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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77화 (77/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77)

‘저게 게이트인가?’

신기하게 생겼다. 앞뒤가 없이 덩그러니 아치형의 빛나는 금속 구조물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언뜻 보면 커다란 하얀 무지개가 펼쳐진 듯한 느낌.

공터에는 딸랑 그것 하나밖에 없다.

분명 멋져 보이기는 했지만, 만 이상의 마물 덩어리들을 쏟아 낸 곳이라 생각하기에는 무리다.

‘생긴 게 뭐가 중요할까. 돈이나 내놔라, 이것들아!’

핵이 마나석이길 바라며 게이트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눈이 시릴 정도의 금빛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혹시 무슨 왜곡된 공간이 있을지 몰라 안력을 돋우다가 눈 버릴 뻔했다. 하지만 주변을 자세히 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거…… 금 아냐?’

벽 곳곳에 번개 치듯 그려져 있는 금빛.

다가가 만져 보니 돌과는 확연히 다른 반지르르한 촉감.

조사는 해 봐야겠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이 금광은 말 그대로 금의 보고다.

번개도 그냥 실 번개가 아니라 굵디굵은 번개 아닌가.

‘오델리움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하늘 산맥은 돈을 쏟아 내는데…….’

락이 워낙 없는 곳이라 그런가. 여기 와서 물욕만 늘었다.

‘이거 통제만 가능하면 금광으로 써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참을 안으로 들어갔으나 주변은 찬란한 그 빛을 잃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일단 어찌 된 구조인지, 어떻게 마물이 형성되는지 알면 고민해 볼 문제다.

이런 금광 하나 있으면 락은 안정적인 재정 수입을 얻을 방법이 생긴다. 정확히는 최고 부자 영지라는 타이틀도 꿈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대가가 있는 법.

여기서 형성된 마물 때문에 락은 재물은 물론이고 인적으로도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대가를 하나 얻는 것도 큰 욕심은 아니리라.

‘욕심이래도 상관없다!’

이런 걸 보고도 욕심이 안 생기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는가?

샤르르르.

어느 순간 처음으로 문어 대가리들의 소리가 들렸다.

긴장할 건 없다. 이런 공간에서는 수십이 몰려들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의외였다.

‘자고 있는 거냐? 아니면…….’

어느 순간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놈들.

바닥에 누워 있고, 벽에 달라붙어 있고, 박쥐처럼 매달려 있는 놈들도 있었다. 공통적인 게 있다면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다는 것.

아무 저항도 못하는 놈들을 베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을 뒤에 두고 갈 수도 없기에 모조리 베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놈들은 눈을 뜨지 않았다. 신기한 건 죽은 놈들이 금속의 벽으로 흡수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다.

여긴 하늘 산맥이고, 이 안은 더더욱 기괴한 곳이니까.

‘으음!’

종종 자고 있는 처음보다는 작은 크기의 개체 무리를 모조리 베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놈들의 크기가 작아진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놈들이 커진다. 아마 더 밀려났으면 눈을 뜨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안쪽으로 더 들어갔고, 금빛은 더 강렬해졌다.

‘미친.’

공간 전체가 완벽한 금으로 뒤덮여 있고, 그 중앙 기둥에는 오색찬란한 구체가 보였다.

핵이었다.

‘저걸 적당히 파손시켜야 하나.’

이 게이트를 닫지 않고 이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차아앙!

뭔지 확인하기 전에 커터를 먼저 휘둘렀고, 금속음이 울리면서 시선이 닿았다.

‘이것 봐라?’

금빛의 칼날이 나와 있다가, 벽 쪽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헛차!”

커터를 머리 위로 드는 순간, 위쪽 벽에서 튀어나온 금빛 칼날이 커터를 쳐 냈다.

차앙! 차앙! 창! 창!

사방에서 쏟아지는 칼날에 커터를 흔들어야 했다.

‘이 방 자체가 살아 움직인단 말이지?’

그래. 너무 맥없이 닫힌다면 그게 오히려 찝찝할 뻔했다. 이렇게 저항이라도 해 줘야 개운하지.

놈의 칼날에 직선의 금빛이 사방을 가득 메운다.

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숫자가 많고 제법 빠르게 튀어나오긴 했지만 딱 그뿐이다.

카아아아앙!

내력을 담아 제대로 후려쳤고 잘랐다.

‘금덩이다!’

내 눈에 잘린 금빛 칼날은 그냥 금덩이일 뿐.

‘저렇게 흡수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지.’

떨어진 칼날은 문어 대가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벽으로, 바닥으로 흡수되었다.

공격은 쉴 새 없이 계속된다.

파악한 바로는 놈이 한 번에 쏟아 낼 수 있는 칼날은 여덟 개.

분명 괜찮은 방어 시스템이다.

어중간한 무인들은 칼날 한 개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칼날을 부러트려도 계속 형성되니 다수의 침입자에게도 문제없을 터다.

‘다 고만고만한 칼날을 감당할 수 있는 고수 하나에게는 이만큼 만만한 것도 없겠지.’

그렇게 칼날의 패턴을 충분히 확인하고 핵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놈은 위협을 느낀 듯 여덟 개의 칼날을 동시에 쏟아 냈다. 그 패턴 역시 확인했으니 문제 될 거 없었다.

핵에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까지 접근했다.

토벌전의 던전에서 본 것과 비슷한 크기다.

‘이제 너를 어찌해야 할까?’

일단 마나석은 확보가 됐지만, 금덩이를 본 이상 이게 더 욕심이 난다.

‘하다 보면 널 굴복시킬 방법을 알아내겠지.’

시간은 충분하고, 그렇게 시간을 쓸 가치도 충분했다.

놈을 알아볼 시간이다.

* * *

주변은 여전하나 핵은 더 맹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핵을 보호하고 있는 껍질을 까 낸 이후에 발생한 현상이다.

힘의 강도를 조금씩 올려 가며 어느 정도의 힘에 핵에 균열이 가는지 확인했고, 그것이 회복되는 것도 확인했다. 중간에 문어 대가리들이 형성되는 패턴도 확인했다.

그 와중에 문제는 하나밖에 없었다.

배고픔과 배설이라는 생리 현상뿐.

급할 것 없기에 나와서 사냥을 하고, 수면까지 취하며 놈을 공략하고, 알아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닷새였고, 마침내 이곳을 금광으로 쓸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균열이 가면 놈은 그것을 회복하고, 그 시간에는 칼날과 문어 대가리들이 형성되지 않았다.

문제는 회복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곳을 금광으로 쓰려면 지속적으로 핵에 균열을 가해야 한다는 것.

‘계속 그러다 보면 회복 시간이 더디게 될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폭주해서 급작스레 마물들을 쏟아 낼 수도 있을 터다. 게다가 균열을 내는 힘의 조절도 까다로운 작업일 테고 말이다.

‘위험 부담 없이 이득을 취할 수는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그 이득이 너무 크다.

‘혹시 에르자일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마나를 증폭시키는 마법이 있듯, 반대로 억제하는 방법도 있다.

균열의 회복 속도를 늦추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락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열흘이라는 점이다. 게이트의 회복 속도를 생각하면 열흘이면 수백의 마물을 쏟아 낼 수 있다.

그 문제로 다시 사흘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해결책이 보였다.

“게이트 안 닫나?”

프라일이 나타났다.

* * *

“우아아아아!”

락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오크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얼마 남지 않은 적을 상대로 돌격하였고, 모조리 척살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모두가 기뻐했다.

에듀는 비축해 뒀던 식량을 아낌없이 풀었고, 모두가 승전을 즐겼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승리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대체 뭘 하고 있기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그건 에듀를 비롯해 로라스가 무엇을 위해 영지를 비웠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걱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에듀가 수색대까지 생각할 때, 로라스가 마침내 락에 돌아왔다. 그는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게이트. 그리고 그것을 금광으로 써 보자는 이야기에 처음에는 황당했다. 그러다 반신반의했고, 다시 시간이 흐르니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로 변했다.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닫으면 됩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로라스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핵의 마나를 제어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일단 조사의 핵심이었기에 에르자일을 포함한 조사대가 꾸려졌다.

로라스의 호위하에 에르자일은 핵에 수많은 마법진을 시험해 보고 판단 내렸다.

“가능은 해. 그런데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야.”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마법진을 연구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게이트의 금빛 조각들이 금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만, 금을 본격적으로 캐내면 유지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다음 문제는 락과 게이트까지의 안전 확보다.

게이트는 노멀존에 있는 게 아니었다.

로라스의 움직임으로는 닷새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열흘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만약에 성공적으로 금을 채취해 운반이라도 하는 날에는 두 배가 아닌 수배는 걸린다.

그냥 금만 가져오면야 문제없겠지만, 원석을 캐내고 정제하려면 돌덩어리 그 자체를 락으로 가져가야 한다.

길도 없는 곳에 그 돌덩어리를 움직이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길을 내면 금방 해결되겠지만, 그런 공사는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분간은 힘 좋고, 산 잘 타는 노동자와 호위 병력을 구성하여 움직여야 할 듯했다.

그렇게 몬스터 대군을 물러나게 만든 지도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 꽤 많은 일이 벌어졌다.

* * *

“으음…….”

베스타인 공작은 올라온 보고서를 뚫어지게 보며 침음성을 흘렀다.

북방은 혼란이 있었다.

락에서부터 전해진 서신으로 시작되었다.

몬스터 대군이 하늘 산맥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이들을 혼란과 두려움에 빠트렸다.

눈으로 보지 않아 반신반의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마을을 봉쇄하고, 어떤 곳은 에렌으로 피난까지 가는 영지도 있었다.

베스타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았다.

에르자일에게 마탑 통신으로 보고받은 헤르메스가 급히 보고했기 때문이다.

‘내려왔다라…….’

모두가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지만 베스타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몬스터 대군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한 가지 어긋났을 뿐이었다.

‘처리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일까?’

크게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을 그냥 두고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북방의 대영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병력을 동원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계획을 세웠고, 원정대 역시 준비하라 일렀다.

문제는 하나뿐이었다.

락을 어찌 처리할지였다.

결사항전 태세를 갖춘다고 했으나, 보고가 사실이라면 숫자가 너무 많다.

무관심한 듯 보였으나, 베스타인 공작은 락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면 승산은 있었다.

걸리는 건 아끼는 혈육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마스터가 눈먼 화살에 뒤통수가 꿰뚫려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전장.

락을 포기하고 후방으로 물러나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끼는 혈육이 있으나 베스타인은 냉정한 대영주다. 락이 버티면 후방은 만에 하나를 준비할 수 있다.

버텨 내면 그 대가는 반드시 보상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

대승.

버티는 게 아니라 싸워서 퇴치했다고 했다.

적의 숫자가 예상의 반 수준이라 했지만 그래도 오천의 대군이다.

‘내가 모르는 전력이 더 있었던 건가?’

베스타인 공작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지만…….’

확실히 말이 안 됐다. 로라스는 고작 스물이다.

분명 앞으로 그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아직은! 지금은! 대군을 어찌할 정도의 능력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로라스가 뭐를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손자에 눈먼 할아버지의 직감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직감이다.

“트아이!”

베스타인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는 심연의 눈을 가진 에렌성의 제1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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