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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16화 (11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16)

평생을 공작의 심복으로 곁에 있던 트아이는 공작의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대공자가 좀 잘해야 할 터인데. 그냥 평범하기만 해도 장자의 위치는 굳건해지는데 왜 이리…….’

모든 아비에게 첫 번째 아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문의 후계는 장자이고, 또 대부분 장자가 아비의 지위를 이어받는다.

그 대단한 베스타인 가문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작은 늘 능력 있는 후손에게 가문을 이어받게 한다 공언하고, 실제로도 후계 후보들을 몰아치고는 있지만, 장자에 대한 신뢰는 다른 핏줄들을 능가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대공자 디존슨은 주군의 기대에 부응한 적이 많지 않았다.

‘이해는 한다만…….’

사실 따지고 들면 디존슨은 그리 모자란 사내가 아니다. 제법 머리도 굴릴 줄 알고, 수하들에게도 신뢰를 살 줄도 안다.

하지만 다른 후계 후보들의 재능이 너무 특출났기에, 디존슨은 늘 다른 이들과 비교당해야 했다.

특히 지금은 변방으로 떠났지만 에듀의 재능은 너무 뛰어나, 디존슨을 크게 위축까지 시켰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디존슨이 점점 무리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제일 어린놈이 날 생각해서 고향으로 도망치는데, 다른 놈들은…….”

공작은 트아이를 슬쩍 보며 말했다.

“변방 민심이나 살펴보고 와. 근래 좀 등한시한 것도 있으니.”

뜬금없는 민심 순찰 명령에 트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엔 북부 끝까지 모두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 * *

오베른 제국 최북부에 위치한 콰미이라 영지는 북부에서 가장 큰 영지다.

주변 영지들이 척박한 위치에 있거나, 아니면 하늘 산맥을 끼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무법지대 쪽인 영지들인 것에 비하면, 콰미이라는 나름 위치가 좋았다.

다른 북부 영지들의 부채꼴처럼 펼쳐져 있어, 몬스터들을 한번 걸러 주는 벽 역할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에렌에서 도 나름 가까운 위치인지라 치안은 물론이고, 물자도 풍족한 편이다.

이 영지의 주인은 와디아 백작.

나름 최북부 귀족들 사이에서는 나름 맹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위도 다들 남작, 자작인 것과는 달리 백작이었으며, 일단 이 근방에서는 사람이 살 만한 조건, 그리고 가장 큰 넓이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에렌으로 향하는 관도를 담당하고 있고, 에렌에서 최북부로 올라가는 상단에게도 짭짤한 세금을 거두니, 가장 부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평은 좋지 않았다.

중앙 귀족에게는 북부의 촌뜨기 귀족이라 불리며 무시당하기 일쑤. 그렇다고 자신이 속해 있는 북부 귀족에게도 좋은 평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근처에 있는 하급 귀족들에게라도 평판이 좋으냐?

그마저도 아니었다.

욕심 많은 백작님.

이 한 문장으로 그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욕심 많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욕심 없는 사람. 특히 귀족들 중에서 욕심 없는 자가 몇이나 되랴.

하지만 와디아는 문제가 됐다.

욕심‘만’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디아의 귀에 그 단어가 들려왔을 때, 와디아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금광?”

페라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근래 많은 물자가 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의아해하지 않았나. 위에 뭐가 있어서 그리 많은 상인들이 움직였는지 말이야. 그럼 그게 금 때문이란 건가?”

“네. 락에서 금광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거기에 광산이 있을 자리라고는 하늘 산맥의 산뿐인데.”

페라 남작은 바로 그거라는 듯이 대답했다.

“네, 바로 거기서 발견되었고 개발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상한 거지. 하늘 산맥에 금광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캐낼 수가 없잖아.”

“락이 원래 거칠기로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근래 마탑이 생기고, 센터도 건설 중이라 용병들은 물론이고, 무인들과 마법사. 모험가들도 몰리고 있는 상황이니…….”

“그들을 고용하여 금광을 개발한다?”

페라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락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많은 물자들을 사들이겠습니까? 토벌 시기일 때만 마정석을 모아 재정을 유지하던 영지가 말입니다.”

“으음…….”

“정말 금광이 존재하고 채굴량이 괜찮다면…… 세금을 거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라 남작이 은근한 눈빛으로 하는 제안에, 와디아는 눈빛이 탐욕이 서렸다. 하지만 이내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명분으로. 여태 단 한 번도 병력 지원해 준 적도, 개발에 도움을 준 적도 없는데 말이야.”

“에렌으로 가는 길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은 백작님이 유지 보수하고 있습니다.”

“그 세금은 이미 상인들에게 거두고 있잖아. 길 때문이라면 이중 세금이 되니 분명 말이 나올 거야.”

페라 남작은 와디아에게 몸을 가까이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만…….”

“무슨 방법?”

“지금이라도 몬스터 토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병력을 파견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 산맥으로?”

“네, 치안을 유지한다는 대가로 세금을 요구하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와디아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에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법 명분은 괜찮지만…… 락의 영주가 누구인지 모르나? 그는 베스타인의 성을 쓰고 있어.”

“그건 신경 쓰실 게 안 됩니다. 변방으로 좌천된 인물 아닙니까? 에렌에서 단 한 번도 부르지 않는 걸 보면, 중앙 쪽에는 줄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 부담스러우시면 절 이용하셔도 됩니다.”

와디아는 살짝 눈을 치켜뜨며 페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건가?”

“사실…….”

페라는 아무도 없는 방임에도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게…… 대공자 쪽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대공자께서!”

“네, 제가 그쪽에 선이 좀 있지 않습니까?”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페라가 입을 열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와이다의 표정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야 무조건 해야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백작님께서는 삼백 명만 지원해 주십시오.”

“가능하겠나? 삼백 명으로는 하늘 산맥은 부담스러울 텐데.”

“제 영지의 모든 병력을 동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용병들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정도로 준비해 놓은 걸 보니, 이거 완전히 통보였구먼.”

페라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작님께서도 언제까지 이곳에만 계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중앙에 진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백 명이면 된단 말이지?”

“네, 그 정도면 됩니다.”

와디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계산이 끝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원해 주지. 하지만 세금은 제대로 우리 쪽으로 넣어야 하네. 삼백을 운용하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치안을 위한 병력 아닙니까? 비용은 당연히 락에서 지불해야지요.”

“세금도. 비용도 말이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당연히라…… 그거참 좋은 것 같군.”

두 귀족은 그렇게 웃었다.

* * *

“축하드립니다. 에듀 남작님.”

베론 남작의 축하에 에듀 역시 축하를 했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베론 남작님.”

베론 남작은 에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다 덕분이지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에듀 남작님!”

금의 운송로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조금씩만 금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금광의 지분을 조금 가지고 있던 베론 남작은 정말 기뻤고, 감사했을 뿐이다.

사실 자신은 별로 한 게 없었다.

자신이 한 거라고는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하여 그냥 락에 왔을 뿐이었다. 물론 같이 싸우기도 했지만, 자신과 자신의 영지민들이 한 건 손을 돕는 수준.

그런데도, 또 기대도 하지 않았음에도 에듀는 금광의 지분을 자신에게도 나눴다. 손이 아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소리를 그리 하십니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남작님의 합류가 큰 도움이 되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두 남작이 그렇게 서로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뿌우우우!

그때 나팔 소리가 들리자, 에듀는 놀라며 얼굴이 굳어졌다. 저 신호는 외부에서 누군가 나타났다는 경고.

에듀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목책 입구로 달려가니 이미 브렌드는 물론이고, 락의 모든 병력이 모여 있었다.

긴장감이 잠시 감돌았지만, 이내 다가오는 병력의 깃발을 확인하고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와디아 백작의 병력이 왜?”

가장 먼저 보이는 깃발의 문장을 보며 에듀가 입을 열자, 옆에 있던 베론도 한마디 보탰다.

“저건 페라 남작의 문양입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늘 불길한 법이다. 게다가 불청객이 평판 좋지 않은 와디아 백작과 페라 남작이니 더더욱 그랬다.

두 사람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 * *

“토벌 말입니까?”

에듀가 탐탁지 않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지만, 페라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근래 하늘 산맥의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지 않습니까? 북부 대영주 중 한 분인 와디아 백작님께서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으시겠습니까?”

페라는 여유 있게 앞에 놓인 물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백작님의 뜻을 받들어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백작님의 정예병 삼백 명과 제 병력 이백. 그리고 용병들 백 명까지.”

“예전 그토록 요청했고 그 요청에 응하지 않았을 때도 견뎠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몬스터들은 우리 영지 자체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에듀가 예전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하는 말에, 페라는 낯가죽 두껍게 말했다.

“몬스터 웨이브 때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때는 모두 힘든 시기 아니었습니까? 당시 백작님도 원군을 보내고 싶어 하셨으나, 콰미이라 지역이 무너지면 에렌이 위험했습니다. 대승적 결단이었지요. 에듀 남작님께서도 그 정도는 아시지 않습니까?”

페라가 오히려 당당히 나오자, 에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코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튀어나왔지만 입은 열지 못했다.

대승적 결단.

에렌을 거론하면서 나름 잘 치장하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이런 말에 반론을 달면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그렇다고 속내가 뻔히 보이는 수작질에 넘어가기에는 너무 화가 났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의 병력이 필요 없습니다.”

“어찌 락만 생각하십니까? 다른 영지도 생각하셔야지요. 제가 이끌고 온 병력이면 많은 몬스터 토벌이 가능할 터. 그만큼 북부 다른 영지들이 안전해지지 않겠습니까?”

제법 그럴듯한 명분을 들고 오자 에듀는 초조해졌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것이 분명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페라는 나갈 생각이 없을 것이다.

에듀가 쫓아낼 방법이 없어 고심하고 있을 때, 지켜만 보던 로라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에듀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로라스가 방법이 없다면 입을 열지 않았을 터. 분명 놈들을 몰아낼 묘수가 있을 거라 여겼다.

“말해 보거라.”

“우리 락을 위해 먼 길을 오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육백이라는 많은 병력도 이끌고 오셨는데. 분명 락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묘수는커녕 오히려 답답한 소리를 하니, 에듀는 속이 탔다.

“로라스.”

에듀가 그를 부르며 말을 돌리려고 할 때 로라스가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통곡의 협곡에 병력이 부족하지 않았습니까? 페라 남작님께 그쪽을 부탁하는 것이 어떨까요?”

“로라스 이 문제는…… 응? 어디 말이냐?”

에듀는 의아해하며 되물었고, 로라스는 대답했다.

“통곡의 협곡 말입니다.”

그리고는 슬쩍 페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몬스터들의 출몰은 많지 않으나 그 폭이 넓어서 경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페라 남작님이시라면 충분히 방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듀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영지 내에, 아니, 하늘 산맥 그 어느 지점도 통곡의 협곡이라는 장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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