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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22화 (12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22)

“그래서 오러후이가 죽었다?”

“네, 주군.”

잔뜩 풀 죽은 번천의 대답에 로라스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육감.”

“네, 공자님.”

잽싸게 자신의 앞에 무릎 꿇는 오리시암을 보며 로라스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유역후도 이런 놈이 있었는데.’

오리시암을 육감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공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눈치도 그렇고 얼마나 약삭빠른지 그 냉정한 막내도 그를 보면 웃음부터 터트렸었다.

천황성의 육감과 지금의 육감이 다른 게 있다면 나이일 것이다.

그때의 육감은 나이가 아주 어렸지만, 눈앞의 육감은 쉰은 넘은 장년이라는 것.

“네놈이 다짜고짜 오러후이를 죽여 버리는 바람에, 나타족이 죄다 도망쳐 숨어 버렸단 말이지. 살려 둘 생각은 하지 못했나?”

“거기서 끝내지 않으면 저도 죽는다 판단했습니다. 놈이 나타족을 손에 넣으면 저희 길드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오리시암은 번천을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번천 님께서 살아 계신 상태에서 처리했어야지요. 그리하지 않았다면 공자님께서는 여기서 간교한 오러후이만 보셨을 겁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고?”

“다른 의도가 있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너희 둘에게 이쪽 지역을 맡겼잖아. 그런 상황에서 오러후이가 죽으면 전부 네 차지가 되지 않겠어?”

로라스는 그리 물은 후 대답을 기다렸다.

오리시암이 뭐라 대답하는지 듣고 난 후에, 놈을 어디에 쓸지 걱정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아! 물론 그런 마음이 눈곱만큼은 있었습니다. 솔직히 번천 님은 이쪽 바닥을 잘 모르시니, 결국 제가 모든 것을 장악할 테니까요.”

로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렇네.’

자신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답변이다. 흑심을 완벽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숨기지도 않는다. 아마도 자신의 반응을 보고 대처할 확률이 높다.

‘너무 시커메서도, 너무 깨끗해서도 곤란하지.’

로라스는 별말 없이 번천을 쳐다봤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뭔 죄지었어?”

“죄송합니다. 주군의 기대를…….”

“내가 너에게 무슨 기대를 걸었는데?”

로라스의 물음에 번천은 순간 대답을 못 했다. 그리고 다시 자책했다.

‘주군은 내가 못나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시는 건가?’

번천이 그런 생각을 품을 때 로라스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번천. 내가 너에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네게 이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거다. 엄밀히 따지면 성향이 전혀 맞지 않은 너를 이곳에 보낸 내 실수인 거고.”

“죄송합니다. 주군.”

“그런 말 들으려 한 게 아니래도. 고개 들어. 너에게 마적, 산적들 두목 따위를 시키려고 한 적 없으니까.”

번천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로라스는 계속 말했다.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너를 감시자 역할로 세우려고 했을 뿐이지. 기사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너를 평생 여기다 둘 생각인 줄 알았냐?”

“주군…….”

“때가 됐다. 너는 테라와 영지에 있어야지.”

로라스는 번천을 그리 다독이고는 오리시암을 불렀다.

“육감.”

“네. 공자님.”

“맡기면 다시 규합할 수 있겠어?”

“대부분의 무간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무간은 여전히 번천 님이시니 맡겨 주시면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그걸로 부족해. 난 이 지역을 전부 내 손에 넣으려 한다. 필요한 게 뭐지?”

“무력이지요. 여기 놈들은 일단 힘이 우선이라.”

“시간은?”

“얼마나 지원해 주시는지에 따라 달렸습니다.”

“번천과 비슷한 실력의 실력자를 붙여 주면?”

오리시암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를 책임자로 삼아 주시면 반년이 안 걸릴 거라 약속합니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나?”

“공자님께서 저를 믿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말을 듣지 않으면 와서 그냥 제 목을 따시면 끝나는 문제인걸요.”

순식간에 내뱉는 질문을 비슷한 속도로 답하다, 여유까지 보이는 오리시암을 보며 로라스가 혀를 찼다.

“허, 말 참 잘하는구나.”

오리시암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답했다.

“제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좋아, 곧 이쪽 길을 이용하는 상단이 늘어날 거야. 그리고 약탈을 반드시 해야 할 곳도 생기겠지.”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백 배 좋은 명령이십니다.”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만간 상단 하나가 내 표식을 가지고 찾을 것이다. 그 사람과 상의하면 된다.”

“네, 그런데 공자님.”

“말해라.”

“공자님의 명령에 조금도 거역할 생각은 없지만 말입니다.”

오리시암은 로라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쪽 바닥에 들어와 있는 놈들 중에서도…… 이쪽에 어울리지 않는 놈들이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놈들?”

“처음부터 죄를 짓고 살고 싶어서 여기로 흘러온 사람들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받아달라?”

“허락해 주시면 누군가는 꿈을 갖게 될 테니까요. 원래 나쁜 놈은 별로 없습니다.”

의외의 부탁. 그리고 원래 나쁜 놈은 별로 없다는 말에 로라스는 잠시 생각했다.

무법자들을 영지민으로 받아 달라는 문제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 어디에선가 범죄자들. 과하게 말해서는 열의 하나는 현상금까지 걸린 범죄자들이다. 괜한 일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쉽진 않겠지만 어려울 것 없다.”

하지만 로라스는 더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허락했다.

의도치 않던 그림이 그려졌다.

오리시암의 말대로 희망.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그런 사람이 정말 많다면 말이다.

‘그 정도의 위험부담이야 감수해야지. 이 지역을 영지 자체로 편성할 수 있다면야!’

유역후의 기억도 그랬다.

관리들이 비리에, 누명에 산으로, 강으로 쫓겨 가는 이들의 이름은 누구네 집 아빠, 아들에서 산적, 수적으로 그리 바뀌었으니까.

물론, 이건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시도는 나쁘지 않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걸 약속드립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육감 오리시암을 보며, 로라스는 그도 누구네 집 누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켜보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로라스는 그렇게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선물했다.

* * *

“오늘도 수고했네.”

“수고하셨습니다. 대부.”

사내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면서 토니의 인사를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노예 생활을 한 지도 일 년.

토니가 목숨을 내놓고 오크와 협상을 하여 삼 년 동안 노동을 하면 풀어 주는 것으로 협상했다.

모두가 토니를 대부로 부르는 이유는 나이가 많다는 것도 있지만, 바로 그 협상 때문이었다.

노예 생활을 하고 있지만, 희망이라는 놈이 생긴 것이다.

“오늘은 주말이잖아.”

사실 인간이 토니의 말을 100퍼센트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크가 약속을 어기면 그냥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믿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

“한잔 마시고 좀 쉬자고.”

무엇보다 토니는 계속되는 협상으로 그래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잠자리가 좋아지고, 식사의 질이 달라졌으며,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도 있다. 게다가 근래 또 협상해서 오늘처럼 술도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협상을 통해 실제적으로 버틸 수 있는 유흥거리가 생기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로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답이 없었다. 특히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제일 문제였다.

몇몇은 기어코 탈출을 시도했었고, 토니의 말대로 오크에게 죽지 않았다.

맹수들의 울음소리와 탈출했던 자들의 비명. 그렇게 오금이 저렸던 밤을, 세 번이나 경험한 터.

그런 시간에 익숙해지더니 체념해 버린 것이다.

피곤한 몸에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사람들은 각자 거처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을 잤다. 토니는 모두가 잠든 걸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조금 더 고생들 하시게.”

졸지에 노예 생활을 하는 그들이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다.

‘못난 영주 만난 불운인 거지.’

하지만 또 어찌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런 불행을 가졌으면서도, 힘들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이 노예 생활이 끝나면 두둑이 한밑천 마련해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대로 락으로 오면 더 좋은 거고.’

토니는 그리 생각하며 조심스레 오크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말에는 협상을 위해 넘어가곤 하니, 누가 봐도 상관은 없지만 조심해서는 나쁠 게 없었다.

“토니.”

“드리프 님.

샤이한과 공사 진행 사항을 토의하는 장소에는 뜻밖의 드리프가 와 있었다.

“자네가 고생이 많아!”

“고생은요. 무슨, 잘 지내고 있는걸요.”

“그래도 여기서…… 나도 그렇고…… 소영주께서도 자네에게 미안해서 여기 오기 쉽지가 않다고 하시더군.”

토니가 임무를 받은 이후로 락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로라스의 부탁에 삼 년을 같이 노예 생활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니는 크게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저만 할 수 있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영주께서는 잊지 않을 거라 하셨네. 그리고 이건…….”

드리프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 거 없어도…….”

돈으로 생각한 토니가 괜찮다고 거부하려 했지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드리프가 주머니에서 꺼낸 작지만 영롱한 빛깔의 돌.

수많은 토벌전을 경험한 토니는 그게 뭔지 금세 깨달았다.

마나석.

콩알만 한 크기였지만, 마나석은 마정석을 가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저만한 마나석을 만들려면 작은 새알만 한 마정석을 가공해야 한다.

가치로만 따져도 토니가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소영주께서, 이런 걸로 토니, 그대의 수고를 사려는 건 아니라고 꼭 말해 달라고 하시더군.”

“드리프 님…… 이건…….”

“갖고만 있어도 도움은 되지만, 그냥 삼키라 하셨네. 다시 락으로 돌아올 때 제대로, 그 공을 치하한다고 하시기도 하셨지.”

토니는 감히 마나석에 손을 뻗지도 못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에게 기대하고, 이런 중임을 맡긴 것도 황송할진대, 귀한 마나석까지 받았다.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명 아닌가.

“자네가 먹는 걸 끝까지 확인하라 하시더군. 먹게.”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석을 삼켰다.

당장 무슨 변화는 없었다. 그냥 돌덩어리를 삼키는 느낌이었을 뿐.

“쉽진 않겠지만 포스 써클레이션을 부지런히 하게. 나도 기대가 커.”

“감사합니다. 드리프 경.”

토니는 그리 인사를 하며 다짐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소영주의 의도대로! 지금 모여 있는 자들을 확실히 락의 사람으로 만들겠노라고 말이다.

* * *

‘복수의 날이 왔구나!’

먼저 연락을 보냈던 페라 남작이 완벽히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대공자는 결국 자신을 보냈다.

놈 때문에 잃은 대공자의 신뢰.

그것을 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결국, 자신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생각이었다.

‘그때 참은 게 다행이었지.’

로라스.

자신의 인생을 망친 그놈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던 날.

암살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포기한 이유는 간단했다.

놈의 실력이 실버 스워드 우승자 그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음을 알았고, 방수들도 너무 많았다.

에렌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분명 정보가 샐 확률이 높았다.

100퍼센트 확신이 없기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다.

개개인의 싸움이 아니게 될 테니, 놈을 처리할 확률은 올라갈 것이다.

그를 위해서 자신의 돈으로 특급암살자들까지 고용했다.

모아 둔 재산 전부를 털어 넣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놈만 처리하면, 에렌에서 뺏긴 모든 것들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너만큼은 반드시!”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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