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2)
에르자일의 지팡이 앞쪽으로 노란색에 가까운 백색의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저 기운의 속성은 불.
보통 붉은 빛을 발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녀의 불꽃은 황백색.
그냥 불꽃의 색이 다를 수도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색은 마법사의 수준을 나타낸다.
같은 불의 기운이라도 그 위력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내가 불의 기운을 모은다면 빨간색을 넘어선 주황색이 고작이니 말이다.
‘헤르메스가 청백색 거의 최고 수준의 불꽃을 만들어 내는 걸 생각하면.’
에르자일도 상당한 마법사란 건 사실.
“만들고, 응집하여, 던지는 게 불의 구슬.”
그녀의 지팡이 방향에 불 구슬이 날아가 폭발하였지만, 그 여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 구슬이 터진 곳은 마법 면역구역.
마탑 건설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이유가 저런 면역 구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너도 사 써클까지는 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보여 준 이유를 알아?”
“모든 마법은 삼 써클부터 무한한 응용이 되기 때문에?”
“맞았어. 기본적으로 모든 마법은 기운을 모으고, 그것을 어찌 활용할지 결정하는데 기본적으로 세 개의 행위가 필요하니까.”
에르자일은 지팡이를 들며 다시 말했다.
“불의 구슬이 공격 마법으로 가장 유명한 건, 불 자체에 폭발력이 있어서 삼 써클만으로도 훌륭한 광역 마법이 되기 때문이고.”
그녀의 지팡이에서 다시 노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광역 마법은 더더욱 그렇지. 위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범위 확정이라는 행위가 하나 더 필요해. 그래서 보통 광역 마법이라는 건 사 써클 이상의 마법이야.”
같은 노란 빛이지만 이번에는 뜨겁지 않다. 천장 위로 무려 일곱 개나 되는 빛 구슬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광역 마법을 공격 마법으로만 쓰려고 해. 사실 더한 응용 방법도 있는데.”
투우옹.
에르자일의 지팡이가 바닥을 가볍게 치는 순간 구슬들이 한군데 모이더니 폭발했다.
그 강렬한 빛에 나마저도 고개를 돌려야 했다. 내공으로 막을 수 있는 빛의 세기가 아닌 것이다.
“이런 걸 보여 주는 것도 이 때문이지. 광역 마법을 배우려면 그런 선입견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녀는 확실히 훌륭한 스승이다.
사실 내가 당분간 마법에 집중하려는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다수와의 전투일 경우, 검보다는 마법이 무조건 빠르다.
물론 내 수준이면 크게 별다를 것 없겠지만, 효율성의 문제는 남는다.
‘일단 보는 것부터 다르니.’
일레아 용병단을 제압하면서 느꼈다.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에르자일은 계속 말했다.
“네 마법적 재능이 뛰어난 건 알지만, 딱 사 클래스의 마법사가 그런 착각을 많이 해서 노파심에 알려 주는 거야.”
“훌륭한 지적이야. 생각의 폭이 좁긴 하더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금방 배울 거야. 너는 포스마저도 마법의 느낌을 주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폭, 쾌, 변, 환 등의 무리를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포스로써 마법의 써클 하나를 대체하니 더더욱 용이하겠지.”
그녀는 다음으로 수인과 지팡이의 활용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건 오히려 내가 더 잘할 것이다. 하지만 말을 끊지 않았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그걸 끊는다 말인가?
설사 다 아는 말만 하더라도 다시 한 번 곱씹는 것도 훌륭한 방법.
그녀는 어느새 마법 이론으로 넘어갔다.
“써클이 올라갈수록 집중과 집중을 더해 한 번 더 집중해야 하는 식이 돼 버려. 집중의 탑. 이전 단계의 집중이 흐트러지면…….”
“탑이 무너지고, 캐스팅은 무산되지.”
“맞아. 그래서 오 써클 마법 이후부터는 두 배씩 어려워지는 거야.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은 충족하면서 다른 걸 활용해야 한다는 것. 생각이 생각을 따라 주지 않는달까?”
그녀의 지팡이가, 손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룬어들.
‘대단하다!’
그리고 에르자일이 만들어 낸 빛의 탑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앞의 오색찬란한 빛의 탑.
이게 왜 대단하냐 물으면 하나만 대답해 주면 된다.
저 빛은 단순히 색깔만 다른 게 아닌 저마다 다른 속성을 지닌 마나의 기운이라고 말이다.
내가 쓸 수 있는 불의 창의 화려한 연출보다 어려운 게 저거다.
‘아니, 애초에 저런 식으로 쌓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지.’
확실히 마법이라는 공부도 무공과 비슷하다.
일단 기본이 쌓이면 응용이다.
‘응용은 상상력이지.’
이건 머릿속에 내가 무엇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릴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영역.
‘내가 머리가 굳었나?’
무공에 대한 확신 때문인지 몰라도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유역후도 대종사(大宗師)였는데!’
이런 것에도 승부욕이 생기는 느낌이다.
‘못 할 것도 없지.’
마법은 재미있는 학문. 딱 이 수준으로만 생각했지, 파고들지는 않았다. 파고든다면 대마법사 못할 건 또 뭐가 있느냔 말이다.
“포스와 마나. 네가 그걸 하고 싶어 하는 건 알지만, 내가 모든 걸 알려 줄 수 없어. 나는 기초적인 포스만 다룰 수 있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깨달아야 해. 그 과정은 네가 만들어야겠지.”
“역시 넌 훌륭한 스승이야.”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줬다. 그녀가 마땅히 들어야 할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승부욕을 끌어냈으니까.
아주 훌륭한 스승이 아니냔 말이다.
* * *
맡고 있던 영지의 일은 모조리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어차피 치안 문제를 빼고는 다른 영역의 일은 내가 거드는 수준.
이미 락은 시스템을 이뤘다는 뜻이다.
‘그래. 근래 게을렀지.’
일과가 게을러졌다는 게 아니다.
그간 정말 바삐 뛰어다녔으니까. 게을러진 건 개인적인 수련이다.
개천지보의 힘을 믿고 개인의 무(武)에 관해서 소홀히 한 거다.
‘난 로라스이지, 유역후가 아닌 것을.’
유역후였다면 수련이란 건 취미, 하지만 로라스로서 올라야 할 산이 많은 무인.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정말 그랬다.
최소한 강하다고 표현하려면 할아버지와 백여 합 정도의 손은 섞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수련은 하지 않았지만, 행공으로 내력은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내후년쯤에는 개천지보 팔보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내년도 무리는 아닐 것이고.’
효율의 문제다.
포스를 먼저 발전시킬지, 아니면 마법의 경지를 늘린 것인지. 그리고 나는 마법을 선택했다.
특성상 개개인의 무력보다는 다수를 상대로 한 무력이 더 필요하니까.
‘폐관수련이 젤 좋겠지만.’
좀 과한 선택이다. 솔직히 락의 발전 과정을 눈에 담아 두고 싶은 욕심이 크다.
‘한나절씩 꾸준히.’
마탑의 마나룸을 하나 빌렸다.
마탑에서 가장 유지 비용이 비싼 곳이 마나룸이다. 그 탓에 수련마법생들은 한 번 들어오기도 힘든 곳이다.
마나룸이 유지 비용이 비싼 이유는 간단하다.
마정석을 재료로 하여 방 안의 마나의 농도를 짙게 해 주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마나보다 세 배 이상의 농도. 당연히 다루는 것도 그만큼 편해진다.
다행히 내 주머니 사정은 풍부했다.
나도 나름 비자금이 필요하여 에렌의 고스트에서 오는 자금 일부분을 챙겨 둔 상황이다.
덕분에 마탑 관리자에게 마나의 농도를 최대한 높이라고 지시할 수 있었고.
‘돈 지랄이긴 하지만.’
다섯 배 이상으로 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후우우!”
긴 호흡과 함께 눈을 감았다.
무공에는 운기조식이라는 법칙이 있다면, 마법에는 명상이라는 법칙이 있다.
그 두 가지의 다른 게 있다면, 운기조식은 내공을 느끼고 그것을 증강시킨다. 하지만 명상은 마나 자체를 증강시키는 게 아니다.
‘마나는 신체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행위 그 자체에서 모아야 하는 것이니.’
그 탓에 체외에 있는 마나를 모은다는 건, 체내에 있는 포스를 모으는 것보다 어렵다. 대신 포스보다 더한 파괴력도 지닌다.
한 인간의 단전에서 나오는 기운보다는, 자연에서 떠도는 기운이 위력이 더 큰 것은 당연하니까.
그래서 명상이라는 놈이 중요했다.
모으기 위해서는 기운이 명확히 느껴야 했고, 잘 느끼면 느낄 수록 그것의 위력은 배가 된다.
마나룸에 들어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렷하게! 확실하게 그 감각을 인지시킬 수 있으니까.
“스으읍! 후우우! 스으읍! 후우우!”
규칙적인 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끄러운 머릿속의 소리를 하나씩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무공보다 더 재능을 요구하는 것이 마법.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명상.
명상이란 그 단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 그리고 이해한 만큼 실행할 수 있느냐?
사람의 집중력은 저마다 제각기이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후우우우!”
그렇게 따지면 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무아지경에 나만큼 쉽게 들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몇 되지 않을 테니.
모든 감각은 스스로에게 집중되었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의 모든 감각이 차단됐다.
오로지 나를 관조(觀照: 모든 사물의 참모습을 비추어 봄)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게 정말 쉬운 절차.
개천지보의 첫 시작도 이 관조에서 시작된다.
개천지보 제 일보. 의식도료(意識到了).
먼저 깨닫고.
개천지보 제 이보. 아시아(我是我).
나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인식한다.
개천지보 제 삼보 정개안정(??眼睛).
나 이외의 것을 크게 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하아아!’
나는 마나를 명확하게 느끼는 것을 넘어서, 보이기 시작했다.
개천지보 제 사보 앙망세계(仰望世界: 세상을 바라보다).
나무를 보았으니 숲을 보는 것처럼, 기운을 보았으니 이제 그 기운의 조화를 본다.
화려하게 눈앞을 떠돌던 그 색의 기운들이 저마다 일정한 규칙과 함께 자리 잡은 것이 보인다.
‘이것이 마나의 세계!’
느끼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감을 느끼는 세계.
그 세계에 정신이 팔렸다.
원소라 불리는 그 본질의 기운들이 주는 감각을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건 덤.
‘마법이라는 건!’
완벽한 나의 세상이 아닌가!
개천지보의 본질과 그 궤를 같이하는 그 세상을 보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약간 더 강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면, 그렇다면 뭔가 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쉬움이란 갈증에 목마를 때 세계가 더 명확해졌다.
‘그래! 이거지!’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절로 호흡이 되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전신을 휘몰아친다.
……!
그리고 그 순간 욕심이라는 놈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 세계 속으로 더 들어가고 싶고, 이미 미칠 듯이 느껴지는 충만감을 넘은 그 어떤 세계.
그 안으로 쳐들어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
보였다.
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 입구가.
개천지보 제 오보 촉천(觸天: 하늘을 만지다)인가?
정말 개천지보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세상 아닌가.
손을 뻗었다.
* * *
우르르르르.
“뭐야!”
지진이라도 난 듯 공간이 흔들림에 마탑의 마법사들은 하던 일을 멈췄다.
“누가 폭발성 마법이라도 수련하는 거야?”
한 마법사의 질문에 다른 마법사들은 서로를 쳐다볼 뿐, 답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말이 되나. 탑주께서도 이 정도의 진동은 만들어 내실 수 없을걸?”
누군가 하는 반문에 모두가 동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마탑이 어떤 곳인가?
탑주 에르자일이 매지스터이긴 하지만 그래서 마탑은 마법에 의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건설되어 있었다.
락의 탑이 헤르메스의 마탑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다 하나, 그 견고함 만큼은 비슷하다고 봐야 했다.
“마스터께서 오셨을 리도 없고. 혹시 탑주가?”
대답은 없고 계속 물음만 들린다.
하지만 그 답은 금방 나왔다.
“밖에 지진 난 것도 아닌데 방금 그 현상 뭐야!”
탑의 1층으로 에르자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려오자, 마법사들은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에르자일의 표정이 굳었다.
‘로라스!’
그녀는 1층으로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