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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35화 (135/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35)

암울했다.

일레아 용병단.

소영주는 모르는 것 같으나 일레아 용병단은 일개 용병단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름이 너무나도 무겁다.

전쟁 전문 용병단이라는 수식은 그냥 붙여진 게 아니다. 독립부대로서 웬만한 기사단을 능가하는 역량을 가진 게 일레아 용병단이었다.

“기회는 너희들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주는 거였지만, 애석하군.”

귀를 의심했다.

이 상황에서 적들에게 협박하는 건 소영주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으리라.

적들의 눈빛은 흔들렸고, 몸은 주춤했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 순간 소영주가 전음이라는 마법으로 요구했다.

―경이 용병단장을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쉽지 않음을 넘어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 요구는 어찌 보면 어처구니가 없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로 이해했다.

소영주가 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지는 여태 그가 보아 왔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피해를 최대한 줄이시려는 거겠지.’

하지만 피해를 입지 않는 전투는 없다. 가끔은 소영주가 마음이 약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영주는 마음이 약한 것도, 무리한 것도 아니다!’

토벌전 때도, 몬스터 웨이브 때도 소영주는 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말은 늘 옳았으며 실현되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또 그 자신감의 근원은 바로 실력이었다.

‘하아!’

보라!

소영주는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숨 한 번 돌릴 시간에, 적 진영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보라!

양광(陽光)에 가까운 하얀빛을 발하는 그의 창을.

애석하지만 그 후는 보지 못했다.

지금은 볼 때가 아닌 행할 때!

검에 포스를 실었고, 그대로 일레아에게 달려나갔다.

검에서 일어나는 푸른 기운을 보니 가슴에 설레기 시작했다.

마스터.

자신의 포스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이 푸름.

청운(靑雲)의 기운.

소영주는 그리 말했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을 때 소영주는 이리 대답했었다.

포스의 특질이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다고 말이다. 그러니 움직임과 멈춤이 자유롭다며, 잡기는 힘드나 잡을 수 있다면 엄청난 발전이 있을 거라고.

“하앗!”

일레아가 기합과 함께 나의 푸름에 맞섰다.

‘어디까지 통할까?’

마물을 상대로 실컷 실전을 경험했으나, 검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영주와 소영주 둘뿐.

그마저도 영지 일에 치여 많이 검을 맞대어 볼 수 없었다.

“하아아앗!”

미칠 도록 궁금했다.

일레아와 검을 맞대었을 때 어떤 감각이 찾아올지.

카아아아아앙!

푸름으로 대변되는 나의 포스와.

스르르르릉!

황색으로 대변되는 일레아의 포스가 얽혀 들었다.

양쪽 손바닥을 힘껏 부딪쳤을 때의 그 감각이 순식간에 손에서 팔목으로 치솟더니, 금세 어깨에 강렬한 저항감을 안겨 줬다.

포스, 육체의 순수한 힘. 양쪽 모두 밀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하늘 산맥의 녹색 거인을 상대로도, 이리 힘을 써먹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까아앙! 까아앙! 까아앙!

검술이 아닌 도끼질에 가까운 움직임 때문이었는지, 검은 미칠 듯한 비명을 질렀다.

상관없다.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건 나의 검뿐만은 아닐지어니.

그래서 더 악착같이 휘둘렀다.

변초, 허초, 이런 거 쓰려다가는 기세를 단숨에 뺏길 것이고, 다시 찾아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터.

까아앙! 까아앙! 까아앙!

나도 알고, 상대도 안다.

휘두른다.

휘두르고, 휘둘러서 검과 함께 베어야 한다.

까아아아앙!

그리고 어느 순간 검이 산산이 조각났고, 그 파편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확실히!’

용병단의 수준은 높았다.

물론 마법사를 상대하기 전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휘두른 창이었다.

공간을 마련했어야 하니까. 하지만 창에 담긴 내력은 적지 않았다. 철음과 함께 무기를 놓친 이들은 있어도, 그것에 상처를 입은 자는 없었다.

‘으음!’

솔직히 말해 아쉬웠다.

이만한 용병단. 아군이었으면 전쟁은 한결 쉬워졌을 테고, 피해는 줄어들었을 테니까.

‘최소한 이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이들의 존재를 미리 알기만 했어도 이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리되었으니!

정면에 한 손에는 지팡이를, 그리고 또 한 손으로는 수인(手印)을 맺고 있는 늙은 마법사에게 창을 냅다 질렀다.

쩌어어어엉!

어디서도 들어 볼 수 없는 기이한 소리. 대기가 깨지는 소리가 이럴까? 그리고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저항감.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인가 보다.

기습의 묘를 살렸다고 생각했는데, 노마법사는 이미 주문을 완성시킨 듯했다.

“탄!”

그 순간 노마법사는 수인을 맺은 그 자세 그대로 소리를 질렀다.

아지랑이로 만든 거대한 벽. 그 벽을 활에 걸어 쏠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 터.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마법을 알지 못했다면 말이지.’

창을 지팡이 삼아 내밀었고.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벽은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기습에도 놀라지 않았던 노마법사의 눈꺼풀이 꿈틀거린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지.’

창을 들었다.

귀혼창 제3식. 중혼의 창(重魂槍).

그리고 다시 한 번 질렀다.

파공음은 들리지 않는다.

중혼의 창은 한없이 무겁다.

지이이이이잉!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저항감. 하지만 저항할 뿐이지, 창이 나아가는 데 문제는 없다.

중혼을 마법이라 생각했던 것인가?

노마법사는 수인을 풀지 않으면서, 다른 한 손의 지팡이를 크게 휘둘렀다.

파파파파파파팟!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다. 감각상 바람 계열 특성을 지닌 마법 같은데.

오히려 잘됐다.

중혼의 창에 담긴 내력은 개천지보. 그리고 그 내력 역시 하늘의 기운에 가까웠으니.

그의 마법은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허무하게 소멸할 뿐이다.

애초에 승패는 결정된 전투다.

노마법사의 클래스를 한 단계 올려봐 준다 하더라도, 나의 내력은 포스로 따지면 절정. 그리고 마법사로서도 사 클래스에 다다른 낮은 경지의 마법사는 아니다.

노마법사의 쉴드 안쪽으로 창을 밀어 넣은 다음, 호흡을 가볍게 하며 그대로 창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다.

“탄(彈)!”

“크헉!”

마력탄에 제대로 적중한 듯, 허리를 숙이며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주변인들이 경악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을 알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분명 훌륭한 마법사이지만,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알았다면 감히 내게 접근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

‘그랬다면 무척이나 까다로웠겠지.’

하지만 그는 몰랐고, 그래서 접근했으며, 그 탓에 제 능력의 열의 하나도 발휘하지 못해 당한 것뿐이다.

“커헉! 커헉!”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장의 마법사라더니!’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에도 그는 버텨 섰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를 참는 듯 이를 악다물고 있지만,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를 숨기지는 못했다.

참는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지 못하면 기사에게 검이 없는 것과 같다.

‘웬만하면 기다려 주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시그탑은 이미 용병단장과 싸우고 있었고, 도망치라 했던 번천과 테라도 이미 용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그대로 도망쳤다면 나름 섭섭했으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 다시 창을 고쳐 잡았을 때였다.

“이만 죽엇!”

자세를 바짝 낮추고, 뱀 마냥 다가오는 미카이.

‘아! 그래, 너도 있었구나!’

놈이 실력을 숨기고 있음은 진즉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예상 이상의 움직임을 보인다.

‘암살자 출신이었던가?’

빠르고 짧은 동선들.

움직임과 움직임의 연계가 초식이라 불리지만, 놈의 움직임은 초식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닌 하나의 움직임 그대로 끝났다.

암습으로 단숨에 적의 숨줄을 끓는 자객들의 움직임이 이렇다.

‘기회를 노렸겠지만!’

마법사와 상대할 때, 암습할 생각이었을 터. 하지만 마법사가 허무하게 밀려 나가자 급하게 공격을 선택한 것이다.

최악의 선택이다.

암습을 해도 안 되는데 뻔히 보이는 저 수법들은, 맞아 주려고 해도 맞아 줄 수가 없다.

“오래 봐줬지만! 기어이 죽겠다는데!”

봐줄 이유도 없었고, 미운 정이라는 것도 없다.

게다가 내 경지를 알면서도 살의에 눈이 멀어, 덤벼드는 놈에게 인정을 베풀 생각도 없다.

어차피 첫 만남부터 악연이었으니!

스윽.

손끝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놈의 그것이 바닥을 구르는 순간, 얼굴 쪽으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눈보다 손이 먼저 나아갔다.

화르르르르르!

손바닥을 넘어서지 못하는 화염의 꽃.

‘대단하군!’

산전수전 다 겪은 마법사라지만 나이도 있을 텐데, 벌써 급한 내상을 수습하고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니 감탄부터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다.

거리는 여전히 가깝고, 몸 상태는 말도 아니었으니까.

초류보를 이용하여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좁혔고, 그대로 그의 어깨에 있는 혈을 잡았다.

“윽!”

어깨에 있는 견정혈에 내력을 주입하니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혼절했다.

“흐아아앗”

엄청난 기합에 고개를 돌리니 시그탑과 용병단장이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드잡이질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스터들의 싸움인데.’

겉으로 보이는 건 파락호들이 싸울 때의 모습이다.

상황이 왜 저리되었는지 짐작이 되는 바가 있었지만, 너무 비효율적이다.

―경!

시그탑을 향해 전음 하나를 날리고 몸을 움직였다. 계속 지켜보기에는 테라와 번천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 * *

“우아아아아!”

미칠 듯이 검을 휘둘렀었고, 그 후 또 미친 듯이 주먹과 발길질이 했다고 하나, 벌써 호흡이 곤란해지고 손과 팔. 그리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밀리지 않는 걸 보면 상대 역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경! 포스를 활용하는 걸 왜 쓰지 않습니까!

그때 전음이 들림에 고개를 돌리니, 로라스가 이미 마법사를 쓰러트리고 용병단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어디 한눈을!”

잠시 한눈을 판 게 실수였다.

일레아가 상체를 숙인 채, 그대로 어깨로 자신의 복부를 박았다.

하체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기에 휘청거렸고, 그래서 균형을 잃었다.

카아앙!

강력할 일격에 투구가 날아갔다.

퉤!

일어나자마자 입안의 비릿함을 뱉어 내고 두 손을 올렸다.

―포스의 특질도 변합니다.

그리고 떠올렸다.

―마법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하지만 마나와는 달리 그 특질이 원소의 특성만은 아니지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으음. 쉽게 이야기하면 포스는 잡아당길 수도 있고, 튕겨 낼 수도 있으며, 무겁고,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포스는 기운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무슨 몸을 쓰듯 이야기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기운이라면서요. 그런데 그것이 눈에 보이고, 색마저 띄웁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소영주였기 때문이다.

내근 수련이라는 독특한 훈련 법과 힘의 미세한 조절을 수련하는 법까지.

그가 언제 허튼소리를 한 번이라도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였다.

그 말도 안 되는 포스의 활용을 열성적으로 수련해 보았던 건.

‘효과는 있었지!’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특히 한 가지 무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산 건너에 있는 소를 때린다’라는 이상한 무리.

격(擊), 탄(彈), 흡(吸)이니 룬어 비슷한 느낌을 죄다 포스로 이용할 수 있다 하였다.

한자로 된 건 이해하고 실천해 보았으나, 그 격산타우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에르페유 경이 이 무리를 깨닫고 권신이라 불렸지요. 이건 뜬구름 같은 무리가 아닙니다.

에르페유도 아는 무리라는 말에 연습했다. 정말 질리도록 연습했다.

몇 개의 항아리를 깨 먹었을까?

징글징글하게 깨 먹었을 것이다. 그릇 빚는 주민 덕분에 감사한다는 감사 인사를 들을 정도까지.

‘알고는 있지만!’

“우아아아!”

일레아의 함성에 생각은 길게 할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시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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