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07)
디존슨은 얼굴을 마구 구기며 물었다.
“마스터? 누가? 로라스가?”
“네, 분명 포스를 형상화시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내의 말에 디존슨은 웃기지 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말이 되나? 로라스의 나이 이제 스물하나야. 스물하나에 마스터? 여태 그런 사람이 있기나 했던가?”
있긴 했다.
현재 베스타인가의 가주. 공작이 바로 스물한 살에 포스를 형상화시켜 마스터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역정을 내는 주인에게 사실을 알려 줘서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본 모양입니다.”
“모두가 단체로 착각했을지도 모르지. 더 자세히 알아봐. 그놈 마법도 익혔다면서.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디존슨의 역정에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주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더 정확히 알아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사내가 나가자 디존슨은 관자놀이에 두 손을 올렸다.
‘그럴 리가…… 정말 말도 안 되지 않은가?’
자신이 천재는 아니나, 세상에 천재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나갔다.
포스 유저라고 해도 의심할 판에 무인의 극인 마스터라는 건 정말 허무맹랑한 소문이다.
‘갈아 치우든가 해야지.’
베스타인 가에서 가장 유력한 후계 후보자인 자신이다.
당연히 줄 대려는 자도 많았고, 손만 뻗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달라붙었다.
덕분에 자신의 눈과 귀는 넘칠 정도로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소식을 가지고 온 밀정 따위는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리 찝찝하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아니, 아니란 걸 알면서도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이 기분은 에듀 그놈에게 아직도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니까.
‘안 되겠어.’
디존슨은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어느 사람을 불러오라 지시했다.
밤이 되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자가 나타났다.
“대공자를 뵙습니다.”
갈색 피부 톤에 잘생긴 얼굴, 미카이였다.
“놈이 돌아오고 있다더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었어.”
디존슨은 보고 받은 사실을 미카이에게 이야기했다.
“하하하하.”
하지만 미카이가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자 화를 냈다.
“웃겨? 이게 웃겨?”
“죄송합니다, 대공자. 하지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혹시 마법이 아닙니까?”
미카이도 자신과 같은 의심을 하자, 디존슨은 마음이 조금 풀림을 느끼며 말했다.
“나도 그런 의문이 들더군. 하지만 실버대회에 우승까지 했으니…….”
“대공자, 그는 제 유곽에서도 자주, 보기 화려한 마법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계집들에게 자랑하려고 말입니다.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들은 바에 의하면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더군요.”
“매지스터 헤르메스가 총애하니까 마법은 뛰어날 거야.”
“그리고 실버대회는 포스 유저 정도만 돼도 우승을 노릴 수 있습니다. 정말 마스터라면 실버대회에 나갈 이유가 없겠지요.”
디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 실버와 골드의 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네, 마스터라면 골드대회에서도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경지. 유곽에서도 제 자랑하려고 마법을 쓰는 사람입니다. 정말 마스터였다면 골드대회에 참가했을 겁니다.”
미카이의 말에 디존슨은 마음이 한결 놓임을 느꼈다. 하지만 경계는 풀지 않았다.
“오면 단단히 잡아 놔. 무슨 뜻인지 알지?”
“걱정하실 건 조금도 없습니다.”
디존슨은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미딩에 내전까지 일어났는데, 거기서 죽어 버렸으면 이리 골치 아플 일은 없었을 텐데.”
“여기서 망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기회가 되면 대공자께서 거두셔도.”
“하기는,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지.”
미카이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 만들어 두겠습니다. 템테이션 포션에 중독이 되는 순간, 대공자께서는 말 잘 듣는 애완견 한 마리를 얻으실 겁니다.”
“흐흐흐. 잘해 보게.”
“맡겨 주십시오.”
두 사내는 마음껏 웃기 시작했다.
* * *
“잘 갔다 왔느냐?”
평온한 표정에, 평온한 말투.
어디 잠시 놀러 갔다 온 손자를 맞이하는 촌로와 같은 모습.
“네, 잘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
나 역시 놀러 갔다 온 손자처럼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나치다.”
“네?”
“네 몸값을 너무 낮췄다는 소리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 옆구리를 향해 있었다.
표정에는 상처 입은 것을 탓하기보다는, 염려가 잔뜩 묻어나 있었다.
“오면서 다 나았습니다. 어차피 겉가죽이 조금 베인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저를 너무 비싸게 보십니다.”
“그러냐?”
“나라 하나를 먹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먹는다라…… 누가? 네가?”
역시 무리였나 보다. 할아버지의 눈을 속이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드러내 놓을 수는 없는 법.
“할아버지시겠지요.”
“그랑데일이 한마디 하더구나. 별 영양가가 없을 것 같다고 말이지.”
미딩에 파견된 사람들에게서 벌써 보고가 올라온 것 같다.
“그거야말로 에렌의 가치를 낮추는 거지요. 베스타인의 이름을 높이 세우는 일 아닙니까? 영양가는 차고 넘치지 않겠습니까?”
“요단이 가지고 있는 명분은 네가 알려 준 것이냐?”
“뭘 말입니까?”
계속 시치미 떼야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요단에게 준 마지막 선물. 그건 바로 에렌에 크게 휘둘리지 않을 마법 같은 주문이다.
에렌에서 미딩의 내전에 개입하는 이유는 뻔하다.
요단을 왕으로 만든 후에 미딩에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요단에게 수많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막을 방법을 일러 준 것이다.
이 내전의 이유 중 하나가 베스타인 공작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라는 것.
요단마저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에렌의 지원군은 쉽게 뭔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실제로 국왕 마들린이 할아버지를 모욕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피식하며 말했다.
“어떻게 네 아비에게서 너 같은 녀석이 나왔는지 모르겠구나. 전혀 닮지 않았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 판단은 보류해야겠구나. 앞으로 네 녀석이 어찌할지 봐야 하니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일을 이리 벌이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그리 말하며 스윽 날 살폈다.
“아! 이거.”
미딩에서 가져온 실버스워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눈으로 보기만 할 뿐이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구나. 그 검은.”
“두 번째시지요?”
“그래. 네 아비가 가져왔었지.”
“할아버지 컬렉션에 장식하기에는 무리일까요?”
“그걸로 이미 협상한 걸로 알 텐데. 하나로 너무 우려먹으려 하는구나.”
이미 알고 계셨나 보다.
“흐흐흐. 할아버지 컬렉션에 들어간다면 에르페유 경도 만족할 겁니다.”
“됐다. 아무런 쓸데도 없는 검이거늘. 그보다.”
“네, 할아버지.”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봐라.”
“말씀하십시오”
할아버지는 날 직시하셨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여셨다.
“어디까지 원하고 있느냐?”
* * *
―오락가락한단 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지.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움직이는 걸 보면 밑그림을 그리는데, 가끔은 치기가 보인단 말이지.
자주 잊는다.
할아버지가, 베스타인 공작가라는 천하에 비교할 만한 가문이 열 개도 되지 않는 가문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네가 처음 에렌에서 시험을 치를 때는 그럴 수도 있다 했다. 시험에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곁에 있던 아이들까지 끌어 올렸지.
어디서부터!
―치기 어린 행동이라면 이해라도 가지. 하지만 내 보기에는 아무래도 치기가 아니야. 가지고 있는 자의 변덕이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이후에도 같았다. 야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득은 철저히 챙기려 했다. 그런데 너무 허술해.
최소한 에렌에서 벌였던 일은 다 파악하지 않았나 싶은데 말이다.
―그야말로 변덕이 죽 끓듯 하지. 원하긴 하나,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언제든 가져올 수 있으니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조차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문제를 짚었다.
―이상했지. 가져보지 못했는데, 가져 본 자만이 가진 여유가 있단 말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냐? 대체? 치밀하면서도 허술한 듯 보이고, 욕심이 있으면서도 독하게 굴지 않은 이유 말이다.
문제는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궁금하더구나. 무엇을, 어디까지 원하는지 말이다.
내가 독할 수가 있을까?
맹호도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스스로 게을러지지 말고, 뭐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지만.
실제로 맹호가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할까?
내가 딱 그 모양새다.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야 했기에, 침묵으로써 답변을 대신했다.
‘독기라…….’
잠이 오지 않았다.
* * *
“주군…… 여기는…….”
테라의 말소리가 떨렸고.
“정말 괜찮아? 여기 가격이 꽤 나갈 텐데?”
나름 있는 집 자식인 포플러도 가격을 걱정했으며.
“로라스. 이런 곳도 다녔구나.”
“와! 말로만 들었는데.”
그리고 센터의 몇몇 녀석들도 한마디씩 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쉴 새 없이 목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맞다. 세상의 모든 유흥이 있다는 이곳은 깊고 어두운 밤이다.
“괜찮대도. 오늘은 내가 모두 책임진다.”
녀석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공자.”
성에 있을 때부터 하루가 멀다고 초대장을 보낸 것을 무시했더니 몸이 달아 있었나 보다. 미카이가 직접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랜만이야.”
“실버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공자.”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느끼한 놈이다. 생김새나 목소리 전부 말이다.
일행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 나뿐일까? 저기 브론즈 우승자도 있고, 다들 상위 입상한 이들이다.”
미카이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하신 분들이 오셨군요.”
“축하하는 자리니, 돈 생각하지 말고 최고로 대접해 봐.”
“두말할 게 있겠습니까. 들어가시지요.”
미카이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갔다.
그 사이에도 녀석들은 바쁘다. 눈꺼풀 한 번 깜빡이는 것도 아깝다는 듯이, 크게 눈을 치켜뜨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창 놀 나이들이지.’
녀석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크게 없다.
센터에서 힘자랑할 줄만 알지, 세상을 전혀 모른다. 즐기는 게 크게 나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얼간이로 보이기에도 이만한 방법이 없고 말이지.’
패거리를 끌고 다니는 부잣집 망나니가 돼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눈치 보지 말고 놀아. 뭐든 다!”
호기롭게 외치니 몇몇은 환호성을 지르고, 또 몇몇은 우려의 표정을 짓는다.
“주군…… 여기는…….”
특히 테라는 거의 울상을 지고 있었다. 하긴 일반적인 술집도 몇 번 가 보지 못한 이곳은 신세계를 넘어 경악 어린 수준일 것이다.
테라에게 속삭이듯 말해줬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놀아라. 이건 명령이다.”
미카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술, 여자, 도박 다 돼. 하지만 그건 안돼. 모두가 그 맛에 취했다가는 에르페유 경이 눈치채고 여길 다 박살 낼 테니까.”
“주의하겠습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미카이를 보며 마주 웃어 줬다.
이놈은 알까?
확실한 뭔가를 손에 넣기까지. 독해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