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18)
하늘 산맥에서 보는 하늘은 다르다.
하늘이 같은 하늘이지 뭔가 다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하늘이 두 배는 가까이 다가가 있는 느낌이랄까.
탐슨은 그런 하늘을 보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제니 보고 싶다.’
탐슨은 한 달 전에 결혼했다.
‘재수도 더럽게 없지.’
하지만 신혼을 즐기기도 전에 파견 병력에 포함된 불운을 가졌다.
‘예상했던 곳보다 훨씬 평온하긴 하지만.’
처음에는 신혼이 문제가 아니었다. 파견 나가는 곳이 하늘 산맥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들에게 하늘 산맥은 죽음의 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착해 며칠 있다 보니, 오히려 영지보다 안전한 느낌이었다. 시간도 널널했고 말이다.
덕분인지, 그 탓인지 가장 힘든 일이라고는, 이리 밤에 경계를 서는 것이 되었다.
잠은 둘째 치고 저 하늘만 보고 있노라면, 괜히 마음이 싱숭해숭해지는 것이었다.
“하아아암!”
그때 탐슨은 크게 하품을 하며 생각했다.
‘야간 경계 때문에 충분히 쉬었는데…… 이상하게 졸리네.’
탐슨은 크게 몸을 펴고, 심호흡도 하고, 물도 마셨지만, 이상하게 졸린 건 사라지지 않았다.
“샘, 오늘 좀 많이 피곤한데, 교대로…… 허어.”
그리고 같이 경계를 서던 동료를 보며 한마디 하려던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샘은 창을 지지하며 선 채로 졸고 있었다.
“하아…… 나도 졸린…….”
샘은 생각을 잇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탐슨 역시 창을 든 채로 서서 잠이 들었고, 잠시 후 그들의 초소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때. 걱정할 거 없다 했잖아.”
에르자일이 하는 말에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좀 생각해 봐야 할 정도인데…….’
수면 마법은 초급 마법이다. 3클래스 마법사라면 상당히 높은 성공 확률을 가진다.
에르자일은 고위급 마법사이니 수면 마법 자체를 성공한 게 대단한 건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걸 백 미터 넘는 거리에서 성공했다면…… 생각해 봐야지. 그것도 많이.’
보통 마법사의 단점인 단거리에 취약하다는 건데, 에르자일은 그 거리에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고위급 마법사라…….’
그때 에르자일이 말했다.
“그리 안 봐도 돼. 로라스, 너 아직 사 클래스 마법 안 익혔지?”
“삼 클래스 마법에도 효용적인 게 많으니. 그것부터 익히려 했지.”
“그래서 그리 이상하게 보는 거야. 상위급 마법 중에서는 마법 적중률을 높이는 마법도 있고, 무엇보다 상대의 항마력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 아주 정확히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쪽 초소를 택한 거야?”
“항마력이 제일 낮게 느껴졌거든. 또.”
에르자일은 자신의 로브를 슬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 부자야. 여기 벨트, 액세서리 모두 마법 적중률을 높여 주는 것으로 가져왔지.”
그 말에 생각을 접었다.
하긴 고위급 마법사가 흔한 게 아니고, 저리 고가의 마법 물품들로 도배를 하는 마법사도 흔치 않을 터. 게다가 고위급 마법사가 고작 초소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니까.
여하간 초소를 제압한 후 기다렸고, 기다리던 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짜로 만들었던 통곡의 협곡을 진짜로 통곡의 협곡으로 바꿀 차례였다.
* * *
“으응? 으아아악!”
탐슨은 멍하니 눈을 뜨다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쿠오오오. 이거 이제 일어났네!”
“으아아아악!”
탐슨은 자신에게 얼굴을 갖다 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인지, 어금니 달린 멧돼지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파아아악!
순간 탐슨은 머리에 전해지는 충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휘청였다.
“쿠오오오오! 시끄럽다! 죽기 싫으면 입 다물어!”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뜻은 정확히 전달되는 음성에 탐슨은 입을 악다물어야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니 동료들은 물론, 지휘관인 페라 남작도 포박당한 채로 무릎 꿇려져 있었다.
하나 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들.
탐슨은 그제야 자신들이 모조리 제압당하는 것을 정확히 인지했다.
‘오크들인가…… 약간 생김새가 다른데…….’
탐슨은 오크를 딱 한 번 본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 같은 생김새는 아니었다. 자신이 본 오크는 녹색 빛을 띠었지만, 이들은 갈색빛이 더 강했다. 무엇보다 아래쪽 어금니가 위로 튀어나온 듯한, 그러니까 멧돼지 같은 구강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크들도 종류가 많다더니…… 하늘 산맥의 오크들은 이렇게 생겼나 보다.’
탐슨이 그리 생각할 때, 갑자기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대장이 누구냐? 크으으으.”
나직한 숨소리. 그건 그냥 숨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맞춰 마치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기분.
“대장이 누구냐?”
그리고 다시 한 번 들리는 소리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 안 나가!’
탐슨은 이 공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그만의 생각이 아닌 모든 이의 생각인 듯, 일제히 시선이 페라 남작에게 쏠렸다.
“너냐? 크으으.”
새하얗게 질린 페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 뿐이었다.
그 모습에 샤이한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페라를 쳐다보았다.
‘이거 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샤이한은 미리 당부받은 것이 있었다.
이곳의 우두머리인 페라의 권위를 떨어트리라는 것.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줬는데, 지금 페라의 꼴을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이놈 벗겨. 크으으으.”
하지만 그래도 알려 준 것이니 샤이한은 철저히 따랐고, 페라는 곧 알몸이 되어 중앙으로 끌려 나왔다.
하얗게 질려 있던 페라의 얼굴이 수치심에 어느새 짙붉게 변해 있었다.
“이런 것도 대장이라고…… 크오오오.”
“인간들 대장 맞아? 쿠오오. 뭐 저래? 말 한마디 못하네.”
주변 오크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때 샤이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우리 포로다. 우리가 주는 걸 먹고, 우리가 시키는 일을 한다. 크으으으으.”
샤이한은 기운을 담아 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탈출 시도는 해도 좋다. 하지만 걸리면 죽는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페라와 그의 병력은 산속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에르자일이 로라스에게 물었다.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지금 락에서 사람이 살만한 공터가 부족하잖아. 산맥 안쪽에 오크들의 터전을 따로 만들 거야.”
“저들에게 시킬 생각인 거구나.”
“오크들은 할 일이 많으니까. 운송로를 유지해야 하고, 계속 마물을 토벌해야 하니까.”
로라스가 페라를 환영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있다지만, 현재 락의 발전 속도는 유입되는 노동력이 늘 부족한 상태.
그 와중에 육백이라는 건장한 사내들이 들어왔다. 돌려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중에는 어떡할 건데?”
“어떡하긴. 계속 좋은 노동력으로 써먹어야지. 써먹다가 락의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어떻게?”
로라스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 생각이 있어. 그나저나 저런 파리들이 좀 더 안 꼬이려나? 생각지도 못한 노동력이잖아.”
에르자일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정신 마법 쪽을 연구해야겠네. 노예 생활이 오래되면 정신 마법 쪽으로 항마력이 극히 떨어지니까. 쉬울 거야.”
로라스는 자신보다 더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에르자일을 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페라 같은 책임자들은 배려할 필요는 없지만, 일반 병사나 용병들은 노동에 대한 보상은 해 줄 생각이니까. 예비 영지민들인데 잘해야지.”
로라스는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일이 좀 힘들어서 통곡은 좀 하겠지만 말이야.”
* * *
없던 통곡의 계곡을 만든 며칠 후.
“로라스…….”
에듀가 로라스를 불렀다.
“네, 아버님.”
“페라 쪽 사람들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무사합니다.”
“역시…… 네가 한 일이냐?”
사실 페라의 병력이 통곡의 계곡에 대한 일은 에듀는 전혀 몰랐다.
다만 로라스를 믿었을 뿐.
‘아버님이 알면 무조건 반대하셨을 테니.’
에듀 입장에서 좋은 방법이 아니기에, 로라스는 구체적인 사실은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제가 좀 골탕을 먹이긴 했지만, 죽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페라 남작은?”
“역시 살아 있습니다.”
“모호하구나.”
“아버님. 우리 락의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여 만든 판에 스푼만 올려놓으려는 놈들입니다. 그냥 놔둘 생각입니까?”
에듀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로라스, 그런 건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정세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페라 남작만이라면 모르지만, 뒤에는 와디아 백작이 있어.”
“알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큰 탈이 없을 겁니다.”
“널 믿는다. 하지만 대충 어찌 수습해야 할지는 나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실종 처리하지요. 하늘 산맥에 간 토벌대가 실종되는 일이 어디 한둘입니까. 모레쯤 해서 수색대를 파견하여 찾는 시늉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생각해 뒀구나.”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큰일이라는 건 저도 압니다. 문제 생기지 않을 겁니다.”
“죽여서는 안 된다.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로라스는 에듀의 말에 역시 아버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책임자들은 죗값을 치르겠지만, 다른 이들은 이후 보상을 받을 겁니다. 지금은 단지 그들은 불운할 뿐입니다.”
“알겠다.”
그렇게 에듀와 대화가 끝난 며칠 후.
페라와 그 육백의 병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락에 빠르게 퍼졌다.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락에 순간 공포를 불러왔다. 그리고 조사대가 편성되기 시작했다.
통곡의 계곡 계획을 아는 이는 극소수.
그 탓에 로라스는 제법 고되게 조사대를 굴려야 했다.
보름 후 페라와 그 병력의 실종은 정식으로 와디아 백작에게 보고 됐다.
* * *
콰아아앙!
와디아는 탁자를 힘주어 치며 노성을 질렀다.
“실종?”
“그게…….”
보고를 하는 관리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락에서 보름 이상을 수색했지만, 한 명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
와디아는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무려 삼백의 병력이다.
물론 정예는 아니긴 했다.
사실 와디아의 속내는 금광 지분을 얻는 것도 있지만, 병력의 훈련도 있었다.
최강 정병을 보유했다고 소문난 락이다.
영지에 젊은 사내를 징집해 보낸 이유는 바로 락에서 단련되어 돌아오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이가 실종됐다.
“용병들, 용병들도 몽땅 실종됐다고?”
“네…… 그렇다고…….”
“그럼 대체 손해가 얼마인 거야!”
용병 길드에는 이미 한 달치를 일시불로 지불했다. 게다가 실종 시간이 지속되면, 사망으로 처리해야 하고 그 보상금도 지불해야 한다.
용병 길드는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다.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면, 와디아 백작은 다시는 용병을 고용하지 못한다. 용병들이 모두 의뢰를 거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찾아, 어떻게든 찾아.”
“다시 병력을 파견해야 할까요?”
“락에서 찾으라고 해야지. 그걸 왜 우리가 또 파견해!”
“락에서 듣겠습니까? 애초에 이번 파견병들도…….”
틀린 말이 아니라 와디아는 잠시 성질을 눌러야 했다. 자신의 지위로 누르기에는 명분도 약할뿐더러, 영지전을 벌이기에도 살짝 무리가 있었다.
에듀가 베스타인 가의 버림받은 귀족이라 하지만 그래도 베스타인 아닌가.
“쓸 만한 용병단 있을까?”
“얼마 전 들어온 용병단이 락을 잘 안다고 합니다. 토벌대에 늘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의뢰를 마치고 에렌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인원은?”
“서른 명입니다. 엔케이라는 자가 이끌고 있는데, 보니 그 구성원들이 일반 용병들보다는 절제되어 있는 모습이 신뢰가 갔습니다.”
“한번 접촉해 봐.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해.”
“네.”
관리인이 급히 나가고, 와디아는 관자놀이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페라, 이놈은 대체…… 찾기야 하겠지만…… 거기에 소모되는 비용은 네놈이 지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