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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14화 (11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14)

산속의 밤은 위험하다.

특히나 낮에도 위험하다는 하늘 산맥의 밤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집단은 이 밤에, 그 흔한 보초 한 명 세워 두지 않았다.

삼백 명이 넘는 자신들의 숫자를 믿어서일까?

어리석은 짓이다.

하늘 산맥의 맹수와 몬스터들은 상식을 달리한다.

삼백이 아니라 삼천의 집단이더라도 습격 한 번에 전멸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곳곳에 불을 피워 두었을 뿐, 보초가 없다.

방심은 늘 화를 부르는 법이다.

그들 곳곳으로 푸르죽죽한 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 빛의 숫자는 수백으로 늘어났다.

그리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곤충들과 야행성 새들이 내는 소리 이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맹수, 또는 몬스터들일 터.

그놈들은 세상 어리석어 보이는 집단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소리는 여전히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먹잇감에 살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눈치채지 못할 그 정도의 미약한 살기.

그 순간이었다.

집단에서 자고 있던 몇 명이 어떠한 준비 동작 없이 그대로 상체를 세웠다. 그리고 또 그 순간 백에 가까운 인원이 같은 동작을 취했다.

“크으으으. 또냐?”

“쿠오오. 거처부터 깔끔하게 정리했어야 한다니까.”

“귀찮지만 내일이라도 찾아서 정리하자.”

그리고 들리는 말소리.

분명 인간의 언어 중 하나였지만 그 발음이 묘하다.

“쿠오오오오! 빨리 정리한다. 웬만하면 인간들 깨우지 않게 조용히.”

먼저 일어나 누가 호응하기도 전에 먼저 눈빛들에 접근하는 그의 이름은 샤이한.

천년나무집 오크 일족의 전사대장.

얼마 안 가 백여 명의 오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

곳곳에 피워 둔 모닥불에 무려 세 겹의 모피를 덮고 잤지만, 냉기 가득한 산에서 아침을 그리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흐으으으!”

그래서 신음인지, 기합인지 모를 저 괴이한 소리는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흐어어어!”

하지만 순간 그것과는 전혀 다른,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렘은 깜짝 놀라 앉은 상태에서 엉덩이로 바닥을 움직이는 신공까지 보였다.

“쿠오오! 그게 거기까지 날아갔나. 회수한다고 회수했는데.”

샤이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뭔가의 팔, 내지는 다리로 보이는 걸 주워 들고는 숲 쪽으로 던져 버렸다.

“몽갈리안이라고 이상하게 생긴 놈들이 왔었다.”

샤이한의 말에 렘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별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라. 돈 주는 인간. 괜히 놀라게 했구나.”

렘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샤이한 대장. 정말 괜찮겠습니까?”

“걱정할 것 없다. 쿠오. 이제부터는 옛날 우리의 터전이라 위험할 건 없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뒷정리는…… 여기서 일하는 인부들은 구하기 참 힘듭니다…….”

“미안하게 됐다. 그런 게 여기까지 날아올지는 몰랐지. 정리한다고 정리했는데.”

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본 것을 잊기로 했다.

초기에는 무슨 몬스터인지, 무슨 맹수인지 물어도 봤었다. 안다는 건 힘이고, 언제 어디서인지 써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딱 사흘 만에 포기했다.

제대로 알려 주겠다면서 그것들을 산 채로 데리고 와 코앞에 들이밀었을 때, 렘은 자신이 평생 구토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내용물들을 뱉어 냈으니까.

그 몽갈리안이 맹수인지, 몬스터인지 관심은 조금도 없다.

‘그저 믿을 뿐.’

그저 눈앞의 이 거대한 오크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것에 감사해했을 뿐이다.

“돈 주는 인간.”

그때 샤이한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먼저 말했다.

“오늘 보급품이 오는 날입니다. 마지막 보급이니만큼 풍족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돈 주는 인간은 믿어야지.”

렘은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최소 열 번 이상 말했지만, 그들에게 자신은 돈 주는 인간이다.

‘내가 실수한 거지. 좀 빨리 알았다면.’

그랬다면 거래 관계,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는 맺어지지 않을 것이다.

처음 그들에게 보급품을 준 날.

렘은 목숨의 위험을 느꼈다.

약탈하듯이 보급품을 가져가서는, 쿠오오오 하는 오크들이 내는 특유의 숨소리가 마구 내며 날뛰는 것을 보며 무섭지 않다면 인간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았다.

오크들의 생활은 매우 열악하여 자신이 가져온 무구들은 물론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곡물 빵 그리고 돼지와 소고기는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식량이라는 사실이라는 걸 말이다.

자신을 본체만체했던 샤이한이 자신에게 다가왔던 것도 그때였다.

보급의 질을 크게 칭찬하면 이 수준만 유지하면 자신 부족의 특별한 손님으로 대우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때부터 렘은 그들에게 돈 주는 인간이 되었다.

‘물론 이게 나쁘진 않지만…….’

처음에는 그들의 관심과 호의가 거부감이 들었다.

일단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그들의 외형부터가 겁이 났고, 호의로 보내는…… 그들 사이에서는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머리 박치기를 한 번 당한 이후로는 솔직히 끔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순수한 존재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좀 달라졌다.

엄청난 무력을 지녔으면서도 그들은 늘 평등했으며, 배려심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특별한 집단에게 대우를 받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든 후 렘은 오크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어느 나라에서나 상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이루기 전까지는, 상인 나부랭이 취급을 받으나 이 장소에서만큼은 아닌 것이다.

친밀감은 더해갔다.

오크들 특유의 호흡 소리는, 막대한 힘과 비례하여 많은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으며, 의외로 호기심이 많고, 지적인 존재라는 것까지도 알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왔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지.’

자신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장소에서, 이곳에서처럼 대우를 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부를 쌓는 것.

원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었다.

렘은 스스로 재능도 있고, 노력도 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기회는 재능과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단연합에서 기껏 떨어진 일이라고는 락이라는 북부 변방에서 이미 정해진 거래를 하는 것뿐. 영양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운이 따랐고,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렘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이미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상단의 규모를 키우고 락에 투자하느라 모든 돈을 집어넣고 있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결국 큰 산이 될 것이다.’

렘은 그 생각에 일말의 의혹조차 없었다.

“렘! 오랜만이야.”

금 운송로 마지막 보급대를 따라온 뜻밖의 사람.

“로라스 소영주님!”

그건 눈앞의 이 사람을 보며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 * *

“내가 숫자는 잘 모르지만. 지금 남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아! 물론 내가 아니라 렘 그대가 말이야.”

확실히 숫자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숫자는 볼 줄은 알았다. 게다가 렘은 날 배려한 건지 몰라도, 전체적인 숫자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장부를 보여 준 것이다.

렘이 답했다.

“충분히 이득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모든 이득을 재투자하고 있어서입니다. 상단의 인원을 늘리고, 락의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습니다.”

“땅?”

“아무래도 거점이 필요하니…… 물론 영주님께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야. 좋지. 당신처럼 숫자에 밝은 이가 올인하고 있다는 건 앞으로 쭉 발전할 거라는 뜻이니까.”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믿을 만한 재정 담당이 필요하다. 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전 재산을 락에 올인했으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으음! 더 많은 부분을 맡겨 봐야 할까?’

숫자는 모르지만,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는 안다. 그리고 그것을 어찌 관리하는지도 안다.

아주 간단하다.

숫자를 잘 알고, 잘 불리는 사람에게 맡기는 거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 것.

렘에게는 이미 많은 걸 맡겼지만 아직 맡기지 않은 게 있다.

‘에렌 건은…… 이후 숫자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맡겨도 될 터.’

여하간 렘이 자신의 재산을 전부 락에 재투자한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투자한 건 수십 배로 돌려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일단 몇 달 후부터면 저는 돈방석에 앉게 될 테니까요.”

“계산은 끝났나 봐?”

“금 산출량과 그것을 어찌 소비할지는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조금 더 규모를 크게 시작해도 되겠지만, 안정성도 추구해야 하니까요.”

“아버님과 드리프 경이 동의만 한다면 난 너의 방식에 어떠한 관여도 할 생각이 없다.”

렘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영주님도 그리고 드리프 경도 판매 운영은 제게 일임한다 하셨지만, 매달 정확히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드리프 경을 충분히 배려해야 해. 그간 락의 쪼들린 살림을 지탱한 건 순전히 그의 몫이었으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락에 순수하게 필요한 재정은 드리프 경의 담당이시니까요. 저는…….”

“돈을 불리는 것만 한다?”

“믿고 맡겨 주셨으니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미 분업이 돼 있는 모양이다. 이제 돈 걱정은 조금 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문제는?”

“예전에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락과 에렌을 잇는 새로운 운송로 말입니다.”

“그것도 준비는 끝났어. 하지만 현행 체제는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는데.”

“소영주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경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람이 더 중요하잖아. 일단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 안전한 운송로를 독점하는 지위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렘과 의견 충돌이 난 것 같다.

나타족을 비롯한 북쪽 무법지대를 정리하기 시작한 이유는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렌의 흑사회에서 나올 돈과 비교하면, 무법지대에서 나오는 돈은 그야말로 푼돈 정도다.

그곳을 정리한 이유는 돈이 아닌 운송로의 안정화 때문이다. 그리고 고용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다.

무슨 뜻이냐고?

간단하다.

락을 비롯한 이쪽 지역이 번성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터. 당연히 물자들도 많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무법지대의 이민족, 또는 범죄자들은 그 물자를 노린다.

상인들은 당연히 호위병력을 고용할 필요가 있다.

난 이걸 락이 이 시장을 독점하게 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간단하다.

무법지대에서 약탈자들을 손에 넣으면 된다. 락과 계약하지 않은 상단만 공격하게 하면 끝이지 않는가?

비도덕적이라고?

이 시대에 그런 거 다 따지다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 게다가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피를 덜 흘리는 방법이다. 특히 일반인들은 더더욱 안전할 것이다.

‘표국과 산채의 관계만 봐도 답 나오잖아. 표국 놈들이 왜 별거 아닌 도적놈들에게까지 통행세를 내는데. 그런 놈들이 많을수록 자신들의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거든.’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힘들지, 구축만 되면 이보다 더 좋은 사업이 없다.

여하간 나는 사람을 더 유입시킬 목적이 더 컸으나, 렘의 생각은 다른 것이다.

‘돈 때문이겠지.’

물론 그 명분으로 안전한 운송로라는 명성을 들었지만, 속내는 비용 절감이 더 클 것이다.

‘렘의 상단은 곧 락에 가장 큰 상단이 될 것이고, 그만큼 고용 비용이 더 많이 들 테니까.’

알지만 굳이 그걸 집어서 무안을 줄 필요는 없다. 상단의 이득이 락의 이득이 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니.

“지켜보자고. 아직 완벽하게 구축한 건 아니라서 말이지.”

그리고 말 그대로 거기는 정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니 말이다.

“그럼 이제 오크 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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