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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33화 (13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33)

선봉과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기사들 숫자만 백이었고, 기병과 보병, 궁병까지 갖춘 독립부대였다.

숫자도 숫자거니와, 무엇보다 자신의 부대에서도 최정예들만 골라 모은 부대다.

어쩌면 선봉부대만으로도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까지 했었다.

“기사분들은 모두 죽거나 사로잡혔습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돌아오는 병력.

처음에는 탈영병인 줄 알고 군법으로 다스리기까지 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중간 간부급으로 딸려 보낸 기사가 돌아와서 선봉대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확인은 했는데 말이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주군……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주군!”

기사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와디아 백작에 그런 절규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의 수하 기사가 자신의 패배를 합리화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명에게 모조리 기사단이 궤멸했다니! 그걸 나 보고 믿으라는 네놈이 미친 게 아니냔 말이다!”

와디아는 분노를 쏟아 냈고, 주변에 말리는 귀족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주군, 그는 마스터였으며 매지스터였습니다. 그 악마는 붉은빛…… 붉은빛을 창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아군이 없었습니다.”

기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계속 소리치듯 말했다.

“바이퍼 기사단장이 뒤늦게 후퇴 명령을 내렸지만, 그 악마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불의 창…… 마법으로 만들어 낸 불의 창은 단숨에.”

기사는 계속 열심히 떠들었으나 그것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홀로 기사단 백 명을 박살 냈다는 놈의 말을 어찌 믿느냔 말이다.

결국, 참다못한 한 귀족이 소리쳤다.

“무슨 에르페유 백작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미 무공이 끝에 다다랐다는 마스터들. 그중에서도 에르페유가 권신이라는 특별한 호칭을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일대 백의 전투.

저 기사가 말하는 황당한 전투를 실제로 치렀고, 승리를 따낸 전설적인 무인이기 때문이다.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한 말 중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와디아는 오만 인상을 찌푸렸다.

“나가랏! 그리고 상세하게 다시 당시 상황, 전투가 어찌 전개되었는지 모조리 문서로 보고해!”

“네. 주군”

기사가 그리 나가고, 좌중에는 침묵이 흘렀다.

“정말일까요?”

그리고 누군가 조심스레 하는 말에 다에스 자작이 입을 연 이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게 말이나 되나. 권신의 전설이 있지만, 그때도 적 전부가 기사는 아니었어. 일반병도 섞인 상태였지.”

“하지만…… 실제로 패한 걸 보면!”

콰아앙!

그때 와디아 백작이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좌중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최정예, 그것도 천 명이라는 선봉대가 백 명도 돌아오지 못한 건 사실.

이렇게 되면 본대를 무작정 전진시킬 수도 없게 된다.

모두가 눈치를 볼 때 누군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오! 왔는가!”

들어온 사내를 보며 와디아는 반색을 하며 반겼다.

“출전 전까지는 도착하려 했는데,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사내는 이를 보일 정도로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너무 늦지는 않았네, 미카이 경. 하지만 일이 생겼어, 아주 급한.”

“무슨 일입니까?”

미카이의 물음에 와디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으음.”

“이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스스로를 로라스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아직 애송이 아닌가?”

와디아의 우려 섞인 물음에 미카이는 대답했다.

“나이가 어린 건 맞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있습니다. 실버스워드 대회 우승자인 건 둘째 치고, 에르페유경과 헤르메스의 총애가 대단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을 홀로 전멸시켰다는 게…… 내 열쇠기사단과 영지의 여러 기사들이 중앙의 기사들과는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포스 유저가 서른은 넘었단 말이네.”

“포스와 마나 둘 다 경지에 이른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백 명을 홀로 상대했다는 건…….”

미카이도 사실 믿기지 않았다.

‘그 몇 년 사이에 마스터가 되었단 말인가?’

에렌에서 그는 전도유망한 무인. 포스 유저가 되려는 그 수준. 그렇게만 봤는데 말이다.

‘아니, 마스터라고 해도 상관없다!’

이제야 와디아 진영에 합류한 이유는 로라스, 더 나아가 에듀를 잡기 위한 준비 때문이었다.

‘일레아 용병단이면 변두리 영지 하나를 쓰는 건 일도 아니다!’

디존슨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이번 일에 막대한 자금을 내놓았고, 자신 역시 전 재산을 내놓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대공자파의 다른 귀족들에게 돈을 뜯다시피 해서, 간신히 고용한 용병단이 일레아 용병단이다.

그래서다.

백 명의 기사단이 무너졌다고 해도 이리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말이다.

용병단으로서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십대용병단 중 하나가 일레아 용병단.

무엇보다 전쟁에서만이라면 세 손가락에 드는 곳.

‘나도 전력을 다할 것이니!’

이번 전쟁은 질 수가 없었고, 질 수도 없는 전쟁이었다.

* * *

‘단숨에 들이닥쳐야 하는데! 이게 뭔 꼴인지.’

와디아는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다.

상대도 되지 않을 줄 알았다.

단숨에 락으로 진격하여 항복을 받아 내고, 금광을 차지하는 데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라.

최정예 선봉대가 괴멸한 후 진격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백작님! 후르트 남작의 부대가 전멸했다고 합니다!”

또다시 올라오는 보고.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척후가 앞서는 족족 전멸하고 있었다. 그 탓에 적의 규모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있는 건 척후를 전멸시킨 적들이 열도 안 되는 소규모 병력이라는 것뿐.

그래도 기회는 있었다.

작정하고 함정을 파서 그 몇 안 되는 적들을 괴멸시킬 기회가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놈들은 메타린 평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추적?

삼백의 추격대가 적을 보지도 못하고, 메타린 평원의 몬스터와 맹수들에게 와해되었다.

몇 안 되는 적을 추격하려면 대규모 병력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군은 그럴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다. 병력의 숫자는 충분하나 전마의 숫자가 충분치 않았다.

주력 기병들은 첫 전투에서 팔 할이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 탓에 아군은 똘똘 뭉쳐 전진할 수밖에 없었고, 거점을 나눠 각 진영에 호응해야 하는 군진밖에 만들 수 없었다.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적의 게릴라 전에 병력 소모 없이 진출할 수가 있다. 하지만 군량이 문제가 되었다.

압도적인 병력은 가지고 있으나, 보급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놈은 뭐 하고 있는 것이야!’

와디아의 울분은 한쪽으로 쏠렸다.

아군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계속 척후대를 보내는 이유.

그건 미카이의 요구 때문이었다.

―쥐새끼들을 잡으려면 모조리 잡아야 합니다. 몇 마리가 남으면 금방 번식하니까요.

미카이는 자신만만하며 이야기했다.

눈엣가시 같은 놈들을 모조리 잡기 위해 미끼가 필요하다고. 그러니 계속 척후대를 보내라고.

그게 네 차례의 척후대 전멸에도, 주변 귀족들이 더 이상의 척후를 보내지 말거나, 아니면 대규모로 다시 부대를 편성하여 선봉으로 내보내자는 말을 해도 묵살한 이유다.

‘대공자가 보낸 사람이니만큼…… 능력은 있을 터! 하지만 좀 빨리 잡으란 말이다!’

와디아는 다시 한 번 울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 * *

‘학습 능력이 없어!’

테라는 멀리서 보이는 쉰 명가량의 기병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로 당했으면 저 정도의 숫자의 척후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희극,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분명한 상황에 테라는 말 고삐를 움켜잡았다.

자신이 지금 가진 감정.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안식처인 락을 침략하는 적!

게다가 자신은 그들을 동정하여, 손끝에 여유를 둘 만큼의 강력한 무를 갖추지도 못했다.

주군부터 시그탑. 그리고 결국엔 자신이 우위에 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번천까지.

자신보다 훨씬 더한 강자들.

미끼를 자처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강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그나마 자신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미끼.

마음 같아서는 주군처럼 호쾌하게 적의 척후대를 가르고 싶다. 어느 정도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포위를 당하지 않을 정도의 기동력과 힘. 그리고 포위를 당했을 경우 그것을 뚫을 수 있을지의 확신은 없기에, 테라는 미끼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하아앗!”

적 척후들이 자신을 인지한 순간 말머리를 돌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는 테라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구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마법 물건으로서 포스나 마나를 흘려 던지면 붉은빛이 터져 아군에게 신호를 줄 수가 있다.

테라는 포스를 주입하여 허공으로 높이 구슬을 터졌다.

…….

테라는 주변이 번쩍할 것을 기다렸지만, 터져야 할 붉은빛은 보이지 않았다.

‘불발인가?’

의아했다.

마법 물건에도 불량은 있다. 싸구려 마법 물건이라면 불량 비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자신의 구슬은 에르자일이 마탑의 마법사들과 직접 생산한 물건이다.

주군은 이 신호탄을 굉장히 중요시했기에 매지스테 에르자일에게 특별히 부탁했고, 십수 차례의 시험을 하기까지 했는데 불발이 난 것이다.

테라는 그래도 당황하지 않았다.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지는 법. 그리고 여태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지극히 재수가 없을 뿐이라 생각했다. 또한, 가슴 안에는 여분의 구슬이 두 개가 더 있기에, 침착하게 가슴에 손을 넣었을 뿐이다.

휘이익!

그리고 다른 구슬 하나를 던졌을 때만 해도 지독한 불운이라 생각해야 했고.

‘설마…….’

마지막 남은 구슬을 던졌을 때, 그 설마가 현실화되었다.

마침내 테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랴앗!”

하지만 이유를 생각할 시간이 없기에, 테라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건 매우 빠른 판단이었지만 말이다.

……!

말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마법사!’

그리고 뒤에서 쫓던 적들 사이 위에서 환한 빛이 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빛을 발하고 있는 건 지팡이.

테라는 마법에 문외한이 아니다.

―경험해 봐야지. 도움이 될 게다.

에렌에서 수련할 때 주군의 가벼운 마법을 상대도 해 보았고, 락에 돌아와서는 에르자일의 마법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마법 구슬이 왜 연달아 세 번이나 실패했는지. 또 왜 말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지 말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다!’

저 거리에서 마나를 무효화할 수 있고, 말의 속도를 늦추게 할 수 있는 마법사라면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우아아아아!”

테라는 더 늦기 전에 포스를 모아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외침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적의 마법을 조금이라도 무효화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마법사를 상대로 싸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주문을 외우기 전에 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포스를 뿌려.

가장 일차적인 방법은 포스의 영향력을 몸에 두르는 것.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말의 속도가 더 이상 늦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늦춰진 속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테라는 후회가 됐다.

―기초적인 마법 방어를 배워 보지 않을 테냐?

번천, 그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검사.

그는 자신에게 기본적인 마법 방어 주문을 익히는 것을 권했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은 그걸 거부했다.

그가 자신의 경쟁자라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 보다 마법이란 딴 학문까지 익힐 여유가 없었다.

포스로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는데, 마법까지 익힐 여유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결국, 테라는 적의 척후대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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