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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52화 (15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52)

“넌 욕심은 없지만 네 것을 뺏기는 것. 핍박받는 건 참지 못했지.”

“…….”

“아까 보니 여전하더구나.”

에듀는 계속 대답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십 년 넘게 보지 못했던 아버지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은 생생했다.

부모님을 기억하지 못했던 나이, 자신을 거둬 아들처럼 키운 것이 베스타인 공작.

같은 핏줄이라고 하나 촌수를 따지기도 힘든 혈육.

“아직 내가 네 편인 것 같더구나. 그 반응은 말이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버지.”

“네 것 잘 지켰더구나. 아니 오히려 놀랐지. 잘 키우기까지 했으니까. 너는 지키는 사람이지, 넓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락은…….”

베스타인은 에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안다. 네 작품이 아니라는 것.”

“…….”

“로라스가 몇 년을 여기에 있었는데. 내 그걸 모를까? 나이만 들었을 뿐 다른 건 여전하다.”

“네…… 아버님.”

베스타인은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너는 여전하겠지?”

“저는…….”

“그리 죽을상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실수를 두 번 하는 사람은 아니다.”

“송구합니다.”

“그런 말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베스타인은 에듀를 직시하며 말했다.

“로라스도 너처럼 만들 생각이냐?”

“아버님. 그건!”

“다른 이야기 말고, 네 생각을 물었다.”

“어디를 내놔도 알아서 할 아이입니다. 굳이 뭔가를 강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에듀는 그리 말하고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씀을 들어 보니, 로라스를 후계 후보로 만들 생각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나 역시 강요는 하지 않는다.”

“아버님은 강요하지 않으시지요. 그리 만드실 뿐. 저는 강요도. 그리고 유도도 하지 않습니다. 아비로서 로라스가 원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베스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못난 놈. 아비란 놈이 나보다 어찌 녀석을 모를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로라스가 어떤 아이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로라스는!”

에듀가 발끈하며 말하는 순간을 베스타인이 낚아채며 말했다.

“야망이 넘치지. 그리고 원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아이고!”

“아버님.”

“너 때문일 거다.”

“…….”

“에렌에서 로라스가 어떠한 일을 벌였는지 모를 것이다. 당연히 모르겠지. 너는 믿음이란 이름으로 방관했었으니까. 하지만 아비라면 살폈어야지!”

베스타인의 이어진 말에 에듀의 표정이 굳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아이였다.

뭐든 잘했고, 또한 어떠한 기대를 가지던 모든 걸 충족시켜 줬던 아이다.

자신의 나이가 아직 창창했음에도 로라스에게 조금은 의지하는 마음을 갖진 것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에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다!’

자신은 아버지, 베스타인이 원하는 걸 어찌 쟁취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로라스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자신의 아들이고, 아비는 아들의 앞길을 밝혀 줄 의무가 있다.

후계 싸움?

절대 말려들게 해서는 안 됐다. 공작이 어찌 일을 진행시키는지. 그리고 에렌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암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그 싸움에 로라스가 끼어들지 않길 원했다.

“로라스가 원하는 것!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선전포고하는 기세로 하는 에듀의 말에 공작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모르는 거라니까!”

“뭘 모른단 말씀입니까?”

“락의 변화 누가 만들었더냐? 너냐? 로라스냐?”

“그야…….”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아이다. 에렌에 있었다면 더더욱 손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더군. 너와 네 안사람 때문에.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냐?”

“그것도 로라스가 원한 것일 터. 그 아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아비로서 제 의무 아닙니까!”

“원하는 쪽에 집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또 말하지만 로라스가 에렌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넌 모른다.”

베스타인은 말했다.

그가 어떻게 에렌의 흑사회를 장악했는지. 그리고 영리하게 그 이득을 어떻게 락에 돌렸는지. 그리고 후계 제1 후보인 디존슨을 어찌 무너트리고 있는지 모두 말이다.

“어찌 그뿐일까?”

베스타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미딩의 왕을 제 편으로 만들어 두었구나. 락에는 도움이 안 되는데 최선을 다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

“포석을 깔아 뒀다는 거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지나친 해석입니다.”

“아니. 전혀 지나치지 않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권력을 탐하고 있어. 그것도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

“타고났다는 이야기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에듀를 보며 베스타인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그건 에르페유와 헤르메스를 보면 더더욱 알 수 있지. 그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실속은 다 차리면서 결국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지.”

“…….”

“락 그 조그마한 영지에 마탑과 센터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냐? 그건 너도 잘 알 터인데?”

에듀는 끝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아이가 진정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입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넌 너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로라스의 길을 방해하지 않으면 나도 만족한다.”

“아버님.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별생각 없다. 다음 대 수장은 린 베스타인이 아닌, 진 베스타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결국, 로라스를 후계 후보로 올리겠다는 말에, 에듀는 말했다.

“이미 그리 생각을 하셨다면 제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만에 하나 로라스가 곤란해진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베스타인은 빙긋 웃었다.

역시 자신이 맞았다.

에듀가 욕심은 없지만, 자신의 것을 뺏기거나 핍박받는 순간 사람이 달라진다.

“말리지 않는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에듀는 로라스에 대해 냉정하지 못했다.

‘곤란해져? 누가? 누구에게?’

곤란한 건 다른 녀석들이지. 로라스는 아닐 터이다.

그때 에듀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로라스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럴 필요도 없을걸.”

자신은 누구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택지를 제시해 줬을 뿐.

‘이제 모든 게 해결된 건가?’

베스타인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 * *

“너를 조종하려 할지도 모른다. 아비가 되어서, 이런 말 하기에는 창피하지만…….”

무슨 일인가 했다.

“할아버지를 상대로 할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 말씀은 새겨듣고 있을 것이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할 거라 믿지만, 이 아비는 불안하구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분의 의도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어찌 안심시켜 드려야 할까?

‘아니, 무슨 말을 해도 불안해하시겠지. 그게 아버지고, 어머니니까.’

이해는 했다.

‘할아버지가 어디 보통이어야지. 그나저나 어제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눴기에 이러시는 건지.’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거래하지 않았는가.

할아버지는 주고받는 게 확실한 분이다. 무슨 문제는 생기지 않을 터.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그나저나 널 혼자 보내도 될지 모르겠구나.”

“그건 할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괜히 일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모두 안 가는 게.”

“그렇게 되면 대 놓고 무시하게 되는 건데. 장자로서 제가 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는 부모님이 황도 크라운에 가는 걸 막으셨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제.

하지만 아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연극을 꾸미기로 했다.

가다가 중간에 부모님이 급병으로 급히 에렌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대리로, 작위를 받아 오는 것으로 말이다.

아버지는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그게 불안하다는 거다. 몰랐다면 모를까. 에렌과 크라운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면.”

“그것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 역시 할아버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 신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아버지도 더 이상의 말씀은 하지 못하셨다.

사실 안 가고자 마음먹었다면 다른 수야 있겠지만, 솔직히 가 보고 싶은 게 속마음이다.

에렌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나 제국의 심장부는 그래도 크라운 아닌가.

‘정말 에렌과 문제가 생긴다면.’

에렌이 흔들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보다 에렌에 오신 김에 조금 쉬세요. 어머니와 시간도 가지시고요. 근래 정말 바쁘지 않았습니까?”

“으음…… 마음 같아서는 그냥 돌아가고 싶지만.”

“연극을 하기로 한 이상 완벽해야 하니까요. 황제의 눈과 귀가 에렌에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는다. 조심할 건 조심해야겠지. 그런데 로라스.”

“네. 아버지.”

“에렌의 흑사회를 네가 장악한 게 맞느냐?”

“장악했다기보다는 몇몇 사람들과 교류는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 교류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넌 락의 후계자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이 되는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나는 어디서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굳이 숨길 건 없지만, 이마저도 걱정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저는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이 없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일정 부분의 지분도 가지고 있는 게 있지만, 헤르메스와 에르페유, 두 분을 실소유주로 봐도 무방합니다.”

두 사람의 지분을 합치면 나보다 크니 거짓말은 아니다.

아버지의 손이 귀밑으로 갔다. 생각하는 게 많아질 때 하는 습관적인 행동.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걱정 안 한다. 너니까.”

“네. 그거면 됩니다.”

“그래. 쉬어라.”

어느 정도 주의는 줬다고 생각했는지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피곤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부자간의 대화가 끝나면 기분이 좋았다.

누가 날 이리 걱정해 주겠느냔 말이다.

‘이리 기분 좋으니 뭔가 위기가 올 만한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후우우우!”

늘 그렇듯 마차 여행은 심법 공부를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 오면서 상단전이 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개천지보 팔보 지세계(地世界)의 경지가 눈앞에 왔음을 뜻한다.

‘마법 때문에 소홀히 했는데 뭐가 이리 빠른가.’

내력의 증진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속도다.

아무리 미리 알고 있었다지만, 내공은 그 특수성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 하지만 지금 속도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선 속도다.

‘그렇다고 급하게 행한 것도 없거늘.’

지나친 내공의 증진을 걱정할 건 없다.

다만 현재 내 무위를 실전에서 확인할 길이 없다는 길이다.

‘너무 강한 것도 문제가 되는가.’

대련 상대가 없다.

시그탑이 내 검을 받아 줄 만하지만, 말 그대로 받아 주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전력을 다해 휘두르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

그렇게 운기조식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공자님.”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아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다.

“누구냐?”

그리 말하며 문을 여니 에렌에 있을 때 늘 날 담당했던 하인 하나가 서 있다.

“내일 아침 연무장에 보자는 공작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알았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 주는 것 같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에렌이다.

‘굳이 구보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단순한 대련인데 말이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만나자는 장소가 연무장.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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