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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54화 (5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54)

하늘 산맥.

세계 삼대 금지구역이면서 모든 모험가, 헌터들의 성지 같은 곳.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짐작을 못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구도 끝에 다다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노멀존.

용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산맥 주변의 영지가 개척한 지역을 노멀존이라 불렸다.

예측하기로 노멀존은 하늘 산맥 전체의 백분지 일도 안 된다고 했다.

저벅저벅.

사방에 찰진 흙바닥을 걷는 소리만 울린다.

락의 사람들. 그리고 용병들과 지원 나온 병력의 얼굴에 짜증이 역력하다.

말이 올라갈 수 없는 길.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저항감과 습기 가득한 공기가 그들을 그리 만들었다.

산속인데도 또 왜 이리 더운 건지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법하다.

그 탓에 누가 건드리면 폭발할 이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휴식 시간이다.

바닥이 물기 가득하여 눕지 못하고 기대거나 앉는 게 고작이니, 휴식인데도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열정은 사나운 폭풍에 맞서고…….”

그래서?

불렀다. 젊었을 적 유역후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의기는 하늘처럼 높아 사해를 누린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하늘과 땅이 나를 통해 호응하니, 대장부는 뜻대로 걸으리라.”

노래에 내력을 실었다.

‘마법의 근원이 노래라지?’

말에는 힘이 있고 가락, 리듬은 사람을 흥하게 한다.

지금 부르는 노래는 짧지만 그 효용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천황성의 무가(武歌: 무인의 노래)가 되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흥미로운 듯 날 쳐다봤고, 또 몇몇 이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뭔 노래냐는 듯이 봤다.

깔아 준 가죽 위에 앉아 있는 에르자일을 쳐다봤다.

“응. 왜?”

대답 대신 허공에 손목을 빙빙 돌렸다.

에르자일은 눈치 빠르게 그대로 지팡이를 들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열을 식혀 주니 사람들의 표정이 좀 풀어지고, 그제야 내 노랫소리에 더 귀 기울여 듣는다.

“하늘과 땅이 나를 통해 호응하니…….”

이윽고 같이 중얼거리는 사람이 생기고, 마치 하품이 전염되는 것처럼 노래가 전염되기 시작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이…… 거기에만 신경 써도 습함이 덜 할 것이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처음으로 오른 하늘 산맥은 참…… 지랄맞은 느낌이다. 중원의 천중산과 비슷하달까.

상대가 누구였더라?

아마 배교들의 무리였을 것이다.

놈들은 온갖 사술들은 물론이고 함정에 기관진식, 그리고 별 괴상한 독충까지 동원해서 준비했었다.

그 모든 게 유역후를 잡기 위한 것.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모두 박살 냈다.

그때처럼 기관진식이 나오면 박살 내고, 괴이한 술법을 부리면 그 입을 다 찢어 놨다.

독충? 그런 건 삼매진화 몇 번이면 사라진다.

‘설마 여기도 그런 게 있으려나?’

던전에 대해 조사해서 내린 결론이 있다.

그래 봤자 몬스터들이 사는 집이라는 것.

물론 방심할 생각은 없다.

강호 초출이 어디 실력이 없어서 뒈지는가? 뭘 몰라서 뒈지는 거지.

그런 면에서 나도 던전 초출이다.

자신 있게 나서서 무슨 사고라도 나면 철없는 애송이가 다 망쳐 놨다는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런 수치는 있을 수 없는 일.

마침내 던전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군. 대형급이야.”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크기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번천에게 물었다.

“던전이 클수록 위험한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몬스터의 힘은 던전의 크기에 비례하고, 동굴의 입구가 곧 어떤 몬스터가 사는지를 알려 주는 거니까요.”

“많이 다녀 봤어?”

“많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대형급을 제외하고는 다 한 번씩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길 잃지 말라고.”

“한 번 더 그런 기연이 있으면 헤매도 되지 않을까요?”

농을 농으로 받아치는 번천을 보며 웃었다.

‘하긴 그 정도의 기연이라면.’

생각해 보면 전생의 나에겐 그런 운이 없었다.

지독하게 노력했고, 죽기 직전까지 실전으로 감각을 쌓았다.

‘그 덕분에 유역후가 탄생한 거겠지.’

그런 기연 한 번 없이 최정상에 올랐기에 그만한 힘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곧 내가 가질 힘.

“이리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사들을 지휘하셔야지요.”

그때 브렌드가 슬며시 내 옆으로 오는 걸 보며 말했다.

내 실력이야 알지만 그래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마치 내가 에르자일을 걱정했던 그런 마음일 터.

“대형 던전이라고 하지만 경험이 많으니 스스로 어찌 행동해야 할지 압니다. 용병들도 어중이떠중이가 없으니까요.”

브렌드의 말에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여태 쌓아 올린 신뢰가 있는데, 눈에 띄게 행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상시대로 하세요.”

락의 토벌대는 용병들에게 신뢰받는다.

다른 영지의 토벌대 대부분이 용병들을 화살받이, 칼받이로 쓰지만 락은 아니었으니까. 기사들이 선두에 서고, 병사들과 용병들이 바로 그 뒤를 따른다.

한마디로 영지의 병사와 용병들을 차별화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대우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 용병들에게 락의 의뢰는 신용 등급 최상급이 되었다.

어차피 목숨 걸고 싸우는 직업이니, 목숨값 제대로 쳐주는 고용인이 더 좋다는 식이다.

분명 이건 좋은 일이나 이제는 그것도 부족하다.

용병대의 신뢰와 별개로 소문이 더 퍼져야 한다. 락에 가면 반드시 일거리가 있고, 확실한 보상을 보장한다는 소문이 말이다.

“벌써 이쪽을 보는 것 같군요. 던전 진입의 선봉대 문제는 늘 예민하다고 들었습니다.”

브렌드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제가 선두에 서겠지만, 공자님은 절대 나서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브렌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패를 챙겨 달려 나갔다.

아버지가 브렌드와 드리블, 에렌에서 온 지원대의 대장, 그리고 세 명의 용병대장을 불러 모았다.

선봉과 본대, 그리고 후미 순서를 정하고, 동굴 입구를 지키는 인원들까지 선출할 것이다.

번천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기왕이면 본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게 제일 좋지 않아?”

“그게 제일 안전하지만 남은 인원에게 전리품이 돌아올 확률이 낮지 않습니까? 어차피 목숨 걸고 돈을 버는 건데, 기왕이면 한몫 크게 당길 수 있으면 좋지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

“락은 용병들 사이에서도 합리적인 분배로 유명합니다. 귀족이랍시고 우대하는 것도 없고, 용병들이라고 하대하는 것도 없는 걸로 말입니다. 저도 그 때문에 처음 락에 온 거니까요.”

확실히 용병들 사이에서 락의 평판은 좋다. 이런 식의 좋은 소문을 많이 퍼트려야 하는데 말이다.

잠시 번천에게 용병 시절 던전 공략에 대해 듣고 있는 사이 작전 회의가 끝났다.

브렌드가 병사들과 자경단원들을 불러 모았고, 번천과 나도 끼었다.

브렌드가 작전 회의 결과를 알렸다.

각 용병대와 지원대에서 세 명, 락의 사람들 다섯이 남기로 했다는 것. 그래서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번천의 말대로 입구를 지키는 임무에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작년에 제일 놀랐던 게 락은 이런 토벌전에도 배려라는 게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용병들 사이에서는 있기 힘든 일인데.”

번천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금방 알 수 있었다.

병사들과 자경단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더니, 빠지는 인원을 금방 정해 버렸다.

나중에 전리품에서 십시일반으로 손해 본 것을 채워 준다는 조건과 더불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 그리고 얼마 전 새로 아들을 본 사람을 빼 버린 것이다.

락은 작지만 그야말로 완벽한 공동체란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내가 돌볼 사람들이다. 기왕이면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말이다.

브렌드가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진입한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던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과연 선두는 아버지와 브렌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서려 했으나 날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공자께서는 중앙에 계셔야 합니다.”

드리블이었다.

“드리블 경, 전 괜찮습니다.”

“주군의 명령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를 보며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아버지도 참…….’

알면서도 선봉에 세우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고 봐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마 그건 내가 마스터, 초월자가 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염려를 받는 것.

가끔은 귀찮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만큼 날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천천히 뒤따르겠습니다.”

기분 좋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던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대형급 던전.

초소, 소, 중, 대, 특대라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던전을 구분했으나, 실제로 대형급 던전을 보는 것은 드물고 초특대형은 한 시대에 한두 개 나오는 수준이라 했다.

당연히 토벌대는 그 어떤 때보다 긴장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이 그냥 2시간 동안 전진하기만 했다.

‘너무 이상한데…….’

마물이야 더 안쪽 깊숙이 박혀 있다 하더라도, 이런 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 한 마리 없었다.

트랩 중 가장 단순한 구덩이 같은 것도 없고 말이다.

“길 기억하냐?”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너무 조용하잖아. 미로로 만들어져서 그냥 말라 죽게 하는 던전도 있다는데.”

“그래서 지도도 작성 중이잖아. 에듀 남작님이 그런 것도 모를까?”

본대에 속해 있는 용병들과 지원대 병사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몰라 표식도 해 두고, 가장 왼쪽 길로만 들어가고 있으니 후퇴할 때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속삭였으나 동굴 안이 워낙 적막하여 앞쪽까지 전해졌는지, 아버지가 크게 소리쳤다.

혹시라도 동요가 생길까 봐 걱정하신 모양이다.

“그렇다고 긴장은 풀지 마라.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고, 토벌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미로라…….’

가문의 시험이 떠올랐다. 그 덕분인지 미로가 머릿속에 차근차근 정리되고 있었다.

“한번 그려 봐야겠는데.”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하다.

‘직선 맞지?’

의문이 드는 순간.

“잠시 쉬었다 간다.”

시그탑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물론이고 용병들도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별일 없다 했으나, 긴장한 채로 몇 시간 동안이나 움직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사이 머릿속에 있는 걸 바닥에 그려 보았다.

‘이거 아무래도…….’

“공자님, 뭐 하십니까?”

드리블이 다가오며 날 쳐다봤다.

그림을 그렸다 하나 손가락으로 바닥에 선들을 그어 본 것뿐. 그의 눈에는 내가 그린 지도가 보이지 않는다.

“드리블 경.”

“말씀하십시오.”

“지금 우리 직선으로 가고 있습니까?”

“시야가 짧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던전의 핵, 또는 대장 몬스터가 던전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까?”

대답 대신 반문에 드리블은 뭔가 느낀 표정으로 답했다.

“거의 없습니다. 핵이나 보스 몬스터는 입구에서 가장 먼 곳. 던전의 끝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핵이 중심에 있다면?”

드리블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지능형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능형요?”

“생물화된 던전. 그것을 지능형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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