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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30화 (13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30)

“그게.”

입을 열며 다가오는 페라를 보며, 와디아 백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늘을 위해 새로 맞춘 정복에 얼룩이라도 지면 곤란하다는 듯이 말이다.

“거기서 말해. 여태 여기서 뭘 했고, 지금 이 꼴은 뭐지?”

와디아가 다시 묻는 말에 페라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엔케이 용병단에게 구출을 받고, 영지로 돌아갔던 날.

페라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영지가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황량한 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빈민가보다 못한 그런 황량함만 보였다.

“이제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엔케이의 말에 페라는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얼, 얼마?”

“금화 이천 개입니다.”

“뭐라! 그게 말이 돼?”

“원래 성공 보수는 오백 개였는데 말입니다. 여기 옵션을 보시면 그 기간에 따라 늘어나게 돼 있습니다. 남작님을 구출하기 위해 저희 용병단은 이 년을 고생했습니다. 이천 개는 합당한 액수입니다.”

계약서를 들이미는 엔케이.

“아버지…… 아버지는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기 아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직접 서명을 했다고 확인까지 해 주니, 페라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엔케이가 다시 계약서 한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거기 아래 조항도 보이시지요? 지급 일자는 남작님이 영지에 도착한 당일. 저희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지금 지급받고 싶습니다만!”

페라는 슬쩍 아들을 봤다. 하지만 자신의 눈빛을 피하는 걸 보니 없는 게 분명했다.

당연했다. 이런 영지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다.

“엔케이 단장. 지금 당장 이러면 곤란하지. 내 이리 목숨을 구원받은 이상 빚은 반드시 갚을 테니, 잠시 기간의 연장해 주면.”

“그게 좀 곤란합니다. 남작님.”

엔케이는 페라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사실 이번 구출 작전은 저희 전력만 들어간 게 아니라서……. 저희도 지불해야 할 금액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저희 용병단이 꽤 능력이 있습니다만, 하늘 산맥까지 들어가서 남작님을 구출하는 것은 힘들지요. 몇 개 용병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며칠 후에 저희도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지급을 늦추시면 저희 용병단이 망합니다.”

엔케이가 자신들도 급하다는 표정으로 하는 말에 페라는 배짱을 부려보기로 했다.

“내 그런 돈을 떼어먹을 것 같은가? 내가 주겠다고 했으면 주는 거네.”

“네네,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저희 사정이 좋지가 않아서. 게다가 채권자가 락이라서 말입니다.”

“뭐?”

“구출 작전에는 돈이 필요한 법인데, 저희는 선수금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락에 이 계약을 빌미로 구출 작전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했습니다. 다른 용병단의 지급보증을 서기도 했지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와디아 백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영지를 통째로 넘겨주는 각서를 썼다는 건가?”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영지에 병력도 없는 상황이라…….”

와디아 백작은 기가 찼다.

‘설마?’

그리고 의심이 들었다.

연락도 되지 않던 엔케이 용병단이 갑자기 나타나 페라 남작을 구하고 대가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보증인이 락이라는 사실은 한 가지를 뜻했다.

‘이놈들! 이미 알고 있었어! 모두 계획적이었던 거야!’

몬스터들이 이 년을 넘게 해하지 않고, 노예로 부렸다고까지 않았는가!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돈까지 내줬다. 완벽하게 농락당한 것이다.

‘내 이놈들을!’

와디아 백작은 분노에 찬 외침을 질렀다.

“전군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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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쿠쿠!”

콧소리인지, 아니면 웃음소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분위기로는 샤이한의 표정은 매우 좋았다.

주변의 다른 오크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다.

토굴 따위가 아닌, 나무와 돌을 써서 만든 제대로 된 집. 그뿐인가?

락에 있었던 시설은 죄다 있었다.

부족을 위한 술집. 부족을 위한 대장간. 부족을 위한 주방까지. 락에서 부러웠던 그 모든 것들이 다 자신의 부족 안에 만들어져 있었다.

“지원자가 몇 되지는 않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채워질 거야. 약속하지.”

몇몇 시설은 자신의 부족원들이 할 테지만, 몇몇 시설은 인간만이 가능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로라스는 시간이 지나면 그것까지 다 채워 줄 것을 약속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 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새로운 마을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만든 마을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제부터 지켜야 할 곳이다.”

그래서 한마디 한 말에 주변 오크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이제 우리 겁니다!”

“우리 짝도, 새끼들도 좋아할 건데! 쿠쿠쿠 우리가 지켜야죠.”

로라스는 그런 오크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홀가분하게 영지전을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나면 미뤘던 장비는 공급해 주겠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

로라스의 말에 샤이한은 표정을 살짝 굳힌 뒤 물었다.

“정말 우리가 참전하지 않아도 되겠나? 우리는 동맹이다. 여태 약속을 지켰으니 당당하게 요구해도 돼! 우리도 그럴 거니까!”

“너희들의 일족까지 참전하면 만들어 둔 락의 영역을 지킬 수가 없어. 하늘 산맥뿐만 아니라 외곽까지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지.”

샤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실제로 여력이 없었다. 기존 하늘 산맥 구역은 물론이고, 락의 농지까지 경계해 줘야 하는 상황이라 이미 어린 일족들까지 경계에 나선 상황이다.

“만약 정말 필요하면 도움을 청해라. 마물들보다 인간들이 더 간교하니까.”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걱정도 하지 말고.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그렇겠지. 에듀부터 너까지 모두 진정한 전사들이니까.”

로라스와 에듀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치안 문제를 해결한 로라스는 내려오며 생각했다.

“이제는 진짜 전쟁이군.”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속이 마냥 편한 건 아니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나하나 모두 귀한 사람들.

‘이번 한 번의 전쟁으로 끝낼 것이다!’

로라스는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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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긴다.”

에듀는 단 한마디로 출전 의식을 끝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락의 병력은 숫자는 이천이 채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 숫자도 락뿐만 아니라 베론 남작의 모든 사내들이 동원된 탓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모두 끝장나는 것이니.

베론은 다시 한 번 락에 올인했다.

와카디아 지방의 영주들이 모두 관여한 이번 영지전. 중립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베론을 제외한 모두가 와디아를 선택했다.

팔천으로 시작한 병력이 계속 움직이면서 구천에 가까운 숫자로 불어났다는 첩보까지 있었다.

하지만 락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비가 아닌 공세를 선택했다.

락의 전략은 간단했다.

적의 병참을 길게 만들어 적을 끊어 먹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선을 길게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전진을 선택했다.

락의 선봉은 로라스와 시그탑.

소수 병력으로 대군을 헤집으려면 락의 최고 전력이 나서야 했던 것이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우려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하지만 당사자인 로라스와 시그탑은 그런 우려가 없었다.

“적은 메타린 산맥으로 들어갈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을 겁니다.”

“메타린 평원 중심 역시 마찬가지지요. 중간중간 틈을 잘라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로라스와 시그탑은 죽이 잘 맞았다.

전략 역시 로라스와 시그탑이 같이 만들어 낼 정도로, 두 사람은 생각이 비슷했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적의 선봉만 완벽하게 분해하면 됩니다.”

“따로 생각한 전술이라도 있으십니까?”

시그탑의 물음에 로라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정면 돌파할 겁니다.”

“네? 선봉이라 하지만 천에 가까운 숫자일 겁니다.”

“그러니까 정면 돌파할 겁니다. 기세를 죽이면 감히 함부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적은 느려질 겁니다. 그러면 병참이 길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시그탑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로라스의 말이 맞지만, 자신들이 정면 돌파할 전력이 되지는 못했다.

‘기사단을 완성했으면 가능이야 했겠지만…….’

현재 자신들이 끌고 온 기병 전력을 이백이 되지 못한다. 사람은 있지만, 전마를 끌어모으지 못했다.

그런 우려를 짐작이라도 하는 듯 로라스는 다시 말했다.

“보시면 됩니다. 이번 전투는 제가 나설 것이니까요.”

시그탑은 로라스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하지만 100퍼센트 납득한 건 아니다.

‘혹시 매지스터 에르자일이 오는 건가? 마탑의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는데…….’

결국, 직접 나서겠다는 건데 그래도 무리다. 로라스의 경지가 자신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설마 정말 자신의 무위를 믿고 나선다는 건 아니겠지? 소영주가 그리 무모한 사람은 아닐 텐데.’

마스터.

그건 분명 엄청난 무인의 증거이긴 하나, 전장에서 마스터는 상징성이다.

주변을 지배하는 무인. 하지만 팔다리가 수십 개씩 달린 괴물은 아니다.

전장에서 마스터의 역할은 병사들의 사기를 증진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아무리 활약한다고 해도 실제로 적병을 쓰러트리는 건, 그 숫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리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정말 그렇게 믿었는데 말이다.

“미친!”

시그탑은 그리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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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 남작.

나이 쉰으로 열쇠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

자유기사로 명성이 높았고, 와디아 백작의 밑으로 온 이후에는 직접 열쇠 기사단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와디아 백작의 엉터리 영지 운영에도, 영지 치안은 괜찮은 이유는 이 장년 기사단장의 역할이 컸다.

와디아 백작도 그것을 알기에 그를 기사에서 남작으로, 그 지위까지 올린 인물.

백 명의 기사들과 삼백의 중갑 기병. 그리고 경보병을 데리고 선봉에 선 바이퍼 남작의 기분은 편치 않았다.

‘무조건 진격이라니…….’

백작이 내린 명령은 무조건적인 진격이었다. 이건 자신감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크게 틀린 말은 없지만.’

와디아의 생각대로 이 선봉대의 전력은 막강하다. 와카디아 지방에서 자신의 부대를 막을 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북부 전역을 통틀어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이란 뚜껑을 열어 봐야 그 결과를 아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전력은 아군이 압도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가 나나, 전쟁은 신중해서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전쟁의 기본은 보급.

무조건 진격하란 성화에 이미 본대와도 거리가 꽤 멀어진 상태다.

물론 백작, 그리고 지휘부의 말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이쪽 연합 영주들의 영지를 따라 행군하는 진로. 보급은 그 영지에서 필요한 만큼 충족하기로 했다.

그게 문제였다.

각 영지의 식량 사정은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거기에 와디아 백작에게 병력을 끌고 모이면서 영주관의 식량은 죄다 끌어모은 상태.

가는 영지마다 새롭게 식량을 징발한다고, 못 볼 꼴을 자주 보였다.

기사인 바이퍼로서는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일. 하지만 그는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징발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대가 굶주린다. 지휘관으로서는 고통받는 백성들보다 자신의 병사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끝내는 것이 모두에게 나을 터.’

그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본대가 아닌 이 선봉대만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모두의 고통을 줄이는 일이리라.

지휘부의 지시,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강행군해 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요격?’

멀리서 보이는 한 무리의 부대.

처음에는 어느 영지의 부대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눈앞, 백여 명의 기병.

연합한 영주들은 자신들이 데려올 수 있는 기병을 모조리 끌고 왔다. 그렇다면 저 숫자의 기병은 적인 락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펄럭이는 깃발.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커다란 독수리. 분명 락의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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