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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10화 (11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10)

드르르르.

주사위는 힘차게 판 모서리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넘어간다!”

주변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떨어져! 떨어져!”

가끔 딜러가 주사위를 던져 게임판 위를 벗어나는 일이 있다. 그럴 경우 주사위의 눈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꾼의 승리가 된다.

하지만 지금 세 개의 주사위가 일제히 모서리를 향해 구르기 시작했으니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를 만한 것이다.

“떨어져라! 떨어지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세 개의 주사위는 게임판 모서리 선에 닿는 순간 안쪽으로 살짝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멈췄다.

“스몰이네…….”

“스몰이야.”

“라인이 끊어졌어!”

자신이 돈을 잃은 것처럼, 비명에 가까운 탄식이 울렸다.

주사위의 눈은 딱 9점. 정말 아쉬운 숫자로 스몰 넘버가 나온 것이다.

“죄송합니다. 공자. 마지막에 부러지는군요.”

코인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입을 여는 미카이.

진기를 올려 얼굴에 전달했다.

눈에 충혈된 상태에서 얼굴마저 붉어졌을 터. 전형적인 한방에 다 잃은, 갈 데까지 간 도박꾼의 표정이리라. 그리고 도박이 최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 주변인들을 같이 파멸하게 만드는 스킬을 사용했다.

“돈 좀 빌려줄 수 있지?”

“빌려드릴 수야 있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은데 그만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고양이 쥐 생각하는 스킬을 사용하는 미카이.

“끗발 오르고 있잖아. 사천 개 한 번 더 가지.”

“공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누군지 몰라?”

“알겠습니다. 빌려드리지요.”

미카이는 가져가던 코인을 다시 내게 미는 순간, 나도 손을 뻗어 막으며 말했다.

“빅 넘버에 한 번 더.”

공간은 정적이 휩싸였고, 미카이는 주사위를 회수하고 다시 손목을 돌렸다.

‘주사위 말고 검을 쥐었으면 정말 한가락 했겠네.’

완벽하게 같은 움직임으로 회전하는 그의 손목. 도박으로는 극에 다른 마스터라 인정했다.

당연히.

“또 스몰이야…….”

주사위는 7점으로 다시 스몰이 나왔다.

미카이는 짐짓 눈치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 이건…… 이번 판은 없던 걸로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거미 같은 놈이다. 절대 거미줄에 옭아맨 먹이를 놓치지 않는.

놈에게 말했다.

“만 개만…… 만 개만 더 빌리자.”

만 개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 락에 모든 골드 코인을 긁어모아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공자. 그건 저희로도 무리입니다. 아무리 공자라고 해도 말입니다.”

“차용증. 돈을 빌렸다는 걸 문서로 남기지.”

순간 미카이의 눈이 빛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놈이 이 베팅을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문서화된 빚이면 제대로 코를 꿸 수 있을 터. 거부할 수 있겠냐?’

미카이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리고 차용증에는 이번에 빌려드릴 만 개와 이미 빚진 액수를 함께 적겠습니다. 총 만 칠천이백 개입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받아들이지.”

“그리고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계속 빚을 낼 수 없으니까.”

“좋습니다. 또 한 판에 모두 올인하실 생각입니까?”

“이 상황까지 됐는데…… 단 한판이지!”

“알겠습니다.”

미카이는 옆에 있던 딜러에게 눈짓하니, 그는 급히 달려가 하나의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미카이는 그것을 내게 보여 주며 말했다.

“약속의 증서입니다. 공자께서도 아실 겁니다. 매지스터 헤르메스 님의 마탑에서 만들어 낸 마법 도구이니까요.”

웃으면서 잘 보란 듯이, 은은한 빛의, 종이를 내게 보이는 놈.

걸렸다!

웃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놈은 착각했다.

저 약속의 증서로 놈은 내 코를 꿰려 했지만 말이다. 사실 저건 놈이 아닌 내게 필요한 거였다.

약속의 증서.

나도 잘 안다.

마탑에서 만들어 낸 도구에 흥미를 느껴 이것저것 살펴봤으니까. 저건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찢어지지 않고, 불타지도 않는 종이다.

그리고 계약을 위반한 당사자에게 저주가 걸리게 된다.

불명예의 저주.

저주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저주가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나타난다고 했다.

사실 저주는 강력한 마법이라 종이 한 장으로 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약속의 증서는 다르다.

서로가 완전히 합의하고 작성하는 마법의 계약이기에 항마력은 제로가 된다. 당연히 그 저주는 상대의 동의 없이는 풀 수가 없다.

미카이는 바로 그 증서로 차용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고, 단판에 승부를 본다는 세부 사항까지 적혀 있는 증서.

“여기에”

미카이는 그걸 내게 내밀며 말했다.

“서명을 하시면 마법이 발동됩니다. 읽어 보시지요.”

읽을 것도 없다. 단숨에 서명한 뒤 말했다.

“한 장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무슨…….”

“너와 이곳의 신뢰하지만 큰 판이잖아.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야겠는데.”

“하하하하. 너무 하십니다. 공자. 저 미카이 도박판에서 단 한 번도 속임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놈의 손놀림은 속임수가 아닌 기술이다. 꺼릴 것이 없을 터.

미카이는 증서 한 장을 더 가져오게 하고는 다시 작성했다.

도박에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저도 깜박한 게 있군요. 한 줄 추가 시키겠습니다. 공자께서도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속임수? 내가 그런 걸 할 줄 아나 생각하나?”

“마법사시지 않습니까? 저도 마법에는 문외한이니 말입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박에 빠진 마법사가 없을 리 없다. 아니 도박을 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도박장을 두리번거리는 마법사가 없었을까?

“이 탁자. 마나 무효화가 걸린 탁자 아니야?”

당연히 깊고 어두운 밤 전체에 마나 무효화가 걸린 마법진이 그려 있었다. 도박판에는 또 따로 걸려 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좋아, 쓰지. 그리고 나도 하나 추가하지.”

“더 쓸 것이 남아 있습니까?”

“내가 이기면 바로 돈을 지불하는 걸로 하지.”

녀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넣어야 하나? 할 정도로 당연하신 말씀이지요. 돈을 주지 않은 도박장에 누가 사람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적어.”

미카이가 다시 펜을 들어 계약 사항을 넣었다. 그리고 서명을 하고는 내게 건넸다.

‘완벽히 끝났다!’

바로 서명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증서를 작성한 이상 놈은 혹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의심조차 걷어 냈을 것이고.

“베팅하시지요.”

“잠깐만. 아직 부족해서.”

“무슨 말씀이신지…….”

“아! 저기 오시네.”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놈을 상대로 준비한 것을 보여 줄 시간이 왔다.

내 시선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뒤로 돌아가는 순간.

“큰 내기가 있다던데!”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등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에르페유 백작이다!”

“권신이다!”

사람들의 놀람을 즐기며 에르페유가 다가왔다.

“재미있는 판이 있으면 나도 불렀어야지.”

그리고 그 놀람은 하나 더 있었다.

은은한 적색 빛이 흐르는 지팡이를 들고 등장한 한 사람.

이번엔 사람들은 보기만 할 뿐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매지스터 헤르메스. 수틀리면 사람을 사람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녀의 명성은 에렌에서도 유명하기에.

에르페유와 헤르메스의 등장에 미카이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자! 이건…….”

“아! 내가 도박을 크게 하는 걸 아시고, 끼려고 하시는 것 같네.”

태연한 내 대답에 놈의 표정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공자! 전 공자의 도박을 말렸습니다. 무슨 이유로 완력을 쓰려 하시는지 모르지만.”

그때 에르페유가 놈의 말을 잘랐다.

“뭔 소리냐? 완력? 지금 내가 이 도박판을 힘으로 망치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감히 나 에르페유에게?”

헤르메스도 한마디 했다.

“재미있는 놈이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거. 우리 마탑에서 만든 약속의 증서 아니야?”

미카이가 그제야 표정을 풀며 손에 쥔 서약서를 쳐다봤다. 그런 놈을 향해 말했다.

“이건 내 도박이야. 네가 이 두 분과 새로 도박을 하는 건 네 선택이고.”

미카이는 다시 자신감을 찾은 듯 보였다.

사실 손에 든 서약서가 있는 이상, 결과는 변하지 않을 믿음이 있을 터.

게다가 무제한 베팅이라는 건 이번 딱 한 판이니, 백만의 하나 정도의 실수가 있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으리라.

“그렇지요. 모두 명예를 아는 분들이시니, 고작 도박 따위에 말을 바꾸지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바꿀 생각이 없다. 오히려 놈이 바꿀까 걱정하고 있는 참이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그럼 이제 베팅을 해도 되겠지?”

“네, 베팅하시지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탁자 위로 뭔가가 올라왔다.

골든 코인 만 개가량의 칩. 그리고 하나의 주머니였다.

칩은 에르페유의 것. 그리고 주머니는 헤르메스의 것이었다.

미카이는 흠칫하며 그 둘을 쳐다봤다.

헤르메스가 말했다.

“여기 감정사도 있지? 불러와. 거기 주머니에 마나석이 조금 있거든. 아무리 후려쳐도 최소 골드코인 이만 개의 가치는 있을 거야.”

“저희 도박장에서는 그만한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에르페유가 말했다.

“누가 한대? 나도 이런 곳에서 이런 도박은 하지 않아.”

안색이 변하기 시작한 미카이가 물었다.

“그럼…….”

“난 도박을 하는 게 아니야. 내 제자에게 돈을 투자하는 거지.”

헤르메스도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도박은 무슨. 난 그냥 돈을 빌려주는 것뿐이지. 감정사나 불러. 아니 그냥 내 이름으로 보증하지.”

미카이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날 보며 말했다.

“공자……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 몫이니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무제한 베팅은 약속한 것이고. 단판으로 끝낼 테니 마음 졸일 필요 없다.”

미카이는 입을 꽉 다물었다. 눈동자가 살짝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마치 뭔가 계산을 하는 듯한 모습.

어차피 다 된 밥. 느긋하게 기다려 줬다.

한참 후에야 계산이 끝난 듯 미카이의 입이 열렸다.

“좋습니다. 문제 될 것도 없지요. 액수가 엄청나긴 하지만 높은 위험에 높은 수익이 생기는 법. 그게 도박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베팅해도 될까?”

“하십시오.”

결의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여는 미카이.

그래. 사만 골드 코인은 엄청난 액수긴 하지만, 깊고 어두운 밤의 수익이라면 일 년 안에 뽑아 낼 것이다.

‘네가 모르는 건, 내가 그거 먹자고 열심히 움직인 건 아니거든.’

내 앞에 있는 칩과 헤르메스의 마나석까지 동시에 쭉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간은 정적에 휩싸였다.

“미친…….”

그리고 어느 순간 수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공자! 이건!”

미카이도 경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난 웃어 줬다. 그리고 베팅한 곳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인생 뭐 있나. 한 방이지.”

내가 베팅을 어디다 했냐고?“

답 나오지 않았는가?

내가 베팅한 곳은 빅 넘버도, 스몰 넘버도 아니다.

“던져. 이기면 난 이 바닥에서 전설이 되겠군. 최고의 베팅액에 최고의 승리를 거머쥔 사람으로 말이지.”

미카이는 안색이 흙빛이 된 상태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건 곳은 확률은 36분의 1이나 맞추면 33배를 뱉어 내야 하는 사이드 베팅이었다.

“이기면 대충 백삼십만 인가?”

“마법사는 정확해야지. 사만 코인 베팅에 서른 세배면. 백삼십이만이네.”

옆에서 헤르메스가 한마디 하고는 미카이에게 말했다.

“뭐 해? 안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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