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8)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긴데.’
거대한 이질감이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데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있는데도 없다.
‘그 말은 없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것일 테고.’
바닥 위에는 없으며, 하늘에도 없으면.
시선은 자연스레 발아래로 향했다.
이건 좀 곤란하다.
무슨 물건이라도 묻어져 있다면 파 보기라도 하겠으나,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바닥 전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산만 한 마수. 그것도 땅속에서 사는?’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그 순간 커터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이질감 대신 인기척을 느꼈고, 커터는 그것에 반응했으니까.
“누구냐? 넌?”
음성은 낮으나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내게 묻는 상대.
“그러는 넌 누구냐?”
척 봤을 때도 날카로움을 숨길 수 없는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니, 인상이 더 날카로워 보인다.
“하아아!”
한참을 노려보던 놈이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말했다.
“멋모르고 오른 것 같은데. 내려가라. 위험한 곳이다.”
인상과는 달리 나름 인성은 괜찮은 놈 같다. 그래서 괜한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물었다.
“락의 사람이다. 혹시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는 자냐?”
흠칫하는 사내가 반문했다.
“네가 그걸 어찌 알지? 그리고 이쪽은 락의 토벌지대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첫 번째 질문의 답은 프라일이라는 사람에게 들었고, 두 번째 질문은 락은 확장 중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군. 이제 내 질문에 답변해 주지?”
“프라일 님을 안다고?”
“같이 일한 적이 있거든. 보니 그쪽이 맞나 보네. 선택받은 잔가 뭔가 하는 거.”
“…….”
“곤란하면 대답은 안 해도 되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알아야겠다. 지금 혹시 게이트가 생성됐는가?”
그 질문에도 답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다.
‘뭐. 나름대로 걱정이라는 걸 해 주는 것 같은데.’
건방져 보이기는 하지만 날 알지 못하는 이다. 그리고 경고를 한 것으로 보면 일반인을 우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우우우우웅.
그래서였다. 커터에 포스를 주입해 울게 한 건.
“락의 사람이라고?”
“로라스.”
이름을 말해 주니 살짝 놀라는 눈빛이다.
“소문의 소영주군.”
“무슨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쪽으로 들었으면 좋겠는데.”
“나쁜 말은 듣지 않았다.”
“그럼 이제 말해 주지. 이 아래 게이트가 있는 건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 전에 마무리하려고 온 것이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차윤, 락의 소영주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태세 전환이 이리 빠르면 당황스러운데 말이다.
그보다 이름도 신기하다. 이 세계에서 혀 굴러가지 않는 이름은 처음인데 말이다.
“나쁜 말은 듣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모두 좋게 말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눈이 있으니까요. 굶주린 자도,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없더군요. 당신의 영지는.”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고운 법.
“내 영지가 아니라 아버님의 영지.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리 말을 하니 당황스럽군.”
“편하신 대로 해석하십시오. 좀 이상한 세계지만…… 나도 그리 이상해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호기심이 생긴다.
이름도 그렇지만 생긴 것도 그렇다. 마치 유역후 세계의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혹시…….’
의구심이 떠오르는 순간 차윤이 말했다.
“락의 소영주라 하더라도 이곳은 위험합니다. 가진 무공이 대단한 것 같지만, 게이트는 일반적인…….”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프라일에게 듣지 못했나?”
“뭘 말입니까?”
“게이트의 핵을 손상시켜 금광화시킨 사람이 있다고.”
“…….”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내겐 불필요하다. 무엇보다 내 발밑에 게이트가 형성되는 거라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여기서 락은 매우 가깝다. 원래 더 안쪽에서 형성된다 들었는데.”
“거기까지는. 저도 이 일에 끼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하는 거나, 낌새가 나만큼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다른 분들이 오실 겁니다. 그분들과 같이 이 마물의 문을 닫을 생각인데.”
“참여하지. 그리고 솔직히 궁금도 했다. 나도 게이트를 봤지만, 개인이 그것을 어찌하기에는 상당한 난이도가 아닌가?”
“이인(異人)이라 할 만한 분들이니까요.”
그의 말투…… 그리고 사용하는 단어들…… 아무래도 이상하다.
“차윤?”
“그렇습니다만.”
“너 혹시 중원이란 곳을 아나?”
그 순간 난 봤다.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 버리는 것을. 그리고 눈에 기이한 빛이 발하는 것을.
* * *
천외천.
하늘 밖의 하늘.
무림에서 가끔 쓰이는 단어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초인인 줄 알았더니. 초인들만 속해 있는 세계가 또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리고 난 오늘 이 세계에서도 천외천이 있음을 알았다.
‘뭐, 그리 놀랄 만한 건 아니지.’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들은 많은 법.
실제로 유역후 역시 무림에서는 천외천 경지에 이른 무인들. 그리고 그런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 세계에 그런 초인들의 세계가 없으리라는 법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재미있었다.
게이트를 닫기 위해 모인 이들은 차윤을 포함하여 셋.
그리고 모두 강자였다.
덕분에 말이 더 잘 통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대화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또한, 락의 소영주로서 게이트를 닫아야겠다는 말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으니까.
‘어느 정도나 될까?’
강자라는 건 알겠으나 그 수준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았다. 대충 에르페유에게서 느껴지던 포스 정도라고 추측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렇게 게이트를 닫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게이트가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기 전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막 형성된 것을 곧바로 닫았기 때문이었다.
―몇 명의 지킴이가 게이트가 형성되자마자 닫아.
예전 프라일의 말을 들었을 때 궁금했는데, 이들의 실력을 눈으로 보니 충분히 납득되었다.
‘정말 재미있네.’
게이트를 모두 닫은 후에 슬쩍 몇 가지를 물어봤고.
―게이트를 존재를 아는 이는 은근 많아. 베스타인 공작 역시 그중 한 사람이고.
덕분에 할아버지 역시 게이트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과.
―우리라고 모두 강한 건 아니야. 게이트를 닫는 데 경험이 많을 뿐이지. 베스타인 공작은 포스의 정점에 있는 자. 다툴 일이 없음을 다행이라 생각하는 거지.
그들은 의외로 할아버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듯 보였고.
―다만 초월자가 한 명이 아닐 뿐이지.
마스터의 마스터라는 초월자의 경지가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서넛 정도가 더 있다는 것도 알았다.
―락의 소식을 아는 모두가 기발해 했다. 게이트를 금광화시켰다는 말에 배를 붙잡고 웃는 사람도 있었고.
게이트를 닫는 클로저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락에 호의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게…… 솔직히 돈도 많이 벌지만. 늘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의무의 무게가 무거워서 클로저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 락 때문에 최소한 이쪽 지역의 클로저들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지.
내가 직접 핵을 파괴하면서 능력을 증명하고, 락의 소영주라는 이름을 내세워 신뢰를 사자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했다.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리고 아주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것도 맹렬하게!
내게는 이게 아주 중요했다.
락을 키우고, 부모님을 좋은 환경…… 아니 부모님을 좋은 환경에 모시기 위해 락을 키우고. 또 잡다한 일. 또는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쳐 내고, 그런 일 자체가 생기지 않게 하기까지.
그래, 꽤 많은 일이 있으리라.
귀찮을 때도 있을 테고, 화가 날 때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 게 내 앞길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자신감이 자만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모든 것에 정성을 다한다는 중용의 한 구절을 끼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어쩌면 긴장감이 생길지도 모르고, 또한 내가 왜 이런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고약하긴 저쪽 신이나, 이쪽 신이나 마찬가지구먼.’
물론 그들의 말을 100퍼센트 믿는 것도 아니고,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만약에 사실이고, 있다면 말이다.
여하간 게이트를 그리 닫았고, 에르자일에게로 돌아왔다.
여섯 시간 정도 걸린 것인가?
“깨우지.”
그리고 뒤늦게 에르자일이 일어나며 말했다.
“트랩이 있어서 나도 잤다. 신경 쓰지 마.”
“찝찝하다 했는데 별문제는 아니었나 보네.”
“느낌은 느낌으로 끝날 때가 많으니까.”
여하간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원래의 목적에 힘써야 할 차례였다.
시간은 좀 걸릴 거라 생각했다.
게이트를 피해 도망쳤던 마물들이 돌아오는데도 시간이 걸릴 테니 말이다.
“처음에는 동물이 좋아. 작은 새 같은 걸로 시작하는 게 낫지.”
에르자일의 가르침에 따라 작은 새, 날다람쥐 같은 걸로 테이밍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느꼈다.
‘재미있잖아!’
마법이란 학문은 정말 재미있다는 것을.
손바닥에 울긋불긋한 이를 모를 작은 산새가 내려앉았고, 다람쥐들이 어깨에 올라왔다.
동물을 키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조그맣고 귀여운 놈들이 제 딴에는 애교 같은 걸 부리는데.
‘괜찮네.’
기분이 좋아졌다.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
“넌 아닌데.”
반나절 열심히 마법을 썼더니 새나 다람쥐가 아닌 오만가지 것들이 몰려들었다.
알록달록한 것이 독사가 분명한 놈까지 발 근처로 다가오는데. 밟아 죽일 뻔했다.
미물일지라도 나 좋다고 오는 놈들이라는 걸 알기에, 참으려 했지만, 혐오감은 조금 들었다.
그 때문인지 주변을 뱅뱅 돌면서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마법은 마나로 이뤄지지만, 진심이란 것도 조금은 필요하거든. 절실함이 가까우려나? 하지만 테이밍은 친근함이 있으면 더 좋지.”
에르자일이 말하며 손을 내미니 독사가 그녀의 손을 따라 올라오더니, 제가 목도리인 것처럼 그녀의 목을 감쌌다.
“테이밍도 할 줄 아는 건가?”
“이것저것 다 해 봤지.”
곁에 있다 보니 종종 잊어 먹는다. 그녀가 최고의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는 것을.
처음 하루를 그렇게 동물들을 시작으로 소형 마물로 옮겨갔다.
‘친근감이라…….’
마물 대부분은 친근감이 갈 수 없는 생김새를 가졌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색하고 힘든 것도 며칠이면 다 적응하는 법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체형 구조가 노동력으로 쓸 만한 구조를 가진 애들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테고.
‘떠먹다 보면 ‘이거다!’ 하는 놈이 나오겠지.’
그리 눈에 보이는 생명체들을 테이밍하기 시작했다.
개천지보와 마나의 깨달음에서 얻은 막대한 마나에, 훌륭한 스승까지 옆에 있으니 속도는 매우 빨랐고.
“너무 무리하지 마. 제대로 길들이려면 유지하는 시간도 필요한데. 그러다가 아무리 너라 해도 쓰러질 거야.”
에르자일이 경고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마법을 익혔다.
어지러울 정도로 마나가 부족할 때는 이번에 게이트를 닫으면서 얻은 마나석의 마나를 흡수했다.
그리 수련을 하면서 깨달은 건, 확실히 지능을 가진 놈일수록, 그리고 덩치가 큰 놈일수록 테이밍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게 많다는 것이다.
‘으음! 예상만큼의 효율은 나오지 않을지도.’
내가 이 마법을 선택한 건 노동력 때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테이밍할 마물들은 적당한 지능에, 적당한 덩치까지 가져야 하는데 말이다.
“욕심이 너무 많아. 마법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도 그 깊이는 한도 끝도 없이 깊어져. 두고두고 익혀야 하는 데, 전력 질주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에르자일의 두 번째 경고.
“‘적당히’가 잘 안 되네.”
“차라리 한 놈에게 집중하는 게 어때? 충성도를 올리는 수련도 해야 하는데.”
“그래야겠지. 다른 길로 가 보자. 이곳은 당분간 쓸 만한 몬스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
게이트를 닫았으니 곧 기존의 마물들이 몰려올 거라 생각했으나, 며칠 동안 매번 같은 마물들이 보였다. 새로운 길도 파악해 볼 겸 다른 루트를 잡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