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59화 (5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59)

발소리를 들어 보니 일정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이다.

‘왔군!’

그리 생각하자마자 드리블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들어오세요.”

로라스의 대답에 드리블과 브렌드가 들어왔다.

“주군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깨어나시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특별한 위험은 없습니다.”

로라스의 대답에 두 기사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매지스터의 약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공자께서 시기적절하게 발견한 것도 큰 다행이고요.”

두 기사의 말에 로라스는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저기…….”

드리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언제 소동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입니다.”

브렌드도 말했다.

“죽은 사람들과 부상당한 사람들에게는 위로금을 주고, 이번 토벌에 대한 보상을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한 게 없지 않나요? 고정금으로 계약한 것도 아니라서 전리품에 대한 비율을 올려 준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돌아가면 그들에게 남는 것이 별로 없으니.”

“에렌에서 온 지원군은 몰라도 참여한 용병대는 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약간은 지원을 하시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드리블이 하는 말에도 로라스는 단호했다.

“계약대로. 일단은 그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후 아버님이 깨어나면 결정하실 겁니다.”

드리블과 브렌드는 잠시 서로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엄중히 주의를 주세요. 지금 토벌대는 엄연히 군대. 군율에 따르고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다고요.”

“네.”

두 기사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자 로라스는 굳은 표정을 풀었다.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로라스도 현재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계약이라는 명분은 이쪽이 쥐고 있다.

챙겨 주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반응을 보고 싶었다.

락은 어떤 직업의 사람이든 무조건 환영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개나 소나 막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용병대는 개나 소는 아니고 환영할 만한 인력이지만 더 중요한 일을 맡기려면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였다.

사기가 떨어진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규칙대로 하라는 건 말이다.

여하간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내력을 주입하는 것을 계속 했다.

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정신을 차리리라.

한숨 돌리자 아까 의문스러웠던 일이 떠올랐다.

‘그럴 수가 없는 건데…….’

개천지보는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 가야 하는 무공. 그럼에도 촉천의 내력을 썼다.

‘특별한 건 없었는데 말이지.’

당장이라도 확인을 해 보고 싶지만, 그 정도로 관조하려면 경호는 필수다.

아무래도 영지에 돌아가면 폐관 수련이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일단은 운기조식을 했고, 어느새 천막에 빛이 스며들었다.

토벌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법인데.’

이 많은 인원들 중 한두 명, 또는 한두 팀은 분배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비록 표정은 썩어 있지만 말이다.

물론 동료와 불만을 털어놓는 이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개인 용병들이고 말 그대로 불만이다.

폭동의 조짐 따위는 없었다.

‘이 정도면 섭섭해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줘도 되겠다. 어차피 아버님이 그렇게 하시겠지만.’

사실 아버님이 혼수상태가 아니라면 지금 축제 분위기였을 것이다.

표정이 썩기 전에 어느 정도 분배해 줄 거라 말을 꺼내셨을 테니까.

이번 토벌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대성공이다. 인명 피해가 있긴 했지만, 살기 위해 오히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았는가.

최선을 다한 상태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사흘 후 우리는 락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그때쯤 아버지가 깨어나셨고, 또 예상대로 모두를 불러 모아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셨다.

그에 모든 이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은 물론이었다.

‘아! 의미가 없었네.’

그 광경을 보며 용병대의 심성을 본 것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몇 년 동안 토벌에 참여한 그들은 아버지의 인품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 분명 한몫 떼어 주리라는 것을 말이다.

마을은 대축제 분위기였다. 그 전에 죽은 이들에 대해 위로의 시간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이런 락이 좋았다.

‘그건 그거고! 이제 우리도 전리품 분배를 해야겠지.’

무슨 전리품이냐고?

마나석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아버지가 거의 균열을 냈던 핵 하나와 내가 깨부순 핵 하나.

사실 속이 쓰리다.

이번에 전리품으로 얻은 마나석의 가치가 어마어마해도, 오델리움을 캐낼 수 있었다면 락의 마르지 않는 수입원을 가졌을 텐데 말이다.

물론 핵을 깨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에르자일과 번천을 방으로 불렀다.

“이거 어떻게 나눠 줄까?”

단도직입으로 묻는 말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뭘 말입니까?”

번천의 물음에 답했다.

“아버지가 처리하신 건 토벌대의 몫이지만 우리가 처리한 건 우리 몫이다.”

“그거…… 나눠 주시는 거였습니까?”

“안 받으려고?”

“그건 주군이 혼자…….”

에르자일도 옆에서 말했다.

“그건 생각 없어. 그런데…….”

그녀는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나 주면 안 될까?”

그러고 보니 토막이긴 하지만 오델리움 조각도 있었다.

“어려울 거 없어. 그건 너 가지고. 마나석은?”

“이걸로 충분해.”

번천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딱히 욕심은 없습니다. 어차피 여기에 지내면서 돈 쓸 일도 없습니다.”

에르자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번천마저 물욕이 없는 건 조금 놀랍다.

“욕심을 조금 부려. 욕심은 인간을 발전하게 만든다. 복수와 같은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재물에 초연하다고?

그건 정말 없어 봐서 하는 말이다. 왕년의 유역후 정도가 아니면 모를까?

다다익선. 재물은 많을수록 좋다.

“주군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물의 마법이 담긴 마법검. 탐나지 않아?”

번천이 고개를 번쩍 들며 날 쳐다봤다. 이제야 재물의 가치를 깨달았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네 몫으로 구해 보겠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인챈트 수련을 중단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물론입니다.”

환한 표정의 번천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는 확인할 차례인가?’

이번 토벌로 기본적인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터. 게다가 수련으로 촉천에 도달했음을 확인하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오래 기다렸고 준비해 온 것들을 실행할 차례였다.

* * *

저택의 지하 공간을 내가 쓰기로 했다.

폐관 수련을 통하여 제대로 관조하는 작업이다. 준비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벽곡단이 있으면 좋겠으나, 이 세계에는 그런 게 없다. 마른 식량과 식수를 준비했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만사 불여튼튼이라 부모님과 기사 세 명, 그리고 에르자일과 번천을 제외하고 내가 폐관 수련하는 것은 비밀에 부쳤다.

번천에게도 따로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사별삼일 괄목상대라는 표현은 번천에게 해당되었다.

기연도 기연일뿐더러 그는 이번 던전 안에서 노력의 결실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입문공을 마무리하고 일보를 내딛는 그를 봐 주는 것만으로 나의 기초를 다시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나에 대한 관조를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나는 촉천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둘째, 지나친 속도는 몸에 무리를 준다. 그런데 왜 몸은 오히려 힘이 넘치는 것인가?

셋째, 전생은 전생일 뿐인데 왜 자꾸 그것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인가?

특히 세 번째는 내 인생의 큰 걸림돌이다. 정체성이 흔들린다.

아마 육체적인 문제보다 마음공부에 치중해야 할 터.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 * *

“집 안에 있음에도 한 번 보지를 못하니…….”

메어리의 눈에 물기가 가득했다.

에렌에 보냈을 당시 툭하면 로라스가 보고 싶어 울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데도 보지 못하니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에듀는 그녀를 살며시 안아 주며 말했다.

“로라스가 당부하지 않았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아들을 향한 아내의 마음은 거의 집착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레지온 사건 때부터 로라스는 변했다.’

확실했다.

당시 기겁할 일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오히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강화시키는 사건이었다.

애늙은이 같았던, 말수가 지극히 적었던, 어미에게 어미라 부르지 않고 아비에게 아비라 부르지 않던, 그냥 혼자 사는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로라스가 변했다.

어머니,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고, 스킨십을 싫어하던 아이가 먼저 손을 잡아 줬다.

이 모든 게 목숨 걸고 로라스를 지키려 했던 메어리 때문이었다.

“로라스가 어디 허튼짓을 할 아이요? 애답지 않은 거 하나 빼고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걱정시킬 일을 하지 않은 녀석이오.”

“그게 더 걱정스러워요.”

“그러니까. 그래도 에렌에서 돌아왔을 때, 그리고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 당신 옆에만 있었잖소. 아는 거요, 당신의 마음을.”

“…….”

에듀는 아무 말 못 하는 메어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 아이가 시간이 필요하다지 않소. 그럼 기다려야지.”

“식수는 계속 공급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제가 해도 되는데 굳이 에르자일을…….”

“그녀는 마법사요. 매지스터도 뭔가 수련하는 것 같은데 너무 조바심하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계획한 것이 끝나면 그 누구보다 당신에게 먼저 올 테니.”

메어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쿠아아아아앙!

순간 폭음과 함께 방이 울렸다.

폭음만 아니었다면 지진이라 생각했겠지만,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메어리와 에듀의 시선이 순간 동시에 부딪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부가 나가니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집에 있던 드리블도 1층으로 달려 나갔다.

“어디서 난 소리냐!”

에듀가 2층에서 내려가는 소리에 하인 하나가 말했다.

“지하…… 지하실이었습니다.”

아니길 바란 대답이 튀어나오자, 에듀는 메어리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내가 가 볼 테니.”

“저도…….”

“기다려.”

에듀는 단호하게 말한 후, 드리블과 함께 달렸다. 그리고 지하실에 도착했을 때, 지하에서 먼지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로라스!”

에듀는 소리를 치며 그대로 삭제) 달려 내려갔고, 먼지 자욱한 공간에 서 있는 로라스를 볼 수 있었다.

“로라스!”

“아! 괜찮습니다, 아버지.”

로라스의 대답에도 에듀는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곳은 없느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수련 중에 잠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혹시 포스가 폭주한 것이냐? 아니, 가문의 포스는 쉽게 폭주하지 않는데. 혹시 마나라도 역류한 것이냐?”

로라스가 4클래스의 마법사라는 걸 에듀도 알고 있었다.

가문의 포스는 쉽게 폭주하지 않는다. 게다가 로라스의 무공은 자신도 알고 있기에, 혹시 마나 쪽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한 것이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로라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막판에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정말 큰 문제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리 큰 소리가 들렸는데.”

“어머니! 어머니는요? 많이 놀라셨을 텐데.”

“일단 올라가자. 네가 직접 안심시켜 드리려무나.”

“네.”

“괜찮으십니까, 공자?”

“드리블 경에게도 괜한 걱정을 끼쳤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올라가지요.”

그렇게 세 사내가 1층으로 올라오자, 그 앞에는 메어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라스는 다시 한 번 작은 사고라 이야기하고는 돌아가라고 말했다.

“끝났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고는 메어리에게 찰싹 달라붙어 수련이 끝났다는 선물을 안겨 주며 안심시켰다.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거지?”

“네. 정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로라스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