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09)
일을 복잡하게 처리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미카이와 놈의 세력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 손에 넣는 것이다. 그러려면 절차가 필요하다.
흑사회 놈들도 나름 룰이라는 게 있다.
거기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 더블엑스를 무너트렸을 때처럼 말이다.
‘뒤를 봐주는 놈들이…….’
참 많다.
하긴 거기서 오가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 돈 많은 놈들은 죄다 여기로 몰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 만큼 한 발씩 걸친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다.
특히, 큰아버지 디존슨은 한 발 걸친 수준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운용하는 자금이 어디서 나나 했더니. 여기가 반을 차지하고 있네.’
큰아버지…….
‘아니지, 조카를 약에 중독시키려 하면서까지, 파멸로 이끌려 하는 놈이다.’
이런 자에게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아량을 베풀 생각은 없다.
여하간 디존슨을 적으로 간주한 이상 많은 것을 조사했다.
장자의 힘은 이곳에서도 유효했고, 다른 숙부들과 비교해 더 많이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그 탓에 그는 할아버지의 후계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녔고,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줄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벌인 후 수습하는 게 꼭 어려운 일은 아니다.
디존슨은 그 위치 때문에 흑사회 일에 대놓고 나설 수 없다. 기껏해야 그의 수하 귀족들이 나설 터.
‘문제 될 것도 없지.’
털어먹을 때 확실하게 명분을 쥘 것이니까.
‘그래도 조금은 필요하려나?’
나를 도와 수습을 힘을 써 줄 사람. 귀족이 필요한 결론이 나왔다.
‘내게 힘이 되어 줄 귀족이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 * *
“돈 한번 벌어 보시렵니까?”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주 기가 막힌 투자처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그건 권신이라 불리고, 수많은 무인들에게 추앙을 받는 에르페유도 다르지 않다.
“투자? 어디에?”
“저요.”
“응?”
“제게 투자하시면 됩니다.”
“뜬금없게. 뭔 소리냐? 제대로 이야기해 봐.”
“별거 없습니다. 저에게 돈을 투자하면 스승님을 돈방석에 앉혀 드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에르페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에게 무슨 투자?”
“그냥 믿고 하시지요. 제가 언제 없는 말 드린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지만 궁금하잖아. 그래.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보며 말했다.
“정말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다만 미리 말씀드려야 할 건 있습니다. 조금 귀찮아지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돈은 많이 벌 겁니다. 상상 이상으로 말입니다.”
“그래. 그러니 들어나 보자.”
에르페유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 있냐?”
“믿으십시오. 하지만 제대로 투자하셔야 합니다.”
“으음. 누구한테 투자받았냐?”
“이런 투자는 나눠 먹을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지요.”
에르페유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랑 그 여자겠군.”
“헤르메스 님에게는 아직 말씀 안 드렸습니다. 일단 스승님에게 두 번째로 제안 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누군데?”
“페컴 님이 조금 투자하셨습니다.”
에르페유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
“집사도?”
“재미있어 하시던걸요.”
“좋아, 나도 하지.”
“잘되면 락에 만들겠다고 한 센터 지부 빨리 추진해 주시는 겁니다.”
“물론이지.”
그렇게 협상은 끝내고 곧바로 마탑으로 향했다.
그녀와 에르페유가 했던 것과 같은 대화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결과도 같은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으음. 그거 얼마까지 가능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말입니다.”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 묻는 줄 알고, 그리 대답했는데 말이다.
“아니, 최대 얼마까지 받아 줄 수 있냐고?”
“네?”
“타이밍 좋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연구 자금을 받은 것도 있는데. 아니다. 며칠 만 시간을 주면 내가 돈을 좀 당겨 볼게.”
신나게 떠드는 그녀를 가만히 뒀다가는 마탑을 담보로 돈을 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될 말이다.
내가 투자금을 받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필요해서다. 주는 대로 다 받았다가는 내게 남는 게 없어진다.
“저기…… 스승님. 지금 가지고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니지. 투자금이 많을수록 내 지분이 많아지는 거 아니야?”
헤르메스를 너무 얕봤다. 그녀는 에르페유가 아니다.
“게다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 것 같은데.”
“그것도 상식선이란 게…….”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왔을 때 한몫 잡아야 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지.”
“실패 위험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녀가 잠시 흠칫했다. 그러다가 날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난 내 제자를 그리 멍청하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내가 틀린 거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 후 그녀와의 협상은 돈을 얼마나 받아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깎아 내느냐였다.
헤르메스는…… 정말 돈이 많았다.
* * *
한 인간을 가장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술, 여자, 도박, 마약 등.
수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나 가장 빠르고 확실한 건 도박이다.
도박이 가장 최악인 이유는 하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패가망신에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것이 도박 중독 아닌가.
오죽하면 도박꾼에게는 마약을 주라는 말까지 있다. 도박은 끊지 못하니 차라리 마약에 중독돼 혼자 죽는 게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빅 넘버다. 또 이겼어!”
“몇 번째야. 십육 연속이면…….”
주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시기와 질투가 가뜩 섞인 목소리다.
내가 도박꾼들이 꿈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는 라인을 탓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은 비교적 간단한 룰을 가졌다.
꾼은 스몰 넘버와, 빅 넘버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돈을 건다.
그 후 딜러가 세 개의 주사위를 던져, 그 합이 9 이하면 스몰 넘버. 10 이상이면 빅 넘버다.
사이드 베팅으로 주사위 3개가 같은 숫자를 나온다면 33배를 주기도 한다.
세 개의 주사위가 같은 숫자가 나올 확률은 36분의 1이지만, 33배만 주는 것으로 도박장이 이득을 가져간다.
여하간 이 확률이란 놈은 신기하다.
스몰과 빅이 나올 확률은 각자 50프로지만, 지금처럼 십육 연속으로 빅이 나올 때가 있고, 스몰이 나올 때도 있다.
누군가는 스물네 개의 라인을 타서 팔자를 고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108분의 1이라는 극악의 확률의 사이드 베팅도 의외로 종종 나와서, 그것만을 전문으로 하는 도박꾼들도 있을 정도다.
눈앞에서 주사위를 던지니 속임수 걱정도 없고, 사이드 베팅만 하지 않으면, 도박장과 오대 오의 승부를 볼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고, 즐겨 하는 게임이 이 빅, 스몰 주사위 게임.
“공자, 오늘은 정말 날이군요.”
십 연승을 하고 있을 때부터 지켜보던 미카이가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흐흐흐. 여태 잃은 돈 반이나 복구했나? 내 빚이 얼마나 되지?”
웃음을 흘리며 묻는 말에 미카이는 바로 대답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골드 코인 삼천이백 개입니다. 한 번만 더 이기시면 반 이상 복구하시겠군요.”
골드 코인 두, 세 개면 소 한 마리를 산다. 그런데 골드 코인이 삼천이백 개를 빚졌는데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미카이는 도박꾼의 습성을 너무 잘 안다.
사람은 빚이 적을 때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 빚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설 때는 자포자기를 넘어 자기 파괴 본능을 불러온다.
중증 도박꾼들이 대부분이 돈의 개념을 완전히 상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카이는 아직 내가 아직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나 빚을 지게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내가 지겹다.’
이놈하고 더 어울려 주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 끝낼 때가 왔다.
“오늘 같은 날 끝장내지 않으면 언제 낼까?”
두 눈을 크게 뜨며 가지고 있는 천여 개의 황금색 칩을 다시 빅 넘버로 몰아넣었다.
제법 맛이 간 도박꾼 모습이 보일 것이다. 일부러 진탕 술을 마시고 해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니까.
“이 베팅 다 받아 주는 거지?”
미카이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그래. 도박꾼이 망해가는 도박꾼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어차피 한 방이라는 미친 모습 말이다.
“물론이지요. 다른 분도 아닌 공자님이 베팅을 하시는 건데 말입니다.”
미카이는 그리 말하며 딜러에게 눈짓했고, 딜러는 떨리는 손으로 주사위를 던졌다.
타악! 구르르르르.
탁자 위의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했다.
하나의 주사위가 멈춰 1점. 다시 하나의 주사위가 멈춰 3점이 나왔다.
“아!”
“뭐야…… 라인이 끊어지는 건가.”
나를 응원하던 도박꾼들의 절망 어린 탄식이 들린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주사위가 6점이 나오지 않으면 스몰 넘버로 나의 패배다.
‘육이겠지.’
하지만 난 안다.
설계가 제법이다.
미카이 놈은 날 한 번 더 하늘 끝으로 올려다 놓을 것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졌을 때의 충격은 큰 법이고.
‘그때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겠지.’
자포자기. 자기 파괴 본능을 발휘할 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할 것이다.
마지막 주사위가 멈췄고.
“육이다! 육이야!”
“우아아아! 열일곱 번째.”
주변 사람들은 제 일처럼 소리를 질러댔고.
‘나도 기뻐하는 척은 해야겠지?’
“그렇지! 이거지!”
소리를 지르며 미카이를 보며 크게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자! 한 번만 더 이기면 잃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따시겠는걸요?”
많은 망가진 자들이 꿈꾸는 본전.
그 희망을 건드리며 슬쩍 밑밥을 던지는 미카이.
“오늘은 정말 되는 날이야. 그런데 이미 베팅 한계액을 넘어섰는데. 괜찮겠어? 괜히 나중에 딴말하면 곤란한데?”
놈의 미소가 진해졌다.
왜 아닐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먼저 해 줬는데 말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충분히 따셨는데 말입니다.”
“한 판만 더 이기면 된다고 네가 말했잖나.”
“아! 제가 그랬었군요.”
“확실하게 하지. 베팅 무제한 가능한가?”
“으음, 제가 주사위를 던져도 되겠습니까? 우리 직원이 손을 너무 떨고 있는데 말입니다.”
놈의 말대로 딜러는 손뿐만 아니라 몸을 떨고 있었다. 저건 연극이 아닐 것이다.
“그러지. 자네가 속임수를 쓸 것도 아닌데 말이지.”
“주사위를 확인하셔도 됩니다. 탁자도 필요하면 바꾸도록 하지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자네를 믿어.”
검사를 해도 의미가 없다. 주사위와 이 탁자는 조작된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속임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카이가 미소를 지으며 딜러와 자리를 교체했다.
“무제한 베팅입니다. 거시지요.”
골드코인 이천여 개를 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던져.”
미카이가 주사위를 든 오른 손목을 슬슬 돌리기 시작했다.
그냥 손목을 돌렸을 뿐인데 제법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박꾼 중에서도 마스터가 있다면 이놈일 테지.’
이미 확인했다. 이 도박장은 속임수가 없으면서도 있다는 것을.
세 개의 주사위를 던져 빅 넘버와 스몰 넘버를 마음대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그냥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이 된다.
지독한 반복 수련.
손목의 각도, 던지는 힘, 주사위가 나아가는 방향을 완벽하게 같게 한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고된 연습을 하면, 최소한 확률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놈은 빅, 스몰 넘버가 아닌 숫자 전부를 조절할 수 있겠지.’
그래서다.
수십, 수백만 번 고된 연습한 저 움직임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보통 사람 눈에는 그냥 던지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말이다.
타악!
주사위가 탁자에 부딪치며 판 위로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