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4)
마법을 무공처럼 쓴다는 것.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법을 구성하는 마나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마나의 본질을 다루면서 모두 한 번씩은 실험한 후에 내린 결론.
현재 이 결론을 아직 에르자일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건 마법사들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결론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이야기해 줘야 한다.
번천을 가르치면서 나도 그것을 체득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있는 것이 효율이 높고, 포스와 마나가 일정 수준에 이른 무인은 번천밖에 없으니 말이다.
“주군!”
마나의 기운을 흘리기 무섭게 번천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느껴져?”
“가능한 겁니까?”
“벌써 놀라면 안 돼. 이제 시작인데. 그리고 검에 마나를 같이 씌우는 건 특별한 건 아니잖아.”
기사들도 기본적인 마나를 다룰 줄 안다.
몬스터 중에서도 물리적인 힘과 포스에 저항력이 강력한 몬스터들이 있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언데드 계열 중 그런 몬스터들이 많다.
마법사나 사제들이 검에 마법이나 신성력을 걸어 주면 간단히 해결되나, 홀로 있을 때는 스스로 마법을 걸 수밖에 없었다.
포스에 힘 쏟을 시간도 부족한 기사들이 괜히 마나를 배우고, 종교를 가지는 게 아니다.
물론 취미로, 그리고 정말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기사도 없는 건 아니나, 이런 위급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도 있는 건 분명 사실.
“일단 계속 흐름만 느껴. 말은 나중에 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다.”
“네. 주군.”
번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꽉 다물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기세다.
내근을 단련하듯 천천히 커터를 움직였고, 조금씩 마나를 흘렸다.
차르르릉.
그리고 어느 순간 번천의 검이 흔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날 쳐다봤다.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번천은 다시 집중했다.
차르르릉.
그리고 다시 한 번 검이 흔들렸을 때.
‘그렇지! 이렇게 나와야지!’
커터에 붙듯이 따라오던 번천의 검이 먼저 앞서기 시작했다. 마치 앞을 막지 말고 비키라는 듯이.
이제 내 차례였다.
단련보다는 억지로 떼어 놓으려는 검의 움직임이 까탈스럽다. 하지만 번천도 내 의도를 알았는지 검을 빼거나, 미는 식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지이이이잉!
그리고 커터에서 미약한 철음이 울렸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
차르르릉.
더 큰 철음이 울림에 웃었다.
“빨리 알아차리네.”
“이게…… 되는 거였습니까?”
“되잖아. 내가 했고, 네가 한 것처럼.”
자신이 했음에도 믿지 못하는 번천을 보며 말했다.
“방심은 하지 말고. 무공의 수많은 결(結) 중 탄(彈)자 결이 가장 쉽게 반응한 거니까.”
“마법사들이 쓰는 주문 없이 마나탄을 쓰니까요.”
“그렇지. 그런 거야.”
역시 지독히 마나 수련을 했던 경험이 있는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내가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은지 알아챈 것 같다.
마나룸에서 내가 얻은 것.
그건 수많은 무리. 그러니까 탄, 폭, 흡 등의 내공이 가지는 무리. 그 결을 마나에 접목하는 방법이었다.
번천이 내 의도를 이해한 순간 거리를 벌렸다.
“하나의 결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만 있다면!”
커터를 들어 불의 기운을 모으는 순간 은은한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휘두르는 순간 그 열기가 번천에게 쏘아져 나갔다.
지이이이이잉!
번천의 그 열기를 검으로 받으며 말했다.
“마나를 포스로 대신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번천의 검이 흔들렸다.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검에서 붉은 기운이 쏘아져 들어왔다.
검기 발출(劍氣發出).
절정고수들. 여기서는 마스터들이나 가능한 원거리 타격.
하지만 번천이 쏘아 낸 건 검기가 아니다.
정확히는 포스를 기반으로 한 마법일 뿐.
일반적인 검기보다는 위력이 떨어질 테지만, 저것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위력이 떨어진다고 그 위력은 맨몸으로 막을 만한 것이 아니니까. 거기에 시각적 효과까지 있으니 상대를 위축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지이이잉!
번천이 쏘아 낸 검기를 커터로 받았다.
“익숙해지기만 하면 마법의 단계를 제거함으로 발현 속도가 빨라지지.”
그대로 받아 역으로 날렸다.
쩌어어엉!
번천은 자신이 쏘아 내고, 다시 받은 검기를 소멸시키며 말했다.
“주군…… 이건.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시작이지. 이론적으로, 그리고 몇몇은 실제로 시험은 해 봤지만, 다 시험해 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걸려도 해야지요.”
“포스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너는 이것만 기억하면 돼. 네 포스…… 사실 말도 안 되잖아!”
‘드레고레’라는 영초를 말도 안 될 정도로 섭취한 번천이다. 가지고 있는 포스의 양만으로 따지면 시그탑을 넘어서는 기사가 그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도 해야 하는 거라. 당분간은 나와 수련만 하는 게 낫겠다.”
번천은 고개를 끄덕이다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테라에게 또 눈총받겠는걸요?”
웃어 주며 답했다.
“네가 테라에게 전수해 주면 되지.”
* * *
“흐앗!”
연병장에 들어서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하아앗!”
우렁찬 기합과 수많은 사내들이 절도 있게 동시에 움직이는 저 모습까지.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까지 생긴다.
특히나 오늘은 더 특별하다.
‘나오질 않았으니.’
새로운 깨달음을 완벽하게 소화하느라 석 달 가까이 밖으로 나오질 않았었다.
원래 정확한 시간을 지키면서 영지 일도 보려 했는데, 재미가 있어도 너무 있었다.
그 탓에 햇살이 눈이 너무 부실 정도였다.
“소영주!”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 온다.
응?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우르르 몰려들었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이상하다.
아는 체는 하는데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군기가 엄격해진 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든다.
군대의 군기가 엄격한 게 장점이 많으면 많았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커졌구나!’
그제야 연병장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백여 명 안팎의 인원이 지금은 삼백여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군대는 규모가 클수록 군기의 중요성은 높아져야 하지만.
‘그래도.’
애초에 이렇게 락의 규모를 키운 이유는 이 사람들의 소영주로서, 그리 살겠다는 의지였는데. 그 탓에 옛날 그 아기자기한 맛은 사라졌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한 명씩 수련을 봐 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럴 나이도 아니고,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닌데.’
조금 규모가 성장했다고, 벌써부터 흐뭇하게만 볼 때는 아닌데 말이다.
‘그나저나…….’
기존 연병장에서 확장한 공터에서 따로 훈련하는 이들을 보였다.
그때 그쪽에서도 사람이 다가왔다.
“소영주님. 오셨습니까?”
“시그탑 경도 계셨습니까! 훈련은 브렌드 경이…… 아!”
그제야 깨닫는 게 있었다.
“시그탑 경. 혹시 훈련시키는 사람들이?”
“네. 락의 기사들입니다.”
절로 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기사단!
아버지와 시그탑, 그리고 나. 번천까지 기사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실력자는 많으나, 여력이 되질 않아 가지지 못한 강력한 전투 집단.
‘솔직히 보기도 좋잖아. 락을 알리기에도 좋고.’
대륙 ‘십대기사단’이니. 제국 ‘삼대기사단’이니 정예라는 것만 확실히 증명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명성.
그리고 그런 기사단을 보유한 영주, 왕의 무게는 절로 올라간다.
그만큼 기사단은 하나의 막강한 상징.
움직이면서 물었다.
“아직 아버님이 작위를 주실 수는 없으셨을 테고. 기존에 작위를 가진 자가 있습니까?”
“기사단이라 하지만 일단은 다 후보생이라고 해야겠지요.”
“자유 기사라 불리는 자들도 없습니까?”
자유 기사란 별게 아니다.
작위를 받았으나 섬기던 주군이 죽었거나, 무슨 이유로 모시는 사람이 없는 기사들을 총칭하는 명칭이 자유 기사.
시그탑은 고개를 저었다.
“네. 주군의 의지가 확고하셨습니다.”
“아버님이요?
“굳이 자유 기사들을 고용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최소 첫 번째 기사단은 오로지 락을 위한 집단. 그게 주군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반수 이상이 락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락을 위한 기사단이라…….”
“기사단이 있으면 좋지만, 간절하게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영지에 소영주도, 그리고 저도 있으니까요. 번천과 테라도 지금도 어느 기사들과 비교해도 큰 손색은 없고 말입니다.”
자부심이 잔뜩 들어 있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 영지에 이리 많은 포스 유저와 마스터들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그때 시그탑이 물었다.
“그런데 번천은 함께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아! 번천은 좀 쉬어야 할 겁니다.”
“네?”
“그런 게 있습니다. 그나저나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도와줄 게 있겠습니까?”
“소영주께서 가르침을 주시면 분명 도움이 되는 건 있겠지요. 가시지요. 몇몇 후보생들은 올해 내로 포스 유저가 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기대됩니다.”
그렇게 시그탑을 따라 움직이다 테라를 발견했다. 그는 놀랍게도 전신에 땀을 흘리며, 정말 열정적으로 후보생들을 상대로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테라가 정말 열심이군요.”
시그탑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테라가요?”
“그게…….”
시그탑은 옅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기사단의 이름을 테라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이름을 정하셨습니까?”
“네…… 주군께서도 재미있어 하셔서…….”
재미있다는 말에 가슴이 더 내려앉았다.
‘아니겠지…….’
시그탑에게 물었다.
“혹시 녀석이 주장한 이름이…… 영광과 정의의…….”
시그탑이 내 말을 받았다.
“네. 영광과 정의의 빛 기사단으로 정해졌습니다.”
“테라! 이 녀석!”
테라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꼬맹이였을 때 동네 애들과 지었던 이름을 기사단에 붙이면 어쩌냔 말이다!
* * *
“와카디아에도 대영주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와카디아?”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의 반문에 루니 백작이 대답했다.
“네. 폐하.”
“와카디아…… 하늘 산맥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폐하.”
“거기는…….”
황제 조이 오베른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 눈앞에 내려온 적발을 한 번 쓸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백작이 하나 있지 않았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와디아 백작이 대영주로 있었지요. 그리고 작년에 급사했습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남작의 지위로 영지를 물려받았습니다.”
루니 백작의 대답에 황제 조이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런가?”
“네. 그러니 폐하께서 중심을 잡을 사람을 임명해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와카디아는 베스타인 공작의 관할령. 짐이 관여하면 좋아하지 않을 거야.”
“관할령이나 공작이 어찌…… 폐하께서 백작의 위를 내리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작이 대영주로서 중심을 잡기에는 어려울 테니. 하지만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루니 백작은 황제 조이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소신이 알아보니, 그쪽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더군요.”
황제는 흠칫했지만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는 금세 평온을 찾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
“그것이.”
루니는 더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황제에게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고, 듣고 있던 황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며, 두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그렇단 말이지?”
“네. 아무래도 집안싸움 아니겠습니까? 베스타인 공작도 이제 늙지 않았습니까?”
“그래. 특별한 일도 아니지. 어디 이게 그쪽 가문의 일만일까?”
“그렇지요.”
루니는 은밀한 말투로 말했다.
“와카디아가 공작의 관할이라지만, 결국 폐하의 땅이며, 폐하의 백성들이 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러니 폐하께서 직접 임명하셔야지요.”
“누구를?”
루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에듀 진 베스타인. 와디아를 영지전에서 이긴 남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