경지는 나름 체계화되어 있었다.

내력심법과 외공, 초식의 숙련도와 경공 등등.

자세히 설명하면 매우 복잡하니, 간단하게 말하면 그 절대적인 힘과 무공 전부(全部)의 조화를 확인하면 됐다.

하지만 포스를 다루는 무인들은 다르다.

‘여기는 일정 수준에만 이르면 전부 마스터라고 부르니.’

이곳은 포스를 외형화시켜서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면 마스터라 불린다.

한마디로 무림의 무인들이 1부터 10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면, 이곳은 5 이하는 그냥 무인, 포스 유저. 그리고 6 이상은 전부 마스터라 부른다.

당연히 같은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그 실력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붙어 보지 않으면 상대의 강함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더더욱 엄청난 거다.

그런 마스터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으니 아예 새로운 격의 호칭인 초월자라 불리고 있으니까.

‘으음! 그래도 굳이 나누자면.’

무림에서 개천지보 팔보면 확실하게 백대고수 중 하나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서도 그 정도는 될 것이다.

‘시험해 봐도 되겠지.’

아직 구보에 이르지 못했지만, 이 상태만으로도 나의 전력을 받아 줄 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것도 ‘비무 대련’이라는 테두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할아버지가 모르지는 않겠지.’

내가 할아버지의 실력을 알아봤는데, 그분이 내 실력을 모르지는 않을 터.

연무장으로 날 부른 걸 보면 알 것이다.

개천지보는 그 일보, 일보의 차이는 격이 달라지고, 팔보에 이른 지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나마 대련 상대를 찾을 수 있다면, 그분은 찾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

내 기세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을 무인의 본능을 건드렸을 확률이 높다.

‘기대에 부응해야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몇 시간 후 대련이 있을 터.

그전까지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고 싶었다.

“후우우우!”

긴 호흡과 함께 눈을 감았고, 곧바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는 순간, 방 안에 잔잔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몸 상태는 최고다.

그대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 * *

“다크써클?”

“뭔 놈의 이름이 그러냐?”

‘누가 봐도 나 좀 노는 놈이오!’라고 드러나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바닥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쯧쯧, 꼭 실력도 없는 것들이 이름을 꼭 그렇게 짓더라.”

그리고 그런 사내들 앞으로 민둥머리의 사내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민둥머리 사내의 이름은 오리시암.

어른 머리통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철두, 그리고 송곳처럼 솟아나 있는 몸통.

보는 것만으로 무게가 장난이 아닐 것 같은 철퇴를 가볍게 들고 있는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유치찬란해서는.”

‘킹드래곤’이라는 만만찮은 이름의 길드를 지니고 있는 오리시암은 눈앞의 사내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또 말했다.

“실력 없는 놈들이 꼭 그런 이름을…….”

쥐어박긴 했는데 말은 끝까지 잇지 못했다.

절대적 폭력이란 유치찬란한 이름의 길드가 생각났다.

길드원이라고는 고작 둘이었던 그 길드.

그 이름을 듣고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가, 두 손 고이 자신의 길드를 갖다 바쳐야 했다.

‘젠장! 또 속 쓰리네.’

오리시암은 로라스와 번천을 잠시 떠올리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생각을 떨쳤다.

뱀 머리를 포기하고 드래곤 꼬리가 된 이후, 자신의 삶은 훨씬 안정적이었고.

‘이런 놈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잖아. 그것도 합법적으로 말이지!’

오리시암은 그리 생각하다 갑자기 눈앞의 파락호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 주십시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파락호들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 걸 충분히 감상한 오리시암은 타작을 멈추고 물었다.

“누가 나쁜 짓 하지 말래?”

파락호들이 고통스러운 가운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 오리시암이 말했다.

“나쁜 짓을 해도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니들끼리 해 처먹었대? 내 영역에서 설치려면 당연히 와서 신고도 하고, 상납도 해야지! 말을 하다 보니 또 열 받네.”

다시 한 번 파락호들을 구타하면서 오리시암은 생각했다.

‘이거 효과는 죽이긴 하는데…….’

물론 로라스에 비하면 자신이 때린 건 약과다. 자신의 폭력은 사람이 견딜 만한 폭력이다. 물론 그런 폭력이 누적되면 폭발하겠지만.

‘누구의 폭력은 그럴 엄두조차 못 내게 되지.’

오리시암은 로라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마적들과 산채를 소탕할 때 왜 ‘절대적 폭력’이란 이름의 길드를 내세웠느냐 말이다.

답은 간단했다.

―존중받을 필요 없는 것들은 매가 약이니까. 그리고 너희 같은 놈들은 매가 약이니까.

사실 조금은 억울했다.

누가 처음부터 이러고 싶어서 그랬던가?

누가 처음부터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고 싶었던가?

‘나도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물론 그게 변명은 되지 않는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는데 어떡하겠는가.

결국, 마적도, 산적도 사람 아닌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로라스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뜻에 어긋나면 폭력을 내세웠고, 힘으로 모든 것을 내리눌러 장악했다.

물론 자신은 거기서 벗어났다.

‘눈빛만 봐도 오금이 저리구먼.’

오리시암은 나타족의 오러후이가 생각났다.

‘병신. 꼭 혀를 써야 맛을 아나. 덤빌 사람에게 덤벼야지.’

로라스에게 개기는 놈들은 모두 죽었고, 자신은 개기지 않았기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육감, 육감이라 자신을 부르면서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로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욕심이 났다.

‘기사라…….’

봤기 때문이다.

로라스가 곁에 있던 이들을 기사로 서임하는 장면을 말이다.

그의 곁에 있던 번천이 부러웠다.

‘용병이었다지? 그것도 그냥 그런 용병.’

테라가 부러웠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고아였다지? 세상에 널리고 널린 고아.’

또한, 토니가 부러웠다.

‘사냥꾼이…… 그 나이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숙부라는 놈이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 깨달았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별것도 없는 어떤 놈들은 기사가 되는데, 자신은 산적이 되었다.

‘나도…… 아니, 기사는 못하더라도 그냥 평범하게 군의…….’

오리시암은 고개를 저었다.

‘뉘미…… 인생은 운과 타이밍이라더니!’

산적으로 로라스를 만났다. 그리고 로라스는 절대적 폭력으로 그런 자들을 대했다.

그래도 자신은 잘 풀리지 않았느냐고?

그래! 잘 풀린 거다. 목숨 부지했고, 나름 목에 힘도 줄 수 있으니까.

‘그래 봤자 산적.’

하지만 결국, 자신은 산적이다.

더 위가 없다.

로라스가 시키는 일에 충실하게 따른다고 하더라도, 좀 더 큰 나쁜 놈들의 수장이 될 뿐이다.

양지로 나갈 수는 없다.

‘믿어 주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가.’

원망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또 자신의 길드에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흘러든 녀석들을 양민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젠장! 내가 용병 생활할 때만 만났어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데!’

산적 두목으로 만났기에!

육감.

자신의 그 감각이 자신은 양지로 나갈 수 없을 거라 알려 주고 있었다.

‘에이! 몰라! 욕심만 안 부리면 이 생활도 나쁘지는 않다!’

오리시암은 애써 생각을 지웠다. 하지만 발은 다시 한 번 파락호들을 향했다.

* * *

겨울이지만 가벼운 흥분 때문인지. 기력이 충만해서인지 꽤 강하게 부는 바람에도 추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컨디션은 최상이라는 뜻.

그렇게 연무장으로 향하니 놀랍게도 할아버지가 연무대 중앙에 서 계셨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왔구나.”

“빨리 나와서 가볍게 몸이나 좀 풀려고 했는데.”

“안 말린다.”

내가 늦게 나온 것 때문에 불만이실까? 퉁명스러운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연무대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아침에 보자 하셨잖아요. 이리 기다리실 줄 알았으면 동트기 전에 나왔을 겁니다.”

“됐다.”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러다 마음에 안 드셨는지 기어코 한마디 더 붙이신다.

“다른 놈들 같으면 밤부터 여기서 기다렸을 터인데 말이지.”

“흐흐흐, 제가 다른 놈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 로라스입니다.”

“네놈에게 넉살은 어울리지 않는다.”

“네. 그럼 준비할까요?”

“뭘 말이냐?”

“지도대련을 해 주시려는 거 아니셨습니까? 그렇지 않으셨다면 굳이 여기까지 부르실 필요도 없으셨을 테니까요.”

그 순간 할아버지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지도대련이라 했느냐?”

“아닙니까?”

“고얀 놈이로세!”

“무슨…… 이크!”

말할 새도 없이 급하게 고개를 젖혀야 했고.

피이이잉!

완벽하게 턱 끝에서 정수리까지 올라가는 파공음을 들으며 기겁해야 했다.

“할아버지!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맞았다면 나라 해도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피했어?”

“안 피했으면 죽었습니다.”

“피했잖아.”

“다른 사람이라면 못 피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쓰지도 않았겠지.”

“…….”

“그런 놈이 ‘지도대련’이라는 표현을 써?”

할아버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맹랑한 놈! 내 앞에서도 그 속내를 보이지 않을 셈이냐?”

“그거야…….”

대답이 궁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런 날 뚫어지게 보며 계속 입을 여셨다.

“늘 궁금했다. 네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할아버지 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게 더 문제야. 내가 노망이라도 들어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말이지.”

부우우우우웅.

그 순간 등에 걸친 커터가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 녀석의 실력은 지금 그 나이에 가질 수 없는 것이란 말이지. 무엇보다도!”

그리고 어느샌가 할아버지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 포스의 근원을 알 수가 없어. 네 아비가 가문의 포스는 전수했을 텐데, 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건 가문의 포스가 아니지 않으냐!”

개천지보와 가문의 포스 써클레이션을 동시에 수련했으나, 역시 할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연이 닿아서. 다른 것도 좀 수련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걸 보려 한다. 널 후계 후보로 세우기 전에 말이다.”

“거기에는 관심 없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거다. 내가 네 아비에게 힘을 실어주길 바라지 않았더냐?”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상관없을 수가 있나…….’

후계도 아닌 후계 후보. 원치 않으면 안 하면 되는 일이라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뭣보다 나도 할아버지와 대련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커터를 쥐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할아버지나 내게 진검이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상체를 숙이고 커터의 끝과 시선을 나란히 하는 것을 보며,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입을 여셨다.

“쯧, 대체 실력을 얼마나 숨기고 있었던 것이냐?”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드셨다.

“이번에는 네 밑천을 제대로 보여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검을 내밀었고, 자연스럽게 커터와 가벼운 접촉이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손목이 저릿해지고, 순식간에 손안이 묵직해졌다.

‘이거…….’

생소하면서도 생소하지 않은 듯한 이 감각.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미칠 듯이 재미있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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