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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20화 (12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20)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엔케이 용병단의 단장. 엔케이 서드라 합니다.”

“서드?”

와디아가 의외라는 듯이 하는 말에 엔케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과분하게도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기사가 왜 용병단을?”

“기사라 불리기에도 부끄럽습니다. 천성이 밖으로 나도는 것을 좋아하기에.”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락을 좀 안다고?”

와디아의 물음에 엔케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용병단 중에서 저희보다 락을 잘 아는 곳은 없을 거라 장담합니다.”

“문제가 하나 있는데…….”

“인명피해로 인한 보상금은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임무라면 보험으로 피해 보상은 필수이지만…….”

엔케이는 슬쩍 와디아를 보며 말했다.

“용병 길드를 빼고 가면 됩니다.”

“용병 길드를 빼고?”

“용병길드가 수수료를 받는 이유가 의뢰자와 저희 용병들 사이를 보증해 주는 것인데. 거기를 끼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와디아는 흥미를 보였고, 엔케이는 말했다.

“대신 위험부담이 있으니 의뢰 비용을 30퍼센트만 올려 주시면 됩니다.”

“자신은 있고?”

“목숨 걸고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30퍼센트는 좀 과하다 싶은데?”

엔케이는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용병들 사이에서 이번 일은 유명합니다. 원래 난이도가 중급이었는데. 이번에 전원 실종 때문에 난이도가 최상급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상급 비용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는데, 그마저도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할 수 없지요.”

“조금 과하다고 말했을 뿐이야.”

“저희도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그 정도는 받아야 해서 말입니다.”

와디아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실제 그는 돈이 없기도 했다.

와디아가 나름 이 지역 대영주라고 하지만, 최북부 영지 내에서 풍족한 이는 아무도 없다.

락의 금광에 귀가 확 뜨인 이유도 그 때문.

망설이는 와디아를 보며 엔케이가 말했다.

“백작님. 제가 한 가지 조언을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실종된 이들 중에서 삼백 명만 백작님의 병력이라 들었습니다. 나머지는 페라 남작과 용병들이라고.”

“그렇지.”

와디아의 대답에 엔케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의뢰 비용을 백작님 혼자 책임지려 하십니까?”

“…….”

“당연히 페라 남작에게도, 아니 그쪽이 더 많은 비용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지의 주인인 페라 남작도 실종상태이니 말입니다.”

우둔한 와디아였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현자들 못지않게 빨리 머리가 돌아갔다.

“그렇지! 그걸 나만 부담할 필요는 없지.”

“의뢰비용 일부하고, 성공 보수를 페라 남작 쪽에 부담시키면…….”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

와디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용병치고는 상당히 똑똑하구먼.”

“과찬이십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쭸던 것뿐입니다.”

“아니야. 제법이었어. 사실 락으로 간 것도 페라 남작의 의견이었으니까. 으음.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조금은 부담스럽군.”

“그 계약도 제가 나서도 됩니다. 기왕이면 백작님의 부담이 적은 쪽으로 말입니다.”

“하하하하. 그러면야 더더욱 좋겠지. 자네 마음에 드는군. 상이라도 내리고 싶은 심정이야.”

“나중에 또 다른 의뢰에 저희 용병단을 기억해 주시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페라 남작 영지에 언질만 해 주십시오.”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와디아 백작과의 면담을 나온 엔케이는 입꼬리를 올렸다.

‘듣던 것보다…….’

더 멍청하다.

용병을 이용하면서 길드를 통하지 않는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다.

용병 길드를 통해 의뢰하는 건 용병들을 위한 보호장치이기도 하지만, 의뢰인을 위한 보호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돈만 받고 의뢰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함이니까.

락과 자신의 용병단처럼 십 년 이상 신뢰를 쌓는 관계가 아니라면, 양쪽 모두 직계약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덕분에 자신은 공돈을 벌었다.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겠으나…….’

위험만큼 대가도 따른다. 로라스는 와디아에게 뜯어낸 돈은 자신의 용병단에 주기로 약속했다.

‘그나저나 소영주도 꽤나 무서운 사람이군.’

번듯한 겉모습과 영지민들을 대하는 모습에 속을 뻔했다. 내 편과 그렇지 않은 편의 구분이 명확한 듯했다.

‘다행히 줄은 잘 선 것 같은데.’

엔케이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와디아가 언제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깨달을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물론 결국엔 사기가 아니게 되겠지만.’

엔케이는 아주 경쾌한 마음으로 용병단을 끌고 락으로 돌아갔다.

* * *

햇볕 적당하고, 바람도 적당하여 좋은 날.

락의 영주인 에듀의 저택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저택은 관청 같은 역할을 했기에 평상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갔지만, 그 날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표정은 모두가 같았다.

“곧 도착합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하나같이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갔다.

밖에도 사람은 많았다.

“옵니다!”

사람들의 외침에 일제히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고, 영주관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수레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레에는 포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우아아아아!”

사람들이 그 광경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마침내 락에서도 밀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수레에 온 것이 첫 수확물.

락에서 식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밀 같은 경우는 100퍼센트 외부에서 들여와야 한다.

현재의 락의 재정 상황은 좋은 편이라, 곡물 수입에 문제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식량 생산을 하지 못하는 건 큰 약점.

하지만 오늘부터 그 약점은 사라졌다. 게다가 밀의 산출량이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영지민들이라면 이제 배 굶주릴 일은 없었다.

적은 양이지만 타지로 팔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앞으로 계속 인구 유입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남은 식량은 모두 저장하기로 했다.

생산된 밀은 미리 지어 둔 저장고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에듀를 비롯해 로라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만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고, 락에서 생산된 밀로 만든 빵이 나왔을 때.

“내 생전 이리 맛있는 빵은 처음 먹어 본다!”

“빵에 금가루라도 뿌렸나. 왜 이리 고급져.”

“열이 먹다가 아홉이 죽어도 모르겠다.”

축제와 같은 날이라 수많은 요리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빵만을 집고, 빵만을 먹으며 감탄했다.

모두가 알고는 있다.

그래 봤자 빵이라고. 뭐 특별한 거 없이 반죽을 잘 부풀리고, 잘 구운 빵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모두의 감탄은 계속되었고 끝나지 않았다.

* * *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원 없이 먹고, 마시는 그런 사흘간의 축제가 끝난 날.

그날 락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택으로 모였다.

처음 발언을 한 건 드리프였다.

“인두세만으로도 기본적인 영지 운영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영내 가구 천여 가구.

숫자만으로는 오천이 넘는 숫자.

보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고 있었지만, 이리 숫자로 알게 되니 정말 변화의 속도가 엄청남을 체감할 수 있었다.

“유동 인구는 그의 반이 넘습니다. 금광의 채굴량은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것 같지만, 수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식량을 해결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영지. 정말 이게 되는 곳은 정말 많지 않았다. 특히 북부에서는 말이다.

“아직은 자급자족하는 수준이나, 농업 인구가 늘면 늘수록 수출까지 가능합니다.”

모두가 열렬하게 박수를 치는 가운데 다음 발언자로 브렌드가 지정되었다.

“영지의 급격한 발전에 병사들과 자경단원들의 커버할 지역이 늘어났습니다. 다행히 우리 락과 동맹인 천년나무집 일족의 분들이 산맥 쪽 경계를 책임져 주시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농업을 본격적으로 발달시키려면 반드시 병력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물었다.

“자경단원들의 숫자나 실력이 충분치 않습니까?”

“자경단원은 봉사입니다. 본업까지 못하게 하면서 동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미 그들은 충분히 이 영지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브렌드의 말에 에듀가 물었다.

“브렌드 경, 자경단원 중 영지의 병력으로 편성을 원하는 이가 있나?”

“숫자가 조금 됩니다. 드리프 경과 상의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요합니다. 자경단원을 영지병으로 전환하려면 말입니다.”

“렘, 가능한가?”

에듀가 고개를 돌려 렘을 보며 묻는 말에 그는 난색을 표했다.

“이미 재정 계획을 꽉 채워 둔 상황입니다.”

“식량 수입이 줄어드니 여유가 있다 하지 않았나?”

“그 수익도 이미 예상한 상황이라…… 예상보다 더 많이 수확했다고 하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열띤 논의가 계속되었고. 가장 많이 말을 하는 건 역시 드리프와 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지 내외의 재정을 두 사람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재정은 풍족한 편은 아니다. 수많은 개발에 지출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로라스는 렘을 따로 불렀다.

“네, 소영주.”

“다른 건 모르겠는데 자경단원들을 병사로 전환할 수 있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그건 설명해 드렸다시피.”

렘은 지친 표정으로 회의에서 설명했던 것을 다시 이야기하려 할 때였다.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

“어떻게…… 혹시 저 모르는 주머니를 가지고 계십니까?”

“다른 주머니는 아니고. 무법지대에 난 운송로를 이제 써먹어 볼까 싶어서.”

“…….”

“여기에 네 상단 말고 다른 상단이 얼마나 들어와 있지?”

렘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십여 개 정도 됩니다.”

“그들에게 받는 세금은 얼마나 되는 거지?”

“드리프 경은 수레당 하나로 세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혹시 거기에서 세금을 매길 생각이시라면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시겠지만…… 5년간 세금을 올리지 않기로 영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기억해. 일단은 더 많은 상단이 락에 오게끔 하려 한 거였으니까.”

“그럼 어떻게…….”

“말했잖아. 무법지대를 이용해 보겠다고. 경비 절감 상당했지?”

“네,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마적들이나 산적들의 출현이 적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아니야. 출현 빈도는 예전처럼 돌아올 거야.”

렘은 말뜻을 깨닫고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설마 맞아. 완벽하게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통제가 가능한 수준은 돼.”

“소영주, 전 상인입니다. 확실하게 숫자로 말씀해 주시면 제가 계획하기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숫자로 표현하기에는 모호한 게 있지만, 계산할 때는 열의 일곱으로 계산해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제일 큰 마적 부족인 나타족은 번천이 대무간이 되어 있고, 산적들 역시 반은 토벌했었거든.”

“그래서 여태 저희 상단은 피해가 전혀 없었군요.”

렘이 이제야 알았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감탄하자 로라스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말했다.

“너는 안전한 길을 만들자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와디아 백작이 장악하고 있는 남쪽 길보다는, 이 북쪽 길이 에렌으로 가는 게 더 빠르잖아.”

“물론 그렇지요.”

“우리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길의 중요성은 더 크게 될 터.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렘은 대번에 로라스가 세운 계획의 핵심을 파악했다.

“마적들과 산적 역시 키우시겠다는 거군요. 길을 장악하고 이득을 취하시겠다는 말씀이시죠?”

로라스는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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