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81화 (8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81)

‘어떻게 이런 일이…….’

에렌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트아이는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 앞에서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속내가 보이지가 않으니.’

심안이라 불리는 자신의 능력.

능력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안다는 것.

백의 구십구는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사람이란 자신의 욕망, 이득을 위해 계산을 하는 종족이었고, 트아이의 주변인도 마찬가지였다.

추악하고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볼 때마다 트아이는 자신이 인간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깊어졌다.

철이 들었을 때 자신의 능력을 숨겨야 하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아 버렸고, 그 때문에 그의 일상은 순탄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품에 안은 건 바로 제국, 아니 대륙의 최강자 중 하나 베스타인 공작이었다.

트아이는 그의 밑으로 들어간 후,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숨기지만 베스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원하는 건 대놓고 이야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얻었다.

욕망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건, 겉과 속이 같다는 뜻.

그것에서 트아이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공작의 심복 중의 심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 트아이가 혼란을 느끼는 건 단 하나.

‘대체 어떻게?’

로라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지 못했다. 그건 그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한 분야의 마스터가 되어 경지에 이른 이들. 그들의 속내를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아닌 다른 한 가지 이유.

‘욕망이 없다고? 스무 살의 청년이?’

욕망이 없는 경우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스무 살의 신체 건강한 청년.

수많은 욕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에 욕망이 생기는 시기가 아니던가.

‘소문이 사실인가?’

에렌에서 로라스를 아는 이들이 말하는 소문. 그건 그가 최연소 마스터가 될 거라는 소문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치부했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은 베스타인 가문, 그리고 에듀의 핏줄이란 걸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지만 그 소문이 마탑과 센터에서 같이 나왔다.

더블 마스터.

참 동화 속에서나 나올 만한 단어가 아니던가.

‘이번에 반드시 확인해 보리라.’

트아이는 마차 안에서 그리 다짐했다.

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게 자신의 일이었다.

* * *

‘대체 무슨 일로?’

마차 안에서 내내 생각해 봤지만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한창 바쁜데 말이지.’

에렌으로 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거기서도 해야 할 일은 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락에 집중을 다하고 싶었다.

곧 어마어마한 부흥의 시간이 올 때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데 말이다.

‘무엇보다 천년나무 부족이 근처로 이주하는 건 아주 큰 일이지. 진행 과정도 확인해야 할 텐데.’

산맥 안쪽에 있던 오크 부족이 외곽, 정확히는 락의 근처로 터전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오크들은 이주하고 싶어 했다.

락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지만, 초기 그들을 상대했던 오크들의 터전은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주변의 식량과 마정석을 공급해 줬던 사냥감들은 어디론가 싹 다 이주했고, 그 자리에 대형 몬스터들이 침입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에게도 대형 몬스터들은 쉽지 않은 사냥감이다.

새로 터전을 잡길 원했고 그 후보지가 락에서 멀지 않은 노멀존 지역 중 하나였다.

‘단시간 내에 결정될 일도 아니니.’

할아버지가 왜 날 호출했는지 모르나, 그걸 해결하고 돌아간 이후에도 여유는 있으리라.

몸을 기댔다.

드그득. 드그득.

규칙적으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렸다.

단조로운 마차 이동.

모처럼의 느긋함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여유롭다는 것은 곧 지루함으로 바뀌게 되는 법.

운기조식을 하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하지만 그것도 옛날에나 도움이 됐지, 지금 수준에서 맹목적인 운기조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보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때나 사정없이 바쁘겠지만, 지금은 비워진 부분만 채우면 되기에 하루 한 번도 많다.

‘뭐라도 하나 나타났으면 좋겠구먼.’

몬스터든 뭐든 뭐라도 하나 나타나면 좋겠다. 기왕이면 몸 좀 풀 만한 것으로.

차라리 밖에서 따르는 호위 병력의 말이라도 탈까 했지만, 그들도 나름 자랑스럽게 임무를 수행한다고 여기기에 뺏어 타는 것도 탐탁지 않다.

‘다른 일행은 습격이 빈번하다던데, 내가 갈 때는 항상 조용하네.’

다라라.

그때 들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 창문으로 쏙 들어오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다라.”

다라라디라라.

묘한 멜로디와 함께 내 품으로 쏙 들어오는 고양이. 아니, 신수.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녀석의 주인은 프라일이다. 그리고 여기는 메타린 평야를 한참 벗어난 지역.

“나 찾으러 온 거냐?”

그냥 동물이 아니라 신수다.

사람의 말도 알아듣고, 생각을 하여 움직이는 놈이다. 혹시 프라일에게 연락이 온 게 있는가 싶어 놈을 잡아 훑어보니 아무것도 없다.

다라라라라.

녀석이 손아귀를 벗어나 자꾸 품으로 기어들어 가려 한다. 자세히 보니.

‘두려워해?’

녀석은 떨고 있었다. 뭔가에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게 이상했다.

고양이처럼 귀엽게 생긴 외형에 속으면 안 된다. 이 녀석은 신수다. 소위 말하는 그쪽 계의 마스터라는 뜻.

그런 녀석이 겁을 먹는다?

게다가 지금 마차가 지나가는 지역은 거대 마물 따위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곳. 아니, 설사 거대 마물이라 해도 이 녀석을 어찌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뭐에 그리 놀랐냐?”

녀석을 토닥이면서 진정되기를 기다릴 때였다.

“워워워!”

밖에서 마부가 말의 속도를 줄이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소영주님, 밖에 한 무리의 인마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호위병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마차 밖으로 나갔다.

“긴장할 필요 없어요. 숫자도 얼마 되지 않고.”

멀리서 펄럭이며 다가오는 깃발은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에렌에서 육두마차를 타고 다니던…….’

에렌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물어보려 했는데 깜빡 잊고 그 정체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하지만 의외로 저 깃발에 새겨진 문양을 아는 이가 있었다. 병사들 중 하나가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새무엘,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신국의 문장 중 하나야.”

“신국? 에펠리온 교단의 문장이란 말이야?”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새무엘이란 자를 불러서 물었다.

“에펠리온 교단의 문장은 저게 아니지 않아?”

“교단의 문장이 아니라 교황의 산하, 그러니까…….”

새무엘은 잠시 뭔가 궁리하더니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교황 후보자 중 하나의 문장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펠리온 교단은 교황의 후보자도 하나의 성인으로…….”

나름 정리하여 짧게 대답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저 생소한 문양은 다음 대 교황 후보자 중 한 명을 나타낸다고 했다. 빛 모양의 색이 금빛이니 그것도 제1후계자 말이다.

“그런데 왜 길을 막고 난리래.”

에펠리온 교단은 제국뿐 아니라 대륙에서 제일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말 그대로 제일 많이 보유했다는 것뿐 수많은 종교가 있는 이 세계에 무신론자도 많다.

길을 막고 있음에 다른 병사가 투덜거릴 때, 그들이 다가왔다.

‘어라?’

교단의 무리 중 눈에 익은 이가 있었다.

‘옛날 마차를 타고 있던 그 꼬맹이 맞지?’

무리의 호위를 받듯이 중앙에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육두마차를 타고 길을 양보하라고 했던 그 여아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에르자일과는 다른 매력을 발산하던 그 여아 말이다.

교단의 무리가 어느 정도 다가오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기마 두 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에펠리온의 교단의 성기사 네오르라 합니다!”

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고, 이쪽에서도 드리프가 신분을 밝혔다.

“교단에서 한 마리의 동물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혹시 오시면서 고양이처럼 생긴 동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보지 못했소.”

그들의 대화를 생각하며 절로 시선이 가슴 쪽으로 향했다. 다라의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이 녀석이 왜 이리 두려워하지? 성기사란 존재가 그리 두려운 건가?’

프라일이 아직 어린 신수라고 한 걸 감안해도, 녀석은 웬만한 기사 몇은 찜 쪄 먹을 수 있는 존재다.

“무슨 짐승인데 교단의 기사분들께서 이리 추적하시는지요?”

내가 묻는 말에 그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수라는 게 밝혀지면 우리가 욕심낼 것을 걱정하는 건가?’

속으로 웃음이 나올 때 네오르라 밝힌 성기사가 말했다.

“세간에서 신수라 불리는 짐승입니다. 우연찮게 발견하여 추격 중인데, 소영주 일행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생긴 건 작고 귀엽지만 그 흉성은 일반인이 감당하기 벅찹니다.”

다라가 욕심을 내도 손에 넣기 쉽지 않은 존재라는 걸 깨달은 듯 순순히 대답한다.

“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상 그리 답변하고 서로 갈 길을 가려 할 때였다.

“공자님.”

그때 소녀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원래 공자님의 소유였던 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알아차렸다.

‘이 꼬맹이. 알고 있구나.’

그녀가 눈이 아닌 가슴을 직시하고 있는 걸 보고 있었다.

“원래 데리고 있던 사람의 말로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더군요.”

나의 대답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잘됐네요. 저에게 넘겨주세요.”

“이야기했듯이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서 넘겨주고 말고 할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 풀어 주셔야죠.”

당돌하다.

‘이 세계에 남녀의 구별이 중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열다섯? 열여섯?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이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뤄, 양쪽 모두 매력적이다.

얼굴은 또 어떤가?

상상 속에서나, 그리고 그림에서나 존재할 법한 외모에 목소리마저 듣기 좋을 정도로 청아하다.

그녀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 일행은 둘째 치고, 그녀를 호위하는 성기사들도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확실히 예쁜 여아다.

에르자일을 봤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눈길이 가는 아이다.

‘곽아가 딱 이랬는데 말이지.’

에렌에서 이 여아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여아는 곽아를 쏙 빼닮았다.

“그러지 말고 주세요.”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이 더 밝아진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그거 내게는 별로 안 좋은데 말이다.”

“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지금 하고 있는 그것 말이다.”

뱉은 말에 순간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락의 소영주라 하셨습니까? 말씀을 정중히 하시길 바랍니다. 아델리아 님은 에펠리온의 후계자 중 한 분. 소영주뿐 아니라 다른 귀족분들도 예를 다하십니다. 심지어는 공작 각하도 말입니다.”

옆에서 중년의 성기사가 하는 말에 ‘아차!’ 싶었다.

로라스가 아닌 유역후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이 여아는 날 보고 그냥 웃는 게 아니다.

미약한 포스의 흐름.

마법도 아닌 포스로 기운을 만들어 뿌리고 있었다.

그 기운의 정체는…….

‘매혹이라고 봐야겠지.’

유역후 시절에도 역용술이니, 좋지 않은 술법이니, 대법 같은 잡술은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배운 적이 없다고 해도 그 기운을 못 느끼는 건 아니다.

이 여아는 분명 그런 사술을 쓰고 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날 보는 여아의 기운이 더 진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짜증이 나야 할 상황인데, 여아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녀의 사술에 넘어간 건 아니다.

뭐랄까?

할아버지 쌈짓돈에 몰래 손대는 손녀 보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하하하!”

크게 웃었고,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뒤로 주춤한다.

그럴 것이다.

웃음소리로 자신의 사술이 깨지는 건 첫 경험일 테니.

로라스로 돌아와 다시 말했다.

“내부에 간직한 힘은 그렇게 쓰면 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법입니다. 숙녀분은 아름다우시니 그냥 웃으셔도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겁니다.”

“…….”

“이 녀석은 제 게 아니라서 건네줄 수가 없군요. 이 녀석과 인연이 있어, 제 품에 있을 때는 어디로 보낼 수도 없고요. 그러니 포기하시지요.”

굳어 있는 여아, 그리고 왜 그런지 의아해하는 성기사들을 두고 마차에 올랐다.

‘포스로도 중원의 사술과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나?’

의문이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리라 생각할 뿐.

‘에렌에서 시간이 나면 알아봐도 되고.’

마차는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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