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23)
락의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잘되어 갔다.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마탑과 센터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자 꿈을 품은 사람이 늘었고, 금광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먹고살 만하기 시작하자 기존에 없던 서비스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늘었다.
무엇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름 진 땅이 있고, 세율 역시 타 영지보다 반 정도 낮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락에 몰리기 시작했다.
“농노들?”
그리고 그 때문에 외교적 문제가 생겼다.
“네, 자신 쪽 농노였다고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드리프의 대답에 에듀는 미간을 찡그렸다.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했다.
평원을 개척하기 위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나름 신분을 확인하고 있지만, 사실 무의미한 요식행위에 가깝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거짓을 말해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말이다.
“문서가 남아 있다고 하나?”
“문서는…… 없지만, 증인은 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
드리프는 에듀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자유민은 그렇다 치더라도 농노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변 영지의 불만이 자주 들어오고 있습니다.”
“농노들이 많이 들어왔나?”
“확실치 않지요. 그리 주장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으음…….”
“주변 영주분들을 초청하여 관계를 다지시는 것도…….”
에듀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별로 그러고 싶진 않아. 모여 봤자 참으로 불필요한 말만 하거든.”
“그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불화가 심화될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로라스가 끼었다.
“만약 문서로 농노가 확인된 이는 어떻게 합니까?”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인계한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그렇게 해 버리면 여기까지 오는 이를 죽이는 셈이라…… 그냥 영지 밖으로 추방합니다.”
로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공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문서화되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자들을 색출하여 내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면 와서 직접 조치하라 하세요. 우리가 그런 자들을 색출할 인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시고.”
“그렇게까지 협조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까?”
평상시와는 달리 강하게 반문하는 로라스를 보며, 드리프는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구나, 말해 봐라.”
에듀도 의아해하며 묻는 말에 로라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 원만하게 지내고자 하는 게 그런 건 아니니.”
“아버지.”
로라스는 에듀를 부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려던 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인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에듀는 영지민에게 사랑받는 영주, 수하들에게 경애를 받는 주군이자, 아들에게 존경을 받는 아버지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정확히 그 흐름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젊었을 적 에렌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베스타인 공작은 에듀를 밀어주려고 했지만, 그는 결국 락이라는 변방까지 밀려 나왔다.
로라스가 말을 하지 않으니 에듀가 물었다.
“왜 말을 하다 마느냐?”
“선의가 선의로 돌아온다면 아버지, 그리고 드리프 경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힘없는 자가 보물을 가졌을 때 반드시 비극이 옵니다. 지금 우리 락이 딱 그러지 않겠습니까?”
로라스의 물음에 이번엔 에듀가 입을 다물었다.
에듀는 권력에 관심이 없을 뿐이지, 미련하지 않았다. 로라스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금광이 있고, 밀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시기, 질투 정도로 끝이 나겠습니까? 남의 것을 탐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로라스가 쐐기를 박자 에듀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내뱉는 대답.
“락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에듀의 몸에서 절로 포스가 일어났고, 그 기운은 사납게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로라스는 에듀를 직시하며 말했다.
“아버님이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시그탑은 그 적수가 많지 않은 기사이고, 락의 병력은 최고의 정예들이니까요. 하지만 수동적으로 방어를 취하려 하시겠지요.”
“먼저 공격할 수는 없다.”
“대비는 할 수 있지요. 그리해서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공간을 장악했던 에듀의 포스가 사라졌다.
에듀는 어느새 아비의 표정을 지으며 로라스에게 물었다.
“넌 이미 이다음을 보고 있구나.”
“다음이 아니라 뻔한 상황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와디아 백작이 호위랍시고 이쪽에 병력을 보내기 전부터 말입니다.”
“뻔한 상황이라…… 그러기에는 그림이 매우 커 보이는구나.”
“락의 잠재력이 클 뿐입니다.”
에듀는 감탄했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그런 생각에 입가에 절로 미소를 그려졌다.
“어찌 그려 봤는지 볼 수 있겠느냐?”
“아직은 보여 드릴 만한 그림은 아닙니다. 완성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에듀의 대답을 들으며 로라스 역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자신의 온전한 그림을 다 보일 필요는 없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방향만 알려 줘도 될 것이다.
‘권력에 관심이 없으시니, 너무 커지면 오히려 제약하시려 하실지도 모르니.’
굴러가는 눈덩이는 작을 때 막을 수 있지만, 그 크기가 커지면 막을 수 없다. 아직은 자신도 어디까지 커질지 모르는 상황.
‘보자꾸나. 어디까지 커질지.’
로라스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 * *
“하아앗!”
연병장은 병사들의 힘찬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또 어떻게 완성이 될지는 그림을 그리는 역량에 따라 달렸고.
‘그 재료는 좋아야지.’
창과 방패를 잡은 병사들이 열과 오를 맞춰 훈련하는 락의 병사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 힘이 느껴졌다.
여태 많은 병사들의 많은 훈련을 봐 왔지만, 락의 병력은 그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다.
숫자는 적지만 타 영지가 필요할 때마다 징집하여 훈련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원주민들은 직업이 군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개인 무력이 출중하다. 거기에 오랫동안 함께 몬스터들을 토벌했기에 손발도 잘 맞는다.
‘마물과 사람을 상대하는 건 조금 다르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같은 조건의 전투라면 질 리 없는 확신이 드는 병력이다.
게다가 이 뙤약볕에도 조금의 게으름도 없이, 하나같이 초점 정확한 눈을 가지고 훈련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 스스로도 강해지는 것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브렌드도 없는데 스스로 모여서 하고 있는 상황.
‘상이라도 줘야지.’
로라스는 그렇게 연병장 중앙으로 향했다.
“소영주님!”
“소영주님이 오셨다!”
로라스를 발견한 병사들이 움직임을 멈추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에게 로라스는 그냥 소영주가 아니다. 특히 원주민을은 경애를 넘은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포스를 익히는 방법을 전파한 이후로 생긴 변화다.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힘든 건 없습니까?”
로라스의 물음에 사내들이 대답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행복한 수준이지요.”
“이렇게 훈련만 해도 돈을 주는데.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과거다.
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며 훈련을 해야 했던 과거.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예 군인으로 전환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경단원이라고 해도 생업에 대한 손실을 영지에서 보충해 줬다.
게다가 락의 훈련은 체계적이었고,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것을 체감했다. 어느 모로 생각해도 나쁜 게 조금도 없는 것이다.
“모두 그리 생각하시면 다행입니다. 기쁘기도 합니다. 앞으로 락에 더 많은 사람이 올 것이고, 여러분들의 기준으로 끌어 올리려 하니까요.”
로라스는 상의를 벗으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집단전이나 훈련해 볼까요? 이긴 쪽은 오늘 제가 크게 한턱내겠습니다.”
“우아아아!”
말이 필요 없었다.
로라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락의 사내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 * *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와디아는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더 커지면 손을 쓰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대공자가 보낸 미카이라는 사내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울리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손을 쓰려면 더 늦어서는 안 된다.’
원래 락은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 못 했던 곳.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화제에 오르는 곳이다.
금광의 발견에 그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메타린 평야 외곽의 농경지까지.
‘대체 어떻게…….’
하늘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와 맹수들만으로도 벅찬 곳이다. 실제로 여태 주기적으로 토벌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기에 용병단까지 고용해 가면서 토벌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하지만 근 십 년 새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 척박한 곳에 사람이 몰리고 있었다. 거기다 아직 자신도 가지지 못한 마법의 탑과 센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최소 칠천? 어쩌면 만이 넘어갈지도 모르지.’
락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소문 그리고 자신의 영지를 통과하여 락으로 가는 상단, 용병단 그리고 자유민들을 생각하면 사람의 규모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백작님도 언제까지 이 변방에 계시지는 않으실 거 아닙니까? 락을 손에 넣으면 중앙 진출이 가능합니다. 그분이 도와주실 겁니다.
다시 한 번 미카이의 달콤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만한 규모를 어찌 남작이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백작님 정도는 되셔야 더 발전의 여지가 있는 법이지요.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이 지역의 대영주인 자신이나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손에 넣는다면…… 그렇다면 말이지…….’
순식간이었다.
락에 대한 고민이 그것은 내 것이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바뀌는 건 말이다.
‘그냥 내놓으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감히 자신과 영지전을 벌일 깜냥은 되지 않을 터다.
‘내 근처로 대충 괜찮은 땅 하나 주고, 심복으로 삼는다고 하면 얼씨구나 받아들일지도.’
와디아는 그렇게 장밋빛 망상을 품기 시작했다.
잡음이야 조금 생길 수 있지만, 이 지역에서 감히 누가 자신을 건드리겠냔 말이다. 게다가 이건 대공자의 심중이기도 하다.
‘그건 대공자께서 처리해 주시겠지.’
와디아는 결단을 내리고는 소리쳤다.
“다에스 자작!”
“네.”
“일단 영주 회의 소집하지. 그 누구도 이유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해.”
“결심하신 겁니까?”
“진즉 해야 했다. 페라 따위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됐어. 진작 이리 직접 나서야 했다.”
다에스 자작은 얼른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왜 그런 자를 곁에 두셔서 일을 복잡하게 하셨습니까. 제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락을 먹는 과정에서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판단한 다에스 자작은 희희낙락하며 움직였고. 그 모습을 본 와디아는 자신의 결정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락.
참으로 탐스러워진 이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