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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40화 (14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0)

“뭐라!”

디존슨은 와카디아 영지전의 결과를 보고 받으며 한동안 멍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공성전도 아닌 전쟁에서, 다섯 배가 넘는 병력을 이끌고 패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닌 말로 그냥 돌격 명령만 내려도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뿐인가?

‘미카이! 이놈은 대체 뭘 했길래!’

무려 일레아 용병단까지 고용해서 보냈다.

용병 주제에 그 비용은 또 얼마나 비싼지,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미카이에게 꾸준히 오던 연락이 끊겼을 때도 설마설마했다. 하지만 도저히 질 수 없는 전쟁 아니었던가?

“으아아악!”

디존슨은 발작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방 안의 물건들을 마구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디존슨의 발악 어린 외침이 성에 울려 퍼졌다.

“대체 뭣 때문에 변방의 영지 하나 어쩌지 못하는 거냐고!”

* * *

“당연한 거지.”

베스타인 공작의 말에 트아이가 입을 열었다.

“예상하신 겁니까?”

“지는 게 더 말이 안 됐지.”

락은 이제 일개 변방의 영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작은 그걸 잘 알았다.

예전부터 유명했던 무인이었던 에듀와 시그탑을 제쳐 두고라도 로라스 하나만 봐도 안다.

스물도 안 되었을 때도 속에 구렁이 열 마리는 너끈히 품고 있던 놈이다.

큰놈의 돈줄이었던 에렌의 흑사회를 장악하더니, 영악하게 헤르메스와 에르페유를 끌어들였다. 아예 반격의 씨앗을 잘라 버린 것이다.

그뿐인가?

혹시라도 자신에게 화를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선을 긋는다는 말까지 했었다.

‘스스로는 그 자리에 있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변화가 움직이게 할 것이다.

아직은 운명이 로라스인지 아니면 그 부친인 에듀인지 확신이 서질 않지만 말이다.

“와디아 그놈. 제 분수를 알았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

“그나저나 그놈 참…….”

그런 말을 하는 공작의 표정이 묘했다.

누가 보면 평상시의 공작이라 말했겠지만 트아이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기쁨과 걱정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눈의 주름, 입꼬리의 올라가는 정도라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트아이는 그런 공작의 표정이 어디서 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트아이.”

“네. 주군.”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말씀입니까?”

“그 녀석 말이야. 몇 번이나 살펴봤을 거 아냐!”

트아이는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보내시고 여태 단 한 번도 묻지 않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제 물어보는 거지. 자네 보기엔 어떤가?”

“이미 결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안 했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그에 따를 뿐입니다.”

“사람도 참.”

공작은 손을 훼 한 번 젓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녀석, 확실히 할 것이지.’

지금은 그 능구렁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포지션이 너무 애매한 것이다.

공작의 고민은 계속되었고, 그걸 지켜보는 트아이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미 결론은 났다.

그게 언제인가?

남은 건 그뿐이다.

* * *

“우아아아아!”

마을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승리하고 귀환한 이들을 반겼다.

압도적인 대승이긴 하지만 죽은 사람도, 불구가 된 이도 있지만, 그렇기에 이런 환영 행사는 더더욱 필요하다.

지금은 이겼다는 그 사실에 기뻐해야 했다.

죽은 이, 다친 이에 대한 위로, 그 보상은 그 후다.

승전 후 논공행상은 당연한 것.

에듀는 시그탑을 비롯한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은 물론이고 자경단원들 하나도 빠짐없이 하사금을 내렸다.

아직 배상금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지만, 렘은 나중에 자신들이 알아서 회수하는 걸로 막대한 자금을 내놓은 덕분이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논공행상에 제외한 이들이 있었다.

공개적으로 나설 수 없는 사람들.

락의 병력이었으나 싸울 때 이미 그 대가를 받은 용병들. 그리고.

“수고했다.”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그래. 알아.”

“그런데 제외하시니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아는 걸로 부족한가?”

“흐흐흐. 상을 어찌 말로만 하시려 하십니까?”

로라스의 말에 겸손은커녕,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반문하는 그의 이름은 오리시암.

“말로 하는 건 아니지. 챙겼잖아.”

로라스가 툭 던지는 말에 오리시암은 흠칫했다. 그리고 슬쩍 옆에 있는 토니를 쳐다봤다가 다시 로라스에게 말했다.

“그건 전리품이지요. 상과는 별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

“아 물론…… 꼭 바라는 건 아니지만.”

“…….”

“욕심은 없습니다. 그냥 살짝……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로라스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오리시암의 목소리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뭔 눈빛이…….’

보통 상대의 반응을 보며 말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로라스의 눈빛과 표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스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리시암을 보며 로라스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기 것 다 찾아 먹으면서도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지.’

싸우기도 전에 두 손 들고 나와 항복했었던 오리시암과의 첫 만남 때문이었을까?

능글맞은 그가 싫지 않았다.

그때 토니가 팔목으로 오리시암을 툭 치며 말했다.

“충분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논공행상에 끼지 못한 이유도 알면서 소영주님을 곤란하게 하나.”

“아냐. 충분히 잘해 줬다.”

공식적인 논공행상에 오리시암을 참석 못 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수하들의 공은 크지만, 결국 마적과 산적들. 그리고 그들의 두목에 불과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만, 직접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로라스는 계속 말했다.

“그건 그거고, 상은 상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고. 탈탈 털어 준 덕분에 당장의 배상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건 큰일을 한 거지.”

연합군의 영주들은 일시금으로 지불하기 위한 상당한 재화. 자신의 재산을 믿고 있었을 터.

하지만 대부분의 영주들은 돌아가면 깨달을 것이다. 그 숨겨 둔 재산이 없어졌다는 것을.

그래서 이미 렘에게 대신 땅을 받으라고 말해 놓은 상태다.

“오리시암.”

“네. 공자.”

“네가 말했던 예전의 그 희망.”

“…….”

“이제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리시암의 눈이 빛났다.

“너도 여기 와서 보고, 들은 게 있을 터. 여기 사람들이 누군가의 수탈을 못 견디고 무법지대로 넘어갈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살기는 참 좋은 것…… 같더군요.”

“너. 그리고 네 동료들에 대한 사정은 아버님에게는 미리 말씀드려 놓았다.”

“그럼…….”

“시간이 필요해. 대부분 다른 영지에서 죄를 짓고 넘어온 이들 아닌가?”

로라스의 말에 오리시암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용서받기 힘든 자들도 있을 테고. 아닌가?”

“…….”

“그래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거든. 단순히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자유민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니까.”

“이해했습니다.”

로라스는 심각해진 표정의 오리시암을 위로하듯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말고. 세금을 못 내 도망친 자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들도 있다는 사실은 나도 아니까.”

“알겠습니다. 공자.”

“방금 말한 조건으로 간절히 원하는 자를 추려. 당장 그 누구와 어울려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 사람들부터 시작하지.”

“감사합니다. 공자.”

“네 생각이 뭔지는 알아. 하지만 너무 강요하지도 마. 괜히 역풍이 분다.”

“알고 있습니다. 원하는 자만 그리하고 있습니다.”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렘과는 만나 봤지?”

“네. 기본적인 협의는 해 뒀습니다. 이런 건 그도, 저도 처음인지라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 건 나중에라도 조율이 가능한 문제니까요.”

“과욕은 안 돼!”

긴말은 지나치게 족쇄를 채워 주는 것 같아, 짧게 한마디 했다. 오리시암이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만 유지해.”

“네!”

로라스는 토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네. 소영주님.”

“기대한 대로 해 주셨습니다.”

“소인이 한 게 뭐 있다고…….”

“브렌드 경에게 들었습니다. 임기응변도 훌륭했고. 저 약삭빠른 오리시암도 잘 통제했고.”

옆에서 오리시암도 다시 깝죽대며 나섰다.

“그냥 제가 똑똑해서 잘한 거지요.”

그러다 로라스의 눈빛을 보고는 재빨리 말을 붙였다.

“물론, 저 양반이 우리 애들과 잘 어울리는 것 보고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브렌드 그 기사분만 왔으면…… 좀 많이 위축됐을 겁니다.”

로라스는 다시 토니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이제 제가 약속한 걸 지켜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토니의 입이 일 자로 굳게 다물어졌다.

‘어지간히…….’

열망했던 모양이다. 내 말에 저렇게 아무 말 못 하고, 몸을 저렇게 떨어대는 걸 보면 말이다.

“들어와!”

로라스가 바깥에 소리를 지르니, 밖에서 테라와 번천이 들어왔다.

“토니 아저씨!”

테라가 반갑게 토니를 부르며 그의 옆에 섰다.

“네 활약은 잘 들었다. 엄청났다지?”

토니의 말에 테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별로 한 것도 없습니다.”

“번천, 자네도. 옛날 우리와 함께 굴렀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저 높이 올라가 버렸군.”

“아닙니다. 아저씨.”

번천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야말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라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확실히 토니 아저씨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저 친화력.

그는 마을 젊은 사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리고 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사내들을 한군데로 모았으며, 마적, 산적들을 상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며, 적절한 융통성까지 발휘했다.

‘첫째가 생각나는군.’

유역후의…… 첫 번째 제자도 저랬다.

재능은 제자들 중 제일 떨어졌지만, 듬직하니 있는 것만으로도 유역후가 믿음을 샀고, 제 사제들을 따르게 만들었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로라스가 입을 열자 세 사람의 잡담이 멈췄고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난 자격을 얻게 될 테니까.”

“…….”

“그래서 오늘 나는.”

“…….”

“나의 기사들을 두려 한다.”

테라, 번천 그리고 토니는 그대로 정자세로 섰다.

곁에서 지켜보던 오리시암마저 묘한 흥분감에 몸을 떨었을 때 로라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내 기사가 될 자! 맹세해라.”

순간 세 사람의 두 무릎이 그대로 바닥에 닿았다.

“내 시간과 생명, 공간을 내어 준다는 누구나 하는 말로 그대들의 충성을 사지는 않겠다.”

“…….”

“충성하라! 내가 가진 것은 물론이고, 그것으로 모자라면 내가 직접 쟁취해 주겠다.”

정식적인 기사 서임식은 아니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백작 이상의 고위급만이 기사서임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자신들이 충성을 맹세한 사람만이 자신들을 알아 주면 됐다. 그뿐이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지켜보던 오리시암이 한마디 했다.

“저도 저렇게 하면 안 됩니까?”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날카롭게 그에게 쏠렸고. 눈치 빠른 오리시암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간단하게 기사 서임이 끝났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간단한 게 아니었다.

‘나도 기사다!’

그들은 그것에 충분한 자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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