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04화 (10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04)

나와 같다는 표정은 하나를 나타내고 있었다.

‘너도 저 형제의 움직임이 보인단 말이지?’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능력인, 안력(眼力)은 포스와는 별개의 문제다.

포스를 키운다고 안력이 절로 길러지지는 않는다. 타고나야 하며, 훈련해야 하고, 수많은 움직임을 봐야 한다.

수 없이 검을 휘둘러 몸이 자연스레 움직이는 것처럼, 많이 봐서 자연스레 상대의 움직임이 그려져야 하는 것이다.

나야 당연히 그런 훈련이 되어 있다고 치더라도, 라이너는 의외다.

이제 고작 서른 초반 아닌가?

순간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분명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이리 경악할 만한 일인가? 또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날 어찌 보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아앗!”

잠시 쌍둥이들의 움직임을 보느라 공세를 취하지 않았더니. 바로 역공이 들어온다.

타아아앙!

하나의 검을 누르고.

타아아앙!

다른 검은 튕겨 내는 순간.

타아앙!

다시 튕겨 내는 검을 다시 옆으로 밀쳐 내는 검이 있었다.

“포스다!”

그리고 옅은 푸른색의 기운이 작은 코쟁이를 향해 달려갔다.

포스를 물리적인 힘으로 바꿔 공격하는 건 마스터만이 가능한 경지.

큰 코쟁이의 검이 그 기운을 상쇄하고. 재빠르게 작은 코쟁이가 검을 찌른다. 역시 합수의 공격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그들은 운이 좋지 않았다.

제왕의 기운을 세우고 보강했다.

“마스터!”

또 다른 외침이 들렸고. 나 역시 푸른 기운을 만들어 큰 코쟁이를 향해 휘둘렀다.

끝내야 할 때였다.

* *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헨센 형제가 어떠한 이들인가?

로열가드 중에서도 검왕인 마들린을 근거리에서 지키는 이들이다.

외부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 형제의 크로스 검진은 미딩의 무인들에게는 깨지지 않는 절대 방어 검진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그들 형제는 둘로 서른의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 낸 적도 있다.

그런 형제의 검진은 단 두 명의 무인에게 깨졌다.

그것도 우승자와 준우승자라 하나 실버대회의 참가자에게 말이다.

아니, 그 보다 의아해할 일이 있었다.

마스터인 로라스와 라이너가 왜 골드대회가 아닌 실버대회에 참가했을까?

사람들. 특히 마들린의 편에서 결투 재판을 선택한 무인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본능적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도망치고 싶다…….’

‘왜 마스터들이 세자 편을…….’

남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터를 상대로 결투를 할 간 큰 이들은 몇 없었다. 게다가 맨손으로 형제를 무너트린 이에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만 아니라면 당장 뒤로 물러나 중립을 지키고 싶었다.

정적을 깨트린 건, 그것을 만들어 낸 당사자였다.

“억지로 일어나려 하지 마시길. 결투의 목적이 목적인 만큼 생명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로라스의 나직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원래 충격받은 자들이, 그것을 벗기 위해 어떻게든 이유를 찾는 법.

‘권신 에르페유!’

‘맞아, 그는 아이언 센터의 추천을 받고 왔다.’

베스타인 공작의 핏줄이자 권신 에르페유의 제자라는 그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로라스의 무력을 납득해 버렸다.

그 사이 로라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애쓰는 형제를 제지하며 생각했다.

‘너무 심하게 손을 썼는가?’

로라스는 인재를 보면 아끼고 싶어 한다.

피아의 구분을 확실히 하긴 하지만, 뛰어난 인재에게 호감을 준다. 그럼에도 독하게 손을 쓴 건 그만큼 이 형제의 실력이 뛰어나서다.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꼴이긴 하나, 이들 형제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몇 년은 걸리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더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힌 기혈을 뚫으려면 가지고 있는 포스가 오할 이상 더 필요할 테니.’

로라스는 형제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혼혈을 짚어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검왕이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몇이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이쪽도 이제 팀으로 움직일 테니까요.”

두 명의 마스터가 같이 결투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이었으나, 그 누구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결투가 팀전이 된 이유는 검왕 쪽이 먼저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상대가 마스터 인 이상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스터를 상대하는 사람이 일반인이라면 수 백 이상의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

일반인이 아닌 무인이라고 해도 집단을 이뤄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제 로라스와 라이너를 생각하면,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포스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무인이 나서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검왕을 비롯한 몇몇 이에게 향했다.

아직 불리한 건 아니다. 아니 유리하다.

포스 유저라 할 만한 무인은 열이 되지 않았지만, 이쪽도 마스터가 둘이다.

검왕 본인과, 골드대회의 우승자이자 리하임.

검왕 본인이 체면을 생각해서 나서지 못한다면, 리하임과 남은 포스 유저들이 전부 나서서 이 결투를 해야 한다.

달라진 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자신들도 피를 흘려야 할지 모르는 가능성이 생긴 것뿐.

“기사 리하임. 전하를 위해 결투에 임할 것을 청합니다.”

마침내 검왕 측에서 검왕을 제외한 최고수.

‘성난 눈보라’라는 별명을 지닌 리하임이 나섰고,.

“기사 모로스. 리하임 경과 함께 나서기를 청합니다.”

“무인 나랑스. 전하를 위해…….”

수많은 기사가 앞다투어 나왔다.

이미 물러서기에는 늦었고, 리하임마저 패배하면 뒤가 없다. 그럴 바에는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검왕 측의 포스 유저들이 전부 나선 것이다.

“경들은!”

일자로 굳게 닫혔던 마들린이 입이 열렸다.

“역적들에게 그 죄를 인정하게 하라!”

* * *

‘제법이네.’

미딩의 기사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국적도 다르고 소속도 다른 무인들. 하지만 그들의 위치나 서서히 움직이는 동선은 겹치지 않았다.

포스 유저.

마스터 아래 포스를 사용하는 무인들을 일컫지만, 사실 그 실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 대회에서 상위 입선한 자들.

그중 몇은 마스터를 목표로 수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실력자들인 만큼 다수로 소수를 압박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더 발목이 잡을 거야.’

로라스는 확신했다.

저들의 숫자 많음이 오히려 자신과 라이너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크게 도는 것이 낫겠지요?

그 확신은 자신만 품은 게 아닌 듯 했다.

라이너가 보낸 전음은 로라스의 생각과 동일했고.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하앗!”

로라스와 라이너. 그리고 마스터 리하임과 포스 유저 일곱 명.

이대 팔의 결투 재판은 그리 시작되었다.

“어엇!”

“뭉쳐도 모자랄 판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무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라스와 라이너가 서로 멀어지며, 검왕 측의 무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지켜보던 이들 중 포플러는 초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올랜드도 답답한 듯이 말했다.

“서로의 등을 지켜 줘도 모자랄 판에…….”

올랜드의 그 말은 다른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로라스나 라이너 모두 마스터들. 서로의 등뒤를 충분히 맡겨도 될 실력자들이다.

하지만 둘 모두가 약속이나 했듯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타아아앙!

“좌측을 둘러!”

“들어가!”

검음과 외침이 울리며 무인들의 움직임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 탓에 사람들은 조금씩 벽 쪽으로 물러나야 했다.

차아아아아앙!

압도적인 숫자에 로라스와 라이너는 이렇다 할 공격 한 번 하지 못하며, 연신 몸을 움직이며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세자 측과 로라스 일행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위기를 어찌 타개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제발 좀 붙어라!’

‘뭉쳐! 그래야 산다!’

그나마 로라스와 라이너가 뭉치면 활로가 열릴지도 모르는 작은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로라스와 라이너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런 움직임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에 잡으려 하지 말고 자세를 무너트려! 가능하다!”

“뭉치지만 못하게 해!”

게다가 검왕측의 무인들도 뭉치지 못하게 하려고 단단히 주의하고 있었다.

점점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 가자 세자 측의 무인들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차라리 같이 나섰어야 했는가!’

요단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로라스 일행이 보였다.

‘아직 희망을 가졌는가?’

위태위태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수하들과는 조금 달랐다.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상황이 저럼에도, 불안해 보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은 분명했다. 특히 소년이라 불러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나이, 청년의 눈빛은 더더욱 그랬다.

‘타라라고 했었지?’

브론즈 대회를 지켜봤더라면 그때 저 청년이 어떻게 싸웠는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회가 아닌 실전이었다면 저 청년이 우승했을지도 모르지.’

정확히 꼬집어서 말할 수 없었으나 타라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타라는 집요하게 상대를 공략하는 방식. 죽거나 죽이거나 하는 그 찰나의 승부에 능했다. 하지만 대회이니만큼 끝까지 갈 수 없음이 눈에 보였다.

그와 비무를 했던 무인들도 승부가 끝나면 두려움이 몸에 흐르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래, 타인도 저리 애를 쓰는데.’

요단이 마음을 고쳐 잡고 다시 공터로 시선을 돌렸을 때, 타라는 자신의 검병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주군!’

타라에게 로라스는 하늘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자신이 일곱 살이 되던 때였을 것이다.

시계처럼 정확한 공자님.

마을 어른들에게 로라스는 그렇게 불렀다.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여 붙여진 별명.

평판도 아주 좋았다.

영주인 에듀 남작을 닮아서인지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고, 말을 예쁘게 한다고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로라스를 하늘로 보게 된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보는 순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군이 자신의 하늘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미친놈의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눈에 주군은 빛을 뿌리는 하늘. 그리고 자신은 그 하늘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데 말이다.

주군은 자신에게 그냥 시작이자 끝.

검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서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만에 하나 주군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자신은 죽는다. 기왕 죽는 거라면 말이다.

‘같이한다.’

뒤가 어찌 될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주군이 위험하면 나설 것이고. 감히 주군의 몸에 칼을 댄 자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가 자신의 죽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둘은 데려갈 수 있다!’

솔직히 목숨을 담보로 덤벼도 리하임이라는 기사의 손가락 하나 자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다.

‘최소한 한 놈의 숨통은 끊는다.’

그리 자신할 수 있는 건 보였기 때문이다.

대회 때도 그랬다.

비무를 시작하면서 상대와의 거리가 보였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설명하자면 검이 상대에게 닿는 거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할까?

어떤 움직임을 보이냐에 따라 그 거리가 멀어지고, 짧아지는 대로 변화가 계속 일어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그 거리가 보였다.

아깝게 진 비무 때도 상대는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한, 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진 것이 너무 억울했다.

과감하게 대결했다면 분명 벨 기회가 있었으니까. 다만 비무라서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여하간.

리하임이란 기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었다.

몇몇은 꽤나 먼 거리였지만 가끔 자신의 사정거리에 닿기도 했고, 또 몇몇은 잦은 빈도로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다.

그래서다.

한 놈은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한 건 말이다.

‘주군과 놈들의 거리가 한 치 더 가까워진다면!’

그때는 자신도 저기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어!”

타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쭉 내밀며 소리를 냈다.

아슬아슬하게 닿았던 주군과 놈들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순식간에 아주 멀리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