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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56화 (5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56)

퍼억퍼억! 퍼억퍼억! 퍼억퍼억!

제대로 끊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돌덩이부터 깨부쉈다. 그리고 내 봉 크기만 한 두께의 금맥이 보였다.

그래, 힘줄이든 뭐든 진짜 금이면 이번 토벌 대박 났다.

터어어어어어엉!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내리쳤다.

구르르르르르르르.

공간의 진동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버티네.

단번에 끊어 내려 했는데 말이다.

아! 손에 든 게 둔기지.

슬쩍 에르자일을 보니 신기한 듯 금맥을 보고 있다.

“에르자일.”

“응?”

“약속한 거 잊지 마.”

“약속? 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커터를 빼 들었다.

검술이나 커터로도 발현할 수 있는 초식이 하나 있다.

검에서 홍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약한가?

그러면 여기에 마나의 불의 속성을 더한다.

마검사란 대단한 게 아니다. 포스에 제대로 된 마나의 속성 하나만 쓸 줄 알아도 되는 것인데. 물론 그 위력은 증강된다.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낙양(落陽: 해를 떨어트리다).

막대한 내력이 들어가나 한 방의 위력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검의 궤적으로 돌가루들이 빨려 들어갔다.

파공음마저 집어삼키는 홍염의 커터가 그대로 금맥을 내려치고, 다시 한 번 올려 쳤다.

끄아아아악!

귀가 찢어질 정도의 괴성이 들렸다.

돌덩어리 주제에 비명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투욱.

떨어진 건 놈의 핏줄인지, 힘줄인지 모를 금빛의 금속이었다.

“멈췄어!”

에르자일의 말에 앞을 쳐다보았다.

시각은 오감 중 가장 속이기 쉬운 감각이다.

그래서 무공 중에 안력(眼力)이라는 부문을 따로 두어 훈련하는 것이다.

에르자일의 말대로 동굴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벽은 여전히 울고 있다.

혹시 생명체처럼 흐느끼고 있는 것인가?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잘라내 버린 금빛 금속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양쪽 전부의 금속이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니다. 동굴 안쪽으로 뻗어 있는 쪽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금속이 조직, 힘줄, 뭐라 표현하든 그것으로 동굴을 움직이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럼 반대쪽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인가?’

반대쪽으로 뻗어 있는 금속이 여전히 박혀 있는 것으로 보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뜻.

‘재미있는 놈이네.’

이 금속이 동굴에 얼마나 뻗어 있을지, 또 얼마나 조종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모조리 잘라내 버리면 그뿐.’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였다.

“이거 오델리움인데…….”

고개를 돌리니 에르자일이 잘라 낸 금속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잘린 단면을 내게 보여 줬다.

금빛 금속 가운데 안쪽에 은은한 검은 빛을 발하는 알갱이들이 박혀 있었다.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오델리움을 정제할 때, 금 60%, 은 25%, 그리고 잡철과 합쳐서 나온다고 하셨거든.”

“…….”

“이게 오델리움이라면 이번 던전은 정말…….”

상황만 이렇지 않다면 쾌재를 불렀을 정보이나 기뻐하기에는 흩어진 사람들이 걱정이다. 그걸 알기에 에르자일도 말끝을 흐리는 것일 터.

“잘됐네. 어차피 죽여야 할 놈.”

죽은 이들의 위로금이나 두둑이 챙겨 볼까.

‘놈. 기다려라.’

동굴이 아닌 놈이라 부르기로 했다.

3~4시간을 그냥 걷기만 할 정도로 이 동굴은 거대하다. 그리고 절대 만만치 않으리라.

아마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정교하게, 빠르게 동굴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각조각 해체해 주마.’

다시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구르르르르릉.

동굴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돌먼지가 휘날렸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용병 중 누군가의 외침에 동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지진이든 아니든 일단 나가야 합니다.”

외침은 기폭제가 되어 집단의 혼란을 만들었다.

이런 공포와 혼란 속에서 질서가 바로 붕괴되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에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가야 함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갈 수 없다. 로라스를 찾지 못했다.

“브렌드!”

“네, 주군.”

그렇다고 모두를 여기서 몰살시킬 수는 없기에, 브렌드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라.”

“주군!”

“나도 로라스를 찾는 즉시 나가겠다.”

“저도 남겠습니다.”

“브렌드! 명령이다!”

브렌드는 에듀와 같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맞는 판단인지는 뻔한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브렌드는 곧바로 사람들을 모았다.

“우리는 탈출한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제가 남겠습니다.”

“저도 남겠습니다.”

락의 병사들과 자경단원 중 몇 명이 자청하여 남겠다고 한 것이다.

“영주님을 어찌 혼자 둡니까? 보좌해야죠.”

어느 영지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 하나가 소리쳤다.

“영지민이 남는데 제가 어떻게 나갑니까? 영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공자님을 찾아야지요. 하루를 배워도 스승이라 하였는데, 내 공자님 덕에 평생의 숙원을 이뤘습니다. 여기에 두고 못 나갑니다.”

그리고 로라스를 누구보다 따랐던 헌터 토니까지.

자청해서 수색을 계속하겠다는 지원자는 대충 헤아려도 스물은 되는 듯했다.

“불가한다. 나가랏! 명령이다!”

어쩌면 감동적인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을 에듀가 단호히 차단했다.

“브렌드! 뭐하는가! 통솔하여 나가랏!”

성난 야차의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호통치는 에듀의 말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사람 좋은 영주님.

착한 영주님.

언제나 웃는 영주님.

에듀를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지만, 저런 모습에 가까운 것은 없었다.

그만큼 이질감이 들었고, 외침에 담겨 있는 포스는 단숨에 그들을 옭아매었다.

“나간다. 명령 불복종은 돌아가서 반드시 벌을 내리겠다.”

브렌드가 그리 수습하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 *

‘주군을 남기고 어딜 나가?’

번천은 에듀가 브렌드를 부르자마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대열에서 이탈했다.

혼란 속이라 사람 하나 빠지는 건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들리는 에듀의 외침에 자신이 눈치 빠르게 행동했음을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주군, 어디 계십니까!’

찾아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래야 할 이유는 너무 많다.

자신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봐 주고, 또한 자신의 말을 믿어 주었으며, 자신에게 길을 제시해 줬다.

안다.

지금 자신이 여기서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이 빌어먹을 던전은 정말 흉악하여, 어찌 손을 써 볼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번천은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믿었다.

대체 이 근거 없는 믿음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번천은 정말 믿었다.

지진은 계속되었고, 앞으로 나가는 길의 입구 중 몇 개는 이미 막혀 있으나 불안한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주군의 사람. 반드시 연결된다!’

번천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나를 믿어. 그리고 따라와. 네 그 소원. 내가 도와준다.

주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네. 믿고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어디 계십니까!”

앞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으나 번천은 검에 건 마법에 의지하여 계속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길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어느 순간 그는 다리 힘이 풀리고 말았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누구의 비명인지, 아니면 외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우아아아아아아아!”

번천은 공포에 질리는 것 대신 기합성을 내지르며 더 나아감을 선택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저런 비명 하나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각오가 아깝다.

마음을 그리 먹으니 움직이는 속도가 오히려 빨라졌다. 귀신이든 몬스터든, 나올 테면 나와라.

모조리 쳐 죽이고, 못 죽이면 자신이 죽으면 그뿐.

저벅저벅.

공간은 던전임에도 산길인 듯 습기 가득 찬 흙바닥이 펼쳐지고, 앞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주군?”

토벌대가 전부 자신의 뒤편에 있는 만큼, 자신보다 앞서 있을 사람은 오직 이탈자뿐.

번천은 검을 내민 채 천천히 전진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으며, 보이지는 않았으나 인기척이 느껴졌다.

‘헛!’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본능이 발휘된 건지 몰라도, 번천은 놀람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젖힐 수 있었다.

휘이익!

그 동작이 그를 살렸다.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순간 실드를 시전했다.

터어엉! 터어엉!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진동이 몸속에 퍼졌다.

‘이것들은 뭐냐!’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으며 뒤로 물러나 포위당하는 것을 피한 번천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족보행을 하고 있으나 산짐승도, 물짐승도 아닌 괴이한 모양의 머리통에 꼽추처럼 휘어진 허리, 개구리 발바닥 같은 손으로 창을 쥐고 있는 생명체였다.

어떤 몬스터인지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

“후우웁!”

번천은 호흡을 들이켜며 검을 치켜세웠다.

검의 위치가 달라지니 시야가 좁아진다.

어둠은 불리하다. 하지만 그것에 불평할 시간은 없었다.

기르르르!

괴상한 소리를 낸 몬스터들이 창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다수일 때는 숫자부터!’

번천은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몸에 여력이 있을 때 숫자를 줄여야 한다.

휘이이익!

허리를 뒤틀었으나 창은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피하지 못한 게 아니다.

상처 입지 않으려면 피하는 것 대신 검으로 쳐 내 방어했을 것이다.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다면!’

맞아 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스으으으윽.

손에서 느껴지는 적응되지 않는 괴이한 감각을 느끼며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이후 번천의 싸움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맞아 줄 건 맞아 주고 확실하게 목을 날리거나 팔을 날렸다.

아프긴 하다.

하지만 번천은 이 정도의 고통에 해야 할 움직임을 해내지 못할 정도로 풋내기가 아니다.

어느 순간 번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웃긴 일이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제법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열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맞서 싸우기는커녕, 등 돌려 달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제법 의젓하게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자잘한 부상 몇 개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끼이이이이이이! 끼이이이이이이!

시야에 닿지 않는 저 앞쪽에서 몬스터들이 내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몬스터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뉘미!’

욕이 나올 상황이고, 힘 빠질 상황이다. 번천은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붙잡았다.

도망칠 때 치더라도 공포에 질리면 끝이다.

그때부터 혈투가 시작됐다.

검을 휘두르고, 찌르고, 또 베었으며, 찔리고, 베이고를 반복했다.

‘난 정말 대단한 걸 배웠구나!’

그리 상처 입고 검을 휘둘렀음에도 아직 여력이라는 게 있는 상황이다.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포스는 미약하게나마 계속 공급되고 있었고, 근육은 약간의 통증만 호소하고 있었다.

죽도록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주군의 훈련 계획이 지금 빛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주군을 만난 지 몇 년 만에 이리되었는데, 앞으로 더 훈련하면 어찌 될 것인가?

이 정도 속도면 나이 마흔쯤에는 원수와 한바탕 해 볼 기회도 있을 것이다.

“안 죽어!”

번천은 다시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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