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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41화 (14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1)

단 한 번의 영지전으로 와카디아 지역을 휘어잡은 소식은 제국 내 귀족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북부는 에렌으로 대표되었고, 와카디아 지역은 그래 봤자 변방, 생산량도 변변치 않은 그저 그런 지방이었기에 소식은 단지 소식으로 끝났다.

하지만 당사자인 락은 정신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영지민들이 몰려왔다.

―락은 세율이 적다더라!

―락은 농경지는 있는데 그걸 일굴 사람이 부족하다더라.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더라!

제국 남부에서도 이런 소문이 퍼졌으니, 자유민들이 북쪽으로 오는 일도 늘어났다.

물론 자연스레 퍼진 소문은 아니었다.

렘.

아직은 전국적인 이름은 얻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계에서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사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상단으로 전국을 돌며 그 소문을 퍼트리는 중이었다.

락이 특별한 부탁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단의 근거지를 락에 두고 있는 그로서는 락의 인구가 늘어날수록 이득이지, 손해 볼 일은 아니기에 적극적으로 락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있었다.

여하간 그리하여 사람이 계속 몰려드니, 상인들도 몰리기 시작했고, 상인들이 몰리니 호송업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상단을 따라다니는 용병들도 늘어났다.

용병들은 대책 없이 돈을 쓰는 부류.

당연히 유흥업소들이 몰리니, 거기에 따른 사람들이 또 몰린다.

그러한 탓에 락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

분명 새로운 건물이 생기면 저게 무슨 건물인지 알아야 하는데, 저게 무슨 용도로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 궁금증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일일이 확인하면 다른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락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파이프에서 호구조사 요청이 있었습니다.”

“와카디아에서 헌터 길드의 설립 요청이 있었습니다. 조건이 충당되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실 락만이라면 어찌 커버가 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락은 옛날 하늘 산맥 끄트머리에 있는 영지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와카디아를 통틀어 락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 표현의 폭이 커졌다.

“사람이 필요합니다.”

“있는 사람들도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문제는 폭발하는 행정에 비해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글자만 알고, 사칙연산만 제대로 하는 사람들도 영지에서 돈을 지불하고 고용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 자체가 귀했다.

척박한 북부.

소위 먹물이 든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

돈이 있어 고용하고 싶어도 그런 사람 자체가 모자라고 있었다.

기존의 영주들. 그러니까 영지전에 참여했던 몰락 귀족들을 고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무슨 수를 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의견은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에듀 진 베스타인. 락은 그 이름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입니다.”

로라스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다.

이제 막 통합되기 시작한 지역에 다른 귀족 가문의 이름을 남길 여지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럴 확률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내전이 벌어지는 경우의 수도 생각했고, 무엇보다 힘들다고 그래 버리면 오히려 완벽히 통합되는 순간은 늦춰지게 된다 생각했으니까.

힘들다고 하지만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가야 했다.

가장 공들인 건 역시 호구조사였다.

그 어떤 곳이든 영지 내 인구 숫자가 가장 중요한 법.

그리고 그 숫자는 예상보다 많았다.

“오인 일 가구를 기준으로 팔천구십칠 가구입니다.”

드리프는 그렇게 보고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제대로 잡지 못한 인구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만 명…… 정도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정도면…….”

드리프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맞다. 오만의 영지민을 둔 귀족은 제국 내에서도 스무 명 안팎.

이 정도면 외형상으로는 대영주급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인구가 늘어난 게 아니라, 관리할 인원이 늘어난 겁니다.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락의 치안을 총괄하는 브렌드가 입을 열었다.

“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존의 시스템이 워낙 확고하게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다른 영지들인가?”

에듀의 물음에 브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야 할 땅은 많은데, 지켜야 할 인원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땅으로 몰리고 있는 인원 대부분이 상인, 농민들이니까요.”

모든 영지의 사람들이 락의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락은 자경단원만으로도 자기 땅을 지킬 여력이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아니다.

애초에 영지전에서 형편없던 그들의 군사 수준을 생각해 보면 답이 없음을 안다.

게다가 브렌드는 각 영지를 돌며 병력의 숫자. 그리고 질을 확인하며 더 답 없음을 느꼈다.

그러니 저렇게 소리 높여 치안유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에듀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용병들도 많이 몰리지 않았는가? 그들을 고용하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많이 몰려 문제입니다. 애초에 치안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도 그에 대한 영향이 상당합니다. 용병들이 난장을 부릴 땐 제압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락이 아닌 이상 그런 힘을 보유한 곳이 극히 드문 상황입니다.”

사람이 계속 몰린다는 건 좋은 점이다. 하지만 브렌드의 말처럼 그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사실.

용병을 치안용으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돈을 받음으로써 생기는 책임감은 있지만, 용병 대부분의 특성상 같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브렌드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도 각지에서 몰려드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니까. 굳이 용병이 아니어도 유흥업소가 있는 곳은 늘 사건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용병들이나 유흥업소를 모두 차단할 수도 없다.

세금 문제가 아니라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니까.

사람들은 이런저런 의견을 내놨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또는 현재 분위기에 맞지 않는 방법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뚜렷한 해결책이 없이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마침내 로라스가 입을 열었다.

“자잘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큰 치안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해결책을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말씀드릴 만한 게 아니니.”

로라스는 드리프의 물음에 그리 답하며 에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일 년 안에 치안을 안정화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그리 말했을 때는 무슨 방법이 있는 거겠지. 일임할 테니 해 보도록 하거라.”

“네. 아버님.”

그렇게 굵직한 안건이 몇 건 더 오간 후에 회의가 끝났다.

“소영주님.”

모두가 회의실에서 벗어날 때 브렌드가 로라스를 찾았다.

“혹시 귀띔이라도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시면…….”

“브렌드 경도 정신없지 않으십니까? 병사들의 수준부터 끌어올리셔야 하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맡겨 주세요. 브렌드 경을 무시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경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브렌드는 로라스의 대답에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무법지대를 통합하여 전쟁에까지 이용한 로라스다.

아마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해결할 확률이 높았고, 그건 로라스의 말대로 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았다.

로라스는 연병장 근처에 세워 둔 막사로 향했다.

저택에 오가는 시간도 아까운 데다, 근래 훈련 때문에 아예 막사를 거처로 삼은 상황이다.

막사로 돌아온 로라스는 생각에 잠겼다.

“으음!”

치안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한 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계(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압한다).

치안을 해치는 건 용병들과 파락호들.

‘용병들은 단기적으로 돌리고, 장기적으로는…….’

이런 문제는 뿌리를 뽑을 수가 없는 문제. 그럴 바에는 통제 가능한 놈들이 아예 장악하는 게 낫다.

‘누가 더 적격일까?’

써먹을 수 있는 조직은 많다.

대표적인 게 킹드래곤과 고스트다.

수장들인 오리시암과 발란스나 요르크를 부르는 건 그들이 맡고 있는 일이 중하니 무리.

하지만 그들 조직 중 중간 간부급 몇 놈만 불러와 밀어주면 이제 막 자리 잡은 흑사회 조직들을 밀어내는 건 일도 아닐 터.

무법지대의 조직이냐? 에렌의 조직이냐?

두 개의 선택지에서 고민이 조금 되었다.

‘고스트 쪽이 더 나으려나? 그쪽이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방법들을 택하고 있으니.’

하지만 또 생각하니, 개척지나 다름없는 락에서 그들의 방법이 통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냥 죄다 죽도록 조져?’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하려면 킹드래곤 쪽이 더 낫다.

‘결국, 어느 정도의 피는 흘려야 한단 거겠지?’

로라스는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런 일에 내가 집중하는 것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이것 말고도 할 일이 태산이다.

‘적절히 필요할 때 양쪽 방법을 번갈아 쓰는 게 좋겠지. 최대한 소란 없이!’

한 군데가 아닌 양쪽 모두를 부르면 간단한 문제지 않는가.

오리시암과 요르크에게 적당한 놈들을 보내라 지시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그를 찾는 손님이 있었다.

“로라스!”

“들어와.”

에르자일이 방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지팡이 대신 차 세트가 놓여 있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아들!”

“어머니!”

그리고 그 뒤로 어머니의 모습에 로라스는 급히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그냥 부르시지. 여기까지 직접 오셨어요.”

“저택에서 여기까지 멀지도 않은데. 그리고 요새 바쁜 건 이 어미도 알고 있단다.”

“그냥 부르세요. 아직 바람이 찹니다.”

로라스가 손을 잡으며 하는 말에 메어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춥다. 이거 예쁘지 않니?”

그제야 자세히 보니 메어리의 어깨에는 벨벳으로 만든 숄더가 걸쳐져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옷이다.

“에르자일이 선물로 주더구나. 이걸 걸치니 하나도 춥지 않아.”

메어리는 에르자일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이게 뭐라고 했었지?”

“바람 차단, 불 속성 강화 비단 숄더에요. 어머니.”

마법 아이템이란 소리다.

‘내가 진작 신경 써야 했는데.’

너무 바빠서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따뜻해. 날이 추운데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래서 딸이 필요한데 말이지.”

그리고 슬쩍 로라스에게 눈짓을 주는 메어리.

로라스가 뭔가 화제를 돌리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날짜를 잡아야지. 결혼식은 언제 할 거니?”

* * *

마탑 수련장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에르자일이 질문을 던져 왔다.

“신경 쓰여?”

“뭐가?”

“어제. 어머님이 말씀하셨잖아.”

“그걸 네 입으로 말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아?”

“뭐가?”

복수라도 하듯이 같은 반문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생각해야 했다.

‘혼인이라…….’

속 시끄러운 문제다. 정확히는 그쪽에는 아예 무신경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

‘나쁠 것 없다만…….’

생각하면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예 전략적으로 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혼인은 강력한 동맹, 통치 수단의 하나다.

‘그 상대로 에르자일도 나쁘지 않고.’

귀족가의 자제도 좋지만 에르자일은 그녀 스스로 고위 마법사. 나 스스로도 헤르메스와 사제 관계이긴 하지만, 그녀와 혼인을 하면 그 결속은 더 강해질 터.

그런 생각을 해도 에르자일에게 미안함은 없다.

“하지?”

“뭘 자꾸 해!”

“결혼. 어차피 사귀는 사람도 없잖아. 나 얼른 엄마를 엄마라 부르고 싶단 말이지.”

그녀 역시 사랑 이런 낯간지러운 이유보다는 목적이 있으니 말이다.

“인정해 줄 테니 그만하지? 그런 이유로 결혼하자는 게 말이 되나?”

“어떤 이유가 더 필요한데? 정략결혼 생각하고 있으면 나만 한 조건도 없잖아.”

그 까탈스럽고, 냉랭하며, 만사 칼 같은 헤르메스에게도 철석같이 달라붙을 때 알아야 했다.

모성애가 흘러넘치는 우리 어머니에게 관심 초롱초롱하던 때부터 조심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정결핍도 아니고…….’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 헤르메스에게도 정말 고목에 달린 매미처럼 붙어서 결국 딸 같이 대하도록 변하게 만든 그녀다.

애정을 쏟을 상대가 이제 우리 어머니에게 넘어온 것이고 말이다.

“몇 년 후에도 상대가 없으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하지.”

가뜩이나 바쁜데 그녀가 훼방을 놓으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당장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

“약속한 거지?”

“그래. 약속했다.”

그녀가 몇 년의 시간을 인정했으니, 그 기간은 곤혹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터.

“그러니까 이제 좀 시작하자.”

“그럼 시작할까?”

그녀의 미소가 왠지 불순하게 느껴지는 건 착각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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