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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90화 (9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90)

며칠이 흘렀다.

그사이 생각했던 것들을 발란스와 대두에게 전했다.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천왕성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었다.

그렇게 몇몇이 더 모이고, 점점 덩치가 커졌고, 천황성이라 불리기 직전까지 조직의 모든 것에 내가 관여했다. 그래서 경험이 좀 있다.

흑사회 장악은 과정에 필요할 뿐 목표가 아니라서 더 간단했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이 있나?”

“힘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싸우면 피를 많이 흘리는 데다 경비대가 개입합니다. 그들이 개입한다는 건…….”

“귀족들이 개입한다는 거겠지.”

“네. 그리고 저희 고스트는…….”

“배경이 없지.”

내 손발이 되어 줄 첫 번째 후보로 발란스를 선택한 건 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배경이 없다는 것.

그건 불필요한 다툼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앞으로는 부딪칠 확률이 높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지만, 두꺼운 천이 물에 젖듯 그리 자연스럽게 키워 나가는 쪽을 선호해.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놈들의 배경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도 조사해 두고. 그보다 애들은? 며칠 지났는데 자 어울리던가?”

“시간이 좀 더 지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쪽 애들은 영악해서 쉽게 움직이질 않으니까요.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뭐? 서열 정리?”

“네. 일단 그것이 끝나야 뭐든 할 겁니다. 규칙도 그 이후에나 지켜질 것이고요.”

아이들을 모으면서 그들에게 딱 세 가지만을 요구했다.

첫 번째는 동료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후배는 선배의 말을 따라야 하고, 선배는 후배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것이 연대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일은 장기 프로젝트다.

지금 모은 아이들이 제 밥값을 하려면 최소 10년.

지금이야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니 숫자의 제한이 있으나, 1년에 한 번씩은 계속 아이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선후배가 없다.

당장은 선후배를 나이순으로 구별했으나 아이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발란스가 서열 정리라는 단어까지 사용할 정도로 말이다.

여하간 군대식으로 아이들을 관리할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배만 채울 수 있다면, 하루 따뜻하게 잘 수 있다면 도둑질은 물론이고 뭐든 다 하는 아이들이다.

차라리 엄격한 규율과 함께 통제하는 게 그들에게도 이득이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앞날을 제시했다.

따르기만 하면 최소한 평범한 사람처럼 떳떳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

난 발란스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당신이 직접 신경 써 줬으면 해. 그리고 정말 감당이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즉각 이야기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굴이나 한번 보지.”

내 말에 발란스는 아이들을 모았다.

말한 대로 잘 먹였는지 어느 정도 살이 오른 상태였다.

‘얼마나 버텨 줄지…….’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괜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위한다 하더라도 결국 내 목적을 위해서니까.

‘시간이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 줄 터.’

이제 시작 아닌가.

문제가 생기고, 잘못되는 경우가 있으면 수정해 나가면 된다.

누군가 하는 시선으로 날 보는 애들에게 말했다.

“이야기 들었겠지만 여기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 거다. 아주 힘들 거야. 하지만 약속할 수 있는 건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남들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

“이게 왜 중요한 건지는 지금 설명해도 모를 거야. 또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무거움을 지금 꼭 알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알아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수긍하는 아이들도 있는 걸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해도 된다. 그렇다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걸 공부해야겠지. 앞으로 너희는 반드시 자신이 잘하는 걸 찾아야 해.”

“…….”

“어리광 피울 상황들은 아니잖아. 자기 밥값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그게 너희가 살길이야.”

좀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리다고 좋은 말만 해 줄 수는 없다.

나도 그랬지만, 이 아이들보다 더한 밑바닥에 있는 아이들은 수두룩하다.

발란스에게 말했다.

“규율은 필요하지만 강압적일 필요는 없다. 아직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구할 형편이 안 되지만, 기본적으로 일은 시켜.”

“네, 알겠습니다.”

다시 아이들에게 말했다.

“좋아. 너희에게 딱 한 가지를 알려 줄 거야. 나중에 정식으로 교관들이 올 때까지 너희는 이것만 하면 된다. 모두 목검 들어.”

아이들이 준비하고 있던 목검을 들었다.

행공을 하나 만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행공이기에 동심행공이라 이름 붙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거라 제법 보기 좋은 자세들도 많다.

‘수련은 재미니까.’

숙련이라는 의미도 모르고, 그것이 몸에 배지 않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것만 가르치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련 방식도 만들었다.

오늘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 * *

“대체 왜?”

날렵한 체구의 사내가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 콧수염을 제법 멋지게 기른 사내가 반문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를 견제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견제?”

“네. 그게 아니면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쪽과 겹치는 사업이 없잖아? 왜 견제를 해?”

“그 속내까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은 공격을 받은 이상 우리도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견제라…….”

다시 중얼거리듯이 입을 여는 사내의 이름은 로한슨.

더블엑스라 불리는 흑사회 조직의 우두머리다.

더블엑스는 에렌에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이다.

이 시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커서 그들은 이 사업 하나만으로 에렌 오대조직 중 하나로 손꼽혔고, 가장 많은 재물을 보유하기도 했다.

로한슨은 평소 고민할 일이 많지 않았다.

초반에는 목숨 걸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공급망이 안정화된 이후 그가 신경 쓸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곤 관리들과 귀족들에게 바칠 적절한 뇌물의 액수를 고민하는 것뿐.

그런 그가 지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른 조직들은 몰라도 고스트는…….’

다른 조직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고스트는 달랐다.

조직원 숫자는 오대조직 중 가장 적었으나, 개개인이 가장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집단 전투에서는 정규군과 붙어도 할 만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조직도 고스트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원래 몇 개의 주점만을 관리하던 그들이 오대조직이 된 이유를 보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고스트는 타 조직의 영역을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을 받으면 조직의 명운을 걸고 미친놈처럼 덤벼들었다.

초기 그들에게 덤빈 조직들은 전부 박살이 나고, 고스트는 그 잔당들을 흡수하여 이리 큰 것이다.

‘갑자기 왜?’

그런 고스트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엄밀히 따지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이 마약 사업에 손을 댄 건 아니다. 하지만 길거리 아이들을 모조리 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더블엑스의 입장에서 그건 큰 문제였다.

마약 사업의 특성상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고, 하위 판매망의 상당 부분을 그 아이들이 담당했다.

조직 입장에서 빵 몇 개에, 동전 한두 닢으로 쓸 수 있는 쓸 만한 노동력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고스트가 거둬 간 것이다.

‘씨발! 고아원을 차리려는 것도 아니고.’

흑사회 조직이 선의로 그런 일을 할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아이들을 이용하는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스트의 전력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도 없다.

사업의 일부분이 무너지는 순간,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타 조직들이 슬그머니 한 발 걸치려 할 것이다.

로한슨이 그리 고민할 때 참모 격인 콧수염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의도를 한번 파악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데리고 간 아이들을 몇 데리고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반응을 보자?”

“네, 그렇습니다. 반응을 보고 이후 일을 결정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으음…….”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로한슨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도록 하지. 대신 전쟁 준비는 해 놓은 후에 확인해.”

콧수염은 나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그 정도면 훌륭하다.”

로라스의 칭찬에도 테라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애를 썼는데…….”

“응? 뭔 소리야?”

“주군께 완벽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이거…… 정말 노력 많이 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훌륭하다고 했잖아.”

“‘그 정도면’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시무룩한 테라를 보며 로라스는 웃었다.

“하하하하. 욕심은. 그 정도면 훌륭하다는 건 칭찬이 맞다. 네가 지금 그만한 제왕검을 소화하는 게 쉽지 않음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래도…….”

“욕심이야. 기대 이상으로 네 성취는 빠르다. 센터에서 정말 훌륭하게 성장했다.”

테라는 로라스를 슬쩍 보며 물었다.

“번천은…… 그도 강해졌겠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로라스는 살짝 당황했다.

‘이 녀석, 그걸 염두에 뒀던가?’

번천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리면서 그에 대한 경쟁심이 크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첫 번째 기사라.’

번천도, 테라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

로라스 입장에서는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는(?) 듯한 느낌이다.

“강해졌지. 그는 매번 최선을 다하니까.”

“저도 노력하는 것만큼은 뒤지지 않습니다.”

번천에 대한 칭찬이라 생각했는지 테라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로라스는 그런 그의 경쟁심을 억누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극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유역후 시절 제자들도 서로 경쟁하면서 상상 이상으로 빨리 강해졌다.

‘첫째야 첫째니까 여유가 있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었지.’

로라스는 잠시 옛날, 아니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너도 번천도 독할 정도로 수련하는 거 안다.”

“…….”

“그래서 너희에게 거는 기대도 크지.”

“조금 불안합니다.”

“뭐가?”

“번천은 주군 밑에서 수련하는데 저는…….”

“그 역시 이유가 있는 거지. 센터에서 들으니 에르페유 경께서 네게 관심이 있으시다 하더군.”

“……!”

“에르페유 경은 훌륭한 무인이야. 배울 것이 많아. 많이 배워. 언젠가 너도 락으로 돌아올 테고. 그때도 늦지 않아.”

“그건 알지만…… 그래도 주군도 에르페유 경만큼 강하지 않으십니까?”

누가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테라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로라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양쪽 모두에게 배워야지. 번천과 너는 가는 길이 달라. 번천은 포스의 입문이 많이 늦은 편이다. 길 자체도 달랐고.”

“…….”

“솔직히 이야기하면 지금은 번천이 너보다 강해. 하지만 그건 네가 그보다 열 살이나 어리기 때문이지. 뭔 소린지 알지?”

테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테라와 번천은 시작점이 달랐다.

지금은 번천과 테라의 격차가 분명 존재했다.

비슷한 재능이나 번천은 가르침이 늦었고, 테라는 빨랐다.

‘물론 그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지만.’

번천도 기를 쓰고 노력할 테니, 그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라 가정하면 테라가 위이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무림에서도 입문이 한 달 늦으면 끝에는 1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군의 첫 번째 기사는 제가 될 겁니다!”

로라스의 말에 힘이 났는지 테라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로라스도 마주 웃었다.

“애써야 할 거야. 번천도 지독하거든.”

“두고 보시면 압니다.”

로라스는 테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엉클어트리며 말했다.

“그래야지.”

그렇게 로라스가 테라의 무공을 점검하고 센터를 나올 때였다.

“공자님.”

대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로라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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