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3)
“이게 대체…….”
마나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단지 그 앞에 섰을 뿐이다.
그르르르르릉.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
덜컥.
그리고 마나룸의 문을 열었을 때 봄바람처럼 따스한 바람이 에르자일의 귓가를 스쳤다.
‘이게…….’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보임으로 그런 게 아니다.
뭐라 설명해야 할까?
세차면서도, 부드러웠고, 혼란스러우면서 질서가 있는 흐름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그냥 문을 닫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눈앞에는 로라스가 중앙에 앉아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에르자일은 괴기스러움을 느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흐름.
그리고 그녀는 또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현상을 보며 급히 밖으로 나갔다.
“마정석! 마정석 가지고 와!”
그녀의 외침에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올라왔다.
“마정석은?”
“여기.”
마법사 중 한 명이 손을 내밀자 그의 손에는 몇 개의 작은 마정석이 놓여 있었다.
“더! 일단 가지고 올 수 있는 거 다 가지고 와!”
에르자일의 다급한 목소리에 한 마법사가 말했다.
“마정석은 충분히 공급했습니다. 충분할 것…….”
“부족해! 그냥 가지고 와!”
본전도 건지지 못한 마법사가 급히 뛰어가고, 에르자일은 고개를 돌렸다.
마나룸의 마나의 농도가 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나룸에 마나를 공급하는 장치에 놓여 있는 마정석은 시커먼 돌덩어리 마냥 그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헛!”
그리고 몇몇 마법사가 그녀가 본 것을 확인하며 헛바람을 내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마정석의 마나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대체 왜 저렇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최소 에르자일이 왜 저리 다급해졌는지는 이해가 간 것이다.
‘안 돼!’
그때 빛을 완전히 잃어 가는 것을 확인한 에르자일은 급히 달려갔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차고 있는 팔찌를 뜯어내듯 벗긴 후, 그대로 장치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팔찌는 일반적인 장신구가 아닌 마법이 깃들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마법 무구가 아닌 작은 마나석 몇 개가 박힌 그런 마법 장신구였다.
자신의 팔찌를 대가로 삼았으니, 시간을 버는 정도가 아니라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 신이여!’
그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마정석도 아니 마나석이 박힌 팔찌다. 그리고 그 용도가 마나룸을 유지하는 것뿐인데. 마나석의 크기가 눈에 뜨일 정도로 작아지고 있는 것 무슨 경우냔 말이다.
그 탓에 에르자일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손으로 비볐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녀의 고개가 로라스를 확인하기 위해 세차게 꺾였다.
다급한 상황과는 달리 로라스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에르자일 님. 여기!”
그때 몇몇 마법사들이 마정석을 들고 달려왔고, 에르자일은 그것들을 그대로 장치에 투입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마정석의 마나가 뽑혀 가는 소리일 듯한 소리가 울렸고.
쿠르르르릉.
대기가 다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한 진동에 에르자일이 소리쳤다.
“모두 내려가세요! 아니! 탑 내 모든 인원을 데리고 밖에서 대기하세요!”
“탑주! 탑주님은!”
“나가라고요!”
에르자일의 언성을 높이자 마법사들은 허둥지둥 몸을 움직였다.
‘로라스! 대체…….’
로라스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크르르르릉.
대기가 깨지는 소리는, 맹수가 내는 낮은 울음소리와 닮아 있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녀에게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실수한 것이다.
지금 로라스가 마나와 접촉하는 새로운 경지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급하게 자신의 팔찌와 마정석을 투입했다.
하지만 아니다. 엄청난 실수를 했다.
이건 마법사가 마나와 접촉하는 경지를 넘어선…….
‘마나 폭주!’
마법사라면 꿈에도 그리는 상황이었다.
마나 폭주는 마법사를 파멸로 이끈다. 그럼에도 꿈을 꾼다는 말은 웃긴 일. 하지만 그 폭주라는 것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마나를 모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마나 폭주를 걱정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당한 경지, 또는 엄청난 재능, 둘 중 하나라는 뜻.
그러기에 꿈을 꾼다는 뜻이다.
그럴 위험이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만을 말이다.
여하간 마나 폭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만들어 둔 마나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여 거기에 휘말려 자신을 파멸하는 것.
또 하나는 마나 그 자체가 폭주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파멸하는 것.
지금은 후자다.
천둥 치는 소리와 지진 같은 진동이 그 증거다.
―살면서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들지. 이 스승도 딱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리 말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를 죽일 뻔했어. 그때 주군이 옆에 아니 계셨다면.
내가 그런 마법사라는 걸 자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위기를 겪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헤르메스는 그것에 대해 설명해 줬었다.
그때 에르자일은 그런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났냐고.
헤르메스의 해답은 간단했다.
―주군이 옆에 계셨다니까. 주군이 내 앞에 소용돌이치던 마나를 잘라 내셨지. 아주 깔끔하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상대가 베스타인 공작이니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던 설명.
공작은 포스의 궁극에 다다른 초월자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공작이 없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자신을, 그리고 로라스를 위해서라도 눈앞의 거대하면서도 세차게 흐르고 있는 저 기운을 막아야 했다.
에르자일은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쥐었다.
“탄!”
그리고 마나탄을 쏘아 마나룸에 공급하던 장치부터 파괴했다.
“나의 의지. 이곳으로 모아, 모두 흩날려 버릴지니!”
그녀의 입에서 룬어가 쏟아져 나왔고. 그녀의 지팡이에 하얀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법 무효화의 주문.
하지만 이 주문으로도 모든 것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달걀로 바위를 부수는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답이 없었다.
로라스를 저리 죽게 둘 수는 없지 않으냔 말이다.
그렇게 에르자일이 죽음을 각오하고 주문을 완성하려 할 때였다.
…….
…….
“뭐 해?”
“…….”
“어라…… 저건 왜 부서져 있어?”
마나 공급 장치를 보며 의아해하는 로라스.
투욱.
그런 그를 보며 에르자일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개천지보 제 오보 촉천觸天.
현재 상황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손을 뻗었고, 그것을 만지는 순간 깨달았다.
‘뉘미…….’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지금 이 상황. 굉장히 익숙하지 않으냔 말이다.
‘뭐야? 마법에도 등선이 있었어?’
저걸 만지는 순간 저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빠져들 것이라는 걸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이 모자란 것만 못하다)이라더니!’
단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로라스로서의 삶이 날아갈 뻔했다.
‘아쉬운데.’
하지만 이대로 저 기운을 떠나보내는 것도 너무 아쉽다.
‘가능하려나?’
쉽지는 않겠지만 욕심을 적당히 덜어 내면 어느 정도는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적당히'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모자라면 내가 바보인 거지.’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빠져들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손을 대었다.
‘그것의 본질을 보되, 그것이 가지고 있는 힘은 취하지 말자.’
마나에 대한 명확한 감각.
내가 취할 부분을 거기까지로 선을 그었다.
그래서 원소라 불리는 그 힘의 다양성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수풍지화 같은 건 내력으로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본질이 변할 때의 감각이 내게는 더 날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난 내공을 늘리고, 축소시키고, 끌어들이고, 튕겨 내며, 터트리고, 압축하는 등의 활용법에 익숙하다.
하지만 마법은 아니다. 특히 마나의 성질을 내공처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면?
‘수련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게 된다.’
단시간 내로 그걸 한번씩 다 익혀야 했다.
이 자연적인 힘에 대한 유혹은 무인이라면 너무나도 강렬한 유혹이기에, ‘아차!’ 하는 순간이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그 기운을 만질 수 있으니, 그대로 실행했다.
‘아쉽다!’
매우 짧은 시간.
강렬한 아쉬움이 들었지만, 손을 뗐다.
조금만 ‘더! 더!’ 하다가는 로라스로서의 삶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우는 범하지 않은 채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보낸 순간.
‘어?’
두 눈을 뜨자마자,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는 에르자일을 쳐다봤다.
“뭐 해?”
그녀 옆에 부서진 마나 공급 장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라…… 저건 왜 부서져 있어?”
그녀가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그대로 주저앉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르자일?”
다가가 에르자일을 부축했다.
“너 뭐 한 거야?”
원망 어린 눈으로 날카롭게 보는 쏘아붙이는 그녀.
한참 후에 깨달았다.
에르자일이 날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 * *
“기본적인 것도 배우지 않았으니 당장은 의미가 없다.”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내가 아닌 마탑을 찾아가야지. 가서 배워. 깊고 파고들지는 못하겠지만, 기본적인 걸 배우면 여러 가지 도움이 될 거다.”
그 말에 테라는 고집을 피웠다.
“주군께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 한가하냐? 귀찮게 하지 말고 마탑에서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
뭐라 더 말을 하려는 녀석을 보며 눈을 힘을 줬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못해 가는 녀석을 보며 고개라 절로 흔들어진다.
‘하여간 욕심은…….’
그게 테라의 성장 동기 중 하나이지만, 계속 저러면 곤란한데 말이다.
락이 커질수록 사람들, 특히 락의 핵심 인물로 점찍고 키우는 사람들도 커져야 하는데 말이다.
“테라 녀석. 너한테도 여전해?”
물음에 번천이 쓴웃음만 지으며 대답했다.
“주군의 첫 번째 기사가 됐는데도 여전히 뭐든 저보다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뿐이야? 다른 건?”
“그거 빼고는 충돌 날 일이 없습니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병사들에게는 또 굉장히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 하니까요.”
“녀석…….”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게 테라라는 무인의 특성이고, 그것을 억누를 수는 없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범위.
“네가 잘 다독이고 이끌어 봐. 할 수 있지?”
“이제는 고집 센 동생일 뿐입니다.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지. 그리고 오늘 너를 여기로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말을 하면서 그의 허리에 검을 쳐다봤다.
“검을 봐 주시려는 겁니까? 굳이 테라를 돌려보낼 이유는…….”
“정확히는 마법이라 그래.”
“…….”
“그간 개천지보만 수련하느라 마법에 등한시했을 거 야냐.”
“명상 정도는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깨달은 게 있는데. 너는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눈을 빛내며 검을 뽑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물 속성의 마나는 계속 에르자일에게 점검받아. 내가 알려 줄 건 다른 분야니까.”
커터를 내밀었고, 번천은 눈치 빠르게 검을 갖다 대었다.
“마나 더 모으기 힘들지?”
“벽입니다. 그게 포스의 벽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지. 그리고 너라면 부족한 마나를 포스로 채울 수 있을 거야.”
커터를 움직였고, 번천의 검이 그런 움직임을 착실하게 따라왔다.
내근 훈련은 내가 전파한 후, 영지 내 포스 유저급이라 할 수 있는 인원은 전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숫자가 아직 열이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지만, 반드시 해야 할 훈련이라 생각하여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이라면 누구나 일단 연습은 시키고 있었다.
번천은 당연히 그걸 할 줄 알고 교관의 역할도 맡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커터를 움직이면서 집중했다.
마탑에서 얻은 것.
그것을 번천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