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7)
쌔애애애애앵!
커터는 에르자일 머리 위로, 파공음을 울렸고.
퍼어억!
파육음과 동시에.
쿠우우웅!
바닥에 충돌음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뭐야? 이건?”
그리고 놀라기는커녕 호기심을 보이며 그것에 지팡이를 뻗는 에르자일.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이것에 대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일단 덩어리다.
그리고 그 생김새라 설명할 수 없을 듯한 모양을 가졌다.
‘마치 진흙 덩어리를 던지면…….’
맞다. 딱 그렇게 생겼다.
성인 남성 중량의 진흙 덩어리를 던지면 딱 저렇게 될 모양.
문제는 이놈의 속도였고, 또 에르자일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법사의 감각이란 무인의 감각과는 별개의 것이라 하지만, 그녀는 고위 마법사다.
아무리 속도가 빨랐다고 해도, 저만한 중량의 덩어리가 이리 가까이 다가올 정도로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에르자일!”
“응? 아앗! 뭐야!”
그녀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물론 그녀의 주변에는 옅지만 푸른 빛이 둘려 있었다.
그녀가 처음 락에 왔을 때. 그리고 토벌전에 참가하기 전 그녀를 혹독하게 수련시킨 게 있었다.
그게 바로 저 쉴드다.
기사들은 두꺼운 갑옷과 포스로 석궁과 같은 원거리 무기에 방비하고 있지만, 에르자일은 그런 게 없다.
그리고 몬스터들 중 자신을 원거리 무기화. 또는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놈이 있다.
대열에 보호를 받겠지만, 마스터들도 재수 없으면 눈먼 화살에 죽는 게 실전의 현장.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어떻게든 대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저걸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그리고 그 훈련은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순간적인 위협에 발동된 쉴드가 그 증거다.
‘그런데 왜 이걸 몰랐지?’
눈으로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나의 파동에 나와 비슷하게 반응해야 했다.
“몰랐어?”
물음에 에르자일은 자리에 일어나 옷을 털며 말했다.
“응. 신기하네.”
그리고는 다시 덩어리에 지팡이를 갖다 콕콕 누르기 시작했다.
“메이바?”
그리고는 뭔가 중얼거리며 어느새 손으로 그것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보기에도 그렇지만 그 본질도 비슷한 것 같다.
약간의 점성과 함께, 그 몸을 이뤘던 부분이 진흙처럼 떨어진다.
“그래서 메이바가 뭔데?”
“잠깐만.”
에르자일은 그리 대답하며 갑자기 양손으로 덩어리를 마치 반죽하듯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손에서 옅은 아지랑이같이 피어오르는 게 마나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라?’
신기한 건 그녀가 열심히 반죽할수록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고.
“어때?”
손을 멈췄을 때는 어른 주먹만 한 덩어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게 뭐냐?”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성질은 메이바랑 똑같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마나 덩어리.”
“응?”
“그냥 마나 덩어리라 생각하는 게 편해. 밀도는 매우 낮은 편이긴 하지만.”
에르자일은 미소를 짓더니. 그 덩어리를 내 배낭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며칠 있을 거지? 나중에 스프로 끓여 먹자.”
“이걸 먹는다고?”
“무색, 무취, 무미지만 몸에는 좋으니까.”
그녀는 배낭을 닫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몬스터라 하기에는 좀 그렇고. 정령? 그런 속성이려나. 기운 가득한 곳에서 자생하는 놈이야. 생각해 보니 하늘 산맥도 훌륭한 서식지네.”
“공격성은 없어? 그리고 마나 덩어리인데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잖아.”
“순수한 마나니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눈치채지 못하지. 너도 늦게 봤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도 지척에서야, 눈으로 보고 나서야 덩어리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에르자일은 계속 말했다.
“메이바가 뭔지 더 설명해 주겠지만, 워낙 개체 수가 적어서 평생 한 번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먹어도 돼? 연구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순수한 마나라 그냥 증발해 버린다고 할까? 그러니까 연구도 제대로 못 하지. 가벼운 행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먹으면 몇 주간은 마나 감응력이 훨씬 좋아진다고 했거든.”
“그런 게 왜 뜬금없이 튀어나와?”
“원래 뜬금없는 거야. 다만…….”
에르자일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기운이 풍부한 곳에서. 갑자기 충격이 있을 때 나타난다는 문헌을 본 적이 있긴 해.”
“기운이 풍부하고, 충격이 있을 때 나타난다?”
순간 절로 정면의 높은 산으로 시선이 갔다.
하늘 산맥처럼 기운이 풍부한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충격이라면.
저 안에 또 다른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노멀존인데…….”
오크 마을이 생기고, 그들과 치안을 협력한 이후 노멀존이 넓어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한정 넓어질 수 없다. 기껏해야 산 아래 평지 부분만 늘리고 있으니까.
“게이트. 그게 또 생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산맥 안에서 몇 년에 한 번씩 게이트가 생성된다. 하지만 전의 게이트를 금광화시킨 이후 새로운 게이트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재미있어졌네.”
“락도 이제 안정화되고 있는데, 새로운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야. 가뜩이나 사람 손이 부족한 상황인데.”
늘어난 영지의 치안 관리 문제 때문에 정기 토벌도 잠시 멈춘 상황이다.
“끝나면 샤이한을 찾아봐야겠네. 이 근처에서 뭔가 변화가 있다면 그들 일족이 모를 리 없을 테니.”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뭐가?”
“그걸로 오 써클 마법을 시작한다는 거.”
“응. 왜?”
“아쉽잖아. 처음이 가장 중요한 건데.”
고위급 마법사라 불리는 첫 번째 관문.
그게 바로 오 써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라고, 오 써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흔적이 남는다.
첫 마법은 엄청난 영향! 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이 남는다는 사람이다.
어떤 속성이냐? 또 공격 마법이냐? 보조 마법이냐? 따라, 그 이후 마법 수련이 달라진다.
첫 마법이 불 속성 공격 마법이면, 이후 불 속성 계열. 그리고 공격 계열 마법을 익히는 게 더 편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테이밍을 첫 시작 마법으로 하기에는…….”
정말 걱정하는 얼굴이다.
하긴 오 클래스 첫 마법을 길들이기류의 마법을 사용하는 건 아마 나밖에 없지 않을 듯싶다.
남들이 안 했던 길을 가보고 싶은 호기심. 테이밍에 관해 특별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비주류 마법을 선택한 건 간단하다.
‘내게 공격과 방어 마법 이런 게 필요하지 않으니.’
난 다른 마법사들과 너무 다르다.
마법이란 내게 재미있는 학문. 새로운 세계의 호기심 충족. 내 세계의 확장. 제법 괜찮은 효율을 보여 주는 또 다른 힘.
그러니 굳이 내가 강해지기 위해, 적을 상대하기 위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와중에 보였던 게 테이밍 계열의 마법이다.
보자마자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밍.
길들이기네, 조련이네 뭐네 해도, 한마디로 한 생명체를 노예로 만드는 마법 아니냔 말이다.
그리고 락은 일손이 엄청 부족하고 말이다.
“설마…… 아니지?”
얼굴에 ‘생각만!’ 해 봤던 생각이 들어난 것인지, 에르자일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람에게 쓰지는 않을 거다.”
생각만 해 본 거지 그러지는 않을 거다.
‘힘으로 굴복시키면 되는데 굳이 뒤통수 맞을 마법으로까지야.’
여하간 테이밍 마법을 선택한 건 이 때문이다.
몬스터들 중에는 노동력으로 쓸 수 있을 듯한 놈들도 많으니까. 잡아 오지 않고 이리 직접 나온 이유는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기도 하다.
‘테이밍. 무림에서는 이혼대법이니, 실혼대법이니 하는 잡술과 비슷한 면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조금 아쉽긴 하다.
‘잡술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마물이란 존재가 있으니. 제법 유용한 학문인데.’
그럼 정말 몬스터를 이용한 노동력 대체 연구를 제대로 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네가 있으니 좀 낫네. 괜히 이런 일에 너 부르기 뭐해서 혼자 오려고 한 건데. 있으니 덜 심심하고. 또 물어볼 것도 바로 물을 수 있으니.”
“위험한 거지. 처음으로 쓰는 상위 마법인데. 당연히 참관자가 있어야지. 아무리 너라고 해도 큰일 날 수도 있는 거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에르자일이랑 나란히 걸으니 제법 괜찮다.
겨울만 아니었다면 나들이라도 온 기분이었으리라.
그렇게 계속 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노멀존을 벗어났다.
산 안은 조용했다.
원래 산맥은 특정 지역을 빼면 새소리나 곤충 소리가 드물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고요하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마물 한 마리 보지 못했다.
이건 많이 이상한 일이다.
이곳이 노멀존이긴 하나, 그건 언제나 락의 기준에서이지. 마물들이 그런 거 따지면서 침입하겠는가?
예전보다는 그 빈도가 많이 줄긴 했어도, 여긴 하늘 산맥이다. 마물이 보여야 했다. 그렇다고 이상한 낌새도 없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야외 캠핑 나온 기분인데.’
한적한 밤의 숲.
마법을 단계별로 시험해 보기 위해 며칠 야영을 할 생각을 하고 왔다.
야숙이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잠자리도 완벽히 준비되었고, 불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는 모닥불.
그 위로는 메이바스프가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끓고 있고.
“으으음.”
뭐가 흥겨운지 모르지만, 콧노래를 부르는 에르자일이 더해지니 정말 캠핑장과 별다를 게 없다.
너무 평온한 것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법 트랩이라도 설치해야 할까?’
가지고 온 건 없지만 에르자일이라면 도구 없이 마법으로만 설치가 가능할 것이다.
‘뭐, 그 전에 내가 먼저 눈치채겠지만.’
그때 에르자일이 손짓하며 날 불렀다.
“다 됐어. 먹자.”
메이바스프.
무색, 무취, 무미라더니 정말 그냥 맹물을 끓인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당연히 맛도 뜨거운 물 마시는 것 같고.
“밍밍하지?”
나름 미식가인 그녀가 위에다 뭔가를 뿌렸고.
“우유야?”
“비슷한 거. 먹을 만하지?”
“괜찮네.”
맹물보다야 따뜻한 우유 맛 물이 훨씬 낫다.
그렇게 먹자니 아까 에르자일이 이야기했던 메이바의 효능이 뭔지 알게 되었다.
마나에 예민졌다기보다는 뭔가 나른한 느낌이다.
이게 말이 될지 모르지만 나른하여 더 감각이 풍부해졌다고 할까?
나쁘지 않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 마법 트랩까지 설치했다.
만들어진 잠자리에 에르자일과 나란히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을 때, 여기가 대체 어딘지 알고 싶어 별자리를 뚫어지게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유역후와 완벽하게 다른 세계라는 걸 알았다.
여기가 서역이더라도 하늘의 별자리는 같아야 했는데, 별의 위치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여하간 그렇게 누워서 별을 보고 있노라니, 여유라는 게 실체화되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덕분인지, 탓인지 심신은 느긋해졌다.
피곤했던 듯 얼마 안 가 에르자일은 잠에 떨어졌다.
“쓰으으으. 쓰으으으.”
묘한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기다.
일어났다.
‘아기는 재우기 힘든 법이니.’
깨기 전에 해치울 생각이었다.
나른함이 드는 순간 느껴졌던 그 이질감을 말이다.
움직였다.
주변에 다른 게 없음을 몇 차례 확인했다.
이질감은 꽤 거리가 있었고, 마법 트랩까지 있었지만, 혹시 모를 것에 대비했다.
천천히 앞으로 옮겼다.
발이 디디는 곳마다 말라비틀어진 낙엽 천지지만 소리 따위는 나지 않는다.
개천지보 육보 승천(昇天: 하늘에 오르다)에 이어 칠보 이립(而立: 능히 홀로 서다)에 이른지 한참 되었다. 마음먹으면 맨발로 깨진 유리 밭을 걸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계속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