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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74화 (7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74)

디라라라.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때, 프라일 옆으로 한 마리의 고양이, 아니 그처럼 보이는 작은 동물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볍게 프라일을 타고 그의 어깨에 앉더니, 로라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건…….’

로라스는 저 짐승이 고양이도, 야생화된 그 비슷한 과의 동물도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짐승 주제에 뿜어내는 포스가 잘 단련된 고수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

어느 순간 고양이가 껑충 뛰더니 로라스에게 날아들었다.

살수를 쓸 정도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 살기가 없다는 걸 몰랐다면, 그 짐승이 사납게 생겨 경각심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정말 그리될 뻔했다.

디라라라.

그렇게 로라스의 어깨에 올라온 고양이는 놀랍게도 소리를 내며 그의 목덜미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다라가 사람에게 그리 달려드는 것도 처음 보는군. 곁을 내주는 아이가 아닌데.”

“다라라고 하는 동물인가?”

“다라는 내가 부르는 이름. 사람들에게는 신수라 불리고, 괴이하게 긴 이름으로 불리지.”

‘신수!’

로라스는 잊고 있었던, 산에 오른 이유가 생각났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프라일의 손으로 향했다.

굵은 마디를 지닌 손가락, 그리고 검은빛이 도는 손톱을 보니 자신이 추적했던 인물이 바로 프라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나무에 흔적을 내기도 하나?”

로라스의 물음에 프라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혼자가 아니거든. 날 따른 아이들에게 표시를 남겨야 따라오니까.”

확실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그와 한 수 겨뤄 그의 무공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정보 고마웠다. 혹시 그쪽에 도움이 될 정보가 있다면 전달하지. 그런데 어떻게 전하지?”

로라스의 물음에 프라일은 턱짓으로 신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 그리고 난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 그 녀석을 통해.”

“이놈을 내게 주겠다는 건가?”

“나도 그 녀석의 주인이 아니야. 길들일 수 있는 녀석도 아니고. 녀석의 입장에서는 너나 나나 평등하게 동료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로라스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다라를 보았다. 또랑또랑한 눈동자를 보니 소유욕이 들었다.

“아! 그리고.”

프라일이 말했다.

“자신보다 밑이라 생각하면 매우 시건방지게 구니까 명심하고.”

* * *

돌아오면서 내내 프라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포스가 아닌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대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대충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의 나이로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짐작이다. 그가 자신과 같은.

‘반로환동의 고수가 아니라면 모를까.’

자신도 그리했는데 남들이라고 그러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게다가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고.

‘괴이하다 못해 지랄맞은 세계인 게지.’

생각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에 결론 내린 일이었다.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면 그뿐이다.

그렇게 락으로 돌아오니 에듀가 찾았다.

“어디를 다녀오느냐? 한참 찾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샤이한에게 훈련을 제안했더냐? 그가 찾아왔다.”

“고집을 부릴 줄 알았는데 빨리 수락했군요.”

“그는 지도자다. 다른 오크들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현명한 편이다. 겉보기와는 많이 다르지.”

사실 진즉 나서지 못한 것도 부족 내의 오크들을 설득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래도 며칠이라도 훈련하는 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님.”

“말하거라.”

“혹시 메타린 평야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십니까?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를요.”

“메타린 평야는 남들이 아는 수준이다. 지배자에 관해서는 나도 이야기만 들었다.”

“어떤 사람입니까?”

“모두 신비에 싸여 있다. 그가 어디 사람인지, 몇 살인지, 그리고 왜 메타린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에듀는 잠시 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샤이한에게 들은 바로는 가끔 하늘 산맥으로 올라온다고 하더구나. 샤이한의 부족에도 종종 방문하고. 우리 쪽보다는 그쪽이 관계가 더 좋을 것이다.”

“메타린 평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다. 사람은커녕 웬만한 마물도 감히 접근을 꺼리는 곳이지. 거긴 맹수와 괴수의 영역이니.”

“그런데 어떻게…….”

“그러니 신비에 싸여 있는 거지. 아! 예전에 백부…… 공작 각하께서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 적이 있다.”

로라스는 반색을 하며 물었다.

“할아버지가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출입을 엄금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서지 마라.”

“…….”

“실제로 그분도 메타린 평야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으셨다. 개척만 하면 제국 최대의 곡창지대가 될 수 있는 곳 아니냐.”

“그렇지요. 맹수와 괴수만 아니면 말입니다.”

“그분이 맹수와 괴수를 두려워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잠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천만의 말씀이다.

맹수와 괴수 할아비가 있더라도 원했다면 손에 넣었을 것이다. 평야를 모조리 갈아엎더라도 말이다.

정보가 부족하다.

아니, 이 세계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많이 아는 줄 알았는데 오늘 일을 보니 어림도 없다.

또 아는가?

이 세계도 사람이 사는 세상과 무인이 사는 세상이 구분되었을지 말이다.

그때 에듀가 다시 말했다.

“열흘 거리라 했다. 이쪽이 될지도 모른다. 와디아의 원군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고…….”

에듀는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물었다.

“정말 에렌으로 갈 생각은 없는 것이냐.”

로라스는 살짝 가슴이 뭉클했다.

실력까지 보였는데도 아직 걱정이 여전하다. 부모의 마음이란 게 저런 건가 싶다.

“대책 없는 긍정도 좋지 않지만, 지나친 부정도 좋지 않습니다. 이번 싸움 무조건 이깁니다. 피해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게 될 겁니다.”

아비로서, 영주로서 에듀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군보다 적군이 두 배만 되더라도 무조건 도망치고 지켜야 한다.

그게 병법의 기본으로 집단전이든 소규모 전투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적은 최소 네 배. 많게는 다섯 배까지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수성을 한다고 했지만, 목책에서 급조된 토성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

그럼에도 승산이 있는 건 아군에 말도 안 되는 전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샤이한과 시그탑.

모두 마스터거나 그 수준에 이른 무인들. 거기에 에르자일이 있다.

아쉽긴 하지만 다른 두 기사와 번천까지 있다.

‘소규모 집단전이라면 필승의 전력이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이런 절대적인 무인들의 개인적 역량은 승패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니 영지에서 없는 돈을 털어서 기사의 숫자를 늘리려 하는 것이고, 뛰어난 무인들은 작위든 돈이든 뭐라도 줘 가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 세계는 그런 싸움에 익숙해져 있다.

국가와 국가의 전쟁에서도 실제 전투는 잘게 쪼개지니까. 특히나 제국은 수십 년 동안 타국과의 전쟁을 치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만큼 강대하여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문제다.

샤이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지와 시그탑마저 이런 대규모 전투의 경험은 전무했다.

선봉으로 나서서 적의 예기를 꺾고 진형을 붕괴시킨다. 흐트러진 진형을 아군이 짓밟는다.

이게 공격의 기본 전술이고, 반대로 방어도 똑같이 전개된다.

절대적인 강함을 가진 무인이 앞에서 그 기세를 꺾고, 나머지는 병사들의 싸움이 된다.

“싸우다 보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시그탑이 옆에서 하는 말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아군 장수의 기를 죽일 수는 없는 법.

“그렇겠지요. 다만 효율적으로 싸우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놈들에게도 귀족이…… 지휘관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일이 수월해질 텐데 말입니다.”

계속 한숨만 나오는 말만 한다.

알아봤다. 이 세계에서 전쟁이 어찌 치러지는지. 그리고 기가 막혔다.

여기의 전투는 마치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것처럼 각 군의 지휘관, 최고의 무인이 한 명씩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명예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일대일 전투를 한다.

이긴 쪽은 기세 좋게, 진 쪽은 기세가 한 번 꺾인 채로 싸운다.

그걸 낭만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안다.

낭만은 전쟁에서 찾는 게 아니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장에서 낭만?

이거야말로 개소리 중의 개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이걸 탓할 생각은 없다.

중원과 다른 세계니까. 유역후의 세계에서도 아주 옛날엔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항복하면 무조건 포로로 받아들이고, 없는 군량으로 포로를 먹이고 종전 후에 살려 보낸다는 것. 그리고 다음 전투 때는 살려 돌려보낸 이들을 다시 적으로 맞이하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전투 방식을 선호했다.

그걸 바꾼 게 전국시대의 한 장수로 기억한다.

‘수십만의 포로를 모조리 생매장했지.’

그런 비극을 인간으로서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영리하게, 효율적인 움직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나마 별동대와 예비대의 기본 개념은 알고 있어 다행이다.

“앞에서 싸우고 뒤로 빠지면서 계속 분산시켜야 합니다. 놈들이 집중하지 못하게!”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란 건 안다. 거점을 나눠 수비하고 손발이 맞으면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무인들이니까.

그들은 금세 내 말을 알아들었다. 실행하긴 어렵지만 전술 자체는 간단하지 않은가.

“네 전술이 이해는 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미 위험한 상황입니다. 적은 대군입니다. 와서 손으로 한 대씩만 쳐도 우리가 세운 토벽은 무용지물입니다.”

좀 과한 비유였으나 적절하기도 했다.

적이 수배가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평지다. 락이 고지대에만 위치해 있어도 이런 수는 안 썼을 것이다.

지금은 가진 최고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을 하는 수밖에 없다.

불안해하는 아버지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놈들의 전술도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전형적으로 숫자만 믿고 진격하는 수준이더군요. 아니더라도 제가 그리 만들 생각입니다.”

오크와의 전투가 어찌 진행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 시켜 주는 사이 시그탑이 말했다.

“소영주, 그리 만들 거라고 하셨는데 어쩌실 생각입니까?”

“놈들의 총지휘관을 죽여야지요.”

간단한 답변을 내놓기 무섭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라스!”

“소영주!”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미 샤이한이 해냈던 일 아닙니까?”

샤이한을 보며 하는 말에 이 무시무시한 오크 대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안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무식하게 일을 벌였는지.

“허락할 수 없다. 너무 위험해.”

“제가 제일 적임자입니다. 포스와 마법을 전부 익혔습니다. 제 흔적을 지우고, 매복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으며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 차라리 내가!”

“아버지는 영주이십니다. 여기서 중심을 잡으셔야죠.”

“로라스!”

“일이 잘못되더라도 제 한 몸 빼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주와 아비로서의 갈등이 보이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끝까지 믿으세요, 아버님.”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락의 영주는 겁쟁이가 아니다.

“그 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보면 아실 겁니다.”

이 대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전쟁 준비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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