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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58화 (5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58)

키워 먹어?

아니, 지금 핵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어차피 계속 생기는 거라면 통제하며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에르자일은 경악하며 말했다.

“로라스, 무리야. 이 던전은 지능형이야. 그것도 매우 지능이 높은. 네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번 토벌대가 다 몰살당했을지도 몰라.”

“다 잘라 버렸잖아. 남은 몬스터들이 있겠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을 테고.”

로라스는 중앙 기둥에 눈처럼 박힌 검붉은 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도 사지가 잘린 상태인지라 뭘 할 수 있는 게 없을걸.”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러다 잘린 부분이 다시 이어지면?”

“그 전에 캐내야지. 우린 금광보다 가치 있는 광산을 가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생각해 보니…….”

로라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거 자라잖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말이지. 농사짓듯이 잘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에르자일은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물론 로라스의 말도 일리는 있다.

던전은 매우 특별하다. 찾아봐야겠지만 스스로 몸집을 키우는 이런 지능형 던전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숨줄은 붙여 둔 채, 가축을 키우듯 키워 계속 살점을 잘라 먹는다는 발상은 처음이다.

“동굴을 움직이는 조직이 얼마나 빨리 자라나는지는 앞으로 연구를 해 봐야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

“그러다 폭주하면?”

“더 좋지. 오델리움. 엄청 비싸지 않아? 광산 하나로 최대의 오델리움 생산지가 될지도 모르잖아. 락에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해.”

에르자일은 이제 혼돈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헤르메스 님에게 던전의 지분을 나눠 주면 마탑도 엄청 키워 주실걸. 오델리움. 마법사가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금속이잖아.”

그 짧은 시간에 사업까지 생각한 로라스를 보며 에르자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말이 있어. 지능형 던전은 반드시 파괴하라.”

“누가 한 말인데?”

“수많은 헌터, 모험가들이. 그만큼 이런 지능형, 게다가 몸집까지 있는 던전은 너무 위험해.”

“힘이 없었나 보지.”

“응?”

로라스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관리할 힘 말이야. 호랑이도 길들이면 개로 변해. 지능형이라면서? 그럼 더 잘됐지. 길들여야지.”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미 로라스는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번천.”

“…….”

“번천!”

“네, 주군.”

옆에서 멍하니 있던 번천이 정신을 차리며 다가왔다.

“잘했어. 잘했는데 몸으로만 싸우면 어떡하나?”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근 배웠잖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았을 텐데…….”

“공부하고 있습니다.”

“늦지. 저 돌인형들. 근육이 아닌 단순하게 관절만 사용하니 더 예측하기 쉬웠을 텐데 왜 이리 밀렸어.”

번천은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도 전투가 끝난 후에 너무 다급한 나머지 피하고 도망치는 데만 급급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석상이 움직인다는 놀라움. 그 크기에 압도되어 제대로 한 방만 맞으면 갑주째로 으스러질지 모른다는 공포.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이성을 가지고 석상을 상대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로라스는 번천에게 살짝 소리 높여 말했다.

“네가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나도 알아. 생소한 광경에 압도당했겠지. 사람은 익숙지 않은 것에 당황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몸은 정직하잖아. 너는 반사적으로 움직일 정도로 훈련했으니까.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명심하겠습니다.”

“탓하는 게 아니라 알려 주는 거야. 돌인형들을 상대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아까워서.”

번천은 고개를 숙였다.

로라스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언제 석상을 상대로 실전을 치러 보겠는가?

로라스의 말대로 의지를 가지고 제대로 싸웠다면 이후 분명 체감하는 것이 있을 텐데 그 기회를 날린 것이다.

“다음에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번천이 결의 어린 표정으로 하는 말에, 로라스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말했다.

“이미 몸을 쓰는 훈련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하는 거 알아. 마음공부도 필요해. 나중에 상상 훈련을 가르쳐 줄게. 내 일과에 그걸 집어넣자.”

“감사합니다, 주군.”

“로라스!”

그때 저 멀리서 로라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영주님 목소리입니다.”

번천의 말에 로라스는 주변을 훑었다.

여기로 들어오는 입구는 하나. 그런데 들리는 건 입구가 아닌 벽 너머에서였다.

‘다른 길로 오신 건가?’

로라스는 의아해하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콰콰콰광!

그때 다시 굉음이 들렸다.

“로라스, 핵을 파괴해야 해! 여전히 움직이고 있어!”

그때 헤르메스가 소리를 질렀고, 로라스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하아앗!”

동굴에 굉음과 함께 기합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었다.

로라스는 빨리 핵에 다가가 커터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돌도 단숨에 가르는 로라스의 커터. 하지만 핵은 쪼개지지 않았다. 단지 금이 갔을 뿐이다.

까아아아앙!

다시 한 번 휘두르자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그 파편이 무수히 떨어졌고, 깨진 던전핵 안에는 눈부신 빛을 발휘하는 마정석이 있었다.

로라스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것으로 끝이 나야 했다.

쿠우웅. 쿠우웅.

하지만 벽 너머의 싸우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로라스는 다급해졌다.

“대장 몬스터나 핵을 깨면 던전이 사라진다고 하지 않았어?”

로라스의 물음에 에르자일은 경악하며 외쳤다.

“더블 핵!”

“핵이 두 개인 던전도 있어?”

“드물게! 어떡해?”

“어떡하긴!”

로라스는 살짝 울리고 있는 벽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부수고 넘어가야지!”

* * *

“으으으으으!”

전신이 부서질 듯한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 정신이 드십니까?”

몽롱한 와중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뜨이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뜨니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로……라스…….”

에듀가 그리 이름을 부르며 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전신에 또다시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타박상이 심하십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핵. 핵이 있다. 그걸 부숴야 해.”

“아버지가 이미 부수지 않으셨습니까.”

로라스의 대답에 에듀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성공했나?’

중과부적이었다.

수많은 마물에, 마법진으로 생각되는 바닥에 그려진 그림들은 발을 옭아매고, 어둠 속에 적응된 시야는 사방에서 뿌려지는 빛에 제대로 앞을 보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에듀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핵을 파괴하는 것.

마물의 공격을 반쯤은 무시하고, 무거워진 발을 떼며 핵에 전진했고, 그것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에듀였다.

시그탑에게 뒤처지긴 했으나 그 역시 마스터를 눈앞에 둔 무인.

불굴의 의지로 치고 또 쳐 마침내 그것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에듀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냐?”

“모르겠습니다. 파괴하는 순간 이리로 왔으니까요. 아버지가 깨어나셨으니 다른 이들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영주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에르자일이 손 한 뼘 길이의 약병을 에듀에게 건넸다.

에듀는 약병에 담긴 푸른색의 액체를 보며 말했다.

“귀한 것을. 나중에 뒀다 매지스터가 쓰시지요.”

“드세요. 취미가 약물 조합이라 다시 만들면 돼요.”

“푸른색 포션은 매우 귀한 거라 알고 있습니다. 조제도 매우 까다…….”

그때 로라스가 약병을 뺏더니 마개를 뽑아 바로 에듀에게 내밀며 말했다.

“드세요. 그래 봤자 약물일 뿐입니다. 귀한 거라면 재료를 구해 주면 되고요. 에르자일도 조제 연습을 할 수 있으니 더 좋을 겁니다.”

“맞아요, 영주님. 재료야 하늘 산맥에서 다 구할 수 있는 것이니, 나중에 천천히 구해 주셔도 됩니다.”

에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약병을 받았다. 그것을 마신 그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

로라스가 살짝 놀라 에듀를 불렀다.

“걱정하지 마. 약에 수면 성분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그런 거니까.”

에르자일은 그리 안심시키고는 로라스의 눈치를 살짝 보며 물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뭐가?”

“핵 파괴한 거. 광산으로 쓸 거라면서?”

“그깟 철 쪼가리…….”

부친의 머리카락 한 올보다 중하지 않다는 끝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뱉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에르자일이나 번천이나 그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여기서 본 것은 비밀이다.

로라스의 당부. 그리고 던전 안에서 보였던 신위. 특히 마지막에 에듀를 구하기 위해서 보여 준 움직임은 정말 인간이 아니었다.

에르자일도, 번천도 분명 알고 있다.

로라스가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그가 몬스터들을 처리할 때 드러낸 표정 등을 생각하면…….

맞다. 무서웠다.

상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상상이 됐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던 로라스와 던전 안에서 보는 로라스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인간 같지 않은 그 괴리감은 지금 눈 녹듯 사라졌다.

에듀를 구하기 위해 그리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위해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던전이 사라지자 수색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 * *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토벌대란 이름으로 뭉친 집단이 이리 양분되어 표정이 좋지 못한 일은 드물다.

분류하자면 토벌대 중 락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의 표정이 그랬다.

던전의 함정에 빠져 돌덩어리를 피해 도망만 치느라 소득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던전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에듀 홀로 해낸 것이다.

거기에 손 하나 보탠 것이 없으니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

주변을 돌면서 몬스터들을 사냥했지만,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준비 없이 산맥 안으로 더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다. 그런 여러 이유로 소득 없이 돌아오니 표정이 좋을 리 없는 것이다.

락의 사람들은 달랐다.

병사들부터 자경단원까지. 자신들의 영주는 단 한 번도 그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법이 없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분배 규칙을 떠나서 최소한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이번 토벌의 결과물은 대형, 그것도 무려 지능형 던전의 핵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아이 머리통만 한 마나석이라고 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엄청 귀한 보물이다. 최소한의 분배만 받아도 몇 년은 배 굶주릴 필요 없는 충분한 재물이 들어올 것이다.

그 탓인지 토벌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수습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토벌대의 책임자인 에듀가 여전히 혼수상태라 쉽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

돌아가는 길에 로라스는 에듀의 손을 잡고 쉴 새 없이 운기조식을 했다.

몸 상태를 고려하여 약한 진기를 끊임없이 에듀에게 주입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가슴에 쌓인 응혈을 풀어 주고 싶었으나, 몸 상태로 봐서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베스타인 가문의 포스 서클레이션도 익숙한지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에듀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기에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로라스는 운기조식을 계속하며 생각했다.

‘으음, 내가 언제 촉천에 이른 거지?’

분명 아직 개천지보 오보인 촉천에 이르지 못했다.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던전에서 썼던 초식이며 움직임은 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흥분해서 무리하게 뽑아냈나?’

생각해 보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현재 몸 상태는 오히려 좋았다. 주화입마는커녕 넘쳐 나는 기력을 주체 못 할 정도다.

‘자세히 점검해 봐야겠는데…….’

로라스가 그리 고민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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