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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71화 (7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71)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일기당천이라는 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면 뭘 해?’

딱 거기까지다. 힘이 세고, 괴성으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을 뿐 전세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당연한 일이다.

군의 움직임이 엉망인데 저리 막 싸우면서도 전세를 우리 편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로라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오크 대장을 노려보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놈아! 뒤로 물러나라니까!”

천둥 같은 로라스의 목소리에 오크 대장은 흠칫했다. 그것도 잠시.

쿠오오오오오오!

목소리로는 지지 않겠다는 듯 소리를 질러 댄다.

‘말귀를 알아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정리에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구멍을 뚫었다 하나,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타 죽을 놈들이 많을 것이다.

“밀집! 일단 모여!”

“오와 열을 가다듬어. 뒤로 물러나서 어깨를 나란히 해.”

들릴 텐데 자신들에게 명령하는 건지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타아아앙!

검기를 곧게 내세우며 문어 대가리 사이를 한 번 헤집었다.

“오와 열을 가다듬으라고. 말귀 좀 알아 처먹어!”

대장으로 보이는 오크가 그제야 흠칫한다. 씨도 안 먹히다 들린 척이라도 한 이유는 바로 검기 때문일 터.

“락의 기사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일단 줄부터 서라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문어 대가리의 공격을 막아 내고, 피하고, 튕겨 내면서 주변을 쓸어버렸다.

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지만 지금은 확고한 무력을 보여 줘야 할 때.

“줄 맞춰! 줄 서라고!”

대장 오크가 말귀를 알아 처먹은 듯했다.

“저쪽으로 밀어내는 거야! 저쪽으로!”

후방 오크들이 어느 정도 오와 열이 맞춰지자마자 내가 만든 구멍으로 손가락질했다.

“저기로 도망쳐야 한다! 반대로 밀어내야 한다!”

대장 오크가 소리쳤고, 욕설로 맞받아쳤다.

“다 죽을 셈이냐! 시키는 대로 해!”

활로가 저기인 것 맞다. 하지만 이런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는 사로다.

차라리 활로가 없다면 그냥 목숨 걸고 싸우기라도 하지, 어렵지만 살아날 구멍이 있다면 그곳으로 쏠리게 마련.

아까도 한 무리가 빠져나가길 기다린 것이다.

대장 오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오크들을 독려해 그쪽으로 몰아붙인다.

“무작정 달려들지 마! 진형을 흐트러트리지 말란 말이다!”

“…….”

“그냥 밀어만 내! 하나, 둘, 셋! 구령도 몰라!”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쳤다.

예비대도 없이 전 병력이 부딪치는 그야말로 총력전. 전장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다행인 게 있다면 문어 대가리들도 군 통솔이 잘되지 않는 듯했다.

마침내 적의 후방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빠져나가더니 그쪽으로 계속 몰아붙이니 병목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는 식은 죽 먹기다.

엉터리에 가까운 진형이었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로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고.

샤르르르르르.

죽을 때마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문어 대가리들이 쓰러져 갔다.

“이겼다!”

우오오오오오오오!

대장 오크가 얼마 남지 않은 문어 대가리를 보며 소리치자, 다른 오크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난 번천과 에르자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괜찮아!”

창백한 표정의 에르자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번천은 떨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주군…….”

“일단 빠져나가자.”

번천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에르자일을 안아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만든 불의 장벽이 어느새 얼마 되지 않는 거리까지 와 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에르자일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말을 고르는 순간 고개가 내 어깨로 툭 떨어진다.

긴장이 풀린 듯하다.

“가자, 번천.”

오크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 *

“샤이한이다.”

한숨 돌렸을 때 대장 오크가 다가와 검을 내밀며 말했다. 오크들의 군례 비슷한 예의라는 걸 몰랐다면 적대적 행위라고 오해해도 충분했을 정도로 샤이한의 검을 내미는 기세가 강렬했다.

“로라스 진 베스타인이라 한다.”

오랜만에 풀 네임을 말하니 대장 오크의 표정에 약간 안도가 어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에듀를 안다.”

그리고 아까와는 분명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가족인가?”

“내 아버님이시지. 나도 너희 부족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 줄 수 있나?”

샤이한은 말했다.

“몰라.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해 왔거든.”

그의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저녁이었다.

부족 전사들이 괴이한 놈들이 나타났다고 했을 때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이 구역은 천년나무라 불리는 자신의 부족.

멋도 모르는 대형 마물 이외에는 이 지역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겨울이라 다행이었지.”

보통 성년 오크들은 며칠이고 사냥을 하고, 마을에는 여성 어린 오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

‘모든’이라 해도 될 만한 부족원 전부가 마을에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비축 식량을 축내며 말이다.

그 덕분에 그들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마석이 나오지 않는 놈들이더군. 마물이 아니라는 거지.”

오크들은 전투에서 별다른 피해 없이 승리했다.

“걸친 거라도 좋아야지. 가져올 만한 것도 없었다. 크응!”

샤이한은 화가 난 듯 콧바람을 뿜으며 말을 이었다.

여하간 그리 전장을 정리하는데 싸웠던 놈들과 비슷한 규모의 무리, 그것도 여러 무리를 확인했다.

오크 부족에 비해 수배는 되는 숫자.

오크들은 영역에 들어온 적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싸우고 또 싸웠는데…… 너무 많았어.”

그들의 전투를 봤듯이 그들은 오로지 전진뿐이다. 가진 힘으로 억누르는 방식. 하지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으니 생각이라는 걸 한 듯했다.

“애들하고 여자들은 피신시키고, 남은 이들이 놈들의 대장을 쳤다.”

“놈들의 대장?”

“머리통이 다른 놈들에 비해 수배는 컸지. 물론 그 머리통을 따는 데는 어렵지 않았어.”

기가 막혔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오크들에게 전술은 거의 없다 해도 무방했다.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그들은 적들을 돌파하여 큰 문어 대가리를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문어 대가리들도 그리 엉망이었던 듯했다.

그렇게 계속 싸웠는데, 싸우다 보니 그리 포위되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전술이 아닌 쪽수가 워낙 많아 그리된 것 같지만, 어찌 됐든 오크들은 위기를 맞았다.

“저기 불 쏘는 주술사가 아니었으면…….”

샤이한은 말을 끝내고 내게 안겨 있는 에르자일을 쳐다봤다. 다시 그 강렬한 검을 내밀며 말했다.

“오크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 무슨 부탁이 됐든 반드시 한 가지는 들어줄 것이다.”

“그건 얘가 일어나면 다시 이야기하고. 그래서 지금부터 어쩔 생각이지?”

“어떡하긴 또 싸워야지.”

그 난전을 경험하고도 그들의 전의는 여전했다.

이제 내가 본 것을 말해 줄 때였다.

“이게 전부가 아니야.”

“응?”

“오늘 싸운 놈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다른 산 쪽에 수십 배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다.”

“수십…… 배? 그건 말이 안 되는데…….”

“몬스터를 배출해 내는 던전이나 게이트가 나타났을지도 모르지.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곳. 그게 하늘 산맥이 아닌가.”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고민하는 듯했다. 한참 그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내게 묻는 거라면 도망쳐야지.”

표정을 다시 일그러트렸으나 저건 화가 난 거다.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르지만 하얀 이가 드러났으니.

“우리 영역이다. 그 누구도 침범을 허용치 않아.”

“물어서 답한 것뿐. 내 제안을 강요할 생각도, 너희의 결정을 바꾸게 할 생각도 없다.”

“…….”

“땅일 뿐이다. 다시 몰아내서 차지하면 그뿐.”

“잠시만 기다려라.”

샤이한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무리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몇몇 오크들을 불러 저희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주군 어쩌실 생각입니까?”

번천이 옆에서 묻는 말에 답했다.

“어떡하긴,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그리고 우리도 빠질 것이다.”

“수십여 배라면…… 수천이나 된다는 겁니까?”

“만에 가까울지도. 준비하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힘들 듯하다.”

“대체 어떤…….”

“그걸 모르니 문제지. 산맥의 몬스터들하고 싸우는 것을 봤다. 손잡고 내려오지 않은 게 다행이지.”

분명 다행이긴 하지만 놈들의 숫자 자체만으로도 걱정은 차고도 넘쳤다.

일만에 가까운 병력. 이게 마을로 돌아오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 그냥 창 하나 쥐고 앞으로만 걸어 나와도 막을 수가 없다.

‘요새도 아니고 개활지이니…….’

락은 평지에 있다. 목책이 있다 하나 이런 대군을 상대로는 턱도 없다.

‘꾸물거릴 수가 없겠구나. 락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사람이 죽기는 매한가지.’

그러고 보니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놈들의 목적이 뭐지?’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걸 알면 어떻게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쿠오오. 누구냐!”

외곽에서 소란이 있었지만 금방 잔잔해진다. 그리고 오크들과 한 사람이 보였다. 푸른 눈과 푸른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저 사람은…….”

옆에서 번천이 그를 보며 소리를 내었다.

“알아?”

“며칠 전에 만났습니다.”

그때 샤이한이 다가와 냅다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프라일!”

카아아아앙!

청년이 샤이한의 검을 여유 있게 막아 내며 이를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샤이한, 오랜만이다.”

“프라일! 너무 오랜만이잖아!”

둘은 서로를 보며 두 팔을 내뻗어 포옹했다. 절친한 전우로 보이는 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저놈. 내공을 익히고 있어?’

분명했다.

청년에게 흘러나오는 기운은 포스가 아닌 내공이다.

‘어떻게? 아니, 누구에게 배웠지?’

의문이 머릿속에 한가득 떠올랐다.

* * *

“흐음.”

에듀는 나직이 신음성을 냈다.

수많은 대군들이 하늘 산맥에 있으며 어디로 진군 중인데, 그 목적지를 알 수 없다. 또한 터전을 잃은 이천에 가까운 오크들이 락에 오기를 희망한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에듀를 그리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 어디 있느냐?”

“이틀 거리에서 대기 중입니다.”

로라스는 그리 대답하며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걸 거부하면, 메타린 평야 쪽으로 빠져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메타린?”

“네. 거기에서 산다는 사람이 오크들과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으음…….”

에듀는 다시 한 번 소리를 내고는 드리프를 보며 물었다.

“가능하겠나?”

“그게…….”

드리프는 난처한 표정으로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아니겠는가?

근래 락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하나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마탑의 사람들, 상인들, 용병들 전부 포함해도 이천 명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천의 오크가 마을로 들어온다면 어찌 되겠는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공간이야 있지만 그들을 먹이고, 재울 물자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기존 영지민들은 그들에게 익숙하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경계하고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드리프는 계속 부정적인 말을 했다. 그 모든 것을 들은 에듀가 결정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이 맞아. 하지만 이번에는 받아들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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